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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 1: 3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 벧후 1: 4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2. 구원의 내용과 목적 ( 1: 3 – 4 )
③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④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 3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은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의 일이다. 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혼들을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신적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참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참된 경건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그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셨다. 그의 구원의 사역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이루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요한복음 1: 14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하였다.
‘덕으로써’라는 말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곧 그의 긍휼과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구주 하나님을 앎으로써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었다.
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신령한 능력'(테스 데이아스 뒤나메오스)는 '희한한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을 말한다.
* 행 19: 11 -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 수 22: 22 -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 시 50: 1 -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 사 9: 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겔 10: 5 -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그러나 '테스 데이아스 뒤나메오스'를 수식하는 '그의'가 가장 가깝게 언급된 것이 '그리스도'이며 1절에서 '우리 하나님'이란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문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Green, Bauckham, Bigg).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제2 위격이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같은 신기한 능력을 소유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공유한 자이심을 시사한다. (Fornberg, Bauckham).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을 통해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게 된다.
'생명'은 인간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원동력, 즉 예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생'을 암시한다.
* 요 1: 4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요일 5: 11-12 - ⑪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⑫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또한 '경건'은 변화된 자가 지니게 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순종함으로 누리게 되는 도덕적인 생활을 시사한다. (Bauckham).
* 행 3: 12 -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딤후 3: 5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2]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영광과 덕'(독세 카이 아레테)는 신적인 능력의 현시로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LXX 사 42: 8, 12) 본 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광과 덕'을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회개토록 역사하신다. (Blum). 본서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므로(8절. 2: 20) '부르신 자'는 하나님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Bigg, Green, Bauckham).
* 벧후 2: 20 -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벧후 1: 4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으로 ‘이로써’라는 말은 앞 절에 말한 ‘영광과 덕으로써’라는 말을 가리킨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은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용, 즉 영생과 천국과 부활의 소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런 구원을 약속하셨다.
디도서 1: 1-2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라고 확언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신(神)의 성품’(데이아 퓌시스)은 ‘신적인 성품’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그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은 구원받기 전의 상태, 즉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에게 전가(轉嫁)된 죄책(罪責) 즉 죄인이라는 신분과 법적 책임과, 모든 인류에게 전달된 죄성(罪性)의 상태와 매우 대조된다.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되었으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사람들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구원은 사람의 본성이 회복되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본문은 구원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 증거 한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그것은 영광스런 부활과 천국에서의 복된 삶을 포함한다. 이것은 세상의 금은보화로 살 수 없는 보배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을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적 성품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신적 성품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신자들에게는 법적으로 이루어졌고 장차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죄악 된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며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인도로 거룩한 삶을 힘써야 한다.
1]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의 일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땅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11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 벧후 3: 4, 9, 12-13 –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2]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피하여'(아포퓌곤테스)는 부정 과거 분사로서 '피한 이래로'라는 의미이다. (Bigg, Blum).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후부터 죄와 정욕과 거리가 멀어지며 피하게 된다.
3]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스데데이아스 코이노노이 퓌세오스'에서 헬라어 '데이아스'(신에게 속한)는 성경적 용어라기보다는 헬라 사상에 따른 이교적 표현이다. (Richardson).
베드로는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그의 논쟁을 전개시키고 있다. (Kasemann).
그러나 본문은 이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어서 이것을 잘 계발하면 성인(聖人)이 되고 거스르게 되면 악인(惡人)이 된다는 사상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참된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교제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됨을 시사한다. (Bigg, Green).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누며, 장차 나타날 영광과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요 14: 16-17, 26 - ⑯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⑰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롬 8: 18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거듭날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나 온전하지 않다.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서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 안에서 성숙하여져서 세상의 유혹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배롭고 큰 약속, 곧 장차 누릴 영광스런 천년왕국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갈 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게 된다.
