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14:25-33) “왕의 아들, 죄인의 아들”
오늘 읽은 삼하14장 말씀으로 <왕의 아들, 죄인의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왕의 아들, 죄인의 아들'
왕의 아들, 죄인의 아들에서 왕과 죄인은 동일인인 다윗을 말합니다. 반면에 왕의 아들은 압살롬을 말하고, 또 죄인의 아들은 솔로몬을 말합니다. 똑같은 아버지 밑에 난 아들인데 아버지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어떠한 아들들이 길러지는가를 우리가 함께 보기를 원합니다. 똑같은 아버지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서, 자녀들의 태도와 사람됨이 너무 현격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지금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데 압살롬이 전면에 드러나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기자의 깊은 의도 속에는 압살롬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솔로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이름조차 언급이 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솔로몬 얘기를 하느냐고 하면, 삼하12장에 보면 솔로몬의 출생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여디디야'라는 뜻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그러한 출생과 이름에 관한 이야기만 두절에 관해 언급하고 왕상1장까지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무엘하를 기록한 기자는 도대체 무엇을 드러내려 했을까를 생각을 해 봅니다. 압살롬과 솔로몬이 하나님을 추종하는 인간군상과, 독자적으로 하나님과 별개로 자기의 삶을 추진해 가는 인간군상을, 아주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도대체 어떻게 압살롬이 길러지고, 어떻게 솔로몬이 길러지는가를 한번 보면서 믿음의 또 다른 측면을 확인해 보기를 원합니다.
압살롬은 말씀드린 대로 그의 어머니가 아람나라의 '그술'이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의 왕의 딸이었습니다. 그 왕의 딸 마아가가 있었는데 아버지 왕 달매가 다윗에게 바칩니다. 정략결혼이지요. 내 딸을 바칠 테니까 ‘우리나라를 좀 잘 봐줘라. 좀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해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것 자체가 다윗의 의식 속에는 자기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어떤 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잘 나갈 때입니다. 이웃에 있는 나라들이 자기의 왕권 밑에 복속해 들어오기 위해서 딸을 바치는, 그러므로 그 마아가를 볼 때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당연히 어떤 자긍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 마아가 공주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압살롬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25절에 온 이스라엘에 압살롬처럼 그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극찬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여인이 아름답다는 그런 말은 아니겠지요.) 남자로서의 아름다움, 남성의 어떤 멋짐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온 이스라엘에 그만큼 잘 생긴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장동건씨나 배용준씨나 잘 생긴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과도 비교가 안 되었을 것 같아요. 원래 이스라엘 중동지역의 사람들이 잘 생겼습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워낙 잘 생긴 사람들만 모아놓았는데, 거기서도 이만큼 잘 생겨서 칭송받는 사람이 없다할 정도였으니까. 저도 한번 보고 싶어요. 그리고 머리카락도 얼마나 굵고 실하고 윤기가 났는지 1년을 길러서 자르면 그 자른 머리카락의 무게가 2.3~2.5킬로그램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무게가 그 정도면 상당한 것 아닙니까? 그만큼 머리카락이 실했다는 겁니다. 짙은 머리카락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이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었다는 겁니다. 8등신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마에서부터 코, 입, 모든 신체가 어디하나 흠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나 싶어요. 그러니까 다윗이 압살롬을 볼 때마다 세상에 그런 아들을 보고 자긍심을 갖지 않을 아버지가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정말 압살롬과 비교해서 비교가 되지도 않을 아들놈을 보고도 마음이 기쁠 때가 얼마나 많아서 내 스스로 조심을 하고 자제를 하고 있는 판인데. 아니 옆 나라 왕이 자기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 권세에 복속하는 마음으로 공주를 바쳤습니다. ‘와, 이거 올라가요.’ 그런데 그 공주가 아이를 낳았는데 왕가 대 왕가의 만남 속에서 아이가 탄생했는데 세상에 외모가 출중하기가 이를 데 없고 외모뿐이에요? 암논 형이 누이동생 다말을 겁탈한 사건을 대응하는 태도를 한번 보세요. 저 같았으면 그 얘기를 듣자마자 격분해서 ‘형이고 뭐고 필요 없다. 내가 죽여 버리고 말겠다.’라고 했을 텐데. 다말에게 오히려 ‘누이야, 입 다물어라. 잠잠하게 기다려라.’라고 오히려 달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그 격분함을 삭힙니다. 이 자제력을 보세요. 그리고 2년이 지났어요. 모든 사람이 그 일을 다 잊어버렸어요.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그 격분해야할 사건이 일어난 순간에는 삭히고, 2년이 지나도록 그 사건을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기회를 엿보고 기어코 암논을 죽입니다. 야, 정말 지독한 사람이에요.
