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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바벨과 교회의 차이>의 줄거리:
인간들끼리라면 뭉쳐도 망하고 흩어져도 망합니다. 중지(衆智), 여론, 여러 사람의 단합 등이 사람들에게는 힘과 자신감 그리고 올바름과 성공의 근거이고 기준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 자체가 정의가 되고.성공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됨의 아주 강한 또 하나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바벨은 뭉쳤다가 망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뭉쳐도 살고 흩어져도 사는 길은 없을까요? 그 길을 참교회의 모습에서 모색해봅니다.
바벨과 교회의 차이
(창11:1~32)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9절까지의 바벨탑 사건에 이어서 셈의 족보가 나오고, 27절부터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가계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중심으로 <바벨과 교회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함께 나눕니다.
‘바벨과 교회의 차이’
바벨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바벨과 교회의 차이가 왜 중요하냐면, 까딱 잘못하면 교회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 때의 인간들 모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 이 바벨의 현장과 교회가 가장 강력하게 유사한 점이 있어요.
우선 사람들의 모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그 사람들의 모임 안에 일체와 단결과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벨과 교회가 아주 비슷합니다.
그리고 요즘 교회가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데,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모인 사람들의 힘이 규합이 되어서 큰일들을 행하려고 합니다.
예배당 건축 같은 것, 아니면 세계 선교나 해외 선교, 아니면 다른 교회들끼리의 운동, 사회정화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다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모든 교단과 교회들의 힘을 모아서 사회정화운동을 한다니까 너무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게 바벨과 교회의 차이가 없어지는 겁니다.
교회는 힘을 모아서 예배당 건축하는 곳도 아니고, 힘을 모아서 세계선교를 하자고 으쌰으쌰 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와 교회가 서로 연합해서 사회정화운동을 하는 곳도 아닙니다.
그게 다 바벨과 차이가 없어져서 바벨탑을 쌓아 나가는 거예요.
어떤 명분과 어떤 제목을 놓고 인간의 힘이 모아지더라도 그건 다 바벨입니다.
절대로 교회를 그렇게 착각하면 안 되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교회와 바벨의 구별이 없어져 버렸어요.
여러분이 다니는 곳이 바벨입니까? 교회입니까? 그걸 알아내야 되겠다는 거예요.
우리의 역사적으로 대대로 지향되어지는 가치가 단합입니다. 뭉치는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유명한 말이 기억나요.
요즘은 또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뭉치면 싸고 흩어지면 비싸다.”
무슨 이야기냐?
KT의 스마트폰 요금할인제도가 있는데 그게 바로 뭉치면 올레입니다.
남편, 아내, 자식의 LTE폰을 뭉치고 또 인터넷과 하나로 뭉치면 값이 굉장히 싸집니다.
5천 원, 만 원씩 할인을 해줍니다. KT에서 그렇게 만드니까 LG에서도 “다이렉트 요금할인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똑같이 뭉치는 거예요. 그렇게 만드니까 SK는 또 가만히 있습니까? “착한가족 요금할인제”라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잘 뭉치는 가족이 착한가족이에요. 잘 뭉치면 값이 싸진다는 겁니다.
하여간 대대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줄로 아는데, 실지로 인간 세상이 결정적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이게 된 이유는, 가화만사성이라고 아담과 하와로 이루어진 첫 번째 가정이 화목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내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남편이 기꺼이 공조합니다. 일을 하나 두고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인류는 망했습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오늘 이 바벨탑 사건이 있고, 셈 족의 계보가 나오고, 아브라함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이 되고, 1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야기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성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시겠죠?
아담의 타락 이후에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고, 셋의 자손이 쭉 퍼져나가다가 인간이 육체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과만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 말고는 다 죽게 되고, 노아로부터 셈과 함과 야벳으로 사람들이 쭉 퍼져 나가는데 이제 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벨탑 사건에서 모든 인류를 다 흩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금 단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시기 위한 모든 계획을 집중시키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방주 패턴이라고 말했어요.
많은 사람과 온 인류가 있지만 그들은 다 타락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구원의 계획을 집중시켜서, 구원의 계획을 발전시켜 나가는 이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요.
그러면서 여기서 해주시는 말씀이 뭐냐?
