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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독수리 땅의 살모사
(수18:1-28)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여호수아서 18장 말씀 중심으로 <하늘의 독수리 땅의 살모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일곱 지파가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근데 그냥 지체함에 있는 겁니다. 축 처져 있는 겁니다.
그 상태를 독려하면서 말하는데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북쪽에는 요셉지파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분배받은 땅이 있고, 남쪽에는 유다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이제 일곱 지파가 자기의 자리를 잡고 땅을 분배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모양을 여러분 한번 염두에 두시면 좋습니다. 북쪽에는 요셉지파가 있고 남쪽에는 유다지파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늘과 땅의 어떤 대치 국면으로 본다면 영적인 상황을 우리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다지파는 주님이 육신을 입고 내려오시게 되는, 성탄절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그런 절기 아닙니까? 그런데 에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 유다지파의 계보를 따라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요셉지파는 말씀드린 대로 북왕국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하면서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드는 그래서 복지를 다 상실하게 만드는 그러한 반역의 신앙적 행위의 중심적인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요셉지파가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유다지파와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중심적 축이 되는 요셉지파가 있고 그 사이에서 땅을 분배받게 된다 이 모양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첫 번째 가나안 땅으로 생각을 합니다. 복지로. 우리의 마음에 복이 임해야 되지요? 그러면 환경으로 복이 넘쳐날 것입니다. 환경도 바뀔 것이고 마음이 바뀌면서. 마음이 복지가 이루어지면 환경에도 복지가 주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마음을 놓고 일어나는 하늘과 땅의 힘겨루기라고 하는 제목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에요.
저는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북한에서 제작한‘동물의 왕국’중에 먹이사슬이라는 주제로 제작한 DVD가 있다고 그래요. 그 DVD의 내용이 뭐냐 하면, 맨 처음에 그 살쾡이가 들쥐를 하나 잡아서 거의 반 죽여 놓습니다. 근데 그걸 먹지를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가서 앉아 있습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땅바닥에 들쥐가 아직 죽지 않고 있는 걸 보고 쏜살같이 내려와서 그 들쥐를 낚아채려 하는 순간에 나무 위에 숨어있던 살쾡이가 정말 비호같이 내려오면서 그 독수리의 목을 물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살쾡이의 두배 만한 크기의 독수리가 퍼덕 퍼덕대고 막 발악을 하다가 결국은 축 늘어져서 죽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에요.
근데 그 살쾡이를 이제 살모사가 대적을 합니다. 살모사가 대적을 하는데 살쾡이가 막 앞발로 경계를 하고 공격을 하려고 쉬~익 쉬~익 그러잖아요? 결국은 그 살쾡이를 이 살모사가 삼켜버리게 됩니다. 뒷다리를 물어서 독이 퍼지게 한 다음에 독기 때문에 늘어진 그 살쾡이를 통째로 살모사가 삼켜버립니다.
이러한 살모사를 하늘을 나는 또 다른 독수리가 보다가 쏜살같이 내려와서 살모사의 머리를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발로 채 올라갑니다. 그러자 독수리의 몸을 감아버립니다. 그러니까 땅에 떨어지지요? 땅에 떨어졌는데 독수리가 계속해서 발로 모리를 머리를 짓이기면서 이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로 이 살모사를 쪼아대면서 결국은 살모사를 죽이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집어서 자기의 둥지로 날아가는 그러한 영상이 담긴 DVD가 있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하늘과 땅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살쾡이가 독수리를 이기고 살쾡이는 살모사에게 졌는데 그 살모사를 또 독수리가 잡아채서 이기는 그런 먹이사슬에서 느껴지는 그런 어떤 전의와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 사이에 이렇게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일곱 지파가 하나님이 약속헤주신 복지를 얻는 일에 이렇게 처져서 늘어져 있었을까요?
