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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aH(226)_사도행전 묵상(21)_내 안에 깊히 숨어있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여야 합니다(행5:1-11)
사대행진 5장으로 갑니다. 5장 1절에서 11절까지 보겠습니다. 4대 행정 5장 1절에서 1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안에 사삐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며 그 안에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르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내 마음에 가득하여 내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내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내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내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여. 하나님께로다. 아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려. 저 허니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3시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대. 그 땅 판 값이 이거 뿐이냐며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대 이뿐이로다. 베드로가 가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내 남편을 장수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워 내어 가라 한데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훤히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워다가 그건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멘 이 모습을 보면 좀 두려움이 오죠. 그렇죠? 이렇게 한 방에 죽여버리죠. 해결 기회도 안 주고 그잖아요. 그냥 숨겨놓은 거 갖다 놔라. 좋은 말 할 때.
안 그러면 죽는다. 이렇게 한 번쯤 기회를 줄 만도 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잖아요. 그런데 한 방에 이렇게 날려버리죠. 무섭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성령 충만과 마귀 충만 옛날에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옛날하고 똑같지 않습니다. 내용이 성령 충만한 아나니아 그라고 그 다음에 마기 충만한 아나니아 성령 충만한 바나바 마기 충만한 아나니아와 사피라 아 이 둘을 이 둘에게 나타난 게 참 극과 극인데요. 그렇죠? 오늘 한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취해야 할까? 한번 보도록 하죠.
내 자신을 한번 비춰보기를 원합니다. 5절에서 11절 이 부부의 사건은 은혜가 충만한 초대 교회 모습,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죠. 여기 본문은 헌검에 대한 어떤 그런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 교회의 거룩함 이런 것들이 깊이 숨어져 있어요. 거기에 성령과 막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나에게 적용을 할 수 있어야죠. 육적으로는 더 이상 말씀을 드릴 것도 없고 하나님께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은 사전에 땅이 그대로 있을 때는 내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내 힘으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를 내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야. 하나님께로다.
땅이 있든 없든 팔든 안 팔든 그걸 문제 삼는 게 아니죠. 문제는 성령 하나님을 속이는 거예요. 거짓말한 것이 하나님을 속였다. 위에 3절에는 성령을 속였다 라고 말하고 위에 사단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위에 4장의 31절에 보면 물이 가다. 성령이 가득하다. 아멘 성령이 가득한 것과 사단이 가득하니까 전혀 다르죠. 사단의 주특기는 거짓이죠. 거짓이면서 높이 올라가려는 그런 본능을 가지고 있죠. 아나니아와 사피라가 굳이 안 팔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굳이 팔려고 그랬을까요? 폼나게 한번 이렇게 탁 투척하고 싶었죠. 마귀도 투척합니다. 여러분 투척한다니까요. 투척해서 그렇죠. 뭘 속일까요? 성령을 마음을 속입니다. 자기 마음을 사실을 속이는 거죠. 그래서 마귀의 주특기는 거짓 사기죠. 여기에 특별하게 주목할 만한 것은 사건을 보면 금방 그랬구나 라는 걸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영적으로 중요한 메시지가 몇 가지 들어가 있어요.
이 메시지 핵심은 뭔가 하면은 부부의 아나니와 사피라의 결정적인 죄는 소유의 일부를 숨겨놓은 것 자체가 아니에요. 여기 4절에 보셨지만 숨겨놓은 거 가지고 안 팔면 어때? 그런 거잖아요. 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굳이 팔아서 주려고 했으면 다 줘야지. 왜 숨겨놨냐냐? 그거죠. 그러니까 땅이 그대로 있을 때는 내 땅이다. 그런데 니 멋대로 할 수 있고 판 후에도 니 멋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헌금의 액수나 강제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진짜의 죄의 핵심은 뭔가 하면 일부를 바치면서 전부를 바치는 것처럼 꾸미는 거짓행위예요. 무섭죠. 위에 보면 바나마가 똑같이 합니다.
30위에서 30좌절에 그중에 핏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런 밖과 집이 있는 자는 팔아 그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바라표즘에 저희가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미러라 구글호에서는 레이조긴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며 권위자, 위로자 그가 밭이 있음에 팔아 값을 가지고 사더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이렇게 하는 걸 보고 멋있었겠죠. 우리도 부흥에서 집 파는 부흥에 한번 해볼까요? 누가 한 사람 이렇게 샘플로 짜고 파란 것처럼 하면 되잖아요. 얼마든지 합니다. 가능합니다. 그렇죠? 팔 거 있는 분 계시면 일단 손을 들어서 짜고 한번 해봅시다. 팔았다.
하고 여기 탁 갖다 놓고 탁 갖다 놓고 안 죽어. 요즘은 안 죽어. 요즘은 안 죽어. 사기를 얼마나 많이 치는데 아이 이게 참 이런 걸 보면은 아나니아와 사피라 같은 사람은 참 이게 멋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그렇죠? 그것만 멋있었겠어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걸 보니까 기적도 일으키고 권세가 나타나고 이러니까 그런 것까지 다 부러워한 거예요. 한 번에 돈 주고 사려고 한 거죠. 마치 그런 거예요. 안에 시계질투도 있고 자기도 좀 폼나게 한번 폼나게 베드로처럼 물 위를 한번 걸어보고 싶고 이런 거죠. 여러분도 폼나게 그런 거 한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옆에서.
어떤 사람이 효과음도 괜찮네 폼나게 저쪽 어디 큰 교회를 칠 때 그렇게 했대요. 저 아래 지방에서 귀인이 와서 흥검할 거다. 이렇게 했더니, 진짜로 가서 수백억을 흥검해서 성조를 지었대요. 그런 걸 보면 여러분 기분이 어떨까요? 와 나도 폼나게 한번 마치 이런 거죠. 그렇죠. 그런 허영심이 있죠. 그러니까 외식적인 것이 있고 위선적인 것이 있고 허영심이 영적으로 영적으로 나타난 거예요. 그런 것들이 가득 차 있었던 게 아나니아와 사피라예요.
그러니까 아나니아 사피라는 그 사람들이 초대 교회에서 행했던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행했던 걸 보니까 너무 보기도 좋기도 하고 칭송을 받고 사람들이 다 막 이렇게 우러러 보고 받들고 하나님의 능력도 나오고 영광도 이러니까 그런 게 부러웠던 거죠. 그래서 자기도 한번 해보려고 밤에 조금만 팔아서 일부 하면 나머지는 챙겨놓고 그렇죠? 그러면 이것도 얻고 이것도 얻고 다 얻겠다. 이런 아주 멋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사람들의 인정이나 영광을 탐했던 그런 거죠.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는 얼마든지 가능하죠. 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방 들통 안 나죠. 그렇죠? 그런데 사도들 앞에 가면 이게 다 들통이 나나 봐요. 그렇죠?
성령이 충만하니까 그 속에 있는 게 다 보였던 모양이에요.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얼마 있는가에 다 안대요. 윤사가 있어서 부흥회 할 때 주머니에 얼마 있네요. 이렇게까지. 그러면 까불리칠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런 것도 막입니다. 성령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조심하셔야 돼요. 그런데 넘어가면 안 돼. 성령님은 그런 거 아니에요. 넘어갔구나. 어떤 사람한테 넘어갔어요? 솔직하게 부르세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보다 사람 앞에서의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그런 위선적인 신앙을 고발하는 부분이에요. 사실은. 그게 이제 외식적인 거고, 위선적이고 허영심, 영적인 허영심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부분이고 우리는 이런 거 없죠. 많이 있어요. 머리 박아야 돼요. 그럼 안 그러면 죽어요.
두 번째는 교회의 본질이라는 문제예요. 교회의 본질은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는 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들의 발 앞에 나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사도는 파견받은 자잖아요. 보내심을 받은자. 가장 완전한 분은 예수님이고 여기서는 예수님을 대신하니까 예수님이 발 앞에 내려놓은 거하고 똑같죠. 그러니까 성령을 속인다고 그러고 하나님을 속인다고 그러잖아요. 이게 하나님의 존정 코람대우예요. 인간이 성전이 이건 인간이 만든 성전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면 하나님 앞에 가는 거예요. 사실은. 그렇죠? 베드로는 그들이 거짓말한 것을 사람들을 향하여 한 게 아니라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한 거라고 분명히 3~4절에 정확하게 말하고 있죠.
우리가 만약에 어떤 종교 활동을 할 때 이런 거라고요. 정확하게 이런 거예요. 하나님은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는지 다 알아요. 그러니까 하나님 뜻에 안 맞으면 하지 마세요. 절대 하면 안 돼요. 그걸 가지고 누가 하니까 나도 이 체면이 있지 안 하면 또 그렇고 억지로 하면 그게 반란과 권고가 임하는 거예요. 심판이 임하기 때문에 그래요. 진노를 쌓는 거예요. 초대 교회가 단순한 어떤 사람들의 친교 모임이나 자선단체나 뭐 이런 게 아니었어요. 여기 보니까 꼭 자선단체 같기도 하고 막 그러잖아요. 그런 모임이 아니에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지하고 통치하는 거룩한 모임이었어요. 거룩한 모임 안에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니까 그 앞에서 고꾸라지는 거예요. 공동체의 머리 대신 하나님을 향한 기만이다. 이거죠.
그런 영적인 원리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베드로는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 여기에 4절에 가면 어찌하여 3절에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고 땅값을 감추고 그 다음에 4절 후반부에 이 일을 마음에 두었느냐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다 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했던 그 당시 안에도 자산이 얼마든지 충만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죠.
이 사람들은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을 그 당시에 영접 안 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 올 정도면 이미 영접한 사람들일 텐데 분명히 성경충만이 어떤 것인지를 다 알았을 테고 이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받은 게 아니라 악한 영으로 충만했다는 거죠.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렇잖아요. 맞습니까? 예수민 사람이 악한 영이 충만 어떻게 귀신이 그 안에 있어? 아니요. 믿는 사람이 아니라 교리적인 어떤 단순한 동의 수준, 지식적인 그런 것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 속에 사단이 가득하다 라고 바로 알 수 있었죠. 그러니까 성령충만 하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죠. 사단이 가득하니까 이런 일을 초대 교회에서도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도 사단 충만이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단은 하나님이 풀어놓아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외부적으로는 핍박을 했죠. 교회를 흩으려고. 그렇죠? 핍박을 사내드림 공예를 통해서 핍박을 하고 위협화를 하고 그렇고 내면적으로 문제는 탐욕과 허영심 이런 것 이 거짓된 마음을 거짓으로 탐욕과 허영심을 채우려고 하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틈을 타서 그걸 부추겨서 교회를 흩으려고 하는 거죠.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재물에 대한 욕심 그다음에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 들어올 수 있는 틈을 문을 열어준 거죠.
