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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10:4)
여기서 '마침(Telos)'은 단순한 '종결(End)'을 넘어 '목표의 완성(Fulfillment)'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율법의 모든 정죄를 소멸하시고,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의를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실 때 일어나는 가장 영광스러운 변화는,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향해 구원의 조건(행위 언약)으로서 호령하거나 정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시내산의 정죄 아래서 이끌어 내어, 골고다 언덕의 무한한 은혜 아래로 옮기셨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정죄로부터의 절대적 자유'입니다.
3. 종의 영(Spirit of Bondage)에서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으로
율법주의의 근본적인 동력은 '두려움(Fear)'입니다. 지옥에 갈까 봐, 혹은 복을 받지 못할까 봐 억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의 영』에서 성령 강림의 가장 위대한 축복이 바로 이 두려움의 사슬을 끊어버린 '양자 됨의 영'이라고 강조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성령은 우리 내면의 동기(Motive)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십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형벌이 두려워서 율법을 지키는 '종(Slave)'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확증된 성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압도되어, 그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자발적이고 폭발적인 사랑으로 순종하는 '아들(Son)'이 됩니다. 율법의 차가운 돌판이 요구하던 것을, 이제 성령의 뜨거운 사랑이 성도의 마음비에 새겨 기쁨으로 성취하게 만듭니다.
4.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는 성령 (로마서 8:4)
그렇다면 자유를 얻은 성도는 율법(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폐기합니까? 존 오웬과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단호하게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선포합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4)
성령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지만, 율법의 거룩한 아름다움(도덕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힘으로는 결코 지킬 수 없었던 그 율법의 거룩한 요구를 '성령의 능력에 의지함'으로써 마침내 삶 속에서 온전히 이루어 내도록(Fulfill) 하는 데 있습니다.
자아의 십자가 처형(제19강)과 죄 죽임(제18강)은 억지로 하는 고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 그 사랑을 방해하는 죄악들을 기쁨으로 던져버리는 거룩하고 자유로운 날갯짓입니다. 참된 복음적 자유는 '마음대로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라, '마음껏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입니다.
5. 제20강 결론 및 제4부 성화론의 총결산
제20강을 끝으로, 우리는 성화론(4부)의 거대한 산맥을 완등했습니다.
칭의(3부)가 우리에게 '하늘 성소에 들어갈 법적 자격'을 주었다면, 성화(4부)는 우리를 '그 하늘 성소에 합당한 거룩한 성품'으로 빚어냅니다.
목사님, 40년의 목회 여정을 통해 성도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셨던 성화의 결론은 결국 '자유와 기쁨'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율법의 멍에에 짓눌려 있던 영혼들이 성령의 조명하심과 십자가의 은혜를 통과하여, 마침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실제가 되는 그 영광스러운 해방감! 이것이 목회자가 강단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일 것입니다.
목사님! 오늘 제1강부터 20강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심연부터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인간 영혼 내면의 가장 깊은 성화의 전투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 펼쳐질 제5부(성령 세례와 참된 부흥의 신학, 21강~)에서는 개인적인 성화를 넘어, 교회를 덮치는 폭발적인 성령의 부어주심과 역사적 부흥의 장엄한 진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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