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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종교는 역사의 박물관에 걸어라!
 
 
 
카페 게시글
그래도 세상 교회에 간다면 스크랩 교회가 키워서 마을에 내놓고
발람의 나귀 추천 0 조회 49 14.02.22 1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마을 생태계 일구는 새롬교회

 

 

개발 바람은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도 불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골목길을 깨끗하게 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마을버스가 반듯한 구획 별로 위용을 뽐내는 브랜드 아파트 숲을 지나 약대동 주민자치센터로 들어서자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옛 마을이 펼쳐진다. 주민자치센터 앞쪽으로 뻗은 길 이쪽은 서민 주거 지역이고 건너편은 부천의 대표적인 공장 지역이다. 자고 나면 바뀔 정도로 변해 가는 이 지역에서 27년 동안 변함없이 '마을 만들기'를 해 온 작은 교회가 있다. 새롬교회(이원돈 목사·경기 부천시 약대동 133-22)는 골목 곳곳에서 마을을 숨 쉬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새롬교회는 예배당보다 어린이집을 먼저 세웠다. 마을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1987년 새롬어린이집 1회 졸업식 장면. (사진 제공 새롬교회)

 

주민자치센터 2층에 신나는가족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 빌딩 3층에는 새롬지역아동센터가 들어섰다. 마을 안쪽 길로 들어서면 부천노인참여나눔터와 새롬가정지원센터가 있다. 어디에도 교회라는 간판이나 분위기를 풍기지 않지만, 모두가 새롬교회가 중심이 되어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또 교회가 키워서 마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들이다.

 

이 가운데 제일 먼저 새롬지역아동센터가 들어섰다. 교회를 세우기 전에 어린이집부터 문을 열었다. 27년 전인 1986년 4월 이원돈 목사와 함께 청년 네다섯 명이 약대동으로 들어왔다. 청년들이나 이 목사나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지만, 이곳이 예수님이 먼저 가신 갈릴리 같은 곳이라 생각해 들어왔다고 한다.

 

 

가난한 맞벌이 부부들에게 환영받은 어린이집

 

"당시 기독 청년들이 가난한 지역에 찾아가 선교 활동을 벌이고 난 보고서를 우연히 본 적 있습니다. 약대동이더군요. 부천에서 제일 가난한 판자촌 지역인 약대동에 우리가 가면 할 일이 참 많겠다 싶었습니다."

 

보고서와 현장 탐방으로 가난한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일이 급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교회를 세우기 전인 1985년 겨울 성경 학교를 열었을 때 아이들이 몰려온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만나 가야 하는지 확신했다. 이듬해 보육교사 자격이 있는 청년들이 허름한 집을 사서 새롬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정원 23명이 찼다. 온종일 탁아를 하는 어린이집이 당시 근처에서는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부터는 이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 이원돈 목사는 새롬교회의 마을 만들기가 실효를 거두는 이유로 목사 홀로 하지 않고 교인 모두가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교회가 터를 잡은 지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살폈고, 또 교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인적, 재정적 여건이 되는지를 고려했다. 그리고 예배당보다 먼저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어린이집부터 문을 열었다. 이 목사는 "나중에 보니 우리 교회가 예배당보다 지역 선교를 먼저 고려한 '선교적 교회 모델'이었다"고 회상했다.

 

새롬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는 물론 어린이들에게도 환영받았다. 방치되듯이 살았던 이들에게 대학생 이모·삼촌들이 다양한 놀이들을 만들어 오고, 놀이에 담긴 나눔·신앙·평화와 같은 의미들을 나누는 시간이 신기했다.

 

 

부천시 1호 지역아동센터

 

그렇게 인연을 맺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89년 자연스럽게 방과 후 공부방도 문을 열었다. 학교가 끝난 어린이들은 단칸방인 집 대신 교회로 몰려왔다. 새롬교회 청년들은 아이들 학과 공부도 봐 주고, 다양한 문화 활동도 준비했다.

 

"선데이 스쿨에서만 교육하는 게 아니라, 주중에도 아이들을 만나니 에브리데이 스쿨이 되더군요. 우리 교회 아이들만이 아니라 마을 아이들 누구라도 참여하도록 열어 놓으니 그게 선교가 되었습니다. 신앙 교육, 사회 교육, 마을 교육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IMF 사태가 터졌을 때 새롬공부방은 아이들의 학습과 인권 교육 현장임과 동시에 급식 문제까지 풀어 주는 곳이 되었다. 서민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라고 끼니를 대충 때우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농약 쌀, 유기농 야채, 유정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먹이지 않고 기른 닭과 소고기 등으로 밥상을 차렸다.