여기 왜 지체하겠느냐(3절) 라고 하는 이 말은 라파(hp;r; 7503) 라고 하는 히브리말인데 이 라파라고 하는 히브리말은 풀려버린 걸 말합니다. 아니면 해가 저물어 가는 거예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완전히 맥이 풀려버린 상태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불이 깜박깜박하면서 꺼져가는 상태를 말해요.
복지를 향한 어떤 열망도 이제 한 5~6년 전쟁을 치르고 나니까 마음이 지쳐버렸어요.
그래서 자기들에게 분배되어질 가나안 땅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그리고 이제까지 실패 없이 계속해서 전쟁을 해왔는데도 그런데 그만 깜박깜박하면서 이 복된 삶을 손만 내밀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걸 못 얻고 그냥 축 처져 있었던 것 같아요. 일곱 지파가..
왜 그렇겠습니까? 여러분.
먹힌 거예요. 이 땅의 세력에 먹혀버리고 만 것이에요.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여서 축 쳐져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참, 갈렙과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갈렙은 왜 헤브론 산지라고 하는 그렇게 험악한 곳을 선택을 했고 아낙자손 거인들이 살고 있는 곳을 선택해서 자원해서 그쪽으로 가겠다고 말을 할 수 있었는데 더더군다나 85세의 할아버지가.
왜 나머지 지파들은 요셉지파는 앞에서 본대로 자기 땅이 좁다 뭐 좁으면 개척을 하라고 여호수아가 권면하니까 그 곳에는 철 병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할 수가 없다이러고 있는데 또 다른 지파는 축 처져서 복지를 얻을 생각도 안 하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왜 갈렙과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사람 마음이 별 달라요? 똑같은 마음일 텐데.
이게 바로 이 마음판에서 일어나는 하늘과 땅의 힘겨루기에서 땅이 이기느냐 하늘이 이기느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이 땅이 우리 마음을 먹어버리지 않습니까? 하늘을 이기고 땅이 우리의 마음을 먹어버리면 이 땅에서 복지를 차지하는 것조차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 내용을 좀더 우리가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요셉지파가 북쪽에 있고 남왕국 유다가 남쪽에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가 하늘을 대표하는 지파라면 요셉지파가 땅을 대표하는 지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에요. 그러면 어떤 차이에 의해서 이렇게 복지를 약속 받았으면서도 처져있는 상태가 되냐?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다 경험할 수가 있어요.
요셉지파적인 태도. 무겁고 처지고 불이 꺼져버리고 맙니다.
갈렙같은 태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확장해나가는 일에 아주 가볍게 가벼운 마음 상태를 가지고 항상 부릉~ 부릉~ 이렇게 시동이 걸려있는 상태로 접하게 됩니다.
그럼 왜 그러느냐?
요셉 지파적 태도라는 것은 여러분,
삶에서 이루어야 될 과제나 어떤 계획들 또 마음의 어떤소원, 내게 주어진 환경을 바꾸어야 되겠다고 하는 어떤 마음가짐, 결심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에 생기면 결국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우리 마음이 스펀지가 물을 먹은 상태인 것처럼 축 쳐져버리고 맙니다.
처음에는 바짝 의욕이 생겨서 삶의 과제를 향해서, 세운 계획을 위해서, 마음의 소원을 향해서 의욕을 가지고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마는 결코 오래 못 갑니다. 그냥 축 처져버리고 말아요. 지쳐버리고 말아요.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곱 지파가 쳐져 있는 것은 요셉 지파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에요.
요셉 지파의 태도가 뭡니까?
땅의 환경을 자꾸 보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살아야 되는데 이게 너무 좁지 않냐. 철 병거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냐.'
전부 내 일로 마음에 받아들여버리는 겁니다. 내 과제요 내 계획이요 내 희망이요 내 소원이요 이렇게 내 일로 받아들이게 되면 결코 3일을 못 갑니다. 무거워서 못 해요.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나라가 40대 50대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1위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전부 내가 해야 되고 뭐 그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거 아주 위험한 것이라는 거예요. 땅에 먹혀버린 거예요.