이게 인제 영적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단면이에요. 그러니까 사단이 가득하니까 속임수 그다음에 탐심 이건 탐심과 속임수는 사단의 가장 큰 특기죠. 교만 하나님 자리를 올라 넘보는 그런 것들. 그다음에 탐심 그다음에 속임수 이게 사산이 가진 가장 큰 본성이거든요. 이게 그대로 있었겠죠. 그러니까 허영심, 시기질투 이건 탐심이 있으니까 당연히 생기는 거고, 재물에 대한 욕심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 이 사단이 훅 들어갑니다. 이런 것들을 잘 하셔야 돼요. 그래서 속이는 거예요. 속이고 자기도 그렇게 마치 하는 것처럼 이렇게 무섭죠. 우리 안에 얼마든지 틈을 타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가? 보면 그냥 제거해버립니다. 바로 제거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교회가 막 태동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해야 될 그런 시기 이런 것들이 틈틈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교회가 무너져버릴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가차 없는 거예요. 그냥 뽑아버리는 거예요. 측사할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는 음불에 처했다는 왜냐하면, 이러지 않으면 교회가 제대로 쓸 수 없는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아마 극약처방을 내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 거짓이나 윗선이나 이런 것들이 마치 누룩 같죠? 교회 전체로 퍼져와요. 어떻게 되나?
이건 아주 심각하거든요. 교회가 존립의 위기가 옵니다. 휘청휘청하죠. 우리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계속 어떤 다른 걸 가지고 이거 봐라 이런 게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차없이 뽑아버리는데 저한테 주신 말씀이 누룩이라고 그랬어요. 누룩을 제거한다고. 그래서 저는 가만히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를 거예요. 누르고 이래요. 그게 자꾸 퍼져보세요. 이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옆으로 가보세요. 그럼 다 오염돼 버리면 이제 어떻게 되겠어요? 진리가 이제 위협을 받는 거죠. 우리를 진리가 아니고 부검이 아니고 율법이라고 자꾸 그렇게 해보세요.
옆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방원들 데리고 그렇게 말하고 그럼 어떻게 했어요? 물 들었죠? 그렇죠? 물 안 들었어요? 무서워하네. 좀 들었죠? 금목자하기라고 그런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뽑아버리신 거예요. 제가 그거 다 알죠?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저러면 그러고 있는데,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이 당시에는 그 교회라는 건물도 없었고 그냥 모였잖아요. 그리고 핍박도 많고 내부적으로 결속이 흔들리면 금방 쪼개져 없어져 버리는 거죠. 교회 들어가면 많이 싸우죠. 교회 교회 파벌이 생기고 엄청 싸우잖아요. 전부 그런 것들이에요. 이런 누룩 같은 게 하나씩 들어온 거예요. 세력을 그러니까 교회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
허영심이나 그다음에 어떤 위선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막 이렇게 권력을 물질을 가지고 행사하면서 나를 따르라 이런 거 많이 봤죠? 안 보셨어요? 그래서 교회가 쪼개지고 그러잖아요.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목사는 돈이 없고 돈 많은 어떤 분이 들어와서 교회를 딱 지었어. 그러면 그건 장로 그분 교회입니다. 하나님 교회가 아니고 그분 교회라니까요. 그러면 여차하면 아니 목사를 갈아치워버린 거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목사를 자기 입에 딱 맞는 말을 해주는 목사를 딱 갖다 놔야죠. 그러지 않나요? 여러분도 그러겠죠? 그래서 돈 많은 분이 안 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이 돈이 많은데 무슨 그래요? 필요하면 교회도 주시겠죠? 안 주시면 안 주시는 대로 하는 거고, 안 그래요.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내 안에 허영심이 가득하고 더러움이 가득하고 사기치려는 욕심이 가득하고 그런 사람들이 수천 명 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여러분 같은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그렇죠. 진리를 쫓는 한 사람이면 충만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죠. 수천 명. 그거 하나님 앞에 없는 존재인데요.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거죠. 그러니까 어떤 그 진리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그냥 가차없이 뽑아버리는 거예요. 이 사건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교회는 교회의 기초는 진리예요.
그리고 거룩함 위에 세워져야 되는 거지. 어떤 그런 세상의 물질에 기반한다든지 어떤 권세나 능력이나 이런 것들을 진리 아닌 어떤 그런 거에 세워지면 순식간에 쪼개지고 흔들려져 버리기 때문에 이제 막 교회가 시작해서 전 세계로 퍼져가야 되잖아요. 그럴 때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큰일 나죠. 그러니까 마귀의 방해를 그냥 단번에 내쳐버리죠.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그걸 보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 크게 두려워. 이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베도록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냥 한마디에 그냥 확 고꾸라져 버리잖아요.
감추었느냐 하니까 내 마음에 두었느냐 하니까 고꾸라져 혼이 떠나버리더라 하나님 앞에 이렇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그게 육적으로 멀쩡해도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이런 죄악 가운데 있으면 우리 영적인의 존재가 점점 이렇게 시들어져 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은 못 만나면 악만 남는 이렇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교회는 그래서 단단히 세워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당연히 있죠.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이게 경외감이에요. 경외 하나님 앞에서 항상 그래서 여기 보면 사도들의 발 앞에 사도들의 발 앞에 이건 보세요. 딸기나무 앞에 서 있는 모세하고 요소하고 똑같은 거예요. 내 발에 신을 벗어라 그거하고 똑같아요.
우리의 삶이 이래야 되는 거예요. 항상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 라는 그런 대우 이게 앞에 발 앞에 발 앞에 발 앞에 발 앞에 이게 신앙 고백이에요. 사실은 발 앞에 하나님 앞에 내가 있다. 라는 거죠. 하나님 앞에 사람들은 속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못 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조심해야 돼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더라. 기계 올바로 세워지는 거예요. 올바르게 세워지는 거예요. 베드로 가면 뛰어나서 확 쳐버렸겠어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그냥 바로 해결해 버리죠.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어떤 종교적인 위선, 포장 이런 것들을 벌써 던져야 되고 엄밀한 마음의 동기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 그 앞에서 투명하여야 정직한 신앙을 말하고 있죠. 이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부분이에요. 이제 영적으로 한번 진짜로 들어가 보죠. 오늘 말씀의 영적인 핵심은 뭔가 하면 내 안에 꽁꽁 숨어있는 아나니아와 사피라를 죽이는 겁니다. 당을 발견하고 죽이는 거예요. 아나니아부터 해보죠.
아나니아와 사피라 아나니아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사피라는 아름답다. 이름 까마죠. 청옥이라는 뜻이에요. 피치 같죠? 하나님은 내로우시다 라는 고백을 하는 이름이에요. 그리고 이 사피라는 이름이 너무 아름다운 거 여러분들 사피라 할래요? 아름다워요? 청옥 같다니까요. 우리 사촌이 장청옥이라고 있는데, 우리 누나는 미옥이고 옥자 돌림 돌림은 아니고요. 이름이 지을 게 없으니까 보세요. 겉으로 너무 아름답죠?
반짝반짝 이 푸른빛이 날 정도로 흰 것이 지나치면 푸른빛이 도는 거 알아요? 푸른빛이 날 정도로 화사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외모가 외모가 이렇다라는 거죠. 여자. 이 여자잖아요. 여기 남자고. 그렇죠? 남자는 법이고 여자는 행암이잖아요. 행함을 보니까 예뻐 죽겠어. 뭐든지 잘하고 깨끗하고 깔끔하고 외모로는 이렇다라는 거죠. 속으로 들어가서 법을 보니까 하나님은 은혜롭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면서 제멋대로 하는 거죠. 내 멋대로 해도 하나님은 사랑이니까. 하나님이 어른으로 오시니까 언제든지 용서해 주신다. 다윗의 맏형의 이름이 엘리압이죠.
엘리압.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라고 이름은 고백하는데 지가 아버지야. 제 이름은 바울. 바울의 이름 바울은 낮은 자라는 뜻이에요. 이름은 바울인데 맨날 높아 맨날 높이 올라가 이런 거예요.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이건 안에 들어가 있는 법이죠. 그래서 이 둘한테 공룡을 소개했다고 그러고 그다음에 뭐라고 하면 마음에 두었다고 그러죠. 마음에 두다. 마음에 두다라는 이 단어가 뭔가 하면 숨이에요. 세우다라는 뜻이에요. 세우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 들어와 진리가 되는 게 진리로 세워지는 걸 말해요. 진리로 세워져야 되는데 쌍수로 흐르죠. 항상 진리가 세워진 게 아니고 거짓 마귀가 들어와 충만해진 거예요. 거짓 진리 아닌 거짓이 충만해진 거예요. 그게 마음에 세워져 있는 거예요. 이미. 우리는 나면서부터 흐르죠. 그래서 우리 존재예요. 그러니까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여기서 보면 사건으로 직접 등장했던 사람이지만 이걸 영적으로 당기면 내 안에 있는 아나니와 사피라야 내 안에 허영심 이런 것들을 거짓으로 내 탐욕을 채우려는 마음 이런 것들이 딱 자리 잡고 세워져 있는 거예요. 마치 바벨탑처럼 세워지는 걸 세우는 거예요.
이게 세우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마음에 두다. 내 마음에 이게 딱 자리 잡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자리 안 잡았죠? 여러분 뭐가 자리 잡고 있어요? 육체에 속한 거 다 있잖아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그 다음에 육체 열매는 이거니 그게 다 있죠. 그게 분리된 아담의 존재 자체가 이렇게부터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하나님과 분리되니까. 맨 먼저 생긴 것이 자기가 모든 걸 해결해야 되잖아요.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하나님이 다 줘서 입만 벌리고 꿀꺽하면 되는데 이제 땅을 파서 자기가 이로 경작을 해서 만들어 먹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맨 먼저 생긴 게 뭐겠어요?
욕심이 생긴 거예요. 물론 두려움이 생겼죠. 하나님과 결별하니까 보호자가 떠났잖아요. 두려움이 생겼고 이제 자기가 해결해야 되니까. 무조건 끌어놔야 되죠. 끌어놔야 돼요. 여러분 들어가면 안 나오는 사람들을 봤죠. 그 사람들은 진짜 막이 충만해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고통스럽게 살아요. 많이 끌어놓고 인도의 옛날에 어떤 사람은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으면서 사기를 매일 앉아서 이렇게 가서 이렇게 펴놓고 이렇게 수십 년을 그렇게 했다잖아요. 그러면서 뒤쪽으로는 고리대업자 집에 가면 멋진 차 타고 낮에는 와서 일하는 거죠.
