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노래」
낮잠을 못자서 인지 초저녁부터 잠이 왔다. 작은 방에 가서 누워 있자니 늘 그렇듯이 어머니 생각이 났다. 며칠 전에는 꿈속에서 우리 가곡 「고향의 노래」를 들었다. 나는 가끔 그렇게 꿈에서도 가곡을 듣는다. 테너 엄정행의 그 청아하고 가을하늘처럼 높은 목소리가 「고향의 노래」를 부를 때 나는 꿈속에서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랬다. 내가 늘 꿈꾸던 그대로 내 기억 속에서의 고향은 그랬다. 봄이면 푸른 보리밭, 무명저고리에 무명치마를 입으시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 그 이마에 늘 맺혀 있던 굵은 땀방울. 보리밭 이랑마다 콩, 열무, 수수가 자라고, 종달새, 뻐꾹새, 때까치 소리가 들리던 봄. 집 뒤 언덕에는 상수리나무가 있고, 그 나무 아래서 말똥구리를 잡고 놀면서 신작로를 보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기억. 국민학교 교정에 가득하던 아카시아 꽃, 배가 고프면 그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기억. 낮은 담장위의 호박넝쿨, 텃밭에서 자라던 토마토, 가지, 아욱, 상추 등 채소들.
그리고 그 아득한 봄날 동네어귀를 떠나던 아버지의 꽃상여. 뽕나무배기밭 한쪽에 풀이 무성하던 아버지의 무덤과 그 옆에 그린 듯이 앉아 말없이 담배를 피워 무시던 아, 어머니.
여름이면 고구마, 감자, 보리밥,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고 근처 낮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던 기억. 작은 개울가로 개구리, 미꾸라지, 붕어를 잡으러 가고, 보리를 베거나 호밀을 베던 어머니를 돕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밤마다 청량하게 울리던 어머니의 시보리틀 휘감는 소리. 바늘이 빠지면 나를 부르시던 어머니. 그러면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하여 바늘을 고정시켜 드렸던 나. 그 어머니 옆에서 끝도 없이 옛날 노래를 불러 드리면 아 참 잘한다 하시며 좋아하시던 어머니.
가을이면 고구마를 캐서 방안 짚둥우리에 저장하고, 벼, 들깨, 콩, 수수를 수확하느라고 늘 분주하시던 어머니. 닭과 돼지를 키우고 보리밥과 수제비를 자주해주시면서도 자식들 배를 곯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어머니. 그러나 늘 배고프던 기억. 학교에서 나눠주던 옥수수빵, 보리빵, 가루우유의 그 잊을 수 없는 맛. 파리나 쥐를 잡아 그 꼬리를 성냥갑 속에 넣어 학교로 가져가고, 풀을 베어 등에 지고 가던 일. 선생님들이 회충약을 나눠주고, 웃옷을 벗긴 다음 머리부터 하얀 가루약을 뿌려주던 기억들.
낙엽이 지면 겨우살이 준비를 하고, 치맛자락에 찬바람이 스밀 때면 그 멀어지던 하늘가에 줄지어가던 기러기떼... 그러나 그 써늘한 날에도 어머니 하고 달려가면 오, 내 새끼! 하면서 두 팔을 벌려 언제나 따뜻하게 가슴으로 품어주시던 어머니.
겨울에는 폐허가 된 공장의 창문틀에 있던 레일을 뜯어다 썰매를 만들고, 밑에 쇠구슬을 박은 팽이도 만들고, 탱자나무로 새총을 만들던 기억. 얼어붙은 동네 길과 논에서 썰매를 타고, 온 마을을 쏘다니며 연을 날리고, 밤이면 불깡통놀이를 하던 기억. 명절날이면 그래도 기름 냄새가 풍기던 부엌. 시루떡을 앉힌 시루에 붙은 시루번을 떼어주시던 어머니. 식혜와 팥죽, 백설기 등 없는 살림에도 자식들 먹이느라 늘 부지런하셨던 어머니. 추수가 끝난 빈 들녘에서 이삭을 주우시던 어머니. 그럼에도 이웃집 골방에서 노란 콩고물에 묻힌 떡이 먹고 싶어 부러워하던 기억들.
그런 한겨울에도 제비새끼들처럼 아랫목을 파고들면 부엌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도마를 두들기는 소리, 솥뚜껑을 여닫는 소리. 이윽고 풍겨오던 구수한 보리밥 냄새, 된장국 냄새. 그래도 이불 속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서 꼼지락거리며 밖을 내다보면 장독대에 소복하게 쌓이던 함박눈, 함박눈. 그 추운 겨울에도 찬물에 빨래를 담그시며 6남매 입히고 거둬먹이시느라고 한시도 쉬일 날이 없으셨던 아, 불쌍하고 불쌍한 나의 어머니.
그래서 나는 고향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떠오르고, 어머니가 떠오르면 고향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우리 가곡 「고향의 노래」를 들으며 울곤 한다. 아, 누가 지었기에 이리도 슬픈 곡조인가.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김재호시, 이수인곡)
그렇다. 나는 봄이 오면 가지마다 열리는 꽃들의 흥겨운 잔치를 보고 싶고, 가을이면 국화꽃도 져버린 뜨락에 하얗게 내린 무서리와 밤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싶다. 겨울이면 한적한 들녘에 서서 눈이 곱게 내려쌓인 낮은 담장너머 소박하게 깜박거릴 꽃등불이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고향은 계절에 상관없이 늘 그립지만 특히 늦가을에 더 그리운 것 같다. 찬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저녁 조그만 창을 열면 달도 뜨고 별도 뜨는... 그래서 서리가 내리는 들녘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들판. 그래도 꽃등불이 타오르던 그 작은 초가집에는 나에게도 부모형제가 있었다.
