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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완나폼 공항으로 가면서 본 방콕 시내의 아침
7시 예약했던 봉고차가 오고 길잡이와 인사를 하며 공항으로 출발한다. 봉고차는 고가도로로 만들어진 도시고속도로를 무섭게 달린다. 이 고속도로에는 분명히 속도제한(80km) 표시가 있는데 과속단속카메라가 없는지 모든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미친 듯이 달린다. 교통 경찰도 보이지 않는다. 빌딩 숲 사이로 먼동이 터 오고 우리를 태운 봉고차는 G.H를 출발한지 45분 만에 방콕 수완나폼 공항 3층 출국 게이트 앞에 우릴 내려 준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니 불교 국가답게 정면에 커다란 불상과 아수라상이 우리를 맞이하고 공항 안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한가로워 보인다.
▶ 수완나폼 공항 출국장 버스 내리는 곳
▶ 항공사 티켓 카운터
▶ 수완나폼 공항의 불탑
티켓팅을 하면서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과 출국 심사를 마친 다음 면세점을 한 바퀴 돌아 본다. 남은 태국 돈으로 어머니와 장모님께 드릴 초콜렛과 태국 과자를 사려는데 휴가기간 동안 고생한 직원들 생각이 난다. 바구니를 들고 면세점 안으로 다시 들어 가 보니 "2 BUY 1 FREE"라고 적혀 있는 게 보인다. 똑 같은 초콜렛인데 얼른 하나를 더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난 여행을 무척 좋아하지만 물건을 사는 데는 항상 서투르고 특히 귀국시 뭘 사가지고 와야 하는가가 제일 어렵고 스트레스다. 탑승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면세점에서 2병을 1병 값에 파는 양주를 사가지고 탑승게이트 앞으로 오니 8시. 아직도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담배 생각이 나 공항직원에게 물어 물어 찾아가도 흡연실이 보이지 않는다. 또, 일단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면세점이나 다른 곳에 볼일이 생겨 나오려면 항공사 직원에게 티켓을 맡겨야 한다. 역시 나같은 사람에겐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이 제일 편리한 것 같다.
▶ 홍콩 첵랍콩국제공항
10시 50분 이륙한 TG628 항공기는 홍콩으로 향한다. 얼마 후 기내식으로 나 온 파스타와 Singha 맥주를 먹으니 피로가 몰려 온다. 잠시 잠을 잔 것 같은 데 비행기는 홍콩 첵랍콩 공항에 도착 준비를 한다. 방콕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기에서 내려 보안검색을 받은 후 기다렸다가 다시 같은 비행기에 올라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한다.
경유 편 비행기는 항공료가 싸긴 하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내렸다 탔다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가급적 타지 않는 편인데 고객에게 양해도 없이 항공편을 바꾼 여행사가 밉다. 물론 직항 편이 없어 타 지역으로 가는 다른 항공기를 갈아 타거나 예약시 경유 편으로 예약된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8시. 짐을 찾아 입국심사를 받은 후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9시 40분. 나의 태국/라오스 8박 9일 여정은 이렇게 끝난다.
에필로그
이번 여행은 화석 연료를 써 지구 온난화를 부채질 하는 비행기는 최소한만 이용하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빠른 시간에 휑하니 스치고 말았던 자연을, 이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버스나 썽태우를 최대한 이용하고 현지인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도보여행이나 Trecking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현지인들의 희생과 착취 위에 운영하며 많은 자원을 쓰는 호텔 대신 현지인들이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하며 현지인들이 직접 해주는 음식을 먹었다. 때론 그들과 어울려 같이 놀기도 하고 현지인들의 생활에 참여함으로써 그들과 훨씬 살갑게 밀착하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지 어는 전혀 모르고 내가 조금 할 수 있는 영어나 일본어 조차 통하지 않을 때 만국 공통인 바디 랭귀지로 겨우 겨우 상황을 헤쳐 나갈 때 여행에 앞서 기본적인 현지 언어를 배웠었으면 좀 더 현지인들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한 국가의 지도자(대통령, 수상, 국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다.역사의 노를 젖는 것은 국민의 몫이지만, Key를 잡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싸움터에서 싸우는 것은 사병이지만 사령관의 올바른 지휘가 없으면 오합지졸에 불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징기스칸이 없었으면 몽골제국이 있었겠는가? 알렉산더가 없었으면 헬레니즘 문화가 꽃 피었을까? 링컨이 패했다면 노예해방과 미합중국이 존재 했을까?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으면 근대화, 산업화가 이렇게 빨리 이룩했을까?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국가경영의 Key를 잡은 사람이다. Key를 조정하는 능력과 기술이 바로 리더십이다. 페론 포플리즘이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병자로 만들어 오늘날 경제후진 국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르코스 독재와 부패가 우리 보다 잘 살던 필리핀을 후진국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내가 가 본 나라들 중 아직도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정상배에 가까운 인물들이 국가의 장래보다는 지도자 자신과 그 족벌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나라라고 생각된다. 라오스나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등 이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과연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국내 곳곳을 다녀 봤는지 의심스럽다. 도로 사정이 엉망이고 산사태로 도로가 끊겨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국가 지도자들이 과연 국민의 어려움을, 국가경제의 현실을 알 수 있을까? 또한 이익이 되는 사업은 그들의 족벌들이 모두 차지한 그 나라가 발전할 수 있을까? 안타깝다. 그런데도 라오스 국민들의 선한 눈 빛과 웃음은 과연 뭘 의미하는 걸까? 종교의 힘인가? 무지의 힘인가? 다음 기회에 관광지가 아닌 라오스 국민들의 생활 속으로, 도시가 아닌 농촌으로 여행하면서 그들의 속 깊은 생활을 함께 해야 풀릴 수수께끼가 아닌가 싶다.
아들과 둘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친한 사람도 사소한 습관들 때문에 서로 용서되지 않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고 또 그런 경험도 있기에 스스로 두렵기까지 했지만 아들과 나는 그런대로 여행을 잘 마친 것 같다. 그것은 아들이 군대를 다녀와 전보다 성숙한 마음과 행동으로 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아빠와 아들이란 믿음 속에서 짜증도 내고 틱틱대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어 괜찮았을 것이다. 아들은 내가 시시콜콜 간섭한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고 나는 급한 성질을 드러내면서 간섭하여 아들도 이제 20대 중반인 성인인데 어른 대접을 안 해 준 것에 대해 섭섭함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아들도 많은 것을 참으며 가정에 대한 이야기, 부모의 신혼 시절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아들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 등등 평소에 나누지 못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는 중요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함께 한다면 항상 배려할 수도 있고 때때로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도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은 쉬운 것 같아도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서양 격언에 "Give and take"란 내가 먼저 베풀어야 타인에게서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나를 비롯해 우리는 혹 "Take and give"가 무의식 중에 뇌리에 박혀 있어 내가 먼저 받아야 주려고 생각하기에 "배려의 마음"이 없어 서로 사소한 일로 다투는 건 아닌지...
마음을 비우고 싶어 떠났던 여행-얼마나 비우고 왔나? 모른다. 아들과 어려움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통해 행복을 찾아 보고 싶어 떠난 여행- 얼마나 아들과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히 하고 온 것 같다. 현재의 행복을 항상 물어 보자는 것- 누구에게? 스스로에게-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현재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나의 행복과 함께 타인의 행복을 염원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