이렇게 옥상이 아니라 큰 도로 위 육교 위에 이렇게 펴놓고 할머니들 옛날에 있잖아. 물어보면 집이 두 채가 있고 그런 그런 사람들이 살만한 살만한가요? 그건 수고한 슬픔이지. 그건 바보죠. 집 두 채 가지고 뭐 하려고 평생 그 돈 욕심 때문에 이러다가 거기서 이렇게 가는 거죠. 그게 결과예요. 여러분 그런 욕심 그게 막이 충만이라고요. 들어가면 안 나오는 사람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평생 그렇게 돈 끌어안고 장롱에 하나 오늘 일한 거 넣어놓고 아이고 뿌듯해하면서 또 다음날 가서 뼈 빠지게 마늘 까고 와서 또 어후 넣어놓고 라면도 안 끓여 먹고 제대로 그리고 그걸로 허영 씨 허영 씨 그리고 죽어버려 가족들이 돈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그래서 이삿짐 세타에 와서 가져가 버려. 어이구 이거 왼쪽이야. 그렇게 되는 거예요. 쌓아놓고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그게 네 것이 될지 어찌하느냐. 자문에도 나오고 전도서에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이런 것.
어쨌든 아나니아와 사피라 안에 세워진 것 이건 나면서부터 세워진 거예요. 그래서 마음에 두다라는 것은 그때만 이걸 한번 속에서 내가 한번 뻥쳐서 이렇게 멋지게 한번 폼나게 살아보자. 한 게 아니고 원래부터 마음에 딱 세워져 있었던 거예요. 이게. 그런 단어예요. 마음에 든 거예요. 항상 얘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어디를 가나? 허영심이나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나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나 이런 것들. 말은 안 해. 말은 안 하고 꼭 이렇게 이렇게 집에 가면 제가 그랬잖아요. 책장에 책 잔뜩 있다고 집에 오면 꼭 그쪽으로 먼저 데리고 가야 돼. 이런 거예요. 마치 책 안 버렸어요. 아직 아직도 가지고 계시는구나. 아우즈는 다 버렸어요. 부산 서울. 부산 서울 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다 버렸어요.
팔아먹었으면 될 걸 다 버려버려. 아나니아와 그러니까 이런 마음이 가득한 게 먼저 내 안에 들어온 법이잖아요. 그렇죠. 탐욕의 법, 허영의 법,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하는 허영심의 법 이런 것들이 잔뜩 법으로 세워져 있으니까 겉으로 행할 때는 엄청 멋지게 해야 되잖아요. 아름다운 거예요. 겉보기에는 천옥 같아요. 속은 이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합작을 하죠. 이게 내 안에 그게 있다는 거예요. 그게 아나니아와 사피라예요. 여러분 속에는 없죠. 바나바밖에 없죠. 파나바 화려한 외식자예요. 화려한 외식자. 폼나게 나도 한번 한 턱 내봐 이런 거죠.
돈도 없으면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자 속에 세워져 있는 것은 탐욕과 자아성취 그다음에 자랑 이런 거예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그렇게 말은 잘해요. 그러면서 속에 잔뜩 이런 게 들어있고 겉으로도 아주 폼나게 해요. 완전히 더러운 개구신 같은 놈이 밖으로 나가면 세상 좋은 사람들 많죠. 베풀 거 다 베푸는 것 같고. 그렇죠? 집에만 오면 덜 쑤셔놓고 뒤집어버리고 이런 사람.
여기 밖에 나가면 사피라 안에 들어오면 아나니아 이런 거예요. 여러분을 너무 뒤집어 놨나요? 저도 이랬어요. 이게 들켜야 되는데 역사적으로 성경의 실제 인물이긴 하지만 내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내면에 숨어 있는 내 본성과 옛사람을 상징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이게 어떤 모습으로 주로 나타나는가 몇 가지 이걸 특징을 살펴볼 수가 있는데, 이게 부패한 본성이잖아요. 저주받은 자아의 본성, 에스라 저주받은 사기꾼이라고 그랬죠. 그걸 잘 아셔야 돼요.
여러분 나는 날 때부터 저주받은 사기꾼이라는 인식을 안 하면 짐승 인식이 안 되면은 계속 외식합니다. 이렇게 계속 외식한다니까요.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은 내 존재를 창조하러 오셨는데 나는 그럴 필요 없다. 라는 거죠. 필요한 거나 주셔. 내가 열심히 한번 해볼 테니까. 그런 수준이잖아요. 존재에 대한 부정성을 알지 못해요. 왜냐하면, 얘들은 진리가 안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더러운 마귀 형상이 안으로 들어와서 진리가 돼버려요. 거짓이 진리가 돼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형성이 돼야 되는 게 이게 진짜거든요. 그런데 더러운 거짓이 내 안에 들어와. 마치 하나님처럼 하나님 행세하는 거예요. 그게 마귀가 충만한 거죠. 이해 가시죠?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존재의 부정성이죠.
이게 분리된 아담 안에 세워진 타락한 본성, 존재의 부정성들이 잔뜩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가리기 위해서 외적으로는 아주 아름답고 선하고 괜찮고 멋있는 것처럼 하는 거예요. 집에 오면은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그래서 서로 물어뜯고 난리잖아요. 밖에 나가면 세상 성인 군자 같죠? 그런 거예요. 이중인격자. 아니고 원래부터 그런 사람 원래부터 원래부터 사람은 그래요. 여러분 누구나 다 그래요. 그래서 여기 딱 보면 밭을 팔아서 헌신하면서도 만약을 대비해서 얼마를 딱 감추어 놓은 거죠.
그러니까 이게 뭔가 하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 내 삶을 전부를 드린다 라고 아침마다 고백하죠. 내 삶은 줄인 것입니다. 라고 아침마다 고백하면서 한다면서요. 저도 해요. 그래서 훅 다 죽어나면 어떡하지? 겁이 좀 있잖아요. 그래서 남몰래 나만을 위한 안전장치를 해놔야 되는 거죠. 세상적인 욕심이 딱 움켜쥐고 있는 그런 그래서 세상적인 것과 타협하는 마음이 딱 남아있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본성이에요. 여러분 놀랄 거 없어요. 들키니까 좀 그러죠. 다 아는 걸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지려고 하는 타협하는 그런 자아예요.
정확하게 남들은 완전히 다 바나바나 완전히 다 두척였잖아요. 얘는 일부는 왼손으로 해가지고 오른손은 이렇게 하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야 성기라고 하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그게 우리의 본능이에요. 하나님을 처음에 예수 믿고 교회에 오면 그게 두 개가 정확하게 있어요. 처음부터 이게 잔뜩 있었고, 새로운 게 들어왔잖아요. 새로운 게 들어오니까 어때요? 안에서 이제 투쟁이 막 일어나죠. 이거예요. 성령이 먼저 올해 안으로 들어왔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성령은 육체 수욕을 거스르니까 계속 안에서 싸우는 거죠. 그런 부분이에요. 그다음에 첫 번째가 두 번째는 사람의 눈을 인식하는 그런 영적인 허영심이에요.
영적인 허영심. 이거 엄청 많아요. 사람들 칭찬과 인정을 원하는 신앙생활 많죠. 여러분 없죠? 여러분 없을 거예요?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렇죠? 뭐 하면서 누가 봐주길 원하지 않아요? 원하죠? 무명으로 내면서 다 보라고 이렇게 문명으로 내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 우리 내면에서도 이런 게 정확하게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보다 교회나 다른 사람 앞에서 좀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그런 종교적인 위선이 있죠. 허영심이에요. 그게 허영심. 그런 사람들 많죠. 우리 다예요.
다 그거 없는 사람은 없어요. 날 때부터. 이건 이미 내 안에 들어와서 신겨진 거예요. 마귀 덕분에. 아담의 혈통은 다 있어요. 없다. 하지 마세요. 없다 하면 안 돼. 나이 들면 없을 거라고. 아니야. 더 많아. 못 이루어가지고 열받아서 더 많이 가지고 있어. 그래서 죽을 때까지 안 놓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간다니까요. 부들부들 떨면서. 더 움켜져야 되는데 못 지어가지고 이런 사람 어디로 갔을까요? 그게 바로 겉으로 포장하는 외식주의자들이 여기에 속하겠죠. 거짓된 자아죠.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렇게 사려면 인생이 안 그래요?
얼마나 힘들겠냐고 막 뒤에서는 막 욕하면서 앞에서는 막 이래 봐요. 이래 봐요. 여기 아이씨 짖었어. 베드론 다 아는데 베드론이 다 알아? 다 알지? 그럼 바울 나는 바울인데 다 알아. 그건 나이 60 되면 다 아는 거잖아요. 안 가르쳐도 다 알아요. 여러분 그런 거는 경험으로 다 알아. 이미 다 알아. 그런데 아세요? 내 영은 알아요. 그걸 영은 알아. 그래서 나가 생각도 못한 말들이 튀어나오고 행동으로 나와요.
그게 여러분 그걸 잘 관찰해 보세요. 회치라는 무덤이죠. 이게 에피데미아 자기주장 의지가 아주 듬뿍 담겨 있죠. 그런가요? 그 다음에 둘이 합작했잖아. 죄를 합리화하고 죄를 동조하는 그런 어떤 이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런 거예요. 내 안에 심어져 있는 거. 아나니아 사피라는 부부로서 서로의 거짓을 말리지 않고 모의했죠. 내 아내도 서로 모의하지 않던가요? 진리가 들어와 있는데도 모해하죠? 이렇게 계산하고 이렇게 해서 이쯤 하면 되지. 이렇게 타협하고 그런 부분들이 아나니아와 사피라야 내 안에 죄를 지을 때 일어나는 그런 어떤 작용이죠.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 이런 거죠. 이게 탐욕이 그러니까 아나니아라면 죄를 계획하는 게 아나니아 탐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계획하는데 그다음에 이성과 양심이 마비되어서 겉으로는 드러나는 게 깨끗한 것 같은데, 양심이 아니라는 게 이게 삽비라. 그래서 서로 잘 타협하죠. 이런 거예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겠어? 남들도 다 그렇게 해. 합리화하고 서로 동조하는 그런 것들이 내 안에 내 영들이에요. 내 안에 세워져 있는 거죠. 이 정도면 됐지. 더 이상 뭘 어떻게 하겠어? 이런 거죠. 그런 마음들은 있죠. 그래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잖아. 이 정도는 봐주지 않겠어? 이런 거죠. 하나님 아버지신데, 설마 이거 가지고 내 목숨까지 앗아가겠어? 이런 거죠.