노아 때에 육체가 된 인간들이 대홍수 이후에 대홍수에 대한 기억도 있고, 가인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저주인 온 땅에 흩어진다고 하는 저주에 대한 기억도 있으면서 죄악의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인간들끼리 뭉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흩으시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하여간 인간끼리 서로 질시, 반목, 갈등을 일으키는 것만큼 무서운 게 인간들끼리 합치는 거예요. 인간끼리 합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운동과 단합이 이 세계를 오랫동안 둘로 나누어서 냉전시대를 만들었던 거예요. 사회주의 운동.
인간들의 운동이면 평화운동, 자연보호운동도 마찬가지예요.
평화운동, 자연보호운동이 왜 다 그렇게 나쁜 것으로 치느냐?
이러한 기질 자체가 죄악 된 기질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와 있어요. 그래서 이익 단체를 이룬다면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인간들이 뭉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뭉쳐도 죄의 결과이고 흩어져도 죄의 결과예요. 싸우고 갈등하고 반목하면서 흩어져도 죄 때문이고, 서로 잘 뭉쳐서 힘을 합쳐 월등하고 강력한 이익단체로 변모하는 것도 죄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끼리의 이야기라면 뭉쳐도 죽고 흩어져도 죽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 맞는 곳이 있어요.
어떤 곳이 맞느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개인 각자가 뭉치면 살고, 하나님과 흩어지면 죽습니다.
반면에 인간끼리는 뭉쳐도 죽고, 흩어져도 죽습니다.
인간끼리, 인간 차원의 세상에서는 붙는 일도 없어야 하고, 흩어지는 일도 없어야 해요.
붙어도 인간끼리 붙는 것이면 죽는 것이고, 흩어져도 인간끼리 흩어지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뭉칠까요? 그리고 뭉치고 흩어져도 죄의 결과인 이유가 뭘까요?
마음이 뭉치는 것을 의기투합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몸이 아니고 마음이 뭉치는 겁니다. 몸은 뭉쳐질 수가 없죠.
마음이 뭉쳐지는 것인데 왜 마음이 뭉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합니까?
마음으로 이 세상 속에서 마음이 붙잡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예를 들어 내 자식을 붙잡고 있으면 뭐가 됩니까?
학부형회가 되어서 학생들의 이익을 위해서 학교 측과 담판을 지으려고 합니다.
노조가 있고 경영진이 있어요. 노조가 왜 잘 뭉쳐집니까? 조금이라도 월급을 더 받아야 한다고 하는 마음이 월급에 붙어있기 때문이고, 자기들의 위치와 회사 내의 지위를 수호해야 한다고 하는 공동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뭉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돈에 마음이 붙어있기 때문에 싸우기도 합니다. 돈에 마음이 붙어 있어서 한쪽으로는 뭉치고, 돈에 마음이 붙어 있어서 경영진하고는 싸우는 거예요.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돈에 마음이 붙어있으니까 근로자들을 자꾸 해고하려 하고 싸우게 됩니다.
마음이 뭔가 이 세상에 있는 것에 붙어있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뭉쳐지기도 해요.
그러므로 뭉쳐지는 것도 흩어지는 것도 이게 다 죄의 결과라는 겁니다.
그럼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오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아브라함에게로 집중되는 이유가 뭡니까?
그걸 보여주시는 거예요. 인간끼리는 뭉치지도 말고 흩어지지도 말라는 거예요.
왜? 싸워서 흩어지고, 왜 자기들끼리 뭉치냐는 겁니다. 그게 죄악의 표현이에요.
그럼 아브라함에게 집중하시면서 보여주시려는 이야기가 뭡니까?
아브라함 한 사람과 하나님의 연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가 하나님과 묶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뭉치면 살고 하나님과 흩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뭉친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느 사람과 같이 연합하라고 하면 연합하는 것이고, 어느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시면 결별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주체성이 발휘되는 동안에 아예 뭉치거나 흩어지거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간끼리 세상에서 뭉치거나 흩어지는 것도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평화운동을 하거나 자연보호운동을 한다면 그런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내가 하나님과 뭉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자연을 보호하라고 하시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따라서 자연보호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각자가 하나님께 말씀을 들어서 같이 모이면 그것이 자연보호단체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자연보호에 마음이 묶인 상태에서 자연을 사랑한다는 마음 때문에 함께 뭉쳐지면 이것은 죄악의 단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벨탑 쌓기가 된다는 겁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하나님과 내가 뭉쳤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이 나라를 위한 어떤 행동을 하시기를 바라셔서 나라를 위해 행동할 수 있고, 그렇게 각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정치인들의 그룹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대통령이 되어서 권력을 잡겠다는 뜻을 두고 정당을 만들었다면 죄악의 단체입니다.
