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안고 숨어 사니 독원과도 흡사한데 / 抱疾深居類獨園
저자의 소음 피하려고 또 거처를 옮겼다오 / 移家且避市聲喧
두통에 눈이 어지러워 시 짓는 붓도 내던진 채 / 頭風翳眼抛詩筆
약 봉지만 신경 쓸 뿐 술잔 잡은 지 오래 됐소 / 藥裹關心廢酒尊
호로병에 해와 달도 감출 줄을 모르는데 / 未識壺中藏日月
가마솥에 하늘과 땅 어떻게 끓일 수 있으리요 / 那容銼內煮乾坤
그저 방장실(方丈室)의 유마힐(維摩詰) 노인처럼 / 應同丈室維摩老
온종일 입을 닫고 말할 줄을 모른다오 / 一默都忘盡日言
버들개지 요란해서 빈 뜰로 피했더니 / 楊花撩亂走空園
여기는 또 개구리들 양부의 합창 소리 / 更着群蛙兩部喧
이곳에서 친한 이는 오직 죽부인(竹夫人) 뿐 / 是處交親惟竹几
감상하며 금술잔을 나눌 이 뉘 있을꼬 / 幾人歡賞共金尊
봄 풍경 서둘러서 자리를 잡자마자 / 春催淑景纔成序
이글거리는 태양빛 벌써 땅에 깔렸어라 / 陽轉朱明已徹坤
칩배와 같은 이 몸으로 자연의 변화를 살피나니 / 身似蟄坏看物變
이 속에 깃든 참뜻 말하기 또한 어려워라 / 此間眞意亦難言
큰 길이 지척인 한적한 뜨락의 문 닫고서 / 通衢咫尺閉閑園
가지 다투다 떨어지는 참새 소리만 듣노매라 / 惟見爭枝墮雀喧
부들 방석 깔고 앉아 가부좌 트는 행운이여 / 幸有蒲團供宴坐
오직 술잔 대신 약을 들며 지내노라 / 唯將藥餌當深尊
영허의 상을 살피려면 신경의 달을 보면 되고 / 盈虛象在辛庚月
동정의 마음가짐 육이의 곤에 두었나니 / 動靜心存六二坤
백년 인생 전도 망상(顚倒妄想) 모두 집어치우고서 / 除却百年顚倒想
고서(古書)에 담긴 은미한 뜻 깨닫기도 하오이다 / 遺編猶可契微言
평소에 나름대로 기원의 삶을 동경하여 / 素志區區慕綺園
소음(騷音)을 피하려고 반세상 산에서 살았다오 / 山棲半世息啾喧
낚싯대 손에 들면 이끼가 부들 방석이요 / 臺宜把釣苔爲席
시내에 잔을 띄웠나니 바윗돌이 술통이라 / 澗合流觴石作尊
봉래(蓬萊)에 들어간들 진 나라 일월을 피하리요 / 蓬島豈逃秦日月
도원은 원래 한 나라 천지 속에 있는 것을 / 桃源自閟漢乾坤
조정의 부름 잘못 받아 쫓아다닌 뒤로부터 / 自從誤逐旌招後
망가진 호시의 생애 어찌 차마 말을 하랴 / 弧矢生涯尙忍言
금강산 한쪽 구석 기원도 찾아보고 / 金剛一面訪祇園
옥류동(玉流洞)의 일만 개 폭포 소리도 들어 보네 / 玉洞中藏萬瀑喧
침 튀기며 청죽의 게송(偈頌) 되뇌이는 스님이요 / 雲衲口翻靑竹偈
자하의 술잔 친히 따라 주는 도사(道士)로세 / 羽人親酌紫霞尊
학 타고 현포에 돌아오니 둥지도 기우뚱 거덜나고 / 鶴歸玄圃巢傾樹
고래등 같은 바다 물결 지축(地軸)을 온통 뒤흔드네 / 鯨蹙滄溟勢撼坤
달팽이 집 한 칸 속에 시달리는 몽상이여 / 蝸室一間勞夢想
기이한 이 자취를 어떻게 속인과 얘기하랴 / 奇蹤難與俗徒言
서악의 사당을 당년에 참알(參謁)하였을 때 / 西岳當年謁寢園
선가의 닭과 개들 구름 속에서 요란했지 / 仙家鷄犬入雲喧
무지개가 깃발이요 바람이 바로 수레 / 霓爲旌旆風爲馬
산이 밥상이요 바다가 술통이었어라 / 山作盤盂海作尊
늙은 바윗돌은 겁을 세 번은 지났을 듯 / 石老定知三過劫
밀려오는 바닷물은 땅을 네 번은 돌았을 듯 / 潮來眞驗四遊坤
