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5일(수)입니다.
아내의 단장은 예수님 안에서 깨끗한 양심과 남편에게 복종하고 주어진 일에 부지런하며 자녀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거짓이 없는 말과 절제된 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남편의 단장은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자녀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며 겸손하여 다투거나 변론치 않고 십자가중심을 가지고 다른 이를 축복기도할 때 단장됩니다.
독립된 삶의 환경을 가진 일반 남자나 여자의 단장은 자존심과 고집을 버리고 십자가중심을 가진 지도자의 인도에 순종하므로 단장됩니다.
모든 사람의 거룩한 단장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음과 행위를 늘 구별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8-15)
마음의 단장은 자존심과 고집, 미움과 시기, 열등감, 낙심을 제거할 때 이루어지며 몸단장은 음식과 옷을 구별하며 앉을 곳, 설 곳, 갈 곳을 구별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단장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 본다고 단장되지는 않습니다.
교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단장되지는 않습니다.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입니다.
많은 시간을 기도와 예배에 할애하고, 많은 시간 설교듣기에 치중해도 삶에서 그 말씀과 기도를 적용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고상한 마귀에게 속아 마귀가 역사할 공간을 만들어 줄 뿐입니다.
외적인 형식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실질적인 관계가 중요하며 어떤 것보다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관계는 말씀순종에서 출발하며 말씀순종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기도의 나열과 많은 시간의 소요가 경건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은 외식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외적인 경건을 알아주고 칭찬하며 그것을 이용하여 교회의 세를 불려 더욱 외식케 하므로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
우리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인도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한 마디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기도는 왜 합니까? 회개하며 말씀을 삶에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을 주장하시며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말씀의 내용이며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의 기본은 항상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여 묻고 행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 여쭙고 예수님이 답을 하시면 어떤 말씀이라도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대답이라고 해서 재차 물으면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구하는 것이며 욕심 때문에 예수님의 진정한 인도를 받을 수 없고 불순종하는 상태에서는 마귀가 역사하며 마귀의 주장을 받게 됩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