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기금융시장과 관련 상품
단기금융시장은 금융기관, 기업, 정부 등이 일시적인 자금과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통상 만기 1년 이내의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영어로 money market이라 하며 돈이 거래되는 시장이란 의미로,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단기금융시장에는 금융기관, 기업, 정부,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금융기관에게 더 중요한 금융시장이다. 금융기관은 다른 경제주체의 자금조달을 지원하고 여유자금을 받아 관리 운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시적인 자금과부족이 항상 발생한다. 효율적인 단기금융시장은 금융기관 등의 일시적인 자금과부족을 빠르고 저렴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 여유자금이 생기면 여유기간에 맞추어 단기금융시장에서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자금이 부족하면 필요한 기간만큼 단기금융수단을 통해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금융시장은 언제든 불안해질 수 있다. 금융불안 시기에는 장기금융상품은 가격변동이 크고 더 위험하다.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적기에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다. 이런 때에는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시장상황의 변화를 관망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동성 있고 안전한 금융상품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단기금융시장이 잘 작동해야 금융기관과 시장참가자들이 위험관리가 편해진다. 또한 정책당국의 금융위기 관리와 수습도 쉬워진다.
단기금융시장은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조정 등 통화정책이 일차적으로 반영되는 곳이다. 여러 가지 단기시장금리 등 시장지표는 중앙은행의 정책결정을 위한 중요한 정책지표이다. 당연히 단기금융시장이 발달되어 있어야 통화정책의 효율성과 시의성 등이 높아진다. 단기금융시장은 금융기관의 중요한 영업장소이며 중앙은행 등 정책당국이 정책을 펼치는 무대이다.
단기금융시장이 발달되어 돈이 잘 도는 금융중심지를 Money Market Center라고 부르며 뉴욕, 런던, 홍콩 등이 대표적인 도시이다. 한국의 금융은 여러 면에서 낙후되어 있지만 단기금융시장의 발전이 더딘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도 콜시장,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시장, CD시장, 기업어음시장, 단기사채시장, 단기재정증권시장 등 선진국과 비슷하게 다양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시장은 시장의 목적과 맞지 않게 운영되고, 어떤 시장은 실적이 매우 부진하여 의미가 없다. 여기에다 각 시장의 연계성이 떨어져 효율적인 자금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면이 있다.
한국의 주요 단기금융시장의 현황과 금융상품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콜시장)
콜(call)시장은 금융기관들이 일시적인 자금과부족을 조절하기 위해 상호간에 초단기로 자금을 빌리고 빌려주는 시장이다. 원래 콜은 중앙은행에 예치하여야 할 지급준비금의 과부족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콜시장은 지준(지급준비금)시장으로도 불린다.
콜은 한국의 경우 만기가 90일까지 가능한데 거의 대부분 하루짜리(익일물)이다. 콜거래는 담보제공 여부에 따라 담보콜과 무담보콜(신용콜)로 구분되는데 실제 거래는 거의 대부분 무담보콜이다. 중앙은행이 대출정책이나 공개시장조작 등을 통해 본원통화 공급을 조절하면 금융기관의 지급준비금이 즉각 변동하고 콜금리도 바로 반응한다. 이러한 이유로 콜금리는 한국과 일본에서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로 사용된 적이 있으며 미국에서는 현재도 콜시장과 같은 페더럴펀드시장의 금리(federal fund rate)가 정책금리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은 익일물 무담보 페더럴펀드금리가 정책목표로 제시한 수준에서 움직이도록 공개시장조작 등을 통해 페더럴펀드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콜시장에서 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콜론(call loan), 자금을 빌리는 것을 콜머니(call money)라고 한다. 콜시장은 금융기관의 일시적 자금과부족을 조절하는 시장이므로 한 금융기관은 어떤 때에는 돈을 빌려주는 콜론기관이었다가 또 어떤 때에는 돈을 빌리는 콜머니기관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 콜시장은 특정기관들이 계속 콜머니를 사용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었다.
수신능력이 약한 증권회사와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콜시장에서 쉽게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영업자금으로 사용하여 왔다. 증권회사와 외은지점은 콜시장을 일시적 자금과부족 조정이 아닌 지속적인 자금조달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환매조건부채권 매매나 CD시장과 같은 다른 단기금융시장의 발전을 저해한다. 또한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정책금리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본원통화를 조절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회사 등이 계속 콜머니를 쓰는 것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가 증권회사 등에 바로 공급되는 것과 같다.
