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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주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줄 수는 없다.
자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주면, 자녀에게 좋은 일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나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교육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주기 위하여,
그런데 자녀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저지당할 때는 몹시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부모는 자녀가 잘 되게 하는 교육을 멈출 수는 없다.
자녀가 부모의 진심을 모른다고 잘 되는 길로 가도록 하는 교육을 멈추는 일은
자녀를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교육하는 일은 사람만이 하는 일은 아니다.
생명체를 가지는 모든 존재에 공통적인 마음에서 하는 일이다.
그러면 이러한 부모의 마음은 우연히 있는 일일까?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일과 보이는 것이 일체가 되어 삼차원에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를 인식하여 더불어 살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살지는 않는다.
스스로 행동하는 생명체는 자신에 의지로 보고, 듣고,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은 모두 다르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생명체 가운데서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살려고 하기에 때로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여,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부모는 자녀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 교육하여 타인보다 잘 되고, 잘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인생에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자녀를 사랑하여 교육하는 일로는
사람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죽음의 문제는 절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에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영으로 함께 하신다.
그런데 사람의 자녀는 영으로 세상을 주관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참 부모를
인식하지 못하여, 믿지 못하며, 참 부모의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혼이 보이는 영혼의 옷, 몸을 벗는 일을 두려워한다.
이는 영혼이 영혼의 옷, 몸을 벗는 일이 죽음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참 부모로부터 받은 영혼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같이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자녀가 참 부모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은 영적인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늘나라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한 증거가 세상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일이다.
죄는 자녀가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사람도 이러한 일을 마음에 양심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양심을 따라서 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악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일 때문에 사람은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마다 법으로 최소한의 도덕을 실현하여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삶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죽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가 소망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없어서 사람들은
완전한 사랑의 나라를 꿈꾸어, 파라다이스에 세상을 동경한다.
그리고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면서 보기 힘든 파랑새를 찾아 나선다.
이것이 인생 여정이 되어 삶은 고난과 환난과 질병과 전쟁으로 힘들어 한다.
부모는 자녀가 불순종해도 자녀를 포기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자녀는 자신에게 있는 자유의지로 양심을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여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자아에 마음의 생각을 따라서
선과 악을 판단하기에, 사람의 시선이 어느 곳으로 향하여 있는지를 따라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썩어지는 육체에 소욕을
따라서 사느냐에 결정으로 자신의 영원한 세상을 결정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자신에 결정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서 참 사람이 되게 하여, 죄가 참 부모와 사람을 가로막았던 일을
해결하게 하였으며, 죄를 인정하고, 참 부모를 인정하여, 죄에서 구원하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동행하며, 죄에서 구원받는 삶으로 인도하는 교육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공기와 같이 동행하는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야, 정한 때가 이르면 하나님 자녀로 삼으실 것이며
다시는 죄와 상관없는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성 삼위일체로서 하나님 자녀와
예수 그리스도에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과 성전이 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참 부모는 사람의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여,
죄에서 돌이키라고 애타게 부르짖고 계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존귀한 인품을 가진 아브람을
부르셨고, 아브람이 시간과 공간의 안목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인본주의에
믿음을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는 일로,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이삭을 주셨다.
그리고 이삭은 두 쌍둥이를 낳고, 붉다는 뜻에 에서와 뒤꿈치를 잡다는 야곱을
낳았고, 두 자녀는 이삭에게 교육받고, 자유의지로 옳고, 그른 일을 따라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삶을 따라서 살았다.
이삭에 두 아들로 세상에 공존하는 선과 악을 깨닫게 한다.
에서는 보이는 것을 좇아서 살며, 사냥을 좋아하여 아버지 이삭을 즐겁게 하였고,
야곱은 리브가와 같이 지내며, 복의 근원되는 분의 축복에 관심이 많아서
형과 아버지까지 속여가며, 하나님께서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가로챘다.
그 결과로 외가로 도피하여 이십 년을 종과 같이 살았지만,
그가 갈구하던 분께 복을 받아서, 네 아내와 열 두 아들과 딸을 얻었다.
고향으로 돌아 올 때, 외삼촌과 형에게 살해 당할 위협에 처했지만,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지켜 보호하셨다. 이는 참 부모가 사람의 자녀를
사랑하는 결과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자녀에게 이 같은 사랑을 전달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택한 참 부모의 뜻에 순종하지 못한 결과다.
이후로 계속되는 불순종으로 이집트에 종살이를, 하면서 참 부모에게 부르짖었다.
부모는 자녀가 아파하면, 그 아픔을 대신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에 이름을 가진
모세를 지도자로 죄의 종살이에서 하나님 자녀가 되는 탈출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약 백만이 되는 자녀에게 먹거리를 주고,
사나운 들짐승과 온갖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여 옷과 신발이 닳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참 부모의 존재를 보이는 썩어지는 것을
좇아서 우상숭배로 참 부모를 배반하였다.
