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진불도 11기 도반님들도 각자 자리에서 잠시 쉬어가는 쉼!!!을 가졌습니다.
그 쉼속에서도 배움은 우리를 떠나지 않았나봅니다~~
참 오랫만에 다시 만난 진불도 도반님들도 모두들 여여하고 평온한 모습들이어서 만남 그대로가 배움이었습니다.
9월22일 권오민교수님의 열린수업~~♡
불교공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음의 답을 아래 3가지 물음으로 답을 찾아가는 11기 불교대학 배움을
다시 이어가봅니다~~♡
1.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2. 왜 깨달아야 하는가??
3.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먼저 [깨달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분, 각자, 붓다라 한다. 불교의 명칭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불교의 모든 술어는 한자이지만 유독 [깨달음]이라는 말만 한글이다.
[깨달음]이란 말이 순수한 우리말이라 좋을 듯 하지만 너무 추상화되어 굉장히 높은 도를 일컫는 말로 바뀌면서 도리어 불교를 어렵게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도에서 [깨달음]이란 말의 의미는 붓띠,알다,지각하다의 뜻이다.
불교안에는 안다는 말이 굉장히 많다 ㅠㅠ
보리,각,오,해오,증오,혜,일체지의 지,정견의 견,세간해의 해,명행족의 명은 안다는 말이고 [깨달음]이란 말도 안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앎과 부처님의 앎은 차이가 없는 것인가??
두 앎은 같지만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 앎은 일상의 앎 세간지는 아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위없이 높고 고르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으로 부처님의 앎에는 반드시 "정각","아뇩다라삼막삼보리","무상정등등각" 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고 불제자들은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불교철학의 가장 신성한 말은 [소지]이다
[소지]는 굉장히 성스러운 말로 [소지]로 번역하지 않고 인도 말 그대로 이염, 즈네야, 알려진 것~으로 번역한다.
부처님께 알려진 것이 무엇일까?? 부처님은 무엇을 알았을까??
그 알려진 것을 부처님을 따르는 불제자들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 [응지]이다. 그러나 [응지]와 [소지]의 원어는 즈네야로 동일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엇을 알았던가??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고 불제자들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그것은 진리, 진실이다.
불교의 진리, 진실란 무엇인가??
어떤 이는 부처님은 *삼법인의 무아*를 깨달았다 하고,
어떤 이는 부처님은 *사성제*를 깨달았다 하고,
어떤 이는 부처님은 *연기법*을 깨달았다 하고,
어떤 이는 부처님은 *일체공의 반야바라밀다*를 깨달았다 하고,
어떤 이는 부처님은 *인무아와 법무아의 진실성[원성실성]*진실의 마음을 깨달았다 하고,
혹은 어떤 이는 부처님은 *본각진성 [본마음, 참마음, 진성, 일심...]*의 마음을 깨달았다 하고,
위에서 보듯 부처님의 깨달음, 진리, 진실은 천차만별, 각양각색, 그야말로 다 달라 혼돈이 생기니, 이는 이미 9세기 동아시아 불교 사상에 큰 영향을 준 규봉종밀의 선원제전집도서의 서문에서 배휴라는 분도 이렇게 쓰고 있다.
마명과 용수 두 분은 다 같이 부처님의 경전을 널리 폈지만 마명은[성=자성]을 주장하고 용수는 [공]을 주장하였으며, 혜능과 신수는 두 분 다 달마의 심인을 전하였지만 혜능은 [돈]을 주장하고 신수는 [점]을 주장하였으며, 천태는 [오로지 3관에 의지]하였지만 우두는 [오로지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하였으며. 강서는 [모든 것이 다 진실]이라 하였지만 하택은 [오로지 바른 지견만이 진실]이라 하였으며, 그 밖에도 어떤 이는 [공]이라 하고 어떤 이는 [유]라 하고, 혹은 어떤 이는 진(眞), 망(妄)이 [서로 포섭]한다고 하였지만 어떤 이는 [서로를 부정, 배척]하기도 한다고 하였으며, 어떤 경전은 진짜 [진실]을 전한 경전이라 하고 어떤 경전은 [방편]이라 하였으니, 도대체 어느 것이 진리인가?? 이것을 전체적으로 통일하고 정리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됨을 선원제전집도서의 서문에서도 중요하고 언급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폭넓게 논의 되었던 핵심적인 문제로 [일성개성]과 [오성각별] 어느 것이 진실인가??
법상종(해심밀경)에서는 삼승이 진실이며 일승은 방편이기에 오성(五性)의 각별(各別)을 주장하였지만, 천태종(법화경)에서는 일승이 진실이며 삼승은 방편이기에 일성개성(一性皆成)을 주장한다.