백발의 혜생이여 재주가 오히려 누를 끼쳐 / 嵇生白首才爲累
지난날의 손등의 말 부끄럽기만 하였구려 / 空愧孫登曩日言
강변에 일찌감치 일궈 놓은 소평의 밭 / 江邊曾占邵平園
어부와 나무꾼 노랫소리 시끄러운 줄 모르겠소 / 樵唱漁歌未覺喧
노년에 가난을 감수하며 나물로 배를 채우다가 / 老去甘貧惟飽菜
글자 묻는 손님 덕에 간혹 술도 맛본다오 / 客來問字或携尊
외로운 학의 울음소리 잠자다 꿈 깨기 다반사요 / 慣聞孤鶴頻驚夢
꺼진 땅속의 두 마리 거위 쳐다보려니 시름겹소 / 愁見雙鵝遽坼坤
공부의 초당이야 이런 일이 또 있으리까 / 工部草堂寧復有
평생토록 돌아갈 계책 말만 하고 끝났으니 / 邇來歸計但空言
도성 남쪽 베개도 높이 동산을 대하며 사노라니 / 城南高枕對丘園
근년 들어 병도 말끔 번뇌도 조금은 물러갔네 / 淸疾年來慮不喧
세상과는 안 맞으니 포참을 달갑게 여길 밖에 / 與世多乖甘抱槧
사람은 좋아하는지라 술통이 빌까만 걱정일세 / 向人眞性畏空尊
호대처럼 바다로 향하는 강물을 멀리 바라보고 / 遙看縞帶江趨海
요잠처럼 땅을 누르는 산악을 옆으로 쳐다보네 / 側望瑤簪岳鎭坤
아침저녁 안개와 이내 눈을 즐겁게 해 주나니 / 朝暮煙嵐供悅目
이 승경(勝景)을 시에 담아 모두 다 거두리라 / 盡收奇勝與精言
기원보다 더 뛰어난 아름다운 대나무 숲 / 猗猗美竹秀淇園
속진(俗塵)을 벗어난 그대의 맑은 의표(儀表)를 알겠어라 / 知子淸標絶俗喧
시풍(詩風)은 일찍부터 당대(唐代)의 문예를 본받았고 / 詩格早追唐藝苑
필봉은 그야말로 한대(漢代)의 이준과 흡사했지 / 筆鋒眞逼漢彝尊
임금님이 인정하고 은택을 기울여 주셨나니 / 偏蒙睿賞恩傾澤
땅을 뒤흔드는 높은 명성도 합당했네 / 合得高名響振坤
말년의 벼슬살이 뜻에 차지 않거들랑 / 末路宦情從落拓
옛날 책에 담긴 말씀 다시 마주 대해 보소 / 陳篇須對古人言
낙양 동산에 있을 적에 흥망을 이미 점쳤는데 / 廢興曾候洛陽園
오랑캐의 말발굽 소리 도성을 뒤덮게 되었구려 / 城闕新經虜騎喧
승경(勝景)에 비린내 풍기는 게 어디 한 곳뿐이리까 / 幾處腥塵漫勝迹
나도 몇 년 폐병으로 친구와 술도 못하였소 / 連年肺疾負朋尊
몸은 죄에 휘감기고 마음은 마냥 한스러워 / 身纏罪累心茹恨
하늘을 보고 땅을 봄에 부끄러울 뿐이라오 / 仰愧皇穹俯跼坤
벗님에게 좋은 시로 화답하고도 싶소마는 / 欲爲故人賡好句
사람들의 말 들을까 움츠러드니 어찌하오 / 其如柔舌戒多言
등소시로 중장원의 이름이 널리 퍼졌는데 / 燈宵詩播仲長園
포고 뇌문을 시끄럽게 어찌 감히 본받을까 / 布鼓雷門敢效喧
옛날 뒤따라 노닐면서 화죽을 구경할 그 당시에 / 憶昔追遊看花竹
호탕하게 마셔 대며 술동이 비우기 일쑤였지 / 尋常豪飮罄罍尊
이제 와선 인생이 모두 죽음의 구렁에 빠졌는데 / 人生到此俱阽壑
건곤(乾坤)이 다시 정돈될 국운은 언제나 만나 볼까 / 國步何時再整坤
지나간 일 살펴보면 어떻게 눈물을 씻으리요 / 陳迹算來堪雪涕
한 잔 술로 그대와 함께 이야기 한번 하고 싶소 / 一杯聊欲與君言
궤안(几案)에 기댄 재의 마음 칠원과 흡사하니 / 隱几灰心似漆園
귓가의 하늘 피리 소리 어찌 시끄러우리요 / 耳邊天籟不知喧
고아한 글 솜씨는 오흥의 붓이 연상되고 / 高詞尙想吳興筆
호탕한 기상은 북해의 술통을 지향했네 / 豪氣思傾北海尊
