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마리아의 표정 / 요한복음 20:1-16
사람들이 이상한 일을 목격했을 때 그들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신 후, 사람들의 표정은 세 가지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공포였고, 그 다음은 비통함이었으며, 마지막으로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처형하고 무덤에 안치한 후, 4명씩 4개 조로 나누어 총 16명의 군인이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간절해서, 엄중한 군사 명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라는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처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보고 싶어서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걸어갔습니다. 시신을 오랫동안 모시고자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시신을 보기를 바라며 갔지만, 도착해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옮겨져 있었고 시신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두려움은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만 생각했을 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하자 절망은 깊은 슬픔이 되었고, 동산에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천사의 위로의 말씀도 들리지 않을 만큼 슬펐고, 심지어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뜨거운 사랑에서 나온 감정의 표현이었습니다.
왜 마리아는 이토록 깊은 사랑에 빠졌을까요? 누가복음 8장 2절을 보면, 그녀는 일곱 귀신에 들려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부정하고 불결하여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얻었고, 예수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에 깊이 감동하여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모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불타오르던 중, 천둥보다도 더 강렬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마리아야"라고 부르는, 전에 익히 들어왔던 그 목소리가 마리아의 마음 깊숙이 울렸습니다. 그제야 주님을 알아본 마리아는 "랍비여"라고 불렀습니다. '소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처럼, 주님의 음성이 마리아의 마음에 닿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로마 병사들에 대한 두려움조차 이 불타는 사랑 앞에서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앞으로 공산당은 일제보다도 더 사악한 존재로서 무자비하게 우리를 탄압하려 할 것입니다. 훈춘에 계시던 김 목사님은 공산당의 극심한 고문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으니, 그 절개를 우리는 존경합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마찬가지로 존경합니다. 앞으로 희망이 사라지고 눈물만 흐르는 시기가 올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정** 씨는 천주교로 떠나고 김** 씨는 공산당에 가담했습니다. 믿음 때문에 육체적 안위가 위협받을 때에도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신부가 도쿄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던 것처럼,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바뀌고 일관성 없이 흔들리는 믿음은 마리아에 비추어 볼 때 부끄러운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와 같은 진실된 모습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