 

공부방은 2004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제도권 속으로 들어갔고, 이름도 지역아동센터로 바뀌었다. 새롬공부방도 새롬지역아동센터가 되었다. 부천에서는 1호 지역아동센터. 교회가 운영하던 것에서 이제는 소유는 마을이 갖고 교회는 운영만 하는 곳이 되었다.

 

 

   
▲ 새롬공부방은 2000년대 이후 새롬지역아동센터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장애와 비장애 어린이들이 통합 교육을 하고, 지역의 어르신들이 선생님으로 참여한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현재 새롬지역아동센터에는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데, 여느 지역아동센터와 다른 점이 있다. 초등학생들은 비장애, 중고등학생들은 장애 청소년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40명 가운데 장애 청소년들은 8명가량 있다. 일상적인 교육은 함께 하고, 미술치료 등과 같은 특수 프로그램은 장애 청소년들만 별도로 받는다. 지금은 잘 정착되었지만 장애, 비장애 아동과 청소년들의 통합 교육이 처음에는 그리 통합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초등학생들이 형님들을 많이 무시했어요. 같이 수업하다가 따라오지 못하면 괴롭히고 욕도 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함께 하는 시간이 늘다 보니 이해심이 생기더군요. 최소한 무시하거나 놀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도와주려고 합니다." (김경희 새롬지역아동센터 원장)

 

특히 어린 친구들이 또래와 건강한 관계를 맺어 가는 데 지역 어른들의 도움과 참여가 컸다. 틈나는 대로 은빛날개 어르신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아이들의 활동을 돕는다. 또 부천오정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오셔서 서예 교실, 종이접기 교실을 인도한다. 이외에도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과 함께 계절 체험 학교를 하고, 마을을 돌며 우리 마을 지도를 만드는 활동도 펼친다.

 

새롬지역아동센터는 청소년들과 어르신들이 만나는 장이다. 그리고 장애와 비장애, 다문화가정 친구들까지 어울린다. 여기에 가난한 집 아이들과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한데 섞여 지낸다. 한 마을에 살지만 쉽게 어울리기 힘든 이들이 한 공간에서 북적거린다.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거나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영 등 돌리지 않고 부지런히 만나면서 함께 문제를 풀어 간다.

 

 

마을의 우물터, 신나는가족도서관

 

새롬교회는 어린이집과 공부방에 이어 1989년 약대글방이라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정성회, 윤석희 집사가 자신들의 6000권에 이르는 책을 내놓고 사재까지 털어 마을 도서관을 세운 것이다. 이후 90년대 중반에는 새롬교회가 맡아서 운영했다. 책을 빌려 가는 곳에 머물지 않고, 책을 매개로 마을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곳을 기대했다.

 

글방도 처음에는 청소년들의 주된 공간이었다. 자원 봉사하는 예닐곱 명의 '형님'들에게 주요 과목 학습지도를 받고, 바둑이나 미술, 노래 동아리 모임도 활발했다. 1년에 한두 번은 빌려 간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 '글 나눔 잔치'도 열었다.

 

2000년대 들어 전국에서 마을 도서관이 붐처럼 일어나면서, 약대글방도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았다. 지방정부와 시민 단체들이 모여 부천에도 놀이터처럼 마을 곳곳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 모델이 약대글방이었던 것이다. 당시 논의 끝에 작은 도서관이 부천시 안에 15곳이 생겼는데, 약대글방은 주민자치센터 3층에 들어가는 첫 마을 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 가정이 해체되는 시기에 가정의 쉼터가 되길 바라며 이름도 '신나는가족도서관'으로 바꾸었다.

 

 

   
▲ 약대글방은 마을 어린이들의 공부방이고 놀이터였다. (사진 제공 새롬교회)

 

신나는가족도서관은 이름처럼 가족들이 함께 와서 책을 읽고 이웃을 만나는 공간이다. 우선 어린이들에게는 도서관이 따분한 곳이면 안 된다. 그래서 여러 선생님들이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책 읽는 재미, 또 책에서 배운 것들을 친구들과 나누는 재미를 가르친다. 조금 더 어린 유아들은 미술 교실이 기다리고 있다. 주말에는 요리 교실이 있고, 방학 때는 엄마 혹은 아빠와 함께 하는 다양한 특강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외에도 이야기 교실과 매직 버블 등 다양한 놀이 체험 교실이 도서관에서 열린다.