아마도 11월초 순쯤이나 되었을 게다. 어머니는 벼를 다 베고 난 들판으로 벼이삭을 주우러 다니셨다. 서리가 내린 들판은 그래서 늘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 그러나 하루 종일 들판을 쏘다니며 놀다가 콧물을 줄줄 흘리며 손등은 까맣게 때가 낀 채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던 초가집과 그 싸립문 밖에서 나를 반겨주시던 어머니. 그럴 때 어머니는 “추운데 어서 들어가서 밥 먹자” 하시며 아마도 어린 나를 치마에 폭 감싸고 안아 주셨을 게다.
그러나 그 흙냄새 풍기는 어머니의 그 무명치마는 사각거리며 차가웠다. 하지만, 하지만 금세 어머니의 체온으로 내 얼어붙은 귀는 따뜻해졌을 게다. 털 달린 모피 옷이 아니었을지라도, 결 고운 모직 옷이 아니었을지라도 나에게 어머니의 치마는 한없이 따뜻했을 게다.
내 기억속의 고향은 늘 그랬다. 화가의 화폭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좋아하는 그 「고향의 봄」 노래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내 기억속의 고향은 현실속의 내 고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저 「고향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서리 내린 들녘, 그 한적한 빈들에 서보면 어김없이 그곳에는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시고, 어린 나를 감싸주시던 그 무명치마가 있는 것이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어둠이 내리면 초라한 동네에는 하나둘 등잔불이 켜졌을 게다. 멀리서보면 그 흐릿한 등잔불은 어둑어둑한 동네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섬세하고 가난한 등불이었을 게다. 시인(詩人)은 거기에다 ‘꽃등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 시인이 아니고 누가 꽃등불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초가집 작은 마을에 반짝이던 불빛을 ‘꽃등불’이라고 표현한 저 시인의 가슴을 어루만져보고 싶다. 그도 나와 같을까, 나처럼 고향이 그리웠을까. 그런 마을에, 또 그런 조그맣고 가난한 마을에 눈이 내리면, 함박눈이 소복이 내려면 또 어떠한가. 이 노래의 시가 또 그렇다.
달 가고 해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김재호시, 이수인곡)
그랬을 것이다. 봄이 오면 동네마다 마을마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그러다가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오면 낮은 담장 위로 함박눈이 소리 없이 쌓일 것이다. 아, 그렇게 시골집 낮은 담장 위로 내리는 함박눈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러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노라면 고향집 싸리울에 내리던 함박눈이 떠오를 수밖에...
지금 내 고향에 가면 아마도 내가 상상하던 그런 시골마을은 흔적도 없을 것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고향은 그래서 내 가슴속에만 살아 있는 것이다. 고향을 잃고 졸지에 서울로 오신 어머니는 고향에서의 버릇대로 광명시 철산리의, 벼를 다 베고 난 들판에서 벼이삭을 주우러 다니셨다. 그 다음에는 남들이 추수를 하고 난 배추밭에서 배춧잎을 줍고, 무밭에서는 동강난 무를 줍곤 하셨다.
그러나 그 시절 어머니께서 배춧잎을 주우시던 철산리 들판은 이제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어머니가 시린 발을 디디며 헤매고 다니셨을 그 논자락 언저리가 어디쯤인지 나는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니가 배춧잎을 주우시던 그 철산리 들판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늘 「고향의 노래」를 들으면 눈시울이 뜨겁다. 내가 어렸을 적 나를 치마폭으로 감싸주시던 어머니가 그립고, 서리 내린 빈들에서 이삭을 주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나는 꿈속에서도 엉엉 울 수밖에 없다. 너무나 그리워서, 어머니가 불쌍해서, 나는 한없이 울었다. 너무 가슴이 격해서 나는 울다가 깼다. 그러나 테너 엄정행의 맑은 목소리는 잠이 깨서도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그러면 거기 늘 나의 불쌍한 어머니가 서 계셨다.
그리하여 나는 늘 그 서리 내린 들판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이제는 내 가슴 속에만 있는 사라진 고향에서라도, 나는 겨울이면 하얗게 서리 내린 그 들녘에 서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추수가 끝난 들에서 이삭을 주우시던 내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만나면 말하리라. 보고 싶었다고. 그리웠노라고. 그러면서 그 겨울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내 품 속에 넣고 따뜻하게 녹여드리고 싶다. 그 손을 붙잡으면 놓지 않으리라. 절대 놓지 않으리라. 꿈속에서라도 나는 놓지 않으리라.
고향,
고향을 생각하면
그 생각의 끝에는 늘 눈물이 서린다.
(2019. 9. 14.)
https://youtu.be/yaJmUlygkkw?si=n9dMip_bbxTmXxla
첫댓글
네...
작가님의 음악의 역사요
인생의 역사이기도 하지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