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김유신의 아들 원술(元述)
신라에서는 전장에 나아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전장에서 살아오는 자는 부끄러운 일이다. 문무왕 12년에 신라가 고구려의 소유인 대동강유역 각 고을을 빼앗은 일로 인하여 당의 군사로 더불어 대방들에서 싸울 새 신라 편에서는 전술이 주밀치 못하여 마침내 패하고 장군 효천(曉天) 의문(義文) 등이 다 전사하였다.
이때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이 비장(裨將)으로 있어 나아가 죽고자 하니 좌관승담(佐官溗淡)이 가로대 지금 죽기보다 후공(後功)을 기다림이 옳지 않으냐 하니 원술이 듣지 않고 나아가려 하여 가로되 남아가 구차히 살아 무슨 명목으로 아버지를 뵈오리요 하고 말에 오르니 승담이 말고삐를 잡고 막아 멈춤에 죽을 때를 놓치고 싸움을 패한 소문이 경도에 들림에 김유신이 왕께 알리되 원술이 왕의 명을 거역하고 또 욕되게 하였으며 또 가훈을 지키지 않았으니 마땅히 목 베이소서.
왕이 가로되 원술이 비장이거늘 홀로 중형을 줄 수 없다 하고 죄를 사하였더니 원술이 듣고 두려워하여 감히 아버지를 뵈옵지 못하고 시골로 가서 숨어 살다가 그 아버지 죽었다는 수문을 듣고 경도에 올라가 모친을 뵈오려 하니 모친이 가로되 원술이 아버지에게 득죄하였으니 모에게도 득죄함이라.
여자는 삼(三)의 예가 있으니 이제 내가 남편이 죽었으니 마땅히 자식을 좇을지나 그러나 원술이 그 아비에게 죄인이면 모에게도 죄인이다 하고 보지 않으니 원술이 통곡하고 차마 가지 못하여 말하되 내가 농담의 말로 이렇게 되었다 하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있다가 수년 후에 당의 군사가 매소천(賣蘇川) 성을 범하거늘 원술이 가로되 이곳이 나의 죽을 처소라 하고 드디어 싸워 공을 세우고 상까지 받았으나 부모에게 죄인이라 다시 벼슬하지 않고 그냥 종신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