그런데 앗아가버렸어요. 은혜로운 하나님이 설마 나를 치겠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죠? 하나님의 은혜가 뭔가요? 권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게 은혜거든요. 위에는 은혜를 잘못 알고 있죠. 하나님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름은 제대로 짓긴 지었어. 하나님 은혜로 옵시다. 제대로 짓긴 지었는데 속에는 엉뚱한 것이 딱 자리 잡고 있는 이름 바꿔도 안에 이게 그대로 세워져 있는 성령이 충만해서 우리 지난 시간에 한 거 보면 이걸 완전히 사고가 가치관이 전복시켜 버리죠. 그러니까 있는 걸 다 풀어버리는 이게 원래 움켜쥐었던 걸 다 풀어버리잖아요.
얘네들은 원래 움켜쥐고 있었던 것을 이 안에 잔뜩 아직도 법으로 있으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걸 다 푸는 사람들이 가지고 가질 수 있었던 그런 어떤 칭찬과 명예 부러움 이런 것들을 얘들이 그런 걸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하긴 해야 되겠는데 다 할 수는 없고 조금 하고 흉내 내고 그걸 취하려고 했던 거죠. 그런가요? 그게 바로 아나니아예요. 내 안에 있는 것이 어디 밖에 있어요? 이게 이런 거죠. 그래서 이런 정도는 감춰놔도 되지 않겠어? 이렇게 이런 거죠. 겉으로는. 그래서 아름다워 보여요.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다 알죠.
그 발 앞에 그 발 앞에 그리고 떡 나가는 거죠. 우리도 교회에 떡 나오는 거죠. 교회만 그래요. 행할 때도 하나님이 항상 내 안에 계시잖아요. 만물 안에 계시잖아요. 내가 행하는 곳마다 하나님이 계시거든요. 그러면서 그런 마음을 이 정도는 타협해도 되겠지. 오늘 한잔하고 또 내일 안 하면 되고 예를 들면 겉으로는 이렇게 하면 그런 거예요. 마치 예를 들면 그런 거요. 우리가 그 얼굴을 피해서 어디 숨을 데가 있나요? 하나를 꼭대기 땅 끝에 바다 끝에 가도 거기도 있고 여기도 있고 다 있다고 다윗이 고백하잖아요. 우리도 숨을 데가 없어요. 여러분. 그게 왜냐하면, 온 땅이 하나님 발등상 재단이거든요. 거기서 피할 데가 있어요. 우리가 행하는 모두가.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다 연락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 모를 것 같아서 이렇게 행하지만 하나님 다 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즉각심판에 임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그런데 이걸 보면 이제 아이고 피할 데도 없고 숨을 데도 없고 어떻게 살아?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내 안에 있는 이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다 드러나서 죽어야 돼요. 그래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진짜로 일어나죠.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죽어야만 살 수 있는 내 안에 내면의 영적인 전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이 말씀 속에서 이 부부가 베드로는 하나님의 대리자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고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은 또 진리고 그러니까 진리 앞에 가는 거하고 똑같죠? 말씀 앞에 가는 거하고 똑같아요. 그러니까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역사한 것은 보기는 상당히 무서운 심판이죠. 동시에 영적으로 심판이 오면 항상 구원이 양면으로 따라오잖아요. 영적으로 심판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구원이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는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아나니와 사피라는. 그래서 반드시 드러나야 되고 말씀 앞에서 드러나고 그 다음에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하고 그래서 묻히죠. 메고 가서 묻어버리잖아요. 그래서 묻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그런 심판은 즉각적으로 일어나야 돼요.
그런데 그게 심판이 안 이루어지고 지속적으로 되면은 나중에 우리 하나님은 속옷만 보잖아요. 이걸 가지고 내가 천국백성이라 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건 아닌 거거든요. 그걸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내 안에 있는 이 거짓된 자, 아나니와 사피라가 말씀의 빛 앞에서 이게 베드로 발 앞에는 하나님의 존전이거든요. 하나님의 존전. 하나님. 그럼 우리는 말씀이 우리에게 비춰질 때 내 존재를 발견하게 되죠. 바로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말씀 앞에서 말씀의 빛 앞에서 철저하게 드러나야 되는 거예요. 아나니아사피라는 폭로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꼭 굳이 이런 어떤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면 고통스러워요. 힘들고 어려워요. 직접 그 행함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되고 우리는 제 값을 치르거든요. 용서는 받지만 제 값은 치른다니까요.
그런 걸 아셔야 돼요. 그러기 전에 먼저 아나니아와 사피라가 드러나면 좋겠죠. 그렇죠? 우리 안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충만하다고. 충만하다고 그러잖아요. 믿으세요? 좀 충만합니다. 여러분 이게 나는 교회 오래 다닐 수 없어. 오래 다닐수록 더 충만해요. 왠지 아세요? 오래 다닐수록 없네. 이제 그림이 회출만 했잖아요. 2겹, 3겹, 6겹, 7겹 해서 안 벗겨져. 절대로 안에는 뭐예요? 라아. 이 눈 기억나요? 그게 떡 있다고요. 그게 아나니아와 사피라거든요. 그게 아나니아고 회칠은 사피라. 이해하시죠? 속에 잘못 들어온 법이 아나니아 겉으로 행하는 아름다운 외적인 행실. 이게 청호 같다. 100억 같아 보여요.
그게 사필화예요. 그러니까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죠. 철저하게 폭로되고 죽어야 돼요. 죽어야 돼요. 어떻게? 그 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죽어야 돼요. 그래서 그리고는 내 진정한 영적인 참된 생명이 가짜였죠. 처음에는 이게 진짜가 돼요. 그래서 궁창이 있고 아랫물이 있고 윗물이 있잖아요. 이게 뚫어지면서 내려와서 이걸 덮어버려서 하나가 돼야 되는 거예요. 셋째, 날에 생명이 올라오는 게 그거죠. 이게 언제 뚫어지죠? 십자가로 떨어지잖아요. 궁창은 나누는 거고, 그렇죠?
이걸 합하는 거는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있죠. 이게 궁창이거든요. 그게 둘째, 날에 나눈 거는 사실은 그 다음에 셋째, 날로 가면서 그 안에 십자가 들어가 있어요. 예수님 십자가 통해서 그게 찢어져 쪼개져서 아랫물이 윗물화되는 거거든요. 물러가는 거거든요. 그렇게 해서 이게 이제 위로부터 내려와 덮여버려서 다시 진짜가 돼야 돼요. 진짜 나중에 기회가 또 있을 거예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드리도록 하고 다 아는 내용이라 일단 넘어가죠. 어쨌든 내 안에 진정한 참된 새 사람, 새 생명 영적으로 이게 그때야 일어날 수가 있는 거예요. 일어나서 온전히 살아. 낼 수가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이 잔뜩 있으면 안 되잖아요. 계속 나를 속이거든요. 그런데 그 속이는 존재 자체가 나거든요. 그래서 눈치를 못 채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진리를 제가 말씀을 드려도 그걸 습득만 하고 머릿속에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서 존재를 그대로 두는 거예요. 존재를 그대로 숨겨놓고 이걸 들춰내질 않는 거예요. 제가 계속 그걸 들춰내야 된다고 계속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런데 안 들춰내는 거예요. 안 들춰내고 나는 이렇게 잘하고 있다. 사피라. 그러니까 나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함도 받고 응답도 받고 멋지게 잘하고 있다. 이거거든요. 외식이에요. 속에 이게 있기 때문에요.
속에는 탐심과 허영심, 위선 교만 높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잔뜩 있잖아요. 그래서 겉으로는 이렇게 잘하는데 결정적으로 타격이 오면 어때요? 안에 있는 게 훅 나타나죠. 자가계획에 손해가 좀 온다 그러면 못 견디겠죠? 안 그래요? 혹시 그러면 아나니아입니다. 바나바가 아니에요. 바나바는 부활한 사람이에요. 진짜로 원래 권능자, 권위자, 위선자. 위선자가 아니라 위로자 권위.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제가 계속 말씀을 드리는 게 말씀하셨어요. 묵상을 하라는 게 이거예요. 내 안에 비춰 들어와야 존재가 보일 거 아니에요.
그러면 드러나는 걸 가지고 회개하고 보일러 싣고 이렇게 하면은 사회주시고 바레시아 파레시아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계속 공급받고 그러면 이거 점점 없어지잖아요. 이렇게 가야 하는 거죠. 그래서 말씀 안에서 이 교재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하라니까 다 가버린 거예요. 그걸 율법이라고 해버려요. 자기가 이렇게 해왔거든요. 내 안에 이걸 가지고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게 들킨 거죠. 들킨 거죠. 그러니까 그걸 그러니까 들키니까 어때요? 피하는 거죠. 결국 말씀 열기. 말씀 열기를 하고 목사하고 나를 비추고 이렇게 무지하게 싫죠. 다 싫어했잖아요. 지금도 좋아해요? 안 좋아하잖아요. 하라니까 억지로 하잖아요. 그런 아나니아가 가득한 거예요.
사피라처럼 행하고 있는 거예요. 겉으로는. 그러니까 안 비추는 거예요. 안 비추고 지식적으로 계속 그걸 비춰 지금 거의 10년간 비추고 있는데, 40년을 비춰야 되겠 계속 그게 심판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죽어요. 묻혀야 되거든요. 그게 바로 무덤의 연합이에요. 말씀이 들어오면은 그 말씀 때문에 드러난 거죠. 그럼 말씀은 예수님이고 그리고 그 말씀은 예수님과 내가 죽어야 되잖아요. 그럼 무덤에 묻히고 올라오죠. 부활에 연합된 게 바로 마지막 11절이고요. 묻힌 것은 바로 6절이에요. 6절에 보면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메고 나가 장사하느라 젊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한 단어예요.
