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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얌베(cayambe·5,790m)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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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었다. 비행시간만큼 지겨운 공항대기시간까지 그렇게 우리는 꼬박 3일 만에 에콰도르에 도착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하니 에콰도르 한글학교 장운석 교장 선생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숙소로 이동하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과 이국적인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 코토팍시
코토팍시에 도착한 날, 그곳은 바람이 매우 거세고 불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코토팍시 오세 리바스(Hose Rivas) 산장 근처에서 캠핑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바람 때문에 텐트를 칠 수 없었다. 그래서 해발 3,800m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막영을 하기로 했다. 캠핑장에 텐트를 친 뒤 산장으로 이동했다.
캠핑장에서 산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모래바람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4,800m 첫 경험에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고소가 오면 술 취했을 때랑 비슷하다고 해서 그냥 알딸딸한 느낌을 상상했었다. 근데 술 취했을 때가 아니라 막걸리 한 병 마시고 다음날 일어났을 때 기분이랑 똑같았다. 머리가 아프고 몸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날을 위해 우리는 바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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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침보라소(chiborazo·6,310m) 카렐 산장 뒤에 있는 메모리얼들. / 코토팍시(Cotopaxi·5,897m) 등반을 위해 임시로 빌린 트럭. 운행 중 흙먼지로 인해 엄청 고생했다.
- 다음날 우리 계획은 산장 근처에서 설상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공원 관리자가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가이드 없이는 크램폰과 피켈을 가지고 산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정상을 가지 않고 훈련만 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언쟁하다가 결국 크램폰과 피켈을 놓고 산장으로 향했다.
산장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빙하가 나왔다. 빙하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의 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마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상상 속의 빙하처럼 하얗고 깨끗하지는 않았다. 그곳에 도착하니 대원들의 몸이 고산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명균이는 몸을 가누기 버거울 정도로 힘들어 했고, 은석이랑 창헌이도 두통이 심해 보였다.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명균이랑 창헌이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텐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항상 식사를 할 때마다 두 그릇씩 싹싹 비우는 명균이었는데, 고산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우리 팀은 출발 전 발대식 때 강남스타일에 맞춰 공연을 했다. 여자대원 4명과 파트너가 된 남자대원 4명을 제외하고, 짝 없이 공연을 한 남자대원 3명을 우리가 홀아비 팀이라고 놀렸었다. 그런데 고소가 온 3명이 우연찮게 모두 홀아비팀이어서 ‘홀아비의 저주’가 아닌가 하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저주가 풀렸는지 다음날 은석이는 체력이 돌아왔다.
결국 대장님은 다음날 명균이와 창헌이를 캠핑장에 놔두고 산장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계획대로라면 내일 모두 다시 산장에 짐을 들고 올라가서 낮에는 설상훈련을 하고 그곳에서 잠을 자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균이와 창헌이는 무리해서 산장에서 자면 몸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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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침보라소 훈련. 코토팍시에서 빙하 훈련을 하기로 했으나 공원 측의 불허로 침보라소의 맨땅에서 크램폰 훈련을 했다. / 침보라소를 오르기 전 기념 사진.
- 코토팍시 3일째 날 오전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 시간에 맞춰 준비를 마쳤다.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설상훈련을 위해 고용한 가이드와 우리를 운반해 줄 트럭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오전 10시에 가이드 라울이 도착했다. 작은 체구에 다부진 몸을 가진 라울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라울에 이어서 공원 관리자가 도착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듯 보였다. 그는 밤사이 정상에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크램폰과 피켈을 산장에 가지고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대장님이 훈련만 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공원 관리자는 소용이 없었다. 자는 동안 장비를 산장이 맡기겠다고 해도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라울이 관리자와 같이 공원사무소에 가서 허락을 받고 온다고 떠난 후 1시간 만에 돌아왔다. 그렇게 공원사무소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결국은 크램폰과 피켈을 사용하고 주차장으로 반납한 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서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렇게 실랑이를 계속하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바람에 오늘은 훈련을 포기했다. 대신 다음날 아침에 장비를 가져다주면 하루 종일 설상훈련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산장으로 출발이다. 이미 시간이 오후 1시 30분이나 되었다.
출발 후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차량 운전기사가 돈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내일 장비를 가져다주는 비용까지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입산료 20달러도 더 달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원들은 코토팍시에 대한 정이 떨어졌다. 눈을 밟아보기도 전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렇게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고도 4,800m의 산장은 쉽게 볼 만한 곳이 아니었다. 종은이와 현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대원들이 다음날 아침에 두통을 호소했다. 나도 약을 먹었는데 계속 머리가 어지러웠다. 심지어 날씨도 좋지 않았다. 눈보라가 밤새 몰아쳤다. 종은이와 현우가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장비를 받아왔는데 돌아왔을 때 둘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 고생을 했지만 날씨 때문에 훈련이 무산됐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갔다.
설상훈련을 목표로 코토팍시에 왔는데 아무것도 연습하지 못하고 우리는 침보라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코토팍시에서는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침보라소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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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얌베 정상 부근의 설경.