 

마을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전국의 박물관, 전시실, 전통 마을 등을 탐방한다. 지난 겨울방학 때는 경기도 청평으로 독서 캠프를 떠났고, 여름에는 원미산과 도당산에서 다양한 생태 체험을 하고 왔다.

 

마을 도서관을 처음에는 교인이, 이후에는 교회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면서 문턱은 더 낮아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났다. 평일에도 꾸준하게 100명 정도가 다녀간다. 그렇지만 도서관을 방문하면 새롬교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도서관을 전도의 통로로 활용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마을 도서관으로서 기능을 충분하게 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역할만 새롬교회가 맡는다. 도서관을 운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인도하거나 주도하는 사람, 혹은 참여하는 이들 속에서 새롬교회 교인들이 섞여 있다.

 

"사람들은 알아요. 우리가 이것을 전도 수단으로 쓰려고 하는지 아니면 정말 마을을 위해 내어놓는 건지. 조금이라도 우리 교회 교인을 늘리려 했다면, 신나는 도서관이 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도 찾아오기가 거리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와 우리 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 신나는가족도서관은 마을의 우물터 같은 곳이다. 책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다양한 모임이 열리고, 그 모임이 씨앗이 되어 또 새로운 일들을 벌인다. (사진 제공 새롬교회)

 

무너진 가족을 위한 가정지원센터

 

 


IMF가 터진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롬교회는 가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가정들이 사회가 어려워지자 가장 먼저 해체되고 파괴되어 갔기 때문이다. 새롬교회는 우선 가정지원센터를 만들어 마을의 가정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는 일부터 나섰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실직이나 어려워진 생계를 지원하는 일은 지자체나 다른 사회단체를 연결해 주는 것으로 갈음하는 대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들이 뭉칠 수 있는 활동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웃 가족들을 초청해 함께 캠프를 떠나고, 가족들끼리 나들이나 산행을 함께 했다. 더 건강한 가족이 되기 위한 세미나도 부지런히 열었다. 실직 등을 비관하면서 가장이 알코올중독에 빠진 사례나 다자녀 가정의 어려움 등을 상담하면서 이들의 치료 과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 처음 교회가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은 IMF 사태로 무너진 가정을 돕는 새롬가정지원센터로 바뀌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새롬교회는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어려움을 겪는 시기이기도 했다. 여러 활동을 통해서 만나는 가정들과 신뢰를 쌓아 가면서 이제는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 싶을 때 이사를 가 버리기 일쑤였다.

 

"약대동은 언젠가는 떠나는 곳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나아지면 더 좋은 곳으로, 그마저도 어려워지면 이곳보다 더 못한 곳으로 떠납니다.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꿈이 달랐습니다. 우리는 오래도록 정착하려고 왔지만, 많은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삶의 목표였습니다. 이곳에 온 지 10년 만에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새롬교회는 마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자는 것을 새로운 좌표로 내걸었다. 처음 약대동에 왔을 때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 주는 일에 집중하다가 이후에는 가족, 그리고 2000년부터는 더 큰 가족인 마을을 세우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어르신들과 다문화 가정의 든든한 벗, 은빛·꿈빛날개

 

교인은 물론 마을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이웃들,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과 함께 일본의 가와사키 지역도 방문했다. 우리보다 앞서 어떻게 정착하고 싶은 마을을 가꿔 가는지 보았다. 돌아와서는 2001년 6월 10일 약대동을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겠다는 선포식도 이웃들과 함께 했다.

 

그동안 펼쳐 온 어린이집과 도서관, 공부방 활동이 담아내지 못하는 연령층인 노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교인들이 독거노인이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서 벗이 되어 드리고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그 다음에는 한글 교실을 열었다.