그 결과로 이십 세 이상으로 옳고 그른 일을 판단할 수 있었던 존재들은
모두 다 광야에서 죽이셨다. 이것은 사람의 인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참 부모 하나님의 교훈이지만, 보이는 것을, 좇아서 사는 사람은 깨닫지도
못하여, 최초로 참 부모를 배반한 자가 있는 죽음의 세상에 속하게 한다.
그래서 공기와 같이 세상에 충만한 참 부모는 사람의 자녀를 구원하려고
성 삼위일체에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람이 최초로 죄를 지었던
여자의 몸에서 사람이 되게 하여, 사람의 자녀가 지은 죄 때문에
참 부모 하나님과 가로막았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다.
이는 자아에 마음의 생각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참 부모를 찾게 하는 일이지만
어리석은 자녀는 참 부모의 뜻과 계획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영, 성령으로 동행하며, 죄에서
구원하려고 믿음 가운데 동행하여 죄의 종살이에서 자녀의 삶을 살게 한다.
이는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에 응답하는 일만이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영이 동행할 때, 자신의 영은 자신에 마음의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여 보이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공기가 보이지 않지만, 공기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일과 같다.
그래서 사람의 자녀가 영으로 세상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영혼과 보이는 몸으로 삼차원에 시간과 공간 가운데서
살고 있는 뜻은 사람의 자녀가 어디에서 와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어, 영원한 일을 사모하게 하려는 부모의 교육에서 있는 일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 동안에 삶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교육하는 일에 증거가 선택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후손의 역사이다.
이는 그 누구도 선과 악을 가르는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변명할 수 없게 하는
일이 되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을 살 동안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는 말을, 부모들이 이야기하였던
이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진리를 따르는 길을 찾을 때,
가져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에 연령대를 따라서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고희 등으로 이야기하여
사람이 어린아이에서 어린이 되어갈 때, 깨닫게 되는 이치를 이야기한다.
이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일이다.
약관을 이르는 이십 대에는 불의한 일을 참지 못할 때이다.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도록 하였던 세대가 약관에 나이를 살았던
세대이며, 이립에 나이에는 스스로 삶을 살아내려고 자립하는 시기가 된다.
불혹에 나이 때는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나이로 최초의 배반자가
참 부모를 배반한 일을 가늠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사탄의 깊은 흉계에 빠지지
않는 나이로 미혹되지 않을 나이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반백 년을 사는 나이를 지천명이라 하여, 하늘과 땅에 이치를 깨닫는
나이를 일컫는다. 그래서 선조들은 온갖 명언과 속담으로 자손에게 조언한다.
태어나서 십 년씩 열두 번이 될 때를 환갑이라 하고, 이때를 이순이라 하여
하늘과 땅에 이치를 깨달은 후에는 참 부모의 마음을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다고 하여, 이순이라 한다.
이는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피조물 가운데 주신 지혜가 된다.
하지만 이기적이며, 물질만능주의가 되어, 참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사람의 학문과 피조물 가운데 규칙적으로 운행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원리를
습득하여 과학이라 칭하고, 이를 신봉하는 오늘날 세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천재지변하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사람의 자녀는 자신에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참 부모를 인정하지 않아
교만한 마음의 자리에 갇혀있다.
사람은 두 번에 종말을 맞는다. 한 번은 개인적인 종말이고, 또 한번은 세상적인
종말과 함께 악하게 살았던 존재는 최초의 배반자와 함께 영원한 불바다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종말이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죄를 회개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미리 경고하는 말을 히브리서 10장에서 구원에 은혜받은 후에 죄를 짓고
있으면,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로 더 이상 죄를 사하는 제사가 없을 것이라
하여, 성경 말씀을 거울로 자신의 삶을 살피며,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부탁한다.
참 부모에 사랑은 자녀에게 알리기 위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라가 되게 하였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 말씀에 성취가 되게 하였기에
모든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 말씀이 성문화된 성경 말씀에서 뜻과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교만한 마음으로 보면,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는 사람의 자녀가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항상 어린아이와 같기를
소망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아무리 철없는 자녀도 때가 되면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리고 참 부모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러한 자녀에게는 더 이상 죄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배은망덕이라는 이야기는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아
교만한 마음으로 불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이러한 자녀를 끝까지 회개하기를 인내하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약 16,100년 동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죄에서 돌아서기를 기다립니다.
사실 하늘나라에서 시작한 기간을 계산하면 하나님과 사탄밖에 모른다.
하늘나라에서 시작한 참 부모를 배반한 배은망덕한 일을 참 부모가 참으면서
기다리는 것은 자녀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소망하는 일이지만,
어리석은 자녀들은 교만한 마음으로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멀어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기에 때가 이르면 이들은 모두 다 불바다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영적인 안목으로 살아야
자신의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자녀가 짧은 지식으로 교만하여 영적인 안목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더욱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식에 관하여 재조명할 때이다.