반면에 갈렙은 어떠냐?
갈렙은 항상 40살 그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한 이후로 광야에서 45년을 사는 동안에 갈렙의 마음을 늘 일관되게 유지시켜준 생각이 있다면 ‘모든지 하나님이 하시면’‘하나님이 함께 하시면’그러니까 언제나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안 하시면 아무 것도 못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지 되고.
그러니까 갈렙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은 하나도 자기의 과제가 없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과제에요. 그 하나님의 과제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당신이 이루어 가시는 것뿐이지 아무 것도 내 일로 생각한 게 없다는 거예요.
내 일로 생각지 않으니까 항상 갈렙은 방방 뜨는 거예요. 가벼워요.
이 세상일을 내 일로 생각하자마자 우리는 스펀지가 물을 먹은 것처럼 쳐져버리고, 내게 주어져 있는 모든 생의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라 믿고 하나님의 과제라고 믿고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항상 가벼운 거예요.
이 땅을 빨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식 키우는 거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거워요. 어떻게 초등학교 졸업시키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서 대학을 졸업시키고 까마득하지요. 무겁기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자식 내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항상 가볍게 살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선교회 일을 시작하면서 뭐 여기 장소를 얻었으니까 집세야 뭐 인건비야 또 무슨 CD를 제작하는 비용에 여러 가지 비용을 다 하니까 주머니에 돈은 하나도 없는데 한 팔백만 원 정도가 한 달 작년 처음 시작할 때 소요가 돼요.
팔백만 원을 만들겠다고 맨 처음에 제가요 한 이삼백 명 조직을 하겠다고 이렇게 몇 사람 접근을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혼자 여기 있을 땐대요. 서초동에 방 하나를 얻게 되어서 혼자 있을 땐데 밴쿠버에서 가족이 오기 전에, 날마다 천근만근이에요.
여긴 지금 공사가 되고 있지요. 사람을 만나봐야 자존심이 상해서 말하지도 못하겠어요. 마음은 그 사람을 설득해서 이사회를 크게 만들어서 헤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과 구상을 갖고 사람을 만나고 로비를 한다고 하는데 되지를 않아요. 살 맛아 안 나요.
근데 억지로 억지로 이제 시간이 지나서 그러한 비용적 경제적 부담을 안은 채로 설교를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설교를 하는 중에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를 위해서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점점점 빨려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여기서 완전히 공사판에서만 지내다가 그러면서 이 걱정만 하다가 설교를 다시 접하고 말씀을 다시 접하면서 마음이 회복이 되는 거예요.
회복이 되면서 결국 어떻게 되느냐?
이 일이 내 일이 아닌 상태가 됩니다. 전부 선교회를 운영하는 게 내 일이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이 공사판에서 그저 뭐 이 색깔은 뭐로 하냐 뭐로 하냐 아침에 나오면 저녁 일곱 시까지 먼지를 마시면서 이 공사판에 같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이 사람이 아닌 거예요. 머리고 마음이고 모두가 다.. 완전히 세상에 먹혀버린 겁니다.
그때 제가 생각한 게 하여간 세상 일이 바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에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나쁘거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못 됐거나 악하거나 영적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여간 이 세상 일로 바쁘면 백이면 백 다 쓰러져 나자빠지게 되어 있어요. 먹혀버리는 거예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그렇게 돼서 축 처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여러분, 이렇게 선교회가 광고하고 하면서 팔백 개씩 만들던 CD를 삼천 개씩 한 주에 만들어야 될 형편이 되었습니다. 내 일로 생각하면 못 해요.
결국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주어지는 나의 일로서 주어지는 인생의 과제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 붙잡는 거예요. 죽는 거예요.
그걸 내 일로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내 일로 받아들여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한 방에 끝나요. 이 세상 일을 내 일로..
하여간 뭐 일시적인 일이라도, 한 달 뒤에 있을 일을 위해 준비한다 이런 일도 전부 마음을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셔야지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다’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내 마음에서 그걸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밀어내세요.