교회가 바벨과 달라야 하는 것이 어떤 점입니까?
교회가 시작한 곳을 한 번 봐요. 오순절 날 시작하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면서 교회가 시작되는데, 사도행전 2:2절에 성령이 강림할 때의 모습의 묘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뭐라고 하셨습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나옵니다. 그 불들이 하나씩 각자에게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불이 성령 아닙니까?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보이도록 표현해주신 것인데, 그 성령님이 하나씩 각자에게 머물러 있었다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제로원 복음이라고 쓸 때에 괄호로 묶어서 (0,1)을 사용합니다.
이게 바로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할 때에, 존재할 수 있는 단위체계를 말하는 거예요. 언제나 인간은 괄호로 묶인 이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0을 인간으로 놓은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과 뭉치려면 하나님도 주체적이시고 나도 주체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주체성은 죽어야 올바로 뭉쳐질 수가 있기 때문에 0이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0이 되면 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당신의 뜻과 당신의 계획과 소원과 능력을 0으로 놓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내 힘과 뜻과 마음의 소원과 모든 것을 0으로 놓아야 뭉쳐지는 것이죠. 그래서 (0,1) 이게 바로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존재할 때의 존재단위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묶이지 않고 돈에 묶였습니다. 돈에 묶여서 기업을 이룹니다. 이게 죄악의 단체죠. 그래서 사업이 잘 되었으면 바벨탑을 쌓는 겁니다.
교회가 어떻습니까?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교회는 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하나의 단위로 뭉쳐져 있고, 거기에 장로님들이 계시고 권사님들이 계시고 목사님이 계시고 그래서 피라미드 형태로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있고, 그 다음에 그 조직에 대해서 하나님이 오셔서 관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조직 내에서 힘을 규합하고, 헌금을 모아서 예배당을 짓고, 무슨 프로젝트를 이루고, 어떤 계획을 수행하고, 힘을 모아서 뭘 하자고 자꾸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는 뭐하는 곳입니까?
인간의 힘을 규합하는 곳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을 묶었듯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의 조선이라는 적을 설정하면서 일본을 통일했듯이 온 사람들을 묶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건축이라는 프로젝트를 내걸고 교인을 통합시키며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내는 것이 아니고 그게 목사나 당회의 지도력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님이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구현되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자로 하나님과 괄호로 묶이게 해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정으로 나가고, 직장으로 나가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에 (0,1)이라는 하나님과 뭉쳐진 단위로 존재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교회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 들어오면 사람들 마음속에 이 땅에서 일어날 일과 대상들에게 묶인 것을 다 십자가로 끊어내고, 끊어내서 십자가에서 제로가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서,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렇게 세상으로 보내져서 각자가 따로 따로 살고 있다가, 하나님께 명령을 받아서 세상 속에서 선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특별히 선교라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셔서 그런 사람들끼리 세상에 모여서 하면 되는 겁니다. 교회는 선교활동을 조장하고 권장하고 이끌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한 인간이 묶이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서 흩어 보내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끼리 교회나 예배당이라는 모임 바깥으로 나가서 선교회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조화와 균형과 일체를 이루는 것이지, 인간들이 갖고 있는 관심사에 의해서 하나로 뭉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회장을 자리에 앉혔는데 이 사람은 선교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1남 선교회, 제2남 선교회라고 해서 선교회장을 뽑았는데 선교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거예요. 선교회는 만들어 놨는데 자기들끼리 놀아요. 그리고 해외선교사 보내놓고는 돈 얼마 보내면 다인 줄로 아는 거예요.
주님께서 선교하기 전 명령이 무엇입니까?
