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킹제임스 성경을 오용하는 어느 미주 한인 목사의 거짓말, 짐승은 혼이 없다고(22분 경)
주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 나귀가 발라암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네가 나를 이같이 세 번 때리느냐?” 하더라.
발라암이 나귀에게 말하기를 “이는 네가 나를 조롱하였기 때문이라. 내가 내 손에 칼을 가졌더라면, 지금 내가 너를 죽였으리라.” 하니,
나귀가 발라암에게 말하기를 “나는 네 것이 된 때부터 오늘까지 네가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네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더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없었느니라.” 하더라(민 22:28-30).
짐승이 혼이 있다는 사실은 민수기 22장, 거짓선지자 발라암과 주께서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신 나귀와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사람과 짐승이 대화가 평소 안되는 이유는 짐승의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짐승은 언어가 아니라 울음소리를 내어서 '기쁨', '슬픔', '두려움', '적대감' 등을 표현하는데 인간의 정교한 언어에 비하면 단순한 형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니까 나귀도 말을 할 수 있었고, 중세 마녀들은 자기들이 식물이나 동물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텔레파시) 믿었고 실제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동식물과 대화하기도 한다. 무당들이 하는 것과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텔레파시는 본질적으로 마귀가 준 초능력이다. 마귀는 그런 능력을 어디서 얻었는가? 하나님이 주셨던 능력이었는데 지금은 마귀도 써먹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한 뱀은 문자적 뱀이 아니라 말쑥한 신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빛의 천사에 대한 성경 구절을 볼때 그럴 가능성이 놓은 것이다. 만일 실제 뱀이었다면 평소 말을 할 수 없는 짐승인 뱀이 입을 열어 말할 수 있게 마귀가 능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짐승에게 가능한 이유는 그 안에 혼이 있기 때문이다. 짐승의 혼과 인간의 혼의 본질적 차이는 전자는 죽어도 지옥에 가지 않지만 후자는 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차이가 있길래 짐승의 혼은 사후에 지옥이나 하늘나라로 가는 결론이 없는가?
짐승이 죽어서 혼이 어디론가 가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데, 이때문에 짐승은 영과 몸만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기존 개신교계 대부분 목사들이고 위 목사도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상기 영상 참조). 한글킹제임스 성경만 들고 있지 '하는 짓도 제도 목사', '가르치는 것도 제도 목사', '교회 운영도 제도 목사'라면 문제가 있다. 자신이 제도 교회에서 배운 쓰레기 같은 헛지식을 안 버린 상태에서 럭크만 주석서 좀 넘겨보고 한글킹제임스 성경만 들고 휘두르면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아닌 이렇게 쭉정이가 될 뿐이다.
몸, 혼, 영을 가장 정확히 구분해 놓은 한글킹제임스 성경(영킹도 마찬가지)을 공부해도 그 성경을 최종권위 삼지 않은 위선자는 그렇게 무지할 수 있다. 자기가 읽는 성경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짐승의 혼도 모를 수 있는 것이다. 송요셉 목사라는 이 자칭 목사는 성경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시로 한킹의 번역상 문제(거의 공연한 트집)를 들먹거린다. 이 자의 강해를 듣는 청취자들로 하여금 성경의 권위에 의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은 자아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그는 사람과 대화하는데 대화하려면 짐승 안에 '나'를 자각하는 자아가 있어야만 한다. 발라암과 대화한 나귀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이 나귀는 데카르트보다 현명하고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롭다. 그는 자신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인간에게 항의한다. 그는 칼 마르크스보다 더 진취적이다. 지금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짐승들의 입을 열어 일제히 뭔가 말하게 하신다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거란 얘기다. 세상의 철학자들, 교육자들은 개미나 참새보다 자신이 못한 존재임을 깨닫고 입을 닫게 될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동물도 혼이 있으나 그 혼은 사람의 혼과는 달라서 그 몸이 죽으면 그 혼도 죽는다. 동물의 혼도 그 동물의 몸 안에 있는 존재로서 몸의 형태 그대로이나 동물의 혼은 사람의 혼과는 다르다. 인간의 혼은 죽어서도 불멸이지만 동물의 혼은 몸과 함께 멸절되고 만다. 그것은 짐승의 혼은 그 몸에 달라붙어 있어서 같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혼은 사람이 죽는 즉시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서 사람의 혼은 죽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곳으로 가서 영원히 거해야 하기 때문에 짐승의 혼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불교는 여기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들은 짐승이 사람을 최상위 꼭지점으로 한 윤회의 수레바퀴를 함께 돈다고 믿는다. 그것은 사람이 짐승보다 우월한 존재라 믿는 싯다르타의 교만과 착각에서 나온 망상이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면' 짐승보다 못하다. 짐승의 혼이 어떤 식으로 소멸되는지 정확히 우리는 모르나 최소한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그러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짐승보다 못하다.
둘째 천사가 자기 호리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모든 살아 있는 혼들이 바다에서 죽더라(계 16:3).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 2:7).
따라서 이와 같이 기록되었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느니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고전 15:45).
짐승은 분명히 혼이 있다. 계 16:3의 살아 있는 혼들과 창세기 2:7의 살아 있는 혼은 같은 단어이다. 사람과 짐승이 외견상 코로 호흡하는 생물인 것은 똑같다. 영이 빠져나가면 죽는 것도 똑같다. 짐승의 혼은 짐승의 육체와 함께 존재하다가 죽으면 같이 소멸되고 인간의 혼은 하늘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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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56&wr_id=349
단순한 제 사견이 아니라 성경침례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성경 지식입니다. 박재권 목회자님의 글 참조하시기 바래요
나귀가 왜 비유라고 여기시는지요? 성경에서 비유는 분명히 비유라고 고지하고 나옵니다. 발라암의 나귀는 비유적 요소가 전혀 없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짐승의 혼은 죽을때 몸과 함께 소멸되므로 사람처럼 구원받을 필요는 없다고 본문에 썼습니다. 다시 보시지요.
짐승도 혼이 있었군요 논란이 많은 구절이였음에도 진리의 말씀으로 바로 잡지 못 했는데 오늘 말씀 가운데서 바로 잡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저도 믿습니다 그런데 일반 소통에서는 애로점이 많아서 안다루는것이 많은것 같읍니다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류의 호흡이 그의 손 안에 있느니라(욥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