그러면 일이 다 돼요. 다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조그만한 일이라도 내 일로 내 일로 자꾸 받아들이다 보면 이슬에 옷 젖는지 모른다고요 마음이 조그만한 세상 일이라도 자꾸 내 일로 받아들이면 결국은 마음이 축 쳐져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복지를 만들어 놨어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땅을 만들어 놨거든요. 그런데 그 복지를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들어가질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거예요. 축 처져서..
왜 처졌냐?
세상일을 내 일로 받아들여가지고요. 다른 이유가 없어요. 전부 세상일을 내 일로.
자식 키우는거 뭐 사업하는 거 직장생활 하는 거 교회 목회하는 거 선교하는 거 모든 걸 내 일로 받아들여서 다 받아들이고 나니까 축 쳐져서 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행복한 삶이 눈 앞에 있는데도 거길 가질 못하고 있는 거예요. 축 처져서..
라파 - 지체하겠느냐!
다 풀려버렸어요. 맥이 풀려버렸어요. 맥이 풀렸다는 뜻이거든요? 이 지체한다는 게..
맥이 풀려서 흐물흐물 하고 있는 겁니다.
갈렙처럼 막 그냥 부릉~ 부릉~ 발동이 걸렸어요. 가볍게 가볍게.. 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일로. 이 세상의 모든 게 자기 일이 하나도 없어요. 내 일이 없는데 무거울 게 있겠습니까? 가벼워요. 하나님이 하실 일들 그걸로 생각하고 85세가 되었어도 아직도 부릉~부릉~ 하고 있는 거예요.
왜 그래요?
갈렙은 청동거울이었겠지요. 그 청동거울을 보면서 늙어가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도 그 늙어가는 자기 조차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겁니다. 그 조차도 자기 일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이 뭐 늙게 하시던가 뭐 젊게 하시던가 그건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마음에 두질 않는 거예요. 마음에 담질 않는 거예요.
늙어가서 정말 날로 날로 후패해가는 이 몸을 내 마음에 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85세가 되었는데 40세와 똑같아요. 그냥 이제나 저제나 똑같이 그냥 가벼워요.
하늘의 독수리 땅의 살모사.
이 땅에 뱀이 말입니다. 계속해서 속삭거리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일이 마치 우리의 일인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자꾸 속삭거리는 거예요.
그게 그냥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음과 동시에 성령의 독수리가 와서 확 묵사발을 만들어야 돼요. 그 뱀의 머리를 깨부숴버려야 돼요. 자꾸 세상 일을 내 일로 받아들이게 하는 거예요.
거울을 보면서도 여러분, 이렇게 주름살이 가고 이런 내 얼굴 조차도 내 게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이게 여러분 거예요?
여러분 거면 왜 여러분 마음대로 안 됩니까? 주름살 하나 펴지 못하는데 여러분 게 아니잖아요. 근데 왜 여러분들 걸로 받아들여요?
그냥 거울보면서 늙어가면 늙어가는 대로 그대로 다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다 보면 갈렙처럼 마음이 가볍게 가볍게. 가볍지마는 이 세상은 실지로 훨씬 더 강력하게 이 땅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가고 복지를 쟁취해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기억하면 마음이 이 세상의 일들을 내 일로 빨아들이게 된 모든 일들을 중단하게 될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가 막아버리는 거예요.
마치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보면 도망가는 것처럼 세상의 일들, 세상의 과제, 내가 이루어야 될 일들, 심지어는 관공서에 가서 어떻게 해야 되어야 될 일도 그 때가 되면 내가 갈 뿐이지 미리 그걸 내 일로 생각해서 관공서에 가서 공무원들하고 입씨름을 하려면 뭐 어떻게 해야 되나 이렇게 내 일로 받아들이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 생각하시면서 하나님 함께 하시면 될 거고 하나님이 함께 안 하셔서 안 되면 하나님 뜻이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시면 언제나 가볍게갈렙처럼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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