빗발이 삼대 같아 밤에 빗물이 줄줄 새고 / 雨脚如麻宵漏屋
음산한 구름은 칠흑 같아 대낮에 천지가 어둑어둑 / 雲陰似墨晝霾坤
도성 남쪽 십리허의 멋진 약속도 어긴 이 몸 / 城南十里佳期阻
어느 때나 함께 앉아 이야기꽃을 피워 볼꼬 / 連榻何時諷道言
올해도 한발 귀신 농사를 망쳐 놓았나니 / 連年旱魃滌田園
귓전엔 배가 고파 슬피 우는 기러기 소리 / 惻耳嗷嗷澤雁喧
부채로 더위 쫓을 생각도 굳이 않는 터에 / 救暍不煩搖大扇
구준의 술을 먹고 배 축일 필요 뭐 있으랴 / 沃腸何必醉衢尊
그저 선정(善政) 베푼 덕에 제때에 비나 내렸으면 / 願聞仁政行時雨
큰 계책도 하늘과 땅 본뜨는 것에 불과할 뿐 / 只在鴻猷效法坤
사립문 닫고 조정의 의논 일체 사절하였나니 / 一閉蓬門朝議絶
나무꾼 얘기는 싫어하는 줄 일찍이 알았음이러라 / 早知廊廟厭蕘言
듣자니 도성 동쪽 급고원이 하나 있어 / 城東聞有給孤園
푸른 산빛 에워싸고 여울이 소리쳐 흐른다고 / 山翠成圍石瀨喧
불탑은 고요하여 책 읽기에 마땅하고 / 佛榻靜須披竹簡
승가(僧家)의 차 맛 또한 바가지 술에 필적하리 / 僧茶味足敵匏尊
산골짜기 숨어 살기 좋은 줄 벌써 알았소만 / 早知巖洞宜肥遯
운뢰가 건곤(乾坤)을 돌리지 못하니 어떡하오 / 爭奈雲雷未轉坤
그 절에다 그대와 함께 모임을 하나 만든 뒤에 / 便合與君同作社
관솔 태우고 토란 구우며 전인(前人)의 말이나 강할꺼나 / 爇松燒芋講前言
헌면이 밭에 물 대는 일 어떻게 잘 하리요 / 軒冕何能博灌園
소년들이 웃든 말든 기심은 상관을 안 했노라 / 機心不管小兒喧
산 동쪽에 띠풀 깎아 오두막 하나 지어 놓고 / 山東舊築誅茅宅
강 위에서 국화꽃 띄운 술잔도 들었노라 / 江上時尋泛菊尊
풍파에 한번 휩쓸려서 있을 곳을 잃은 뒤로 / 一落風波迷失所
피비린내 온 천지를 뒤덮을 줄 알았으리 / 豈知腥血已彌坤
동타 형극이라 도성 문의 탄식이여 / 銅駝荊棘都門嘆
예전에 상소했던 그 내용 아직도 떠오르네 / 倘記前時牘上言
보리의 내 낀 물결 율리의 뜨락 / 甫里煙波栗里園
고요함 찾기보단 시끄러움을 피함이라 / 居非耽靜動非喧
한가한 가운데 고금의 일천 권 책을 읽고 / 閑中今古窮千卷
동이 술 비우면서 성인의 풍류를 만끽하네 / 聖處風流盡一尊
악로는 신선 되어 어느새 하늘로 올라갔고 / 岳老仙驂俄陟昊
오래 전에 땅속에다 정백을 묻은 우리 소옹 / 疎翁精魄久藏坤
백발이 다 된 벼슬살이 끝내 거덜났나니 / 白頭覊宦終乾沒
당년에 내놓은 만언의 뜻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 孤負當年發萬言
명가께서 이제는 농원(農園)을 여셨으니 / 名家已自闢場園
개가 짖든 나귀가 울든 상관할 게 있으리까 / 狗吠驢鳴亦恁喧
자전의 무기고를 다투어 보려 할 것이니 / 紫電競看森武庫
옥배(玉杯)에 황류 따르기를 누군들 아끼려 하리이까 / 黃流誰愛湛瑤尊
강물 복판에 인을 치는 외로운 둥근 달빛이요 / 孤輪月印江心水
해외의 대지를 적셔 주는 한 줄기 물길과 같으신 분 / 一脉波漸海外坤
지금 만약 오 계자가 풍속을 살피러 들른다면 / 尙有觀風吳季子
그대를 대하고 어떻게 쉽사리 말을 하리이까 / 對君那得易爲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