2010년 이후 정책당국이 증권회사 등의 콜시장 참가 제한, 콜머니 한도 설정 등의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콜시장이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준예치의무가 없는 증권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이 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여 콜시장이 지준시장으로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또한 단기금융시장에서 콜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환매조건부채권매매시장 등의 규모가 커졌다. 단기금융시장이 다원화되는 모습이다.
(환매조건부채권매매시장)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 또는 Repo, Repurchase agreement)는 미래에 정해진 가격으로 증권을 다시 사고 파는 조건으로 증권을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개월 후에 101원에 다시 팔 것을 약속하고 증권을 100원에 살 수 있다. 이를 RP 매수라 한다. 반대로 1개월 후에 101원에 증권을 다시 사기로 약속하고 100원에 팔 수 있다. 이는 RP매도가 된다.
법적으로 RP거래는 약정기간동안 대상증권의 소유권이 RP매도자에서 RP매수자로 이전되는 증권의 매매이다. 따라서 RP매도자가 도산 등으로 약속된 거래를 이행하지 못하면 RP매수자는 대상증권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RP거래는 RP매도자가 RP매수자에게 증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즉 RP매도자는 차입자, RP매수자는 대여자, RP대상증권은 담보의 역할을 하는 자금의 대여와 차입 거래와 같다.
RP거래는 매도자에게는 보유하고 있는 증권을 활용해 자금을 싸고 빠르게 빌릴 수 있게 해준다. 매수자에게는 단기 여유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증권을 매개로 다양한 만기의 단기자금을 운영하거나 조달할 수 있어 단기금융시장이 활성화된다. 또한 장기증권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하면 증권을 매각하지 않고 RP매도를 통해 부족자금을 해결할 수 있다. 장기증권을 급하게 팔때 발생하는 손실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장기증권투자의 위험성이 낮아지고 증권의 유동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결국 RP거래가 활성화되면 단기금융시장이 발전하고 장기금융시장과의 연계성도 높아져 금융시장 전체가 효율적으로 변한다.
RP거래는 거래기관을 기준으로 금융기관과 일반 고객 간에 이루어지는 대고객RP, 금융기관과 금융기관 간에 이루어지는 기관 간 RP, 한국은행과 금융기관 간에 이루어지는 한국은행RP로 나눌 수 있다. 대고객RP는 증권회사, 은행, 우체국 등이 취급하고 있으며 통장 방식으로 이루어져 일반 고객에게는 예금과 비슷하다. 기관 간 RP는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여신전문금융기관 등 금융기관과 금융공기업, 외국환평형기금, 우체국 등 금융 관련기관이 참여한다.
한국은행RP는 한국은행과 금융기관간의 RP거래로 한국은행이 본원통화 공급과 회수 등을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개시장조작 수단이다. 한국은행의 정책금리도 7일물 RP매매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RP매도를 하고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RP매입을 한다.
RP거래 대상증권은 대고객RP의 경우 국채, 지방채, 공모회사채, ABS, MBS 등 여러 가지이지만, 투자자의 보호를 위해 신용등급이 일정 수준(BBB급) 이상이어야 한다. 기관간RP 대상증권은 자유화되어 있으나 실제는 국채, 통화안정증권, 특수채 등 안전자산이 주로 쓰인다. 한국은행RP는 대상증권을 엄격히 운용하여 국채, 정부보증채, 통화안정증권, 주택금융공사 MBS로 한정되어 있다. 다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와 같은 금융불안 시기에는 한국은행RP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대상증권을 일시적으로 은행채 등으로 확대하여 운용되기도 하였다.
RP대상 증권은 매일 매일 시가평가가 이루어져 증권의 시장가치가 다시 사거나 팔기로 한 가격(환매가)을 넘어야 RP 거래의 안전성이 유지된다. 대고객RP는 대상증권의 시가가 환매가의 비율 즉 증거금 비율이 105% 이상을 유지하도록 되어 있고 한국은행RP는 대상증권의 종류와 만기에 따라 증거금 비율이 102~110%로 정해져 있다.
RP거래는 대상증권을 구체적으로 지정하여 거래가 이루어지는 특정 담보RP와 사전에 합의된 증권목록이나 유형 내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일반 담보RP로 구분할 수 있다. RP는 증권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안전성이 높다. 그러나 심각한 금융불안으로 대상증권의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 일반 담보RP 거래 시 부실한 증권이 포함되는 경우 등은 거래의 안정성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