이처럼 2500년에 걸친 불교사상사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깨달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와 해석의 과정이었다.
매우 복잡한 사상체계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들어오면 모든 이들이 먼저 그 불교를 전체적으로 한 번 해석해 보고자, 불교를 하나의 체계로 바라보려 한 [교상판석]을 통해 부처님의 전체 일대 법문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으나 그 이해가 서로 달라 그 다름의 결과로 종파가 탄생했고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각양각색 다 다르므로 각 종파가 진리로 받드는 경전은 완전한 경전이고 나머지 경전들은 진리에 이르는 방편(불요의, 경전 자체가 완전한 뜻이 아님, 미진함)으로 받아들여졌다.
※ 화엄종의 성전:화엄경 / 천태종의 성전:법화경 / 정토전의 성전:아미타불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 한 경전을 신봉하면 나머지 경전은 방편이 아니라 배척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생겨남은...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이다.
불교사상의 위대성은 열린성전과 다양함이다.
불교의 성전은 무량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팔만사천 무량법문,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불교 신자들은 무량법문의 수 많은 가르침으로 인해 오히려 어디에 의지하여야 하는지 종 잡을 수도 그 이해도 쉽지가 않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우리는 어디에 의지해야 합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었다. [나는 그대들의 의지처가 아니다, 그대들은 오로지 그대들 자신과 법에 의지하라]는 유휸을 남겼다. 부처님이 돌아 가시면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4가지의지처를 4의라 한다.
첫째. 사람(여래, 부처님)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둘째.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셋째. 요의(완전한 말)에 의지하지 불요의(완전하지 못한 말)에 의지하지 마라
넷째. 식(언어를 통한 분별적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체험을 통한 완전한 인식에 의지하라
4의 중 첫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법에 의지하여야 하는가?? 그래서 [대방열반경]에는 [4대교법]이라는 법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4대교법이란 어떤 비구가 어떤 법문(경,율,교법)을 ①불타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②대다수의 박식한 장로들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③경과 율과 논모(해설)를 지닌 다수의 장로비구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④혹은 그러한 한 명의 장로비구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위 4가지의 경우 수 중 어느 것이 진실이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당연히 ①번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반열반경에서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4대교법]을 인정도 거부도 말고 그의 말을 잘 듣고 단어와 문장을 잘 파악한 다음 경에 포함되어 있는지, 이미 우리가 전승하고 있는 경전에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율(번뇌의 조복, 끊음)을 잘 드러내는지, 번뇌를 조복 받는데 유용한 것인지, 법성[진실]에 어긋난다면 비불설로 버려야 하고 법성[진실]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불설로 취해야 한다.
이는 곧 경전은 부처님 말씀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제자도 설하고 바라문도 설하고 더 나아가 아귀들도 설할 수 있다. 누구든지 설할 수 있고 진실에 부합하면 그것이 바로 불설이다. 불설 정의 즉, 경에 포함되어 있고 율을 드러내며 법성[진실]에 어긋나지 않으면 불설이다. 그래서 불설은 부처님의 경전은 시대와 지역을 달리해서 끊임 없이 생산되었다. 원각경, 능엄경 역시 동아시아에 와서 편찬되었으며 당연히 불설로 편찬되어진 것이다. 불설의 정의는 거의 모든 불교 교파, 종파에서 다 받아 들이고 있으며, 대단히 많은 경, 율, 논에서 불설의 정의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불교의 진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진리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며, 진리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경전도 끊임없이 새로이 편찬되어 왔다.
이렇듯 어쩌면 오늘날에 맞는 새로운 진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2차 열린수업은 아래 2가지 물음의 답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왜" 깨달아야 하는가??
■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신 권오민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1학기 마지막 수업은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권오민교수님 수업이었습니다. 불교방송에서 같은 주제로 강의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올해 처음으로 하게 된 수업입니다. 많은 내용을 요약하여 하는 내용이라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먄 부처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우리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여화 보살님의 글이 그 이정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_()_
첫댓글 훌륭한 정리정돈에 열린수업을 함께 받은듯합니다~~~
부처님을 만나 걸어가는 우리들의 인생길도
정리정돈 되어지길 발원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
1학기 마지막 수업은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권오민교수님 수업이었습니다.
불교방송에서 같은 주제로 강의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올해
처음으로 하게 된 수업입니다. 많은 내용을 요약하여 하는
내용이라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먄
부처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우리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여화 보살님의 글이 그 이정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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