정한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잠에 취한 자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깨닫지
못해, 악한 일을 밥 먹듯이 하지만, 그의 마지막이 현재 일어나는 불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게 생각하는 일이 영원하리라 착각한다.
그만큼 하늘나라에서 시작한 피조물에 어리석음은 끝이 없다.
오죽하면 부모가 자녀를 불 속에 넣으려는 뜻과 계획을 세우고, 수만 년을
사랑하며, 죄에서 회개하라고 끊임없이 호소할까?
그러고도 부족하여 참 부모로서, 자신이 창조한 영혼을 바라보며, 자신의 뜻과
계획을 부모의 말에 순종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자손으로 전하게 하였고,
참 부모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닌, 참이라는 사실을 알려, 이스라엘의 역사가
되게 하였고, 모든 민족에 언어로 번역, 성문화하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고 계실까?!
세상에서 혈육으로 가족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일은 고난과 환난을 겪을 때,
서로 위로하고 돕게 하는 일이라고 잠언 17장 17절에 기록하여 알린다.
하나님 자녀 사람이 세상을 살 때, 친구와 가족으로 사랑하게 하는 일은
참 부모가 배려하고, 삶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자손을 세상에 남기려고 시험관 시술로 과학과 의학에 힘을 빌리지만,
성공률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는 사람이 영적 존재라는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사람은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이 육안으로 보이는 것을 좇아서 살고 있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성경을 기록하게 한, 사람의 이름에 맞는 말씀을 주어
전하게 하셨다. 이러한 일을 사람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사용한다.
그래서 이름에는 반드시 뜻이 있다. 이는 참 부모 앞에서 축복하는 일이다.
마지막 때는 자신에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는 이름을 가진 예수님에
초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레위기 12장 말씀에 순종하여 삶을
살았으며, 자신의 몸이 정결한 제물이 될 때,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뜻이 하늘나라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와 같이 서른세 살이 되셨을 때,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들만이
달리는 저주받은 나무 십자가에서 영으로 하늘나라 지성소에서 죄를 위하여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죄에서 비롯하는 죽음의 세상에 내려가서, 첫 번째
물로 심판할 때, 죽은 영혼에게 부활에 이르는 복음을 전하였고, 이러한 일을
믿음의 성도가 많은 사람 앞에서 받는 세례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깨어나서
선한 양심으로 믿기 전에 삶과 구별하여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로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게 기록한
말씀이 고린도전서 15장 29절과 베드로전서 3장, 4장에 말씀이며, 3장 21절에
세례에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에게
뜻과 계획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자고
두 손을 벌려 초대하고 있다. 이 초대장은 오로지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선과 악을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 곧 이성으로 판단하여 오감으로 가지는
오욕칠정에 마음을 사랑의 마음으로 삶을 살면서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반차를 따라서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한다.
그래서 죄에서 구원받는 일은 전적인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으로
베풀어 주는 은혜가 된다. 이 은혜의 초대에 손을 내밀어서 감사함으로 받을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동행하기에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탄과 그의 하수인도 성도를 해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라는 시점은 예언자로 예고한 불로 악을 심판하는 때이다. 그래서 세상은
불과 같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영혼의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믿기지 않는다.
이는 그들을 멸망하기 전에 불 가운데서 믿음을 확인하려고 하는 일이 된다.
이를 사울이었던 바울로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서 15절에 기록하였다.
또한 두 번째 심판이 불로 세상 모든 것을 태워서 새롭게 하실 일이라고
베드로후서 3장에 기록하여 세상 사람에 믿음의 상태와 함께 회개를 촉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과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동행할 정도로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한결같이 자녀들이
사는 길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과
같이 성령으로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살면서 성령께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삶으로 성 삼위일체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며,
자녀가 되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악이
사라지게 하는 삶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부터 오른편에는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왼편에는 사탄의 깊은 흉계에 빠져서 썩어짐에 종살이 삶을
살았던 존재를 세워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심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시기를 주기도문으로 하였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다니엘의 뜻이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와 같이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때, 죄의 값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칠십 년간 치르게 할 때,
다니엘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하나님 뜻을 구할 때,
불순종하는 세상을 불로 심판할 일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심판을 진행하실
일을 기록하게 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이 로마의 티투스 황제에게
멸망되기 전에 예언하며, 마태복음 24장 15절, 마가복음 13장 14절에서
마지막 때가 이를 때, 다니엘이 예언한, 바 성전 꼭대기에 서지 못할 가증한 것이
서는 것을 보거든 깨달아라. 라는 경고에 말씀과 일치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다니엘서 9장 24절에서 27절에 말씀을 성취할 모든 준비를
마쳤고, 성전 터에 관한 일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참 부모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뜻을
성경 말씀에 기록한 계획을 따라서 정확하게 이루고 있는 때가 오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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