 

 

   
▲ 한글을 공부하는 할머니들의 눈이 빛난다. 은빛날개는 만학의 기쁨을 누리는 할머니들을 돕는 젊은 벗들이다. (사진 제공 새롬교회)
   
▲ 미디어 교육이 푹 빠진 할머니들. 어르신들은 당신들의 삶을 직접 찍은 영상과 사진을 발표하며, 사는 맛을 느낀다고 했다. (사진제공 새롬교회)

 

이러한 활동을 위해 '은빛날개'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물론 새롬교회 교인들이 주축을 이루지만, 꼭 교인만 있는 건 아니다. 도서관을 아이들과 손잡고 드나들던 이웃들이 동참하면서 마을 모임이 되었다. 이웃들도 교회를 내세우지 않는 것에 진정성을 느끼고 스스럼없이 시간을 냈다.

 

도시락 배달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은빛날개 회원 10여 명이 오전 10시에 모여 스무 가정에 배달할 도시락을 마련한다. 때때로 쌀과 김치, 주전부리도 곁들인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한글 교실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스무 명에 이르는 어르신들과 '은빛한글배움터'에서 글 읽는 즐거움을 나눈다.

 

   
▲ 새롬교회 앞에서 바쁘게 지나가는 은빛날개 회원들을 불러 기념사진을 찍었다. 힘든 봉사 활동 중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처음부터 한글 공부부터 하자고 하면 재미도 없고 지칠까 봐 한동안은 밥상을 함께 나누며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글을 배우고, 나중에는 어르신들끼리 자치회라는 일종의 학생회까지 조직했다. '실버스타'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부천 다문화 축제에 참여해 춤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새롬교회가 지원해 꽃놀이나 대공원 나들이도 다닌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작년에는 미디어 교육까지 받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고 사진도 남겼다. 매주 금요일 한글 공부를 마친 뒤 부천영상미디어센터에 가서 미디어 수업을 받은 것이다. 한글 교육을 받고 있지만 한 자 한 자 쓰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런데 미디어 교육은 더 힘들지 않을까. 어르신들 이야기는 정반대다. 임복순 할머니(78)는 "실감이 나서 좋아. 미디어 수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카메라로 바로 보여 주니까 실감이 나지" 하며 흥겨워했다.

 

약대동 어르신들이 만든 영상물은 '언닌 약대동 스타일'. 가수 싸이 씨의 히트곡 '강남 스타일'에 약대동 어르신들의 활동을 닮은 일종의 뮤직비디오다. 마을에서 상영회도 열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작년 가을에는 약대동뿐 아니라 수도권 지역의 어르신들이 제작한 사진,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발표하는 상영회에도 참여했다.

 

"어르신들은 박스 줍는 일을 업으로 하면서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가 보다' 했는데, 다른 지역의 노인들 앞에서 우리 작품 자랑도 하고 수료증도 받으니 마음이 뭉클하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약대동 어르신들에게 미디어 교육 소감문을 받았습니다. 오타에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삐뚤빼뚤한 글이었지만, 글자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가장 많이 쓴 표현이 '재미가있썼다'이고, 그 다음으로는 '무어든지 배우면 할 수 있다고 느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박수정 씨(부천영상미디어센터))

 

마을 어르신들에게 은빛날개가 있다면,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일은 '꿈빛날개'가 펼치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실을 열고, 약대동에서 지구촌 잔치를 마련한다. 이주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대신, 그들에게서 다른 나라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들 나라의 전통 춤도 함께 배운다.

 

 

   
▲ 꿈빛날개는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을 돕는 약대동 이웃들의 모임이다. 사진은 지구촌 축제 때 이주 여성들과 함께 필리핀 전통 춤을 배우는 장면. (사진 제공 새롬교회)

 

약대동 문화 생태계 가꾼다

 

새롬교회가 마을에서 펼치는 일은 이외에도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허름한 골목길에 생명을 불어넣자며 이웃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 이웃들이 쓰던 물건을 모아 녹색 가게와 녹색 장터도 열고 있다. 마을의 숨은 공터와 자투리 땅, 공유지 등을 생태 공원으로 가꾸는 일도 추진했다.

 

앞으로는 약대동에 담쟁이문화원(한효석 원장)이 들어와 주민들과 시민들과 함께 하는 약대동 열린 음악회도 열 수 있는 꿈이 생겼다. 마을에서 흔히 만나는 이웃들이 가수로, 춤꾼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즐기기만 하는 건 아니다. 마을·복지·생태·평화 등 제법 무거운, 그렇지만 마을과 직접 관련이 있는 주제로 심포지엄과 포럼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 교회 내부의 성경 공부, 인문학 공부 모임은 차츰 약대동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가 되었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약대동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 대안을 마련하고 함께 실행하는 모임이다. (사진 제공 새롬교회)

 

이 목사는 이 모든 일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로 교인들의 참여와 꾸준한 공부를 꼽았다.