- 달과 가장 가까운 산 침보라소
우리가 머문 카렐산장의 고도는 4,800m이었다. 낮에는 많은 손님이 오갔는데 밤에는 관리자 1명과 우리만 남았다. 마치 이 큰 산장을 전세 낸 것처럼 모든 게 우리 것이었다. 대장님이 숨은 요리 실력을 발휘해 우리 모두 포식했다. 그날 소화제를 필요로 하는 대원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다음날 윔퍼산장(5,050m)까지 올라 설상훈련을 했다. 처음으로 크램폰을 신어 보고 피켈도 사용했다. 설선까지는 거리가 좀 멀어서 모래에서 연습했다. 모래가 화산재라 눈이랑 느낌이 비슷했다. 코토팍시보다 더 높은 데 올랐기 때문인지, 까렐산장으로 내려와서 힘들어하는 대원들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고소적응이 덜 된 상태라 아픈 대원이 4명이나 되었다. 대장님은 아픈 대원들은 내일 마을로 하산해 이틀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산장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그날 밤 우리는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지금 이 순간 산장의 모닥불에 감사하고,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라던 대장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상태가 안 좋아진 대원들이 더 늘었다. 갑작스럽게 대장님께서는 대원 전부 하산하라고 결정하셨다. 속으로는 너무 좋았다. 드디어 머리를 감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리오밤바에서 이틀 동안 체력을 끌어올린 후 다시 산장으로 돌아왔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우리는 윔퍼산장으로 올라와서 저녁 8시까지 잠을 청했다. 9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10시에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 전에 위험요소가 있을 때에는 바로 하산한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바람 때문에 낙석이 조금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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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새 불어댄 바람으로 모두 얼음 옷을 입어야 했다.
- 모래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나는 다행히 고글을 쓰고 있어서 모래바람에도 눈을 뜰 수 있었지만 다른 대원들은 눈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어디선가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지혜가 무릎에 낙석을 맞은 것이었다. 올라갈수록 낙석이 더 많이 떨어졌다. 큰 돌 밑에서 피해 있는데 내 옆으로 주먹만 한 돌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장난이 아니란 게 느껴졌다. 또다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지혜가 머리에 큰 돌을 맞은 듯했다. 가이드는 바로 하산을 결정했다.
정말 너무 아쉬웠다. 우리가 정상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침보라소 정상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날씨 때문에 못 갈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산장에서 대장님과 가이드가 한참동안 회의했다. 내일 다시 침보라소를 공격할 것인지, 다른 루트로 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는 낙석의 위험이 없는 카얌베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카얌베산은 침보라소, 코토팍시에 이어 에콰도르에서 세 번째로 높은 설산이다.
설국열차 같았던 카얌베
우리는 7시간 정도를 달려 카얌베에 도착했다. 산장까지 걸어가는데 이미 눈이 쌓여 있는 곳도 있었다. 마음속에 있던 침보라소를 다 비우기도 전에 우리는 카얌베에 오르고 있었다. 12시가 좀 넘어서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눈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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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얌베 정상 부근에서 탈진으로 괴로워하는 대원.
- 나의 가이드는 라울이었다. 나와 라울, 춘상이가 한 팀이 되어 올라갔다. 안자일렌을 하고 출발하니 갑자기 경사가 심해져서 계속 피켈을 휘둘러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밑으로 확 끌렸다. 춘상이가 미끄러진 것이었다. 라울이 우리를 지탱해 줄 줄 알았는데 라울까지 같이 밑으로 떨어졌다. 30m 정도 미끄러졌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떨어지면서 춘상이 이름을 얼마나 외쳤는지 모르겠다. 경사가 끝난 후 계속해서 완만한 곳으로 올라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되도록 숨을 많이 쉬도록 노력했다. 한참을 올라간 것 같은데 겨우 1시간이 지났다.
내 시계는 이미 얼어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추위에 먹고 싶은 생각도 마시고 싶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고글에는 계속 서리가 껴서 시야도 흐릿했다. 올라갈수록 더욱 숨이 찼다. 게다가 가이드는 “이 속도로 가면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며 쉬지 못하게 했다. 추위와 힘든 산행, 가쁜 숨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로프는 계속 발에 엉키고 조금 쉬려고 하면 라울이 로프를 잡아당겼다. 짜증이 극에 달해 나도 모르게 “더 못 가!” 하며 소리를 질렀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해가 밝아오니 조금 힘이 나는 듯했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힘내자! 속으로 천 번도 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라울이 세 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정말 다 관두고 내려가고 싶었다. 나는 내가 정상에 절대 못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한 걸음만 걸어도 숨이 가빠오고 힘들었다. 졸음도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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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 인증샷. 모두 얼음갑옷을 둘렀다.
-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건지 아니면 끌려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순간 크레바스에 빠졌다. 발버둥을 칠수록 구멍은 점점 더 커졌다. 겨우 빠져나와 조금 쉬려고 했는데 또다시 라울이 나를 잡아끌었다. 약간 경사진 곳을 한참 올라가고 나니 쉴 수 있게 해줬다.
이제 마지막 난코스만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경사가 심해서 계속 미끄러지면서 올라갔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선 순간 라울이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기적같이 5,790m 카얌베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곳을 내가 오른 것이다. 순간 추위가 밀려오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대원들과 대장님 덕분에 우리가 이 자리에 다 같이 오를 수 있었다. 모두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 평생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꿈만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내가 카얌베 정상에 있었는지도 까마득하다. 이렇게 현실로 돌아와 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