한단어. 그냥 네오스라는 단어예요. 네오스. 네오스 새거. 뉴 네오. 네오 새거요. 그러니까 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말해요. 그러니까 반짝반짝 빛나게 닦은 게 아니고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젊은 사람이라는 단어예요. 젊은이라는 단어 뜻도 있지만 이건 뭐예요? 젊은 사람은 부활한 존재예요. 그러니까 내 안에 성령이 들어와서 이미 성령이 들어오면 생명을 낳잖아요. 나아진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 내 안에 있는 영적인 존재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온 영적인 존재잖아요. 그로 인해서 이건 묻혀져야 돼요. 같이 이게 묻혀져 버려야 된다고요. 말씀과 함께. 묻혀져 버려야 돼요. 묻어버려야 돼요. 그래야 이제 내 안에 새로운 존재, 젊은 존재가 계속 장성해지죠. 묻고 나면 부활하잖아요.
그러면 또 그게 생명이 생기죠. 계속 그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이 안에 있는 내 안에 먼저 들어온 건. 그래서 다 죽어야 돼요. 그래서 십자가를 쥐고 죽는다는 게 그런 의미예요. 사도바울이 매일 죽노라. 매일 이게 죽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이게 없었겠어요? 엄청 많았죠. 자기주장이지. 그렇죠? 엄청 많았잖아요. 그래서 매일 죽는다고 그랬거든요. 우리도 매일 죽어야 돼요. 그래야 그리스도의 모습만 나타나기. 그게 젊은 사람들이에요. 내 안에 그런 새 생명이 계속 올라가야 돼. 그 성령이 오면 먼저 예수의 생명을 낳잖아요. 말이야. 이게 성령이 임하니까 예수를 낳잖아요. 내 아기도 성령이 와서 성령 충만하니까 낳아야 돼요. 그게 새 생명이에요. 그 새 생명이 점점 장성해서 이걸 묻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말씀을 통해서 비춰서 죽여서 심판해서 죽여서 묻어버려야 돼요.
그 새 생명의 존재가 내 안에 베드로 같은 파견받은 하나하니 수그리스도 결국 존재가 이걸 말씀을 비춰서 죽여버리고 묻어버리고 다시 부활해야 새 생명으로 일어나야 돼요. 그걸 말해요. 내 마음에 둔 것. 이거 싹. 내버려야죠. 그게 바벨탑이죠. 바벨론 개시록이 나오는 것. 그래서 말씀 앞에 첫 번째 이제 마무리를 하죠. 첫 번째 말씀 앞에서 내 안에 이 존재가 완전히 드러나야 돼요. 에베수서 사장, 히브리스 사장. 12절에서 16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원동력이 있는 이게 젊은이 아니면 베드로팔 앞에 하나님 말씀 앞에 하나님 앞에 그 존재 우리에게 말씀이 들어오면 바로 살아있는 말씀이죠.
열린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야 돼요.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고 있으면 안 돼요. 여러분 영적인 바리세인 된다고요. 머리에는 맴돌아도 속에 이게 잔뜩 있기 때문에 그냥 겉으로 이런 것만 나온다고 이것만 진짜 말씀이 열려서 내 안으로 들어오면 계속 나에 대한 한탄만 하게 돼 있어요. 내가 이런 존재구나 정말 짐승이구나, 내가 안 하네하구나, 삽비라구나 이런 것들이 계속 들켜 드러나야 돼요. 계속 들켜서 그게 말씀이에요. 그 말씀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죠. 말씀은 금이요, 불이요, 양, 잿물이요. 다 했잖아요. 그래서 그 말씀이 살아있으면 들어오면 나를 씻고 쪼개고 뽑고 갈라치고 그다음에 죽이고 태우고 그냥 재로 만드는 거예요. 씻어내고. 그게 바로 말씀 앞에서 내가 드러나는 게 먼저 드러나야지 뭐 뽑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요? 드러나야 돼요.
그런데 그래서 죄하로 우리가 말씀 안에서 묵상하는 이유가 이거예요. 말씀을 보다 보면 오늘 같은 말씀을 보면 아나니아와 사피라가 내 안에 있는 이 더러운 타락한 존재구나 이렇게 되는 것과 아 이런 이런 놈들이 있었구나 이거 하고는 그런 놈들이 있었구나. 그럼 그러고 넘어가면 나하고 뭔 상관이 있어요? 성경에 기록된 지식을 하나 알 뿐이지. 이름. 야 너 이름. 그것도 알아. 옆에서 뭐 알아주겠죠? 그렇죠? 단칼에 죽었어. 알아주겠죠? 그런데 내 안에 그게 있는 거 드러나는 건 이건 하나가 땅차예요. 여러분. 내 안에 이게 잔뜩 있다니까요. 이걸 들춰내어 주지 못하는 건 말씀이 아니에요. 문자지 지식이지 율법이죠. 그래서 율법은 계속 회체를 하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는 거예요.
왜요? 내 안에 있는 존재를 바꿔내지 못하잖아요. 그만 화려하게 하자. 이익이 율법주의자하고 똑같은 거예요. 사실은. 그렇죠? 먼저 들어와 있는 율법도 먼저 들어와 있는 이 아나니아의 허영심이나 탐욕을 채우는 도구가 돼야 되잖아요. 그게 로마스 7장이죠. 에피데미아 맞나요? 기억하시죠? 이제 줄줄 아셔야 돼요. 이런 거는 그 말씀도 그 도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의 존재인 말씀의 존재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렇게 된 사람들을 하는 걸 흉내 내고 싶은 거죠. 똑같은 마음이잖아요. 우리도 그런 거 마음이 안에 잔뜩 있잖아요. 그러죠. 그게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어도 아나니아 사페라가 안 들켜요.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나는 저렇게 성경을 속이지 말아야지 하나님을 속이는 짓은 우리 절대로 하지 맙시다. 이렇게 슬겨야죠.
그렇죠? 그건 존재 자체가 속이는 존재인데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자체가 속이는 거라고 아닌가요? 사도가 우리 고백했잖아요. 자신을 그게 속았다고 말씀을 가지고 말씀이 나를 속였다고 자신이 속인 거하고 똑같은 거잖아요. 아닌가요? 똑같죠? 속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말씀을 어줍잖게 문자적으로 아니면 지식적으로 이렇게 알면은 법이 되고 지식이 되어서 나를 속여요. 나를 치장한다니까요. 이렇게 속에 이게 가득하기 때문에 외적으로 이렇게 행함을 통해서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그래서 누군가 알아주길 원하고 그러죠. 보상받기를 원하고 이런 거예요.
그 말씀 앞에서 드러나야 돼요. 내 존재가 아나니아도 드러나야 되고 사피라도 드러나야 돼요. 다 드러나야 돼요. 그런데 그런 말씀이 내게 지속적으로 와야지 내가 어떻게 고칠 거 아닌가요? 그 자리에서 심판을 받고 고꾸라지죠. 그러니까 내 안에 아나니아가 사피라가 있구나 이러면 어때요 여러분? 떼굴떼굴 골라야지 죽으라고 아 이게 나를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했구나 왜냐하면, 심판을 받으면은 바로 집행이 되잖아요. 그건 무덤 같은 환경이거든요. 알잖아요. 무덤 같은 환경으로 들어가는 거지. 지난번에 했던 기억 안 나요. 무덤 같은 상황에서 말씀으로 비춰서 그 말씀으로 나를 판단하고 해서 인정하라고 그랬죠. 무덤 같은 심판의 상황에 내용에 임한 것이 정당 하나이다. 10편, 51편 바윗 이야기잖아요. 정당 하나이다.
그때 함께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들어간다고 그랬죠. 그러면은 예수님과 함께 들어가면 부활의 능력도 역사하잖아요. 그러면 부활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죽고 바나바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내 안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거를 성경을 아무리 봐도 내 안에 있는 아나니아를 잡으라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야지. 그러니까 계속 아나니아 사피라처럼 살면 안 되지. 바나바처럼 살아야지. 그러면서 억지로 팔려고 열심히 팔아서 사려고. 그게 뭐야? 아나니아지. 이거 억지로 파는 거 아니에요? 그냥 파는 거예요. 내 본성이 파는 거예요. 그냥 내놓는 거예요. 그게 됩니까? 성령이 들어와서 나를 완전히 장악해서 이걸 확 뒤집어 버리니까 되죠. 이게 내 안에 잔뜩 있잖아요. 이게 사상이잖아요.
생각이고 내 존재의 모습들이고 행암으로 나타나는 거고, 이거 확 뒤집어서 완전히 쪼개버려야지 바나마가 올라오죠. 그러니까 파는 거잖아요. 이게 안 되죠. 이 상태에서 누가 하는 걸 보니까 보기는 좋아서 한번 해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우리 마음이하고 똑같죠. 그래서 흉내 내거나 남들이 하거나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말씀으로 나를 비춰서 이놈들 잡아내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평생 이 짓합니다. 사도바울이 했던 로마 7장 에피티미아 율법의 행위만 아름답다니까요. 회치를 보세요. 얼마나 깨끗한가요? 사람들을 보면 다 깨끗해 보이잖아요.
이 젊은이가 이렇게 열심히 수십 년 동안 어찌 그래? 한 번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를 나오셨소. 주님이 축복하실 겁니다. 할렐루야 아메 그런 거 아닌가요? 그래서 어찌 여기까지 오셨소? 아니 그래서 이거 말씀 앞에서 들키고 그 발 앞에서 거꾸로 서야 돼요. 그리고 묻혀야 돼요. 그래서 말씀이 내게 열려서 들어오면 나를 비춰내는 거예요. 계속 이런 것들이 드러나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거. 아나니아 사피라가 탐욕만 있겠어요? 뭐 있을까요? 또? 시기 허영심 또 교만 높이 올라가자고 하는 그게 원인의 본질.
그런데 그게 이제 탐욕 허영심 이런 게 안 채워지면 뭐가 나와요? 원망, 불평, 혈기, 분노 이런 게 올라오죠. 이건 안 아니에요. 동생들이라고. 아나니아가 낳은 놈들이라고 내 안에 젊은 사람들이 아니고 아나니아 사피라를 통해서 낳은 놈들이라고 이게 이것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계속 새끼를 낳지. 혈기, 분노, 시기, 질투, 원망, 불평 여러분 잘하는 거 다 있지? 여기 안에 7천이나 있지? 7천. 7천이 완전수잖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거. 이것들이 그러면 이거 어떻게 다 들켜요? 말씀이 빛이 되어 들어가야 들키는데 생전 비쳤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그럼 하나님이 치는 거예요. 쳐서 들키게 하는 거예요. 제가 매우 맞고 들켜서 고백하고 맞습니다. 이렇게 매워 맞는 게 옳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덤에 들어가서 한 줄기 빛을 비춰서 받고 다시 일어나서 바울이 된 거예요. 내 안에 이거 한두 개라 해야지 그래서 보통 40년 필요한 거예요. 어떡하면 좋죠. 갑자기 조용해지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아나니아 사피라가 잔뜩 이 새끼 친한 거 잔뜩 있으니까 말씀 묵상하라고 하면 싫은 거예요. 그걸 율법이라고 해버리고 오리라고 죽이길 원하는 거죠.
