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땅 무스탕 8번째날 로만탕 서울구경 이야기 20110813토요일
아침 산책을 나서니 부지런한 포터들이 아침을 지으려고 대형 물통을 들고 낑낑대며 길러 온다. 그분들의 수고로 우리가 잘 먹고 있음을 감사히 생각 한다. 현지 여인들이 주전자나 주방 기구들을 하나 둘 들고 나타난다! 얼굴이 거의 흑인인 50대 여인인 인사를 건네면 “라마스테” 목례로 답을 하고 골목으로 접어든다!
우리도 중3까지는 겨울철에 동내 안산 샘에서 양동이 2개를 들고 내가 5번 형이 5번 물을 들어와야 저녁과 아침을 할 수 있었다?
방학이고 길이 얼어서 물동이를 이고 누이가 오다가 미끄러지면 대형 사고가 날 듯하여 할아버지의 엄명이니 꼼짝없이 일을 해야 만했다. 5번 왕복의 책임을 맡으면 즉시 이행을 한대해도 한번에 10여분씩 한 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해 넘어가기 전에 빨리 해 치워야지 꼼지락거리다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 후 아버지가 그 샘에서 우리 논을 거쳐 한일 자동 펌프를 놓아주는 덕에 그 사역을 면하고 밥을 얻어먹고 학교에 다닌 추억이 있다. 마침 전기가 시골 마을인 우리 집 魚塘까지 들어와서 가능했다 지금은 천지가 개벽하여 그 촌이 청주의 중심 지역이다. 강남의 선 정릉처럼 우리 종산이 백제 고분 지역 사적으로 지정돼서 종산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안산에는 청주가 자랑하는 흥덕사지가 남아 있다 그도 우리 대 종중 산이다.
골목은 판석이 깔리고 우측엔 트렌치에 물이 콸콸 흐른다! 담장 모서리에는 검은 소들이 뜸베질을 하면서 힘 자랑이다 .수놈의 본성 저 넘치는 에너지 어되다 쓰겠나!
동네 큰 골목의 붉은색 점토 흙이 칠해진 3층의 큰집이 사찰이다 붕붕 나팔 소리가 또 들린다!
어제 본 초라한 왕궁보다는 화려하고 실권도 있는가 보다 !
행사에 호위하는 인마 수와 수행원의 당당한 행차가 머릿속에 스쳐지나 간다?
시골 면장이나 이장 같던 위풍 박에 못 느끼게 하던 왕의 풍모와 큰 스님의 행차 모습은 사찰과 왕궁의 모습에서도 대비된다!
이곳에서 나는 58-60년대 초의 자유당 시절 나의 초등 입학 즈음의 추억이
교차하여 지난 간다!
어린 돌배기 동생을 등에 업은 할머니가 토담 울타리 모퉁이를 돌아 저쪽 모퉁이로 가시면 동네 할머니들이 반가이 인사를 하시고 정담을 나누다, 어린 동생에게도 깍궁하며 인사를 건네면 침 받지 앞치기를 한 동생이 뺴시시 웃으면서 답을 하고, 아직 걸음걸이가 서툰 바로 손아래 동생은 청개구리와 풍뎅이를 늘 잡아 달랬고 ……
. 누비저고리를 입고 아래가 터진 담요 바지에 걸 방을 메고 걷다가 소변을 볼 때는 고추만 내고
할머니는 오줌을 뉘게 하신다!
우리들은 이 모퉁이에서 저 골목으로 담장을 끼고 뛰어다니면서 지름길인 칙병나무나 개나리 울타리 개구멍은 잘도 찾고 수채구녕도 넘나들었다.
부지런한 아저씨들 논에 물고 보시고 들어오시면서 노인들께 인사를 하시던 모습들과 소만 봐도 누구네 소인지 개인지를 알고
염생이나 닭 집 토깽이 벌통을 키우면서 사람과 가축이 공생하던,
그 시절의 소 외양간 오줌 냄새와 지금 이곳의 냄새가 흡사하다 그리고 사람의 표정들이 영락없는 그때 그 모습들이다!
5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비행기 하루 타고, 버스 하루 타고, 5일 걸고 말 타고, 고개 넘고 강을 건너 해발 4000미터의 고지에서 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너무 흡사한 추억을 회상하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와 많은 시공의 차와 변화를 겪었지만 지금이 그 시절보다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
어느 쪽이 더 무게가 크지 않은 수평 저울 같다.
먹을 식품을 머리에 진 포터가 일거리 있음에 만족하고 남의 집 추녀에서 잠을 자지만 행복 해하며 곤잠에 떨어져...... 한 곳뿐인 화장실을 여러 명이 들락거리면서 부시닥 거려도 그는 잘만 잘 잔다! 전기가 없어 헤드 랜턴으로 텐트를 더듬적거리면서 상념에 잠긴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핸드폰의 메시지 소리도 없고 핸드폰 소리도 없다.
