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사냥개를 요구하면서 토산물을 바쳤다고 하는데 그 토산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조선에서는 사냥개 2마리와 정포 147필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에서 잡아둔 일본인들의 방환을 요청하면서도 토산물을 바쳤는데, 일본인 16명을
돌려보내면서 정포 14필을 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사냥개는 일본에서 토산물을 바치고 구할 정도로 유명했으며, 고작 2마리만 보내준
것을 보면 보유하고 있는 개의 숫자가 매우 적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견(사냥개)은 주둥이가 길었다는 후대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일본에게 준 사냥개는 세구
(그레이 하운드 닮은 개)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종실록 42권, 세종 10년 12월 14일 辛卯 3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구주의 종금이 예조에 글을 올리다
구주(九州)의 종금(宗金)이 예조에 글을 올리기를, "가만히 듣자오니 대국(大國)에서 사절[行人]을 보내어 장차 우리 나라의 상사(喪事)를 조위하고자 하신다 하오니, 방금 천기가 한절(寒節)을 향하고 있을 뿐더러 만리 바닷길에 풍파가 안온하지 못하오니, 봄을 기다려서 선척을 발송하시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하나이요, 방금 온 구주(九州)의 우엄과 권한이 대우(大友)와 대내(大內) 2공(公)에게 있습니다. 만약 먼저 사자를 보내시와 2공에게 화호(和好)를 통하신다면 2공이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 다할 것이니, 이것이 또 하나입니다. 소인(小人)이 우악하신 은덕에 목욕함이 이미 오래인지라, 진실로 대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힘으로 능히 다할 수 있기 때문에, 감히 이 두 가지 일로 귀하에게 사견을 올리는 바입니다." 하고, 인하여 토산물을 바치고 또 대우전(大友殿)이 사냥개[田犬]를 구하는 뜻을 고하니, 정포(正布) 1백 47필과 사냥개 2마리를 회사하였다. 등원만정(藤原滿貞)이 사객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쳐 왔으므로 정포 13필을 회사하고, 종언칠성국(宗彦七盛國)이 글을 보내어 피류(被留)된 사람의 방환(放還)을 요청하고 인하여 토산물을 바치므로, 답서하고 피류자 16명을 돌려보내면서 정포 14필을 회사하였다. |
(만주 세구 : 조선 세구의 모습과 비슷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