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 11: 23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 히 11: 28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
4. 세상을 초월한 믿음의 사람들 ( 11: 23 – 40 )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 11: 23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았을 때 그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남자아이가 나거든 강에 던지라.'(출 1: 22)는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겼다.
비록 석 달 동안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 아이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의 귀한 믿음이었다. 그들이 석 달 후에 그를 포기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된 일이었다.
1]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666 짐승표가 나타날 때 우리는 모세의 부모와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최선을 받으셨고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교육시키고 훈련시키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 가운데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고 그 모친이 그의 유모로 그를 기를 수 있게 되었으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가 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애굽의 궁중 교육을 받았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처음 5권을 기록하는 데 충분한 언어적, 지식적 훈련을 포함하였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수가 급증함에 따라 위협을 느끼며 그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사내아이가 출산되었을 때 그들을 전부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출 1: 9-10, 15, 22).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출생하였다(출 2: 1-2).
저자는 70인 역을 인용하여 본 절에서 믿음으로 그 부모가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겼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출 2: 2에는 모세를 숨긴 일을 한 사람으로서 오직 어머니만 언급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별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숨기는 일이 남편과의 합의 없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Morris).
70인 역에서 부모가 모세를 석 달동안 숨긴 것은 '아름다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아스테이온)은 '도시'(아스튀)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도시에 속한', '잘 양육된' 혹은 '우아한'이란 뜻이다. 아마 부모는 아이의 이러한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이 그 아이를 통해 큰일을 이루실 것을 예견한 듯하다(Morris).
히 11: 24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상당한 권력과 부귀와 영광을 수반했으나,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고 불림을 거절하였다. 그것은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세상적 권세와 부귀와 영광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어린 시절부터 모친을 통해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커서 이 세상의 즐거움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는 그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라는 표현은 구약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메시아 약속을 알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모세도 그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너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 창 12: 3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 22: 18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그것은 메시아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온 세상은 구원의 복을 얻을 것이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누렸던 애굽의 모든 보화들은 다 이 세상에 속한 것뿐이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죄악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메시아의 사역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사망과 멸망을 가져오지만, 메시아의 사역은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줄 것이다.
1]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장성하여'(메가스 게노메노스)는 출 2: 11(LXX)의 '장성한 후에'를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히브리인 어머니를 통해서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출 2: 9) 모세가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identity)을 알았음과 동시에 그가 내린 결단은 장성한 사람이 내린 신중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Morris).
2]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칭함을) 거절하고
본문은 저자가 출 2: 11-12의 내용을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Lane).
* 출 2: 11-12 –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모세는 자기 형제인 히브리 노예를 돕는다고 무력으로 개입하여 애굽 사람을 죽였다.
이것은 모세가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자처한 행위였으며, 바로의 공주의 아들 됨을 부인하는 행위였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기회를 얻었지만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거절하였다.
히 11: 25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1]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향유하며 세상적인 온갖 쾌락을 다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 민족주의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미하는 종교적 개념이 내포된 표현이다(Morris).
'죄악의 낙'은 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도 그대로 왕궁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크나큰 죄악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Bruce).
'더 좋아하고'(말론 헬로메노스)는 '...보다 ...을 택하다'라는 의미로 모세가 그 일을 판단하여 선택하였음을 나타낸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왕궁에서 일시적인 안락함을 누리는 것보다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일을 더 가치 있게 여겼다.
히 11: 26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
1]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저자는 본문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신약 시대뿐만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었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사 63: 9에서 그리스도가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라고 기록하고 있다(Bruce).
고전 10: 4에서 바울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면서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동행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25 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분으로서(13: 8) 시대를 초월하여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과도 함께 하셨기에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凌辱)을 받을 수 있었다.
2]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상'(미스다포도시안)은 10: 35절에서의 '상'과 동일한 용어로서 '보상'을 뜻한다.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을 기꺼이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상은 바로의 궁전에 있는 온갖 보화들보다도 더욱 고귀한 것으로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이었다.
저자는 본서의 수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사실을 알고(13: 13) 모세의 경우를 예로 들어(Bruce) 수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도록 권면한다.