내일이면 세상이란 밖이 터질 듯 한 언론의 충동적인 보도 경쟁도 없고,
그렇고 그런 뉴스로 이목을 잡으려고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를 기사라 전하는 방송도 없다.
뉴스 들을 일 없고 볼 신문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풍광과 밝은 하늘 그리고, 바람소리 가축들의 울음소리 들으면서,
새 노래하는 푸른 밀 밭과 붉은 색 메밀밭 누런 보리밭의 오아시스 뿐이다.
마침 사찰 옆 공터에는 동자 스님 셋이 제기차기, 비슷한 놀이에 열중이다 .붉은 승복과 까까머리 우리의 4-5학년 어린이들이다. 그분들에게 볼펜과 연필을 선물하고 현실로 깨여 돌아온다!
새로 낸 세마를 타고, 언덕길을 올라 혈거 동굴을 보려고 ,니푸와 마루프로 갈 예정이다 이곳은 평평한 분지라서 승마에 어려움은 없다 .그래서 모두들 말을 타고 다닌다! 그도 여행의 별미일 듯?
걷다 말을 모두 타니 웃음이 절도 나고, 좌우에 펼치는 풍경을 카메라에 열중하며 담고 동네를 들어서니 꼬마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네!
이곳 사찰의 쿵가싱보 텐진로리 파상 스님이 안내를 하여 혈거 동굴을 찾아 오르니, 해발 4007미터 지점의 동굴 입장료는 400루피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여러 층이고 통로가 미로다 낭떠러지가 많아 안내자 없이 돌아다니면 나올 출구를 잊기 싶상?
103개의 동굴이 있다는 유적지로 바다에서 솟은 융기 토석 층이, 석질 강도가 높은지 몇 층으로 파고 들어가도 견딜 강도인 모양이다?
수도승들의 발자취도 있고 기거한 유물과 흔적이 있다. 잘 안전하게 내려와서 동굴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동굴을 관리하는 니푸의 사찰로 간다.
작은 암자지만 적을 둔 스님들이45명!
사찰 이름은 “췌세르 동겝” 작은 동자승은 23명이 기거한다! 그 분들은 매우 천진난만하다
가면을 쓴 스님이나 영양 부족으로 머리에 기게충이 있는 모습은 우리들의 4-6학년 때 친구들의 모습이다.
점심은 사찰 아래 의자에서 더운 차를 주방장이 준비하여 주먹밥을 먹는다. 말로만 듣던 육이오사변이 주먹밥이다. 간도 맞고 여러 재료와 김 가루와 당근도 넣어서 색도 좋다.
맛은 그만이다. 삶은 계란도 있다 .식사 후 동자승들에 남은 연필과 볼펜 을을 선물한다. 그분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인근 10분 거리에 있는 아르프 사찰엘 간다! 먼 저간 서양 사람들은 말을 타고 출발하기에 우리도 말에 오르려 하니 걸어가란다.
누구 인간 차별하나 의아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걷는 것이 편하다고 동자 스님이 쪼르르 앞선다. 돌담을 톡 뛰어 내린다. 내가 웃으며 우리는 못 뛰어 내린다 괜히 다리라도 접 찌르면 낭패라서 웃고만 있으니......
아래도 다람쥐처럼 내려가더니 이리 오란다. 일행이 안전하게 내려서 모퉁이를 돌아서니 바로다. 아마 서양인은 승마하여 떠난 모양이다
오늘이 풀문(음력7월14일) 즉 추석이다
우리와 다르게 이들은 한 달 댕기여 명절을 쇤다. 추석에 사찰 불공을 드리려고 웬 노파 한분이 출입구 앞에서 머리를 단장하고 있고 옆에서 두 명이 거들고 있었다?
사찰 경내는 어둡고 촬영도 잘 안 된다. 향초를 올리는 장셈과 스님 그 옆을 마고 여사가 열심으로 따라 다닌다. 나는 건성이라 대충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온다.
십여 명의 많은 인파가 들이 닥친다 .머리를 잘 빗고 장식을 달고 최대로 예쁜 옷을 입고, 단장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뿐히 절의 마당으로 몰러 올라오시고 있었다.
나도 불전으로 450루피를 쓰고. 왔는데 여인들이 모두들 각자의 주머니에서 불전을 꺼내 조심스레 세어서 손에 들고, 우리의 대웅전 격인 법당으로 들어서려 한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초파일에 법당 앞에 서신 모습과 흡사하다
이곳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 말들이 기다리는 곳까지, 아까 동자 스님이 안내를 한다. 그리고 합장하여 성불하십시오. 인사를 내가 건넨다!
