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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 심심한 아이
이호철
수요일 오후다.
“룰루룰루 룰루루…….”
나는 콧노래 부르며 집을 나섰다. 기분이 붕 뜬다. 어디든 마구 내달릴 수 있을 것 같고, 훨훨 날아갈 것 같기도 하다. 쏟아지는 5월의 햇살 아래 푸르른 나뭇잎이 더욱 싱그럽다.
우리 엄마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제대로 학원 다니라고 입에 잔소리를 달고 사는 우리 엄마, 내가 죽는다 해도 물러서지 않을 우리 엄마가 고작 내 일기를 보고 어떻게 이틀이나 놀 시간을 주었을까? 어쨌든, 지금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아아! 어디로 가볼까? 뭐하며 놀까?’
나는 꼬맹이 셋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즐거운 고민을 했다.
‘그래! 당연히 친구들하고 놀아야지.’
가까이에 있는 채민이네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벨을 눌렀다. 아무 대답이 없다.
“똑똑, 똑똑똑.”
다시 노크를 해봐도 소리는 고요한 현관만 울리고 대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 학원 가야지. 기대했던 내가 이상하지.’
다시 주동이네 집으로 갔다. 역시 노크까지 해도 아무 대답이 없다.
“아아!”
큰 기대를 하고 간 건 아닌데도 저절로 절망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제 어디로 가지?’
내 발길이 저절로 다른 친구네 집으로 옮겨진다?
‘나는 오늘 꼭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야 해. 이번에는 제발, 제에발! 근데 집이 어디지? 맞아! 언덕 위에 있는 연립주택이지.’
조금 먼 곳이다.
‘집에 없으면 엄청 짜증나겠지?’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문 앞에 서니 가슴이 두근두근. 큰 숨을 한 번 쉬었다.
“띵똥.”
“…….”
‘학원도 두 개 밖에 안 다닌다고 했으니까 집에 있을 텐데? 아니면 놀러 나갔나?’
다시 큰 숨을 한 번 쉬고 벨을 눌렀다.
“띵똥 띵똥.”
“누구세요?”
‘아, 이제 됐다!’
문이 열린다.
‘헉! 웬 꼬마가?’
어리둥절했다.
“얘, 형 없어?”
“나 형 없는데?”
“너의 형, 찬호 없어?”
‘아, 맞다! 찬호 전학 갔지. 이 바아보.’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그 꼬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들어가라고 하였다.
‘아아, 진짜! 그냥 이렇게 돌아서야 하나?’
비까지 오기 시작한다.
‘비가 와도 괜찮아. 친구와 같이 논다면 집에서 놀아도 돼. 뭐하며 노나? 맞아. 게임 하면서 놀면 돼. 아니면 다른 무슨 놀이든 할 건 많을 거야.’
이제 집 아는 친구 가운데 마지막 친구네 집이다. 벨을 누르니 친구 엄마가 나온다.
“누구니?”
“민규 친구요.”
“놀려고 왔니?”
“네에…….”
“그런데 놀려고 왔으면 잘못 왔구나. 우리 애가 공부를 해야 해서 말이야. 잘 가라.”
아아, 다리가 탁 풀린다.
‘민규 이 짜식! 친구가 와도 내다보지도 않네? 아니, 자기 엄마가 못 내다보도록 했겠지. 나 참! 이놈의 공부! 공부공부……. 이놈의 학원학원…….’
나는 뒤돌아 나와 아파트 앞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가 마음대로 놀라고 시간을 주었는데, 피 같은 놀 시간을 주었는데…….’
나는 5학년. 지금, 하루 평균 세 학원 이상 다니고 있다. 모두 여섯 학원이다. 아니, 따지자면 일곱 학원이다.
학교 마치면 바로 학원 차로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한다. 피곤해서 정말 가기 싫지만, 교문 앞에 학원 차가 입을 벌리고 있다 콱 물고 간다. 피아노는 2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한 달 배우고 한 달 놀고 한 달 배우고 한 달 놀고 해서 제대로 못 배웠다. 4학년 때부터는 열심히 해 5학년인 지금은 웬만한 악보는 보면 거의 칠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피아노 배우기가 싫다. 이름난 피아니스트 될 것도 아닌데 엄마는 무조건 자꾸만 좀 끈기 있게 배우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는 건 고문이다.
며칠 전에도 일이 터졌다. 선생님 앞에서 피아노를 쳐 보이다 조금 더듬거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거다.
“너 이래서 되겠니? 되겠어? 연습도 옳게 안 하고 말이야. 말해봐라…….”
선생님의 꾸중은 끝이 없었다. 더구나 꾸중으로 끝난 게 아니다. 엄마한테도 이 사실을 알린 것이다.
“혁규야, 너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엄마 아빠는 뼈 빠지게 일해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주는데, 응! 도대체 너는…….”
엄마의 꾸중은 더해갔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뭐를 제대로 하는 게 한 가지도 없니,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숨통이 콱 막혔다.