제가 아는 어떤 장로님께서 부인하고 싸우시고 나면, 제가 장로님 성격을 아니까 ‘장로님 30분도 못가시지요? 화내면서 삐쳐있는 마음상태가 30분도 못가지요?’라고 했더니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30분이 뭡니까? 5분도 못갑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여간 부인하고 싸워서 당신이 먼저 잘못했다는 소리를 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딱 한번 4박5일 정도로 냉전이 지속되었는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를 않더라는 거예요. 다 그렇지요. 다 그래요. 그런데 압살롬 보세요. 2년 동안을 마음에 꽉 묻어버리고 표시를 안 냅니다. 그러다가 일을 해치웁니다. 이런 사람이 왕이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인간세상에서 좋다는 가치를 총집결해서 만든 인간이 압살롬입니다. 집안도 왕가예요. 외모며 이 성격의 주도면밀함과 자기통제력 모든 것을 총집결해서 만든 것이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을 볼 때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자긍심이 생기는 겁니다. 내 인생의 꽃이 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반면에 솔로몬을 이-래 봅니다. 그러면 뭐가 생각납니까? 아- 내가 그날 왜 그랬을까? 옥상에 올라갔다가 목욕하는 것을 본 것, 가까이 보니까 아름답지도 않은데 아름다워 보여서 범했습니다. 범했는데 아기를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감추려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살인죄를 저질렀고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우리야가 누구였어요? 너무너무 충성스런 신하였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배신자에요. 배신자. 충성스런 신하를 배신한 배신자. 강간자에다가 살인자에다가 배신자입니다. 솔로몬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나는 겁니다. 압살롬을 볼 때마다 어깨가 들썩들썩 했던 마음이, 솔로몬을 보면 '으-메 기죽어'가 돼 버리는 겁니다. ‘아이고, 내 꼴이 이게 뭐냐?’ 그 마음으로 솔로몬을 안고 키웠던 겁니다. 나는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놈인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인생막대기와 채찍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그 하나님의 은혜 넘치는, 긍휼에 넘치는 언약이 나를 지켜주고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지금도 살려주고 계신다. 이런 마음으로 솔로몬을 껴안고 그 마음으로 솔로몬을 대했고, 압살롬은 ‘야! 내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 정도로 컸구나. 이 정도로 컸구나.’라는 마음으로 압살롬을 키웠다는 겁니다.
이제 보세요. 그러한 마음에 아버지를 보고 압살롬이 원한 게 무엇입니까? 나도 아버지처럼 왕이 돼야 되겠다. 나도 아버지처럼 인생의 꽃을 피워야 되겠다. 내가 아버지보다 못할 게 무엇이냐? 높은 곳을 바라보고 높은 곳에 와 있음을 확인했던 그 마음으로 아들을 키웠을 때, 아들도 똑같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꿈을 갖고 자기의 꿈을 펼쳐 나갑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그 왕의 자리를 늘 왕의 자리에서 왕 됨을 자긍심을 갖고 생각하던 그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대로 본받아서 높이 올라가겠다고 아버지까지 죽이려고 달려들고 모반을 일으키고 백주에 아버지의 첩들을 강간하고 범하고 그리고 결국은 몰락하고 망하고 죽어버립니다.
솔로몬은 성경의 기록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단선지자가 말해서야 밧세바가 다윗에게 가서 얘기하고 왕이 됩니다. 왕이 돼서 한 게 무엇입니까? 그렇게 죄인 됨을 자각하며 자기 아버지가 늘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죽어 마땅하지, 나는 죽어 마땅하지.’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산 것을 본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한 게 뭡니까? ‘하나님! 나는 작은 아이입니다. 내가 왕이 돼서 이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압살롬을 보세요. ‘내가 왕이 될 만하다. 내가 왕이 돼야 한다. 아버지까지 물리쳐서라도 괜찮다.’ 솔로몬은 ‘내가 작은 아이라. 내가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하는데 그 지혜가 뭡니까? ‘하나님! 무슨 일에서든지 하나님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듣는 마음이 지혜예요. '지혜'란 원어의 뜻이 '듣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듣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나는 못합니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를 보고 배우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엇이 잘 났다고 살겠습니까?’
