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신학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나 번영을 주신다고 믿는 형태의 신앙이다. 기복신앙과 많은 요소에서 겹친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 참조)
번영신학의 진면목이 무엇이냐에 불구하고 일반적인 시각이 앞에 기술한 바와 같다면 슬픈 일이지만, 번영신학을 이끌어온 측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이다. 이에 대한 반발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한국 기독교에서는 청빈이 미덕이라는 풍조가 더 활발하다. 공공연하게 무소유를 외치는가 하면 교회 지도자들은 돈을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서 기독교 국가가 다른 사회보다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더 부강한 사회를 이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소중함을 비롯한 각종 복지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발전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조심스런 얘기지만) 선교에 충당하는 비용이 큰 나라가 부국이 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 국가 중에서도 가톨릭계보다 개신교계가 1.5배 이상 부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로, 청빈을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뿌리깊은 유교 잔재의 영향임을 알아야 한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청빈을 지고의 선으로 여겼다. 그런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뒤로 축재를 한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우리는 황희 정승 이외에 청빈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유교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도덕을 외치는 한국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단 몇 푼의 이익에 사활을 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생 시절에 공부 한번 한 적이 없고, 직장에서 돈벌어본 적이 없는 지도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부자일 수 있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두번째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때 부요해진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따를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뚜렷한 설명이라는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문제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바꾸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추진하다보면 그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인 것을 추구해야지 현실에 얽매이면 안된다는 의식은 기독교를 불교 교리에 옥죄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