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잡는 특무대장 김창룡 제18회》
18. 남로당 서울시 당 위원장 홍민표의 자수
1950년 3월 김삼룡이 잡히기 전인 1949년 9월에 남로당 서울시 당 위원장 홍민표가 자수하여 전향하는 일이 일어났다.
박헌영은 1949년 4월 북한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김삼룡에게 "남조선에 있는 전 당원을 동원하여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남조선을 해방하고 9월 20일 조선인민공화국 총선을 실시할 것이다. 그 책임을 서울시 당 위원장 홍민표에게 맡기라"는 지령을 내렸다.
김삼룡은 공작금 2천만원과 수류탄 1만발을 홍민표에게 주면서 서울시 당원 6만명을 동원하여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라며 박헌영의 지령을 전달했다.
그러나 수류탄상자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걸려 6천발을 빼앗기고 운반책들이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여 일이 꼬여 폭동을 계획한 날짜가 지연되었다.
D-day 8월 15일을 훨씬 넘기자 북에서 소환장이 날라왔다.
김삼룡은 홍민표에게 소환장을 보여주며 평양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홍민표는 순간적으로 평양으로 가도 죽고 여기서 잡혀도 죽을텐데 평양으로 갈 필요없이 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홍민표는 을지로 4가에서 무교동까지 걸어가며 "나를 잡아가시오"라는 식으로 대로를 활보하다 수사관들에게 잡혀갔다.
홍민표는 수사본부 오제도 검사 앞에서 자기의 신분을 전부 불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어 오제도 검사가 저녁을 먹으로 나가자고 하니,
홍민표는 사먹는 밥은 신물이 날정도로 먹었으니, 집밥이 먹고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검사는 자기집에 전화를 하여 중요한 손님을 모시고 갈테니, 식사준비를 좀하라는 부탁을 했다.
저녁 7시쯤 집에 도착하니, 부인이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밥상을 내려다 보던 홍민표는 실망하며 밥상이 왜 이리 부실하냐고 투덜거렸다. 무안한 오검사가 부인을 불러 중요한 손님이 가신다고 했는데 이게 뭐냐고 달걀 후라이라도 좀 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당신 봉급이 얼만데 그러냐"며 시큰둥 했다.
이 모습을 본 홍민표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장농을 열어보고 신발장을 열어 보니, 장농에는 신사복 한벌이 걸려있었고 신발장에는 워커 한컬레 밖에 없었다.
(당시 오검사는 워커를 신고 다녔다고 함)
홍민표는 검사쯤 되는 사람이 이렇게 청빈하게 사는데 깜짝놀랐다고 한다.
그자리에서 홍민표는 "검사님, 자수하겠습니다."라며 만년필을 꺼내 자술서를 쓰고 수사본부로 돌아가면서 "시경 회의실에서 서울시 당 위원회를 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16명의 서울시 당 간부들을 소집하여 자수하도록 권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16명의 간부들을 불러모은 홍민표는 "여러분 이제 남로당은 끝났습니다.
남한에 보안법이 만들어져 우리가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이가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우리를 희생의 제물로 삼으려는데 거기에 복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수하여 새로 태어납시다." 이렇게 하니 16명 모두가 자술서에 서명하고 전향을 맹세했다.
그리고 이들이 그들의 부하조직들을 설득하고 자수를 권하여 49년 11월 30일까지 33만명이 자수하였다.
특히 암호 해독기술자 도상익이도 자수하고 남로당 특수부대장 조병수까지 자수를 하였으니, 남로당은 자연히 와해되었다.
홍민표가 자수를 결심하고 당원들을 자수시킨 동기는 다른 동기도 있지만, 오제도 검사의 청렴한 공직자 정신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지로 좌익들은 오제도 검사의 약점을 잡아 목을 치려고 명월관의 기생 김소산을 매수하여 합방을 시키고 금품을 안겨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오검사는 오히려 김소산을 간첩혐의로 구속시켜버렸다.
대부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오제도 검사는 반공검사로 김창룡 특무대장과 함께 타공전선의 1인자로 공산당의 마수로부터 나라를 건진 1등공신이다.
김창룡 특무대장도 어느누구로부터도 십원짜리 한장 받은 일 없고 술집에 드나든 흔적도 없이 청빈하게 살다 간 사람이다.
오제도 검사는 1917년 평북 안주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6년 판검사 임용 시험에 합격하여 검사생활을 하였으며 2000년 83세로 운명하였다.
홍민표는 전향 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다 1991년 70세로 운명하였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공직사회가 부패하면 도둑놈들과 간첩들의 놀이터가 된다는 것이다."
근 몇년간 부패한 법관과 검사들 때문에 국가 기강이 대단히 문란해졌다. 이틈을 비집고 간첩과 도둑놈들이 양산되었다. 50억 크럽이니, 법카족이니, 하는 도둑놈들과 청주, 창원, 제주, 전주 등에서 간첩들이 날뛰었다. 나라꼴이 우습게 되어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하는 꼴을 보면 양식있는 국민들은 한숨이 터져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