행1: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위로부터 성령이 오신 것이 오순절 사건이고, 그 오순절 사건에서 언어의 장벽이 극복되지 않습니까? 바벨탑 사건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사건이에요. 대칭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언어가 극복되는 그 현장에서 성령님은 한 성령님이지만 불로 표현되어진 그 성령님이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임하셨다는 겁니다. 개별적으로 임하신 성령에 의해서 움직인 결과가 하나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지, 인간끼리 뭉쳤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구분을 명확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에서 교인들의 마음이 이 세상의 무언가에 붙어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십자가를 생활화해서 잘라내야 하고, 교회행사나 예배당 건축에 붙어있는 마음도 잘라내야 합니다. 그러자니 먼저 목사님의 마음에 붙어있는 것을 잘라내야 하는데, 목사님 마음에 예배당 건축이 살아있고, 예배당 건축과 괄호로 묶여버렸으니까 교회가 바벨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교회가 하는 일이 다 바벨탑 쌓기가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거듭거듭 말씀드리지만, 몇 백 억짜리 예배당이 절대로 필요하지 않아요.
있는 예배당을 허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바벨탑을 쌓은 거예요.
인간의 힘이 모아져서 교인이 5만 명, 10만 명되니 어마어마하잖아요.
한 사람이 만 원씩만 헌금해도 그 돈이 얼마입니까? 뭉치면 강력해지죠. 이게 매력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도, 인간들끼리 뭉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중지(衆智)를 모아서, 대중의 힘, 군중의 힘, 민중의 힘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죠.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망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바벨이 아니에요. 절대로 교회가 바벨의 흉내를 내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고 당회고 지도자들이 먼저 각자가 (0,1)이라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어내야 해요. 그리고 모든 교인들이 (0,1)이 되게 해야 해요. 그러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0,1)으로 묶여있는 상태에서 자기 주체성이 죽었기 때문에, 각자에게서 하나님의 주체성이 나타나면서 질서와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모든 단원들이 각자가 지휘자에게 집중할 때에 오케스트라 50명 단원의 전체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 지점이 넘어가버리는 이유가 뭡니까?
목사님이고 당회고 지도자들의 마음이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일들에 붙어버릴 때에 자꾸 헌금을 강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일을 하니까. 헌금 내라는 소리를 차마 못하는 조금 양심적인 목사님도 날마다 마음속의 관심은 헌금이 얼마나 늘었는가를 보게 되는 거예요.
바벨과 교회는 차이가 있어야 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뭉치는 곳이 아니에요. 모이는 곳은 맞지만 뭉치는 곳은 아닙니다.
교회의 모임은 각자가 독립적인 개체로 설 수 있게 하나님과 뭉치도록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바벨은 인간들이 이 땅에서 마음이 붙어있는 대상이 공통적이기 때문에, 공동의 관심사로 인간끼리 밀가루 반죽 뭉치듯이 뭉치는 곳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바벨과 교회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죽으나 사나 십자가만 붙들어야 됩니다. 십자가 붙잡고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서 내 주체성이 죽으면 만사가 조화와 균형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내 가정이든 교회든 모든 것이 다…
그리고 뭘 이루어야겠다는 이런 생각이 없어도 필요하면 저절로 모이게 되고, 각자가 뭉치려고 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하나님과만 뭉쳐있으면 그 방향으로 가게 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모여서 가게 될 것입니다.
요21:21-2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요한과 베드로가 같이 다니면서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도 고치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같이 얻어맞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뭉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각자가 하나님과 뭉친 것이고, 하나님과 뭉쳤더니 하나님께서 그 둘을 짝을 지어서 다니게 하신 것이죠.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둘이서 사이가 좋아요? 반드시 깨질 거예요. 제가 예언할 수 있습니다. 부부끼리 좋으면 원수가 될 날이 올 거예요. 그러나 부부 각자가 하나님과 뭉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부부를 같이 살게 하시는 한에는 그 부부의 사랑을 깰 수가 없는 거예요.
인간들끼리는 뭉쳐도 죽고 흩어져도 죽습니다.
하나님과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하나님과 뭉치면 나를 죽일 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뭉친 자들끼리 만날 때에 참 기쁨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뭉친 자가 하나님과 뭉치지 않은 자와 만날 때에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사람들 하나님과 뭉친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고, 하나님과 뭉치도록 사람을 이끄는 것이 교회이지, 인간의 힘을 뭉쳐서 바벨탑을 쌓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교회가 바벨의 현장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과의 뭉침을 위하여 죽으나 사나, 자나 깨나, 길을 가든지 앉아있을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식당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주님의 십자가를 생활화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