 

"목사 개인만 마을 만들기를 꿈꾸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이지만, 교인 모두가 이런 활동에 동참합니다. 대다수 교인들이 마을에 살면서 주민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도 하고, 때로는 작은 모임을 이끌기도 합니다. 새롬교회 교인이라면 모두가 마을 선교사, 사회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교인들에게는 물론 이웃들에게도 마을 생태계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교회 안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지역 선교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활동을 펼쳤다. 이 목사도 봄에는 교인들을 심방하지만, 가을에는 마을 심방을 하며 이웃들과 더 친밀하게 만나갔다. 이 목사와 교인들이 마을 심방을 통해 확인한 마을 주민들의 고민과 근심거리는 그대로 새롬교회의 기도 제목이 되었다. 예배나 새벽 기도 때 모두가 함께 마을을 위해 구체적인 기도를 한다. 함께 마을 심방을 한 김현자 권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적극적이고 밟게 살아가려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기도가 저절로 그리고 자꾸 나온다"고 고백했다.

 

교회 안팎에서 하고 있는 공부가 마을 만들기의 밑거름이라는 이야기도 강조했다. 수요일은 아예 공부하는 날이다. 격주는 교인들과 함께 성서와 인문학, 마을 문제들을 놓고 꾸준히 토론한다. 그리고 다른 격주에는 '수요 인문학 카페'라는 이름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부 모임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성서를 가르치고 대화도 나눈다. 최근에는 마을 기업, 협동조합 등을 추진하는 연구 모임을 꾸준히 벌였다.

 

마을 사람들과 모이고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해 갔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끼리 만든 '아하 체험 마을', 마을 아주머니들이 만든 협동조합형 극단 '틱톡' 등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과정에 함께하며 꿈을 나눈 경험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과 마을 기업 등에 활동 장소를 제공하는 담쟁이문화원 한효석 원장과도 함께 공부하고 마을 일을 의논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교회가 뭔가 활동을 하면 손아귀에 쥐고 싶어 하는데, 새롬교회는 다르더라고요. 새롬교회가 애써 가꾼 결과물을 마을에 내어놓는 걸 보았습니다. 다른 지역 목사나 신부, 스님들이 작은도서관이나 지역아동센터 등을 배우러 오는데, 그들에게 저도 이런 모습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효석 담쟁이문화원 원장)

 

 

   
▲ 이원돈 목사(왼쪽)와 한효석 담쟁이문화원 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어 가려고 여러 일들을 함께 벌이는 마을의 좋은 친구라고 서로를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사실 어르신 도시락 봉사나 한글 교실, 마을 만들기의 다양한 활동은 도서관 등을 매개로 마을 사람들과 공부하는 모임에서 태동했다. 마을 사람들이 꾸준히 모여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실천도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을의 필요를 찾아보면서 은빛날개, 꿈빛날개와 같은 동아리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는 마을 기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가 쌓여 실현 단계에 접어들었다. 남성 교인들 6명이 처음 발기인이 되어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떡 카페를 준비하다가, 협동조합 교육을 함께 받은 이웃들과 협동하여 '달나라토끼'를 열기로 했다. 마침 새롬교회 27주년을 맞는 올해 6월 16일을 창립총회를 하는 날로 정했다. 이웃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조합원이 벌써 30명 넘게 모였고, 출자금도 목표치에 거의 다다랐다.

 

조합원들은 여러 차례 모이면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의견을 모았고, 지금은 눈여겨보았던 마을의 몇몇 장소 중 한 곳을 선택하는 일만 남겨놓았다. 준비위원장을 맡은 정성회 집사 등은 마을 어르신들과 주부들이 마음껏 수다를 떨며 쉬다 갈 수 있는 곳,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소통할 수 있는 곳, 거리 청소년들의 쉼터 및 문화 공간 등으로 꾸며 갈 계획이라고 했다. 

 

 

   
▲ 주민지원센터 앞에는 새롬교회가 마을에서 펼치는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 펼침막이 항상 걸려 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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