말순 묵사하기 진짜 싫죠. 그러면 이렇게 뒤져서 부활하든지 둘 중에 환경을 통해서 뒤지는 거예요. 이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내가 자꾸 들켜야 돼요. 그래서 죄를 서로 고하라고 그 방 안에서 서로 그런 것들을 고하라는 게 왜 그걸 들춰내냐고 쪽팔리고 더러워. 왜 그걸 들춰내냐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나는 다 아는데 다 아는데 이미 다 알고 성형 인도함도 잘 받고 있고 내가 너무 잘하고 있고 그런데 다 이해했고 말씀드리기 10년 넘게 했고 벌써 다 아는데 왜 자꾸 그런 걸 하라고 하냐고 성질 나 죽겠는데 성질 왜 나는데?
그럼 아니 그게 잔뜩 있는 게 안 들키려고 계속 남을 비방하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안 변하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어때요? 성령에 오신 것은 개조가 아니고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러 오셨죠. 있는 것 뽑고 새로 심으러 넘근심하러 오셨잖아요. 그런데 그걸 자꾸 해치라고 있으니 어때요? 그냥 한번에 처야 정신을 차린 거예요. 그래서 제가 팍 맞고 정신 차린 거예요.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한 것으로 충만하잖아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죽고 다 한다고 많은 분들이 그러시고 여러분들은 아니죠. 그런 분들 알잖아요. 어떤 분인지. 그렇죠? 왜 한다고 했던 분들 알잖아요. 기가 막힌 거예요. 그래서 안 하는 거예요. 왜 하냐고 그걸 여러분 다 몰라요? 그러니까 앉아 있죠? 다 알면 벌써 졸업했을 텐데 아나니와 사피라가 잔뜩 새끼 낳은 채로 이제 코스 완성 기시록까지 다이어를 써. 오케이? 일거 졸업하고 가는 나네와 사키라도 졸업했네요. 그러니까 여러분 잘못 안 묻어야 돼요.
심판 받아서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너무 쉬운 방법이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그 영생이 교재 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말씀을 가지고 비추어서 나타나면 이걸 해서 1장. 그렇죠? 잠입해야죠. 그러면 그 피로 씻고 모든 부리에서 우리가 깨끗하게 깨끗하게 씻어 그럼 나아가 공급을 받아 자꾸 채워 계속 그렇게 하면 이거 점점 없어지는 거야. 그래서 그걸 해서 새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 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도들처럼 그렇게 사는 게 천국을 누리는 삶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율법 안에서 조금 지켜서 그 천국의 삶을 흉내 내 보려고 하니까 천국은 죽어서 가는 여기서 무슨 그런 게 일어나냐고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로 안 일어나는 거예요. 갑갑하죠? 이게 바로 묻혀야 되는 거. 이게 장사. 마음이 이 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품이 생겼어요. 그래야 그렇게 되는 거죠. 그렇죠?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젊은 부자한테 하는 말이 있죠. 다 이거 싹 다 팔아버려야 돼요. 내 안에 내가 움켜쥐고 있는 마음. 이게 이것들로부터 나오는 거잖아요. 이게 싹 팔아버려야 되고 가난한 자에게 줘야 돼요. 배 안에 굶주려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거기에 새 생명을 계속 생명의 능력을 공급해야 되는데 안 들어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굶주려 있는 거예요. 강한 그게 생명이 하나님의 예수가 있어요. 생명이. 가난하니까 어때요? 말라 있잖아요. 목마른 사슴이죠.
고무죠. 고무. 아무리 교회 다녀도 예수. 그래서 생명이 없으면 어때요? 기쁨이 있나요? 평강이 있습니까? 누구를 사랑할 수 있나요? 불가능하죠? 화평. 누가 화평 꿈도 못 껴요. 오래 참는 거. 말도 안 돼요. 그거는 어떤 계산적인 안에서나 하는 거죠. 평생을 교회 다녀도 공허하고 노력해서 그걸 메꿔보려고 막 더 하죠. 아름다운 행동을 더 하죠. 그래서 점점 묶입니다. 내면은 점점 황폐화됩니다. 예수를 믿고 들어왔던 생명도 점점 부쩍 말라서 힘을 못 쓰고 계속해서 힘드는 거예요. 사람이 교회에 오래 다녀도 계속 가라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은 그러면 지금도 그러면 내년이었어요. 그래서 다 파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를 자에게 줘야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어요. 이 상태에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잖아요. 지금 외부적인 종교활동을 화려하고 그게 자신을 속이는 거고, 자기에게 속은 자 아니에요. 멋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내 안에 세워진 이것으로는 하나님을 말할 수가 없어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막 풀어버리고 이러면 보기 좋아 보이죠. 막 뭔가를 하고 사육도 멋지게 하고 이러면 보기 좋아 보이잖아요. 그래서 막 금식도 하고 별 뭐 준비활동을 다 하고 그렇게 해서 능력을 받아서 해보려고 하고 고통적입니다. 고통적. 고통적 괴로움이 안 변한 거예요.
계속 심판이 나왔죠. 있는거예요. 반란가 고난이 안 태어난다고 그랬잖아요. 그것 때문에 반란가 고난이 있는 거예요. 실시간으로 심판에 임하니까 이게 계속 고통받아 죽잖아요. 그렇죠? 실제로 말씀을 통해서 심판을 받아 죽어야 되는데 외부적인 고통을 가해서 힘들고 어렵죠. 그래서 그렇게 돼야만 함께 이것들이 마지막에 죽고 없어져야 잊혀버리고 새 생명이 일어나야만 성령 충만한 그에서도 이 증인의 삶을 살 수 우리는 흉내내려고 하죠.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은. 그래서 성령이 충만.
여기도 성령이 충만하니까 맨 먼저 하는 게 사고 자체가 전복이 돼버리고 있는 걸 다 웅쾌한 걸 다 뚫어버리죠. 그게 바로 예수님이 당했던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누가 보면 사상 기억나죠? 성령이 충만하니까 어떻게 되던가요? 마귀에 이끌려서 시험을 봤죠. 그래서 이 안에 있는 게 마귀잖아요. 마귀 충만하잖아요. 마귀 충만. 이것들을 시험받는 그래서 아나니아와 사키라가 좋아하는 것부터 던져주는 거예요. 내 안에 이게 찍혀야 되겠다. 이해가시나요? 너무 어려워요. 예수님도 성경 충만하면 먼저 광야로 끌려가서 40일을 굶어요. 그러니까 이거를 다 굶어야 됩니다. 외적으로 행해지고자 하는 것, 나타내려고 하는 것,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것을 싹 다 그냥 막아버리거든요. 말씀 광야. 그러고 나서 뭘 뜻하던가요?
아나리아와 사키라를 만족시키는 육신의 정교, 감목의 정교, 이생의 자랑을 가지고 시험하잖아요. 얘들은 걸려듭니다. 충만하니까 그게 막이죠. 그런가요?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그 안에 마귀가 안 충만 그러니까 이 경우 단크랩 해버리는 겁니다. 내 안에서 이런 어떤 타협하고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종교 활동이나 하나님까지 이용해서라도 내 원함을 만족시키고 이 땅에서 뭔가를 폼나게 해보고 누려보고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들이 성렴이 오면 그거부터 손대는 거예요. 그거부터 먼저 손대는 거예요. 그래서 성렴이 오면 자꾸 그런 것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뒤집어지죠. 그렇지 않던가요? 성렴이 오면 계속 뭐 이상하게 갑자기 욕심을 부린다든지 이런 것들이 나오는 거예요. 혁이 막 뒤집어지고 그렇죠? 그렇죠?
요즘은 혁이 유행하는 거 알아요? 이렇게. 몇 개월째 지금 여러분 장악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 주에 청소 좀 하려는 거예요. 어느 정도 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이게 싹 퍼지는 거예요. 깜짝 놀랄 정도로. 다 드러나는 거거든요. 지금 성령이 지금 우리에게 엄청 충만하잖아요. 성령 충만한데 지금 이런 것들 막 이 설치는 거 있잖아요. 이게 드러난 거예요. 아나네아 사태가 지금 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거예요. 뭐 하려고요? 묻어버리려고. 다 들켜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평소에 말숨 묵상을 통해서 내가 알아서 들켜야 되는데 안 들키고 가만히 누르고 이렇게 아름답다, 천옥 같다 이렇게 겉으로 이렇게 잘 행하고 계시니까 환경이 열받은 거죠. 불어서 다 일어나고 이제 뽑을 때 됐죠. 그래서 젊은 사람 가서 뽑아야죠. 묻어버려야죠. 말씀을 통해서 안 들키니까 알아서 들키게 하시고 이제 묻어야 될 차례가 왔거든요. 그거 가지고 부엌에 하나 마나요? 왜요? 이거 꽁꽁 숨기려고 그래요. 아나니아파트 계속 아름다운 행위로 이게 그렇다니까요. 얼마나 교묘한지 알아요. 마기가.
그래서 먼저 들어온 것들이 장악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으로부터 해방 해방당하지 않고는 답이 없는 거예요. 의사님이 계속 여기에 속아요. 그러면서 머리에 자꾸 입력을 하거든요. 안 비추고. 그래서 비추라고 비추라고 제가 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쓰기 싫거든요. 안 써도 좋아요. 그런데 비춰서 혼자라도 하세요. 제발. 비추고 나는 내 안에 이게 잔뜩 있구나. 여기까지 못 가면 그건 말씀이 아니에요. 지식이에요. 제가 수년 벌써 이거 하고 있잖아요. 계속 내가 들켜야 돼요.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처음에 오셔서 막 다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하나도 안 들켰잖아요. 그렇죠? 그런가요? 이게 들켜야 돼요.
그래도 안 들키니까 하나님이 들추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막 펴지잖아요. 그런데 안 들추고 싶은데 퍼지잖아요. 그러면 이게 사당이 납니다. 인식을 안 하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왜? 왜 나는 사피라처럼 열심히 이렇게 아나니아처럼 이렇게 했는데 왜 이런 게 나오냐 이렇게 간 거예요. 이러면 이제 이거 그대로 묻혀져 있잖아요. 왜가 아니고 있군요.