“나는 피아노 배우기 싫단 말이야! 이젠 웬만한 건 다 칠 수 있는데 괜히 돈 낭비해 가며 배울 필요는 없잖아요! 피아니스트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 입에서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러니, 응?” 이런 무서운 말이 또 나올까 봐 꾹 눌렀다.
“열심히 좀 배워라, 배워. 좀 열심히 하자고, 응!”
뒤에는 엄마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뭐를 제대로 하는 게 한 가지도 없니, 없어!” 이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가슴도 쭉쭉 찢어지는 것 같았다.
또 무슨 일이 있어 피아노 학원을 못 가게 되었다. 그러니 토요일 오후 1시부터 보강 받으러 오라는 것이다. 자주 이런 일이 있다. 이때 내가 집 나서기 전에 조금 꾸물대었나?
“혁규야, 너는 굼벵이 삶아 먹은 것도 아니고 좀 빨리빨리 서둘러 못 가냐? 이래저래 시간 다 잡아먹고 언제 피아노 치니. 아휴 속 터져! 좀 빨리 가라!”
나는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학원에 갔다.
그다음 가야 하는 곳은 영어 학원. 오후 4시부터 시작이다. 학교 공부를 6시간 하거나 방과 후 공부를 하면 거의 오후 3시에 마친다. 숨 쉴 틈도 없이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뛰어서 집으로 와야 한다. 영어 가방을 챙겨 가야 하니까. 피아노 학원 때문에 영어 학원은 거의 날마다 늦는 셈이다. ‘내가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사치스런 생각도 할 틈이 없다.
영어 숙제도 장난이 아니다. 월, 수, 금요일에 영어 학원에 가는데 시간이 없는 화, 목요일에는 더욱 바쁘게 영어 숙제를 해야 한다. 화요일에는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쓴다. 영어 공책에 이야기를 쓰고, 한글로 다시 바꿔서 쓴다. 또 책 네 권에 있는 문제를 여섯 장이나 쓰고, 이것을 다 쓰면 읽는다. 시간이 없거나 피곤해서 못 하고 자면 불안하다. 너무 걱정되어서 눈만 깜박거리기도 한다.
‘이러다 내일 늦게 가면 어떡하지?’
막 떨리기도 한다.
이 숙제는 다 하려면 1시간 30분도 더 걸리는데 화요일에 시간이 없으면 수요일 날 급하게 해야 한다. 수요일은 4교시니까 1시쯤에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1시 30분쯤 된다. 여유가 좀 있나? 아니다. 미술 학원을 갔다 와야 한다. 숙제할 시간은 30분쯤밖에 안 된다.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자꾸 가고 있다.
“아아, 안 돼!”
집에 오자마자 영어 가방에서 미친 듯이 책을 꺼내어 폈다. 해석 쓰고, 문제 풀고……. 1분 1초가 아깝다. 숙제도 덜했는데 4시 가까이가 되어버리면 나는 실패했다는 듯 소파에 털썩 앉는다. 하지만 빨리 가야 해서 대충이라도 읽는다. 시간이 다 되어 급히 가방을 쌀 때는 저절로 숨이 헉헉거려진다.
‘아아, 어떡해!’
영어 학원은 조금 멀어서 20분이나 걸린다. 나는 허겁지겁 뛰어간다.
목요일에는 책 세 권에 있는 문제를 일곱 장씩이나 써야 하고, 이것을 모두 쓰면 세 번 읽어야 한다. 이것도 다 하려면 빨라야 1시간 30분은 걸린다. 공부방에 빨리 가야 해서 나는 일단 물부터 마신다. 그리고 손이 아프게 막 써나간다. 한 번씩 손을 조물락조물락 만져주면서…….
‘하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겨우 다 썼다.
‘아아, 늦다! 빨리 가자! 빨리빨리!’
이렇게 해서 간 영어 학원은 5시 30분쯤에 마친다.
‘후우, 이제 집에 간다. 앗! 아니다!’
오늘은 바로 논술 학원에 가는 날이다.
‘집에 와서 모처럼 쉬고 싶었는데, 아고오!’
논술 공부는 6시에 한다. 집에 왔다 다시 학원에 가려면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봐 학원에 바로 간다. 7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집에 왔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씽크빅이라는 학습지를 해야 한다.
“오오, 하느님 맙소사!”
우리 반 혜빈이의 목요일은 이렇다. 학교 공부 6시간 마치면 오후 3시쯤에 바로 방과 후 컴퓨터를 한단다. 오후 4시 30분 가까이에 마치면 집에 와 피아노 연습을 하고, 5시가 되면 바로 피아노 학원에 간단다. 피아노를 마치면 6시가 조금 넘고. 집에 와서 저녁 빨리 먹고 6시 30분에는 영어 원어민 공부하러 가고, 마치면 7시 30분이 된단다.