히 11: 27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
모세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났다. 그것은 430년 동안 살아 이미 고향같이 친숙해진 애굽을 버리고 어떤 일이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것이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천국을 소망하며 새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모세는 애굽을 떠날 때 애굽 왕 바로의 분노와 위협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순종하였다.
그의 담력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다. 믿음은 담력과 평안을 가져온다. 그러나 불신앙은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올 뿐이다.
1]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모세는 애굽을 두 번 떠났다. 첫 번째는 자기 동족을 박해하는 애굽 사람을 살해한 일로 바로를 피해 미디안 땅으로 도피한 일이다.
* 출 2: 11-15 –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때였다.
본 절의 '애굽을 떠나'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중 전자에 해당한다(Lane, Morris, Bruce). 왜냐하면 다음절에서 모세가 유월절을 정하여 피 뿌리는 의식을 하게 한 사건인 출애굽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절의 사건은 출애굽 전에 된 일로서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도망한 일을 가리킨다.
본 절의 해석의 문제점은 모세가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주할 때에는 두려워하였다는 것이다(출 2: 14-15).
그러나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주한 동기는 애굽인을 죽여서 생겨난 바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출 2: 14). 왜냐하면 출애굽기나 다른 성경에서 모세의 도망과 두려움을 연결시키지 않기 때문이다(Morris).
즉 모세가 노예 폭동을 일으킬 수 있었을지라도, 그냥 도주한 것은 아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가 안 되었다는 인식과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Bruce, Morris).
2]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보이지 아니하는 자'(아오라톤)는 유대교나 초대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Lane).
* 롬 1: 20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골 1: 15 -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 딤전 1: 17 -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필로(Philo)는 바로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모세는 이와 대조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믿었다고 진술하고 있다(Life of Moses 1.88).
모세는 오랜 광야 생활 가운데서도 '보이지 아니하는 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음으로 기다렸다.
* 출 33: 11 -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민 12: 7-8 –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모세(Moses) : 물에서 건져 냄
통속적인 설명으로는 "건져낸다"로 되어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노예 생활에서부터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정치가이다.
모세는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사이에서 출생하였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왕녀가 발견하고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로 들어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양육 받으며 애굽의 학술에 통달하였다.
* 행 7: 22 –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하루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 하나가 애굽인에게 맞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서 때려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다(출 2: 11-15).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 살면서 그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게르솜과 엘리에셀, 두 아들을 얻고 40년을 지냈다.
* 출 2: 23 -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 출 18: 3-4 – 3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함이요 4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그가 80세 되던 해 어느 날. 호렙산(일명 시내산)에서 떨기나무 불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로부터 민족 해광의 사명을 받고 광야 생활 40년에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놀랄만한 위대한 영도력으로 민족을 일깨워 주었고 인도했다.
홍해의 이적도 일어나고 바위를 쳐서 생수가 나게 하였으며 모든 병고를 여호와의 권능을 빌어 해결해 주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맺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때부터 이 율법이 원칙적으로 생활의 원칙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모세는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어 거기에 매장하였다.
* 신 34: 1-6 –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불순종하는 백성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서 외로운 중보자가 되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충성과 온유와 인내로써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 모세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충성하였기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
히 11: 28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 -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
모세는 유월절과 피 뿌림의 규례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포하고 지켰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린양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의 집의 문설주(문의 양 기둥)와 문인방(문의 위 아래를 가로지르는 나무; 상인방과 하인방)에 바르게 했다.
이는 장자를 멸하는 심판의 천사로 이스라엘 집을 치지 않게 하려 한 것이었다.
1]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유월'(逾越, pass over)은 심판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넘어간다는 뜻이다.
'정하였으니'(페포이에켄)은 '만들다'의 뜻인 '포이에오'의 완료형으로 유월절의 항구성을 시사한다(Robertson).
모세는 이 절기를 영원한 규례로 제정하였다.
* 출 12: 14 -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모세가 이같이 정한 것은 유월절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출 12: 12-13)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2]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애굽 전역에 장자의 죽음을 가져다 백성들로 하여금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게 하였다. 그 이유는 죽음의 천사가 피를 바른 집은 넘어가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음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애굽인의 장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