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동해안 지역과 태풍
비구름이 산맥에 부딪혀 집중호우 피해 더 커져요
입력 : 2022.10.18 03:30 조선일보
동해안 지역과 태풍
▲ /그래픽=유재일
지난 9월 초 태풍 힌남노가 동해안 일대에 큰 피해를 줬어요. 특히 경북 포항의 냉천이 범람하면서 흙탕물에 잠긴 강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여러 명이 숨지고, 포항제철소의 고로(高爐·용광로)도 침수됐습니다. 과거부터 동해안 지역은 유난히 태풍 피해가 심했어요.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속초·강릉·동해에서, 2016년 태풍 차바 때는 울산에서, 2019년 태풍 미탁 때는 영덕·울진·삼척에서 큰 홍수가 났는데요. 태풍은 왜 이렇게 동해안 지역에 특히 큰 타격을 주는 걸까요?
강우량 많은 가을 태풍
동해안 지역의 태풍 피해는 대부분 힌남노처럼 8월 말 이후부터 10월 사이에 닥친 '가을 태풍' 때문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이 무렵이 되면 태풍이 주로 발생하는 북태평양 적도 인근의 태양 고도가 높아지면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게 돼요. 1년 중 해수면 온도가 가장 높게 올라가면서 수증기 증발량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에 태풍의 세력이 강해지는 거지요.
이렇게 덩치를 키운 태풍이 동해안 쪽으로 북상하게 되면, 태풍의 진행 방향 앞쪽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태풍의 영향으로 강력한 동풍이 불게 되는데요. 먼바다에서 연안 해안가 쪽으로 부는 이 다습한 바람이 동해안에 인접해 있는 높은 백두대간에 부딪혀 급상승하면서 많은 비를 뿌려요. 바람에 포함된 축축한 습기가 높은 상공으로 올라가 이슬점(대기의 온도가 낮아져 수증기가 응결하기 시작할 때의 온도)에서 많은 비가 되어 내립니다. 결국, 높은 산들이 줄줄이 늘어선 동해안 지역의 지형적 특성이 가을 태풍으로 인한 호우 피해를 더욱 키우는 것이죠. 최근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이달 중 태풍이 또 올 수도 있어요. 기상청에 따르면 10월 태풍은 기후변화 영향 등으로 갈수록 잦아지고 있어요. 2013년, 2014년엔 연속해서 10월 태풍이 발생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줬지요.
여름·가을철 해수면 높아져
여름과 가을엔 겨울이나 봄보다 해수면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는 여름과 가을철에 바닷물이 상대적으로 더 따뜻해지면서 물의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이죠. 여기에다 태풍의 낮은 기압과 거센 바람도 바닷물의 수위를 일시적으로 상승시키죠. 태풍의 중심기압이 1hPa(헥토파스칼) 낮아질 때마다 주변 수위는 1㎝ 상승합니다. 태풍 힌남노 때는 포항의 해수면 높이가 평소보다 약 63㎝ 높아졌다고 해요.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면 평소엔 바다를 향해 빠져나가는 강물이 정체되거나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죠. 그런데 동해안 하천의 연안(육지와 접해 있는 물가) 하구는 대부분 바다와 이어져 있어요. 높아진 바닷물은 밀물이 몰려드는 만조 때 강어귀를 따라 역류합니다. 그러면 하천 하류의 수위도 덩달아 높아지겠죠. 동시에 태풍으로 인해 발생한 큰물이 상류로부터 빠르게 흘러내려 하천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닷물과 부딪히기도 해요. 이때 물이 순간적으로 하천 밖으로 흘러넘치게 됩니다.
이는 내륙 지역에 큰비가 내려 강물이 넘치는 것보다 더 큰 침수 피해를 발생시킵니다. 바다에서 떨어진 내륙의 하천은 물이 불어나더라도 상대적으로 천천히 범람하지만, 동해안 지역에서는 내려오는 물이 역류하는 바닷물과 맞부딪히며 순식간에 많은 양의 물이 넘치는 것이죠.
하류에 토사 쌓여 범람 쉬워져
두 가지 외에 다른 이유도 있어요. 산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강물 속의 토사(흙과 돌)는 입자 크기가 큰 순으로 바닥에 가라앉아요. 강 상류와 하류의 물살 세기는 서로 다른데요. 강바닥 경사가 완만할수록 물살이 약해져요. 상류 지역의 센 물살에 깎여 하류로 떠내려가던 토사가 물살의 세기가 줄며 큰 돌, 자갈, 모래 등의 크기순으로 가라앉는 거지요.
그런데 하천에서 바닥의 경사가 눈에 띄게 완만해지는 곳이 있어요. 이런 곳을 변곡부(變曲部)라고 해요. 이곳에서는 물살이 갑자기 약해지기 때문에 토사가 많이 쌓이게 돼요. 그러면서 하천 바닥이 높아져 제방(둑)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큰물이 범람하기 쉬운 조건이 되지요. 대개 하천에는 선상지(扇狀地·운반된 자갈과 모래가 평지를 향해 부채 모양으로 퇴적된 곳)와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오는 감조구역(感潮區域·밀물과 썰물의 영향이 미치는 강의 부분) 등에 이런 변곡부들이 만들어져 있답니다. 그런데 내륙 지역의 하천은 변곡부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동해안 하천의 대부분은 변곡부가 가까이 붙어 있어요. 내륙 지역과 달리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동해안 지역의 하천은 길이가 상대적으로 아주 짧기 때문이에요. 길이가 짧으면 선상지와 감조구역 등도 상대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겠죠. 그럼 강바닥이 높아져 같은 양의 물이 내려와도 하천이 더 쉽게 범람하는 거예요.
동해안 하천 하구에는 모래 둔덕이 많아 큰물이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도 범람의 원인으로 작용해요. 동해안은 서해나 남해와 달리 조수간만(밀물과 썰물 때의 수위)의 차이가 크지 않아요. 그래서 토사가 바다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강 하구에 쌓여 강물이 흘러가는 길의 일부를 막아버리게 되는 것이죠.
[잦은 대형 산불도 큰 홍수의 원인]
봄철 동해안에는 고온 건조한 강풍으로 대형 산불이 나기 쉬워요. 산불이 난 곳에는 한동안 불탄 나뭇가지 등이 폭넓게 쌓여 있는데요. 이때 홍수가 나면 빗물을 머금는 숲이 없어 물이 불어나고, 산비탈이 깎이며 물과 함께 엄청난 양의 토사와 나뭇가지들이 계곡을 따라 떠내려 와요. 2000년 동해안에서 대형 산불이 난 뒤 2002년 태풍 루사가 왔을 때, 하천 교량을 뒤덮을 정도로 대형 토석류가 쏟아져 내린 것도 이 때문이지요.
이삼희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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