말을 타고 2시간 내려와 높은 산등성이를 올라 다시 내려가니 남갤마을이다.
이곳 남갈은 무스탕을 지은 대원 스님의 가이드 삼툭이네 동내다
이곳에서 다시 언덕을 200여 미터 올라가니 큰 사찰이 나온다! 남갈꼼바다.
스님과 장셈 마고가 먼저 들어가고 내가 주변을 촬영하다 들어서니 촬영 금지라 마고 여사가 알린다. 아예 절문을 나와서 왼편 모서리로 나온다. 벽에 기대어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김셈과 주변 경치를 구경한다! 위쪽의 계곡은 푸른 농작물이 끝이 안보이게, 크고 있고 많은 수량이 흐르는 계곡이 백여 미터 아래로 펼쳐 저서, 실족하면 아주 위험한 언덕이라 엉덩이를 뒤로 빼고 구경을 한다.
이 대평원의 농작물로 무스탕 왕국을 다 먹어 살리고도 남을 만하다.
쟁이의 기질이 나와 목측을 해본다. 가로는 4키로 쯤 길이인 세로는 10여키로 대략 40평방키로 약 1200만평이다 오차와 냇가 밭둑, 기타 미경 작지를 빼고 반만 농사지어도 600만평이다?
감탄을 하다 한 번에 광야를 다 잡기 위해 광폭 렌츠로 갈아 끼운다. 평원이 한 화면에 다 잡힌다. 동서남북 모두 담아 본다. fullmoon이라 이곳도 많은 인파들이 걷거나 말을 타고 짚차을 타고 모여든다.
이곳 아가씨와 여인들은 정말 말을 잘 타고 내린다? 우리처럼 더듬거리지 않고 쨉차게 내린다!
우리도 다시 말에 올라 천천히 내려가니 다시 급상승 구간이다 약 30분후 우리 호텔 앞에 일행은 하마한다.
한기를 느껴서 겨울옷과 털 모자를 쓰고, 배터리 충전을 하려하니 코드가 맞지 않는다. 친절한 일본인이 잠시 기다리라며 자기 만능 어댑터를 가져온다. 다행이 잘 맞아 충전을 한다. 2시간이나 걸린다. 그리고 일본인 부인이 어댑터를 충전키 위해 기다린다. 고맙다는 인사로 넘긴다. 저녁 식사는 된장국이다 식사 후 우보 대장의 딸 키우면서, 사윗감 퇴짜 놓은 에피소드와 우보 장인이 돌아가신 뒤 장모와 처제까지 돌보며 큰 적공을 하는 모양이다.
내일은 야영이란다. 세마가 늦게 오니 6시 기상 7시 식다 8시 출발이란다.
첫댓글 참으로 척박하고 황폐한 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민족에게도
웃음이 있고 평화가 있는 걸 보며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허욕을 부리며 살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새해 첫날
반성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새해 첫날
한 부모의 자녀인 육 남매 중 사 남매와 가족이 만나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며
행복감에 넘쳤는데 지구 상에서 이렇게 어려운 민족을 보면서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나 미국, 유럽 등의 질펀한 부귀를 누리는 삶이, 이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행복보다 우월하다 볼 수는 없어요!
이곳을 여행하면서 우리 어릴적 나의 모습과 비교한 내용이 있는데, 과연 제가 이들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마음의 행복이 물질의 행복을 능가한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먹을 음식이 충분하고, 남들과 대화하면서 사는 공존의 지혜는 나만 행복하고 편하면, 자연의 훼손은 남의 일이고, 남들이 치닥거리를 할 일이라 믿으면서,
지금의 환경 파괴는 우리에 엄청난 자연 재해 즉 산불과 2미터가 넘는 폭설과 도시를 금방 침몰 시키는 폭우로 아니면 생물이 살지 못할 가믐을 가져오거나 한 여름에 우리
농작물에 우박이 내려, 농작물과 과실수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연 재해로 식량이 절반으로 줄거나 재해가 2~3년 겹치면 그냥 폭망하여 물가 폭등, 없는 나라는 죽고 맙니다. 이는
우리의 위선과 교만이 만든 우리의 업보입니다. 선진국에서 명상이 유행한다고 함은 이들을 보고 배운 것도 있을 것이고 불교의 선을 시행하거나 인도의 명상을 가져온 것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
예.
맞습니다ㅡㅡ
인간의 오만함이 재앙을 부르는 길이라 여깁니다ㅡ
선생님의 관심과 정성이 하늘에 닿는 것 같습니다ㅡㅡ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