이렇게 해야 되는데 왜라고 하시면 되겠어요. 그러니까 아들내미한테 질러버리잖아. 왜라고? 안 한 게 다이. 왜라고 했으면 어떡할 거야? 멀리 멀리 갈 거야. 그러면은 하나님이 심판이 옵니다. 이거 잡아야 되겠죠. 그러면 이게 드러나면은 인정하고 청소해야죠. 인정하고 지난번에 나눠드렸던 그런 시대의 무덤이 연합해요. 맞습니다. 내게 이게 오는 게 당연합니다. 그걸 잡으려고 오신 거거든요. 그러면 인정하고 묻혀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왜라고 하면 이거 덮어버리잖아요.
덮어버리고 외모로 나는 아름다운 신앙인이잖아요. 이걸로 다 듣고 가락을 찾아봤죠. 그래서 자신을 못 보죠. 사도바울을 못 봤잖아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니까 사도바울에게 눈이 확 벗겨지면서 자신을 이거 죄인종의 기수라고 고백했죠. 그게 됐던 거예요. 우리도 지금 성령이 강하게 임하고 있으니까 여기에 드러났는데 빨리 인정을 해야 돼요. 곧바로 인정하고 내 자신을 묻혀버려요. 같이 말씀드리면. 그래서 안 묻히고 있으면 이게 자꾸 퍼져가요.
드러내리기도 하지만 퍼져가고 막 이러면 이게 전부 다 왜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그러냐고 이런 일이 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바로 앞에 고꾸라질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겠어요? 아니 나도 이만큼 팔아서 이렇게 줬는데 왜 나한테 죽이라고 하냐고 안 그러겠어요? 그런 거죠. 그 전에까지 용기 안 들켰을 뿐이죠.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거든요. 이게 들키면 이제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고 아침에 물론 골방 교제, 우리가 하는 사랑방 교제, 말씀하신 교제가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때 그 골방 교제 할 때도 저는 계속 내 안에 있는 걸 가르쳐요. 완전히 내 앞에 나야 완전하라 그런 거 주로 와요. 왜냐하면, 아직도 남아있는 거 이런 것들을 뽑아라는 거죠. 그러니까 성경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는 게 언약이잖아요. 언약의 영역이기 때문에 계속 거리로 인도하거든요. 우리를 계속 어떤 일을 잘 풀리는 곳으로 인도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거 했잖아요. 항복해야 된다고. 처음부터. 뜻을 이루러 온 분이 아니라고요. 이런 것들이 이제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묻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계속 젊은 사람이 그게 보면은 아까 위에 6절에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일어나다. 이 단어가 아니스테미예요. 아니스테미. 아나켄나오 기억나요? 하늘로부터 다시 나는 거. 그런데 거기다 아니가 붙어 있어요. 아니스테미는 스탠드 일어나다. 하늘로부터 일어난 사람들. 그 일어나다가 그 단어예요. 위로부터 세워지다 일어나다. 이 단어 2기는 날 때부터 보세요. 여러분 날 때부터 아담의 핏줄 안에서 세워진 거죠. 이건 아나니와사피라 마음에 품고 있는 세워진 거잖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위로부터 새롭게 세워진 부활의 생명을 말할 때 바로 그 단어를 써요. 이 네오스라는 단어가 그 단어를 써요. 그러니까 내가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 할 때 쓴 단어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부활한 새 생명이 내야 돼요. 그래서 그 생명을 통해서 이런 것들이 묻혀져 버려야 돼요. 계속해서 심판을 받아서 묻어버려야 돼요. 새 말씀이 들어와서 심판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묻어버려야 되고 다시 새 생명으로 일어나. 젊은 사람 합류해야 돼요. 계속 합류해야 돼요. 그래서 그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점점 든든하게 새 생명으로 세워져서 이제 진짜 증인된 삶을 사는 거죠. 위에 있는 바나바나. 사도들처럼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성경이 충만하면 내 안에 있는 먼저 와 있는 것들을 먼저 들춰내는 거예요. 예수님께도 그거 시험한 거예요. 성경 충만하면 무지하게 좋을 것 같은데, 그것부터 다 시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얘들은 지금 악한 영에 장악되어서 하나님을 시험했죠. 그게 문제인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시험하면 즉각 갑니다. 여러분 꿈도 꾸지 마세요.
진짜 위험한 발상이에요.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에요. 섬김의 대상이지. 아시겠어요? 내 안에 아나니아 삽별이야.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우리가 그래서 항상 말씀 앞에 나가게 여기 지금 사다 바로 앞에 나가죠 그래서 들켜야 돼요. 어찌하여 내 마음에 이걸 잔뜩 숨겨놨는고 이렇게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찌하여 내 안에 안 하냐? 사피라가 잔뜩 있는고 아나니아와 사피라가 낳은 것들이 이런 것들이 잔뜩 있는고 이렇게 들켜야 돼요. 그래서 제가 아침에 잠잠하면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이게 뭐예요? 아직도 니 잡생각을 하고 있느냐 이런 뜻이거든요. 그게 이런 것들 아닌가요? 그래서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나는 내 전부를 원한다. 그 뭐예요? 그럼 이거 전부 아니잖아.
이거 일부잖아. 이거 일부도 준 게 아니고 작전상 뻑이잖아. 이거. 그렇죠? 하나님 그걸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런 내 전부를 드립니다. 주님 하면서도 안 하더라는 거죠. 저한테 하는 이야기예요. 아침마다 나는 내 전부를 원한다. 내 전부를 원한다. 왜요?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들여서 우리가 샀기 때문에 우리는 일부만 하나님께 주면 안 돼요. 전부가 이미 소유이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이잖아요. 주님하고 이렇게 살면 그냥 심판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심판을 그렇게 호되고 받은 거예요. 여러분 우린 그래서 항상 말숨과 성경 앞에서 아니면 하나님이 콜하면 돼요. 말숨을 볼 때 오늘 내가 주님 앞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아나니아와 사피라 심판받기를 원합니다. 다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그러고 읽어야 돼요. 그리고 진짜 들어와서 나를 들춰내야 돼요. 그럼 내 안에 이미 먼저 와서 세워진 이거 마음에 든 것들이 이거 다 드러나야 돼요. 그래서 그렇죠? 얼마나 많습니까? 부정한 것들. 파고 파고 해도 끝이 없이 나오죠. 다 드러나야 되고 그래서 허감이 깊은 있는 곳에 그 아래 용이 있다고 거기 싹 다 드러나요. 심판받아서 다 죽여버려요. 싹 다 죽여버려요. 그게 막이 충만한 모습들이죠.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면서 이제 이 땅에서 진짜 증인된 삶을 사는 거예요.
위에 있는 바나바처럼 그런 삶을 사는 거예요. 나는 하늘에 속한 새 생명을 입은 사람이다. 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움켜쥐는 게 아니고 그냥 손해보고 풀어주고 이런 본능들이 그냥 나오는 거죠. 그렇게 될 때 예를 들잖아요. 그런가요? 그게 천국누림이죠. 여러분 마음에 무엇을 두었느냐 이렇게 하나님이 내 마음에 어찌 이거 두었나요? 여러분 둔 거 없죠? 그래서 사토바울이 매일 죽는다라고 고백한 것은 바로 그것 때문에 그래요. 우리도 매일 죽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매일 죽는 거에서 현실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그런 것들이죠.
다 팔아버리면은 바나바가 되는 거고,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는 그거예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천국의 삶을 직접 이 땅에서 살 수가 있는 거죠. 이분 부흥의 제목이 그겁니다. 영원을 시간 안에서 영원과 지금 마지막 주간 검토일 기도 많이 하셔요 여러분 이제 진짜 실제화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죠? 진짜 실제화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그걸 진짜로 실제로 내 사람과에 누릴 수 있어야죠. 안 그러면은 지금까지 한 거 다 헛수고예요. 그런 부분이 우리가 아직도 비밀 안에 베일 안에 감춰 있어서 모르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 부분을 이제 다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그냥 확 다 이렇게 내 삶 가운데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지 그게 진리죠. 어떠한 환경에서도 누릴 수 있는 그런 진리가 될 수 있어야 되니까. 그걸 현실로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봐야죠. 이런 걸 다 잡아야 돼요. 어쨌든 간에 내 안에 있는 그런 것들 성형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면은 이것부터 잡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발 앞에 다 드러나야 돼요.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다 드러나야 돼요? 아니면 심판을 통해서 드러나야 돼요? 그럼 고통스러워요. 저처럼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멘.
그래서 말씀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이런 것들을 다 들춰내야 돼요. 왜 서로 고백하는가? 하면 야곱에서 서로 고백해라고 그랬죠. 왜 고백하는가? 하면 고백하는 순간 그 뿌리가 올라와요. 뿌리가 올라와 버린다니까요. 혼자 갖고 있으면 모르잖아요. 고백하는 순간 뿌리가 올라오면서 서로 기도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들이 빠져나가요. 보열로 씻고 고백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고 보열로 씻고 팔을 쉬하고 그 능력을 힘입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뽑혀나가요. 계속. 그러니까 드러난 건 분명히 나가요. 여러분. 그런데 그걸 왜? 라고 하면서 감추면 내 안에서 점점 커져요. 점점 커져서 장악하게 되면 내 안에서 답이 없어요. 결국은 고통과 괴로움을 못 벗어난다니까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다 뽑혀나가고 다 허물어져 나갈 때까지 계속 묵상을 하셔야 돼요. 그 묵상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지. 여러분 율법을 준 게 아니에요. 묵상 열심히 하면 저한테 돈이 됩니까? 제가 여러분 묵상 열심히 하면 제가 행복해집니까? 제가 만사형통이 됩니까? 그런데 왜 억지로 자꾸 시키냐고 하냐고 하지 마세요. 하기 싫으면 그냥 때려 치워버리세요. 뭐하러 합니까? 그냥 수고한 슬픈 가운데 빙빙 돌다가 개고생하다가 가세요. 그러시던지.