압살롬이 아버지를 볼 때 ‘야,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보고 배운 겁니다.
여러분! 정말 기가 막히는 것 아닙니까? 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이 압살롬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을 볼 때마다 자기의 죄악을 보는 다윗이, 솔로몬이 불쌍하게는 생각이 됐겠지만 자기의 자긍심의 근거는 되지 않았을 것이에요.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그래서 비교를 해보면 솔로몬은 여디디야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사랑합니다. 결국 아버지 다윗의 사랑을 받은 압살롬은 압살당해 죽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솔로몬은 인류역사상 최고최상의 영화와 부귀를 누리게 됩니다. ‘나는 작은 아이입니다. 하나님께 듣지 않으면 아무 판단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이 마음을 갖게 된 이 아이가 인류역사상 최고최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된 반면에, 선민인 이스라엘 나라에서 최고로 잘 생기고, 최고로 내면이 강인하고, 정말 왕의 재목으로 탁월했던 압살롬이 비명에 죽어버리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패륜아적인 패역 부도한 그러한 자리까지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불행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높아지려 하고 있고, 높은 것을 그리워하고, 높아지라고 가르치고 있고, 그런 마음의 아빠와 엄마에게서부터 우리 아이들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데, 이렇게 살아있는 것조차 감사한데, 나를 이만큼이라도 살려주시는 것이 은혜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내가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 마땅한 것이 나라서, 주님이 대신 죽으셔서 내가 이만큼 살고 있고 하나님이 내가 해야 될 회개를 가불해 주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가불해 주셔서 인내하심으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것도 감사하지. 자식을 보면서도 그냥 이대로 감사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돈을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내 주제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지. 감사하지.’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의 아빠와 엄마로부터 아이들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내가 작은 아이라 하나님! 내 인생을 내게만 맡겨 두시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에서 주어지는 일 중에 무엇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듣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 죄인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이 마음에서부터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솔로몬 못지않은 행복이 주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올라가자. 많이 갖자. 멀리 뛰자. 유명해지자. 높아지자.’라고 온통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겁니다. 압살롬처럼 되는 겁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결국은 압살당하는 겁니다.
‘높아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압살당해라. 압살당해라.'라는 말과 똑같은 겁니다.
아! 참, 겁 없이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막 내뱉고 "Boys Be Ambitious!" 라고 선교사님이 일본에서 말했다는 겁니다. 공항에서. 그 선교사님이 진짜 믿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믿음이 있었다면 "Boys Be Humble!" 아니면 "Boys Be conscious of your 죄!" 이렇게 얘기가 나왔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똑똑히 봐라. 주님의 십자가를! 너의 진정한 모습이 이것이다. 아니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마땅한 그 모습을 지닌 사람들이, 무슨 Ambitious는 무슨 Ambitious.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진짜 믿음이 있느냐는 겁니다. 더하면 제가 흥분할 것 같아서 여기서 마치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합니까? 나를 향한 Ambitious한 마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지. 하나님이 야심찬 계획을 갖고 계시지. 내가 나를 향해 야심찬 계획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향해 그럴 수가 있겠어요. 내가 누군데? 돌에 맞아 죽어도 시원치 않을 죄인이 낳은 그 자식 놈에게 뭔 Ambitious를 바라요.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압살롬과 솔로몬 다윗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압살롬 너무너무 잘 나갈 때, 잘 나가는 형편에서 낳은 아들이고, 솔로몬은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악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는 아들이었고, 그런 마음으로 아들을 키워서 왕이 되고 역사의 가장 지혜로운 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허락한 자식들 앞에서, 아니면 선생님이면 제자들 앞에서, 아니면 남편이면 아내 앞에서, 아내면 남편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는가?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깊이깊이 다지시며 행복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십자가 붙잡고 낮은 마음이 되면, 돈이 없어도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이번 주를 아주, 아주 행복하게 재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우리가 정신이 나갔습니다. 어쩌자고 높아만 지겠다고 합니까? 많이 가져야만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겁이 없으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주님의 십자가 그 처절하게 찢기고 돌아가신 그 모습이 나에게 가장 합당한 모습인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셔서 이 마음 잊지 않는 상태로 아이들 만나고 남편만나 아내만나 가족만나 이웃 만날 때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솔로몬이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깨닫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