4] 신(神)의 성품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간다! (요 10: 35 / 벧후 1: 4) : 김홍도 목사
어느 곳에 한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외롭기도 하고 물려줄 재산도 있고 해서 자식을 입양해 호적에 올리려고 하는데 사람이 아닌 개나 짐승을 입양해서 호적에 올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호적에 입적하려면 사람이어야지 개나 고양이나 짐승은 사람의 호적에 올라 그집 가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 호적에 올라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국에서 살려면 우선 신의 성품(divine nature)을 가진 작은 신이 되어야 합니다. 신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조물주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문선명과 같이 스스로 재림 예수가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35절에 예수님께서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라고 하신 말씀대로 타락한 죄인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심령에 받아들이면 작은 신이 되는 것입니다.
고욤나무는 아무리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며 잘 가꾸어도 감나무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고욤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감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접을 붙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원줄기는 고욤나무지만 감나무가 되어 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지만(빌2:6-7) 사람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작은 신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이 그를 통하여 신이 되게 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보러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가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는 말씀을 듣고 영안이 열리면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가서 만지려 할 때에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신 것과 같이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즉 작은 신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였으나 예수님께서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신 후부터 그를 믿고 영접한 자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므로 예수님은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들이 되어 하나님의 가족이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사이 인간복제란 말도 있고 DNA란 말도 많이 씁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상실했던 신성( vg)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 “X”의 영적 유전자를 심어주기 위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시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고 영접하면 그리스도와 같이 작은 신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작은 신이 될 수 있을까요?
(1) 위로부터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난다”(born again)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 “두 번 태어난다”라는 뜻입니다. 땅에서 태어난 인간은 위로부터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또 들어갔다 나옵니까?” 하고 물을 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거듭나야 한다”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거듭나는 비결을 말씀하셨는데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 요한복음 3장 16절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생명과 신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께로서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난 인간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면서 신성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2) 신의 성품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작은 신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영혼에 신의 유전인자(DNA)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partakers of divine nature)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즉 세상에 썩어질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신의 성품을 받아 예수님과 같이 신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개가 아무리 좋아도 인간의 호적에 오를 수 없는 것같이 썩어질 인성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계란의 무정란은 절대로 병아리가 될 수 없고 오직 유정란만 병아리가 될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받아들인 자들만 작은 신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생을 얻고 신의 성품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신성을 받은 자는 영생이 있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자에게는 신성이 없기 때문에 영생도 없습니다.
(3)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신성( vg)을 갖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5병2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49-50) 하시고, 요한복음 6장 51절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는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늘나라 들어갈 때까지 성찬예식을 거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 수가 있습니까? 그 뜻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그 몸을 깨뜨리시고 죄 없는 보배 피를 다 흘려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56절을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DNA를 받아들여야 예수님과 같이 신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데 그 방법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영적으로 먹고 마시는 방법은 믿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몸을 찢으시고 피를 쏟아 주심은 우리에게 신성을 나눠주고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피의 중요성은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습니다. 피만이 죄의 독을 제거하고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셨고,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incarnation)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35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중요한 말씀, 신이 되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들은 썩어질 육신의 빵떡만 얻어먹으려고 왔다가 영생의 떡을 말씀하시니까 알아듣지 못하고 배고프다고 다 가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실망한 심정으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한 베드로가 역시 제일 먼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6:58-69) 하고 속을 시원케 해드리는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가 다 예수님처럼 신이 되는 비결이며 영생을 얻는 비결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입니다. 죄 없는 피가 있어야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가 있는데 이 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살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살은 죄 없는 살이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사람의 후손은 속죄의 피를 흘릴 수가 없습니다. 이 피를 쏟기 위해서는 살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양 발과 양 손에 대못이 박혀 피를 다 쏟으셨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려 심장이 파열되면서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나올 피가 없으므로 성경은 물까지 쏟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가 없고 신성(divine nature)을 가진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믿음으로 감사하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의(義)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보배로운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셨다.
둘째, 믿음으로 기도하자.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은혜와 평안을 더 많이 누리기를 기도하자.
성도의 성화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동반하며 그때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더 풍성할 것이다.
셋째, 믿음으로 약속을 바라자.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그것은 영광스런 몸의 부활과 영광스런 천국에서의 영원하고 복된 삶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세상의 금은 보화와 비교할 수 없고 그런 것들로 살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보배이다.
넷째,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자.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을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