암에 저처럼 없어도 있는 것처럼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사시고 싶으면 암에 뭐 암에는 암에 묵상을 열심히 하시든지 누룩도 다 뽑혀 나갔고 이제
1. 교회에 나타난 사단과 성령의 충만
1-1. 부부의 죄와 교회의 타격
- 아나니아와 사피라 부부의 사건은 은혜가 충만한 교회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 이들의 죄는 소유를 숨겨놓은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다는 것
-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부인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 이를 약속한 것을 듣고 떠남
- 이 일로 인해 교회와 그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렀음
1-2. 사단의 진실과 교회의 반응
- (중요) 성령은 땅이 있는지 없는지와 관계 없이 모두에게 팔 수 있음
- 그러나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사단에게 속이고, 자신의 소유를 판 것이 문제가 됐음
- 사도들은 이런 현상을 보고 그들을 조심하라고 강조했음
- 특히, 사도들은 그런 행동이 허영심이며, 영적인 허영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음
1-3. 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충만과 그 충격
- (중요) 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충만은 많은 사람들이 외식적인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었음
- 부부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행동을 보고 원하고 싶어함
- 그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 영적인 허영심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교회는 크게 타격을 입었음
- 이런 사건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철저히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고쳐야 함을 깨달아야 함
2. 초대 교회와 사단의 전략
2-1. 교회 본질과 사도의 발
- 교회 본질은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는 장
- 사도들의 발 앞에 나갔다는 것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사도가 파견받았다는 것
- 예수를 대신하는 사도는 성령과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음
- (중요) 성령과 하나님을 속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정을 속인다는 것
2-2. 성령 충만과 사단의 유혹
- 성령 충만한 사람도 악한 영으로 충만할 수 있음
-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악한 영으로 충만했음
- 사단은 교회 내부를 흩으려 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탐욕과 허영심을 부추김
-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가차없이 제거해야 했음
2-3. 교회 위기와 하나님의 대처
- 교회는 성장하고 확장해야 했기에, 틈새에 세력을 펼치려는 사도들이 있었음
- (중요) 이런 사도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교회는 위기에 직면하게 됨
- 교회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하나님은 누룩과 같은 유혹을 가한 자를 제거하심
- 이를 통해 진리와 거룩함이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강조함
3. 광기에서 벗어나기
3-1. 내면의 광기와 하나님의 사랑
- 내면에 있는 죄악과 탐욕이 드러나면 악만 남게 됨
- (중요) 육적으로만 멀쩡해도, 죄악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영적인 존재가 시들해짐
-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으심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속을 수 있는 두려움이 아님
-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있는 마음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고 고백해야 함
3-2. 마음에 두다
-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하나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제멋대로 행하는 이름과 같음
- 우리는 진리로 세워져야 하지만, 마음에 두는 거짓된 상태임
- 마음에 두다는 것은 허영심, 탐욕, 자기 자랑, 허영심 등의 법을 거짓으로 세우는 것
- 우리의 존재는 이러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
- 아담과 하와의 분리는 하나님과의 분리로 이어지고, 욕심과 두려움이 생김
3-3. 마음에 두다의 결과
- 마음에 두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런 법이 내 안에 있음을 의미함
- 겉으로는 멋지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자기 자랑이 넘쳐나는 것임
- 내 안에는 허영심, 탐욕, 자기 자랑 등의 법이 있다는 것이 드러남
- 이러한 법은 아나니아와 사피라처럼 우리의 존재를 지배함
- 바나바를 포함한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버려야 함
4. 외식주의자의 심리
4-1. 탐욕과 자아성취
- (중요) 바나바는 탐욕, 자아성취, 자랑을 표현하는 외식자임
-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다름없음
- 탐욕과 자아성취는 자기 자신의 옛사람과 연결되어 있음
- 내면에 숨어 있는 탐욕과 자아성취를 인식하지 못하면 외식으로 이어질 수 있음
- 바나바는 외적으로는 폼나지만, 내면에는 부패한 본성이 있음
4-2. 외식주의자의 특징
-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서로 타협하고 모의하는 태도를 보임
- 죄를 계획하고 합리화하며, 이성과 양심이 마비되어 타협하는 마음이 있음
- 하나님을 잘못 알고, 은혜로운 분이 아닌 자기 목숨까지 앗아가는 외식자임
- 우리의 본성은 탐욕과 자아성취를 통해 나타남
- 탐욕과 자아성취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부정성을 드러냄
4-3. 하나님의 은혜
- 하나님의 은혜는 내 존재를 창조하러 오신 분임
- 내면의 부정성과 탐욕을 인식하지 못하면 외식으로 이어질 수 있음
-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이야기는 탐욕과 자아성취의 결과를 보여줌
- 아나니아는 죄를 계획하고, 사피라는 탐욕에 동조하며 죄를 합리화함
- 하나님을 잘못 알고, 은혜로운 분이 아닌 자기 목숨까지 앗아가는 외식자임
5. 말씀과 영적 심판
5-1. 믿음의 성숙과 영적 전쟁
- 하나님은 아름다운 이름과 제대로 짓긴 지음에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음
- 아나니아와 사피라는 외형적 행실에 그치지 않고, 내면이 타락한 것을 드러내야 함
- 자신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죽기로 인도해야 함
-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영적인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음
-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내면을 가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함
5-2. 진리 앞에 서는 믿음의 굳건함
- 진리 앞에 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는 것과 같음
- 베드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성령이 충만한 자로, 말씀을 앞에 서는 것임
- 말씀을 듣고, 진리 앞에 서서 그분의 역사하심을 봄으로써 심판을 받게 됨
- 말씀과 심판을 통해 동시에 구원이 이루어짐
- 아나니아와 사피라를 드러내고, 죽기로 인도해야 함
5-3. 외식과 내적 변화
- 외식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내면을 가리는 것임
-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아나니아와 사피라를 폭로해야 함
- 스스로의 계획에 손해가 오면 안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가야 함
- (중요) 묵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것이 중요함
- 말씀 안에서 내면을 드러내고, 외식하는 것을 멀리해야 함
6. 심판과 부활
6-1. 타락한 존재들
- 아나니아와 사피라가 이단으로서 겉모습만으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 못함
- (중요) 말씀에 의해 드러난 존재들이 젊은 사람, 즉 새로운 존재임
- 젊은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되어 말씀과 함께 생명을 얻음
- 묻히고 부활하는 것이 젊은 사람의 본질이며, 말씀을 통해 새 생명이 드러남
-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생명을 낳고, 묻혀야 함
6-2. 새로운 존재로의 부활
- 부활한 존재는 성령에 의해 이미 있는 나의 모습과 함께 세상에 드러남
- 베드로 같은 파견받은 하나하니가 될 때, 말씀을 통해 내 안의 존재를 비춰 죽이고, 묻혀야 함
-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말씀 앞에서 내 안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임
- 에베소서와 히브리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원동력이 있음을 나타냄
- 영적인 바리새인이 되어 머릿속에서 맴돌지 말고, 내 안에 잔뜩한 존재를 드러내야 함
6-3. 말씀의 역할
- 말씀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내 안에 드러나면 씻고, 쪼개고, 뽑고, 갈라치고, 죽이고 태우는 등 변화시킴
- 말씀을 통해 나를 씻고, 나를 쪼개고, 나를 갈라치고, 나를 죽이고 태우는 것이 가능함
- 율법은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이며, 내 안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함
- 율법은 로마서 7장과 같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속이지 않도록 해야 함
-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죽음은 내 안의 존재를 드러내고, 바나바의 부활은 새로운 존재를 드러내는 것임
7. 말씀과 생명
7-1. 말씀으로 비추는 삶
- 말씀은 완전한 생명이며, 내 안에 잔뜩 있음
- 생각과 행함이 나타나도록 하고, 사상과 생각을 뒤집어 버려야 함
- 평생 이 짓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음
- 성령의 인도하심은 상대방을 잘 비춰주고 깨끗하게 드러내는 것임
- 자신의 죄를 비추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변화할 수 있음
7-2. 말씀의 능력
- 말씀을 묵상하고, 상대방을 잘 드러내어 비춰내는 것이 중요함
- 자기 안에 아나니아와 사피라가 탐욕, 허영심, 교만 등 본질적인 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함
- 이러한 본질적인 죄를 고백하고, 말씀을 통해 깨닫고 변화시켜야 함
- 이를 통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말씀이 빛이 되어 드러나야 함
-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죄를 고백하고 변화시키면, 자신이 바뀌고, 새 생명이 나타남
7-3. 성령 충만한 삶
- 성령이 충만하면, 사고와 행동이 전복되고, 잘못된 것을 뚫어 버림
-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안의 죄를 고백하고, 말씀으로 비춰야 함
- 외적인 종교 활동과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임
- 고난과 심판을 통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진정한 변화가 나타남
- (중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천국의 삶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음
8. 시험과 순종
8-1. 성령 충만과 시험
- 마귀가 사람의 시험을 유혹함
- 아나니아와 사키라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함
- 예수님은 먼저 광야 시험을 통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
- (중요) 내 안의 타협과 원함을 채우려는 마음은 성령으로부터 멀어지게 함
- 성령이 충만할 때,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드러내고 묻어버려야 함
8-2. 부활과 새 생명
- 아나니아와 사키라가 본인들의 죄를 인정하고 변화되어야 함
- 예수님은 부활한 새 생명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키심
- 우리는 아나니아와 사키라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함
- (중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함
- 우리의 외모와 마음이 아닌, 말씀으로 인한 변화가 중요함
8-3. 참된 신앙인의 삶
- 예수님은 시험한 후, 제자들에게 다시 생명을 주심
-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변화되어야 함
-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변화되어야 함을 가르치심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변화되어야 함을 깨달아야 함
-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함
9. 아나니아와 사피라
9-1.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심판
- 성경에 기록된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심판 내용을 언급함
- 이 내용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임
- (중요) 내 안에 잔뜩인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심판받기를 원한다고 고백함
- 성경을 읽을 때,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드러내고, 허물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함
- 용서받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설명함
9-2. 하나님께 드리는 삶
- 하나님은 우리의 일부를 들여서 쓰시기에, 우리는 일부만 드려도 됨을 강조함
- 내 안에 있는 아나니아와 사피라의 심판받기를 통해,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움
- 내 안의 부정한 것들을 직시하고, 이를 다 드러내야 함을 이야기함
- 허물을 없애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면, 위에 있는 바나바처럼 증인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암시함
-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예수님의 새 생명을 입은 것을 온몸으로 보여야 함을 설명함
9-3. 부흥의 제목
- 부흥의 제목은 "영원을 시간 안에서"라고 언급함
- 지식을 넘어, 내 삶에서 하나님의 부흥을 직접 누리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함
-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해, 내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진리를 알아야 함을 시사함
- 진리의 중요한 부분들을 잡고, 그 발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함을 권고함
- 묵상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시사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