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_탄금대(대문산),
🟫 중앙탑
(충주탑평리7층석탑)
* 202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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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영령을 찾아서
탄금대
탄금대, 대문산
▪️위치 충주 남한강과 달천이 합수하는 지점
▪️대가야 우륵이 가야금 타면서 여생을 보낸 곳.
▪️임진왜란 당시 신립 징군이 배수진을 쳐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곳.
충주탄금대 (忠州 彈琴臺)
명승 제42호
▪️탄금대는 해발 108m 정도의 야트막한 산 大門山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대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徙民政策)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 25년 1592년 4윌 임진왜란시 신립(申砬)장군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 고대 토성의 혼적이 남아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을 갖추고 있다.
<탄금대 사연>
▪️작사 이병환 / ▪️작곡 백봉 /
▪️노래 주현미
탄금정 굽이 돌아 흘러 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 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 가고 물새만 슬피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를 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진 남한강에 님 부르는 탄금 아가씨
탄금대는 대가야의 음악가 우륵이 신라에 귀순하여 여기에 거주하며 가야금을 탄 곳이라는 사연에서 나온 지명.
일정표
[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
소재지 : 충주시 칠금동산1-1번지
▪️이 탑은 1592년 음력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이 휘하 장졸 8천여 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전적지임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다.
▪️탑상단에 형상화 된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고, 아래 부분의 신립 장군과 4인의 군상은 죽음으로써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 바위와 바닥 부분의 원반 모양은 탄금대를 싸고 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 모양을 살려 구성한 것이며, 탑 뒷부분의 부조는 당시의 탄금대 전투를 생생하게 느낄 수있도록 표현하였다.
신립(申砬) 장군
▪️1546년(명종 1년)~ 1592년(선조 25년)
본관 평산, 23세 때 무과 급제.
진주판관을 지낸 후 온성부사로 있을 때 니탕개 야인을 격파하고, 함경북평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순변사로 임명되었고, 부장 김여물 등의 조령 방어 건의를 묵살하고, 상주에서 방어하다 실패한 이일 장군과 더불어 8천여 군사로 충주 탄금대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패배하여, 남한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장이다.
솟대
감자꽃 노래비/ 동천 권태응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은 절경을 이룬다.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열두대
열두대 탄금정
탄금대 내에 있는 작은 절 대흥사
대흥사
[탄금대 대흥사 연혁 안내]
▪️이 대홍사가 자리 잡은 산을 대문산이라 불러왔으나, 당시 대가야국의 악성 우륵이 이곳에 와서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이후로부터는 탄금대라 불렸다.
▪️본 대흥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의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쪽의 난을 당하여 사찰이 소실되었던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용응사가 폐허 된 곳으로 근 천년의 세월이흐름에 있어서 뜻있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오던 바, 법우 큰 스님께서 이에 뜻하는 바가 있어 1956년 3월 이 터에다 대흥사를 재건하게 되었고, 관음도량으로써 많은 분들을 교화하셨다.
▪️하지만, 1968년 10월에 불의에 화재로 인하여 대웅전이 소실됨으로 1969년 5월 법우 큰 스님께서 다시 뜻을 세워 대웅전을 중창하게 되었다
▪️후에 2대 주지 지정 큰스남게서 1994년 6월 미륵부쳐님을 모시고 2003년부터 대웅전 불사를 시작으로약사전, 산신각, 종각, 법고각, 요사체불사를 마무리하셔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2019년에는 포교를 위해 충주자유시장에 포교원을 개원하셨다.
▪️현재는 3대 주지스님께서 포교에 전력하고 있다.
대흥사
밤나무 꽃숲이 한창이다.
우륵비
무슨 일고? 조각이 많은데, 특이하게 눈에 띄어서~
열두대 신립장군 위령비(순국지지비)
순국한 곳임을 알리는 비석
[신립 장군 순국지지비]
임진왜란시 왜군을 방어하기 위해 여기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패전하고 장렬히 전사한 곳.
열두대
가야금 줄이 열두줄이라서?
그 명칭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탄금정
이것도 조각인데~
열두대는 낙화암 분위기
가자니아
아름다운 모나르다꽃
중앙탑 사적공원
통일신라때 탑, 드문 7층석탑.
당시 국토 중앙이라고 속칭 중앙탑
<중앙탑에서>
선묵 혜자
남한강 물줄기 굽이돌아
지친 숨 몰아 쉴 때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들녘
쉬어가라 손짓하네
주몽 남으로
온조 동으로
혁거세 북으로
창칼 겨눌 때
한반도 배꼽의 석탑
원융회통 할*을 한다
천년 풍상 버텨온
장중한 몸
정을 쪼던 석공들의 손길
예술혼으로 피어나
탄금호 물결 따라 일렁이고
달디단 복사꽃에 취해
영겁을 찰나같이 보낸다
낙조는 능금처럼 발그레
석탑을 물들이고
강바람에 잡초 몸 부비는 소리
가야금 산조로 들린다
한 점 욕심마져 걷어내고
진리의 탑 발원할 때
입곱 송이 연꽃 화현하여
장엄정토로 인도하누나
글씨 동천 임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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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喝)
선승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배우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소리
정식 명칭은 <충주탑평리 7층석탑>.
국보 제6호
높이 13m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Seven-Story Stone Pagoda inTappyeong-ri, Chungju
국보 제6호(National Treasure No.6)
▪️中原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석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 이라고도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 9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으며, 10여 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중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m 정도로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은 느낌이 강하여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1917년 해체 ,복원시 6층 탑신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칠합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 때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 ㆍ 복원과정에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북 명소 몇 곳
*️⃣ 다음중 중원탑, 청남대, 법주사, 부소담악은 내일모래까지 둘러 볼 곳이다.
중간에 정자까지만 갈 수있고 그 이상은 금지라 의미가 적었다.
충주 중앙탑
법주사
도담삼봉
진천농다리, 낮은 고개 넘어가면 초평호 둘레길과 출렁다리가 있다.
청주 청남대
대통령별장, 전두환때 만들고, 노무현때 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