그렇다고 학원을 다 마친 게 아니라네. 바로 줄넘기 학원에 가야 해서. 이러면 다 끝났나? 마지막 학원이 더 있단다. 바로 숙제 학원. 1시간 정도로는 다 못한단다. 꼼꼼하고 행동이 느려서.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진다네.
“빨리빨리 좀 해라. 어떻게 된 애가 하루 종일 꿈틀거리니? 오빠는 너처럼 안 그랬다. 대충 빨리빨리 하고 치운다.”
“그렇게 느릿느릿 숙제할 시간에 공부하면 올백 맞겠다.”
학교 숙제만 있으면 괜찮게. 영어 학원 숙제, 학습지 교재도 해야 한단다. 그래서 지옥 같은 학원에 목이 조여 죽겠단다.
내가 혜빈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했는데 그게 바로 우리다.
“큭!”
채민이는 눈높이 공부 때문에 자기 엄마하고 대판 싸웠다고 한다. 아침부터 뭔가 안 좋은 징조가 있으려고 그러는지 자기네 집 창 바로 앞 전깃줄에 까마귀까지 모여 까르륵거리며 난리를 치더란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너 채민이구나. 나 누군지 아니?”
“예에? 아, 눈높이 선생님요.”
“그래. 눈높이 선생님인데 내 나중에 테스트하러 갈게.”
눈높이 선생님 전화를 받고 나니 그만 돌 것 같았단다. 온갖 욕이 입에서 막 튀어나오기도 했단다. 엄마가 수작 부린 거라면서.
한참 있으니까 눈높이 선생님이 와서 평가를 받았는데 수학 문제를 보니까 5학년 문제에 6학년 문제도 막 섞여 있더란다. 문제를 보며 쩔쩔매고 있으니까 자기 엄마하고 눈높이 선생님이 서로 소곤소곤하더니 눈높이를 하라고 하더란다. 몇 학년 것을 하나 보니까 세상에! 4학년 것이라. 그래도 이름은 5학년인데 기분이 안 상할 수가 있겠나. 채민이는 그때 그만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고 한다.
“나 눈높이 안 해!”
“왜 안 하는데?”
화가 잔뜩 난 자기 엄마가 때리려고 손을 치켜드는 것을 눈높이 선생님이 말리더란다.
눈높이 선생님이 가고 난 뒤 자기 엄마는 단소로 머리, 다리, 손 같은 데를 마구 때리면서 소리치더란다.
“너 그래 하기 싫나? 하기 싫으면 그만 치워라! 뭐하게 해! 지금 네가 다니는 학원도 다 집어치워라!”
“할게요! 할게요!”
채민이는 덜 맞기 위해 두 손 싹싹 비비며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랬단다.
‘아이고, 엄마 저는 공부 잘 했나? 맞은 김에 그만 치워버릴까? 맞아가면서 뭐하게 해.’
‘그만 집 나갈까? 맞아가며 뭐하게 이 집에서 살아. 이렇게 맞아가며 내가 왜 살아야 해.’
아무리 그래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 제훈이는 또 눈높이를 하나 더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내 뜻이 아니게 가는 학원에를 어떻게 가고 싶겠나. 어떤 날은 특별히 더 가기 싫은 날도 있다. 그래도 그냥 가기 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픈 척이라도 해야지.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엄마 아빠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 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민지] 아침에 엄마가 출근하고 오후 6시까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학원도 아무 때나 가도 되고 텔레비전도 마음껏 볼 수 있어.
하루는 학원가는 시간을 미루면서 자꾸 텔레비전을 봤어. 미루고 미루다 어느새 5시가 된 거야. 학원은 1시간 동안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오기 전에 집에 오지 못할 판이라. 뭐하다 늦었냐고 따지겠지. 그런데 지금 막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를 시작하는 거야.
‘어떡하지? 학원 가기 싫은 데다 만화영화도 시작했는데……. 에이, 아까 만화영화 하기 전에 갔다 올걸. 그럼 만화 볼 수 있는데 말이야.’
우물거리다 그만 5시 20분이 되어버리네. 그렇다고 학원에 빠질 수도 없어. 왜냐하면 학원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해 내가 오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지. 방법은 딱 두 가지. 한 가지는 지금이라도 학원 갔다 오기. 그러면 엄마가 먼저 집에 와서 잔소리는 좀 듣겠지만 내 마음은 편해. 또 다른 한 가지는 어떤 방법을 쓰든 엄마를 속이고 학원에 가지 않기. 이 방법은 거짓말했다는 생각에 마음은 좀 뜨끔거리겠지만 만화는 엄마가 올 때까지 마음껏 볼 수 있어.
나는 2번을 선택했지. 다른 사람들은 1번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만화를 무척 보고 싶었고 학원도 너무 가기 싫었거든. 이렇게 되면 꾀병 부리며 엄마를 속일 수밖에 없지. 나는 숨을 가다듬고 아픈 척하는 목소리를 연습했어.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어도 환자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아픈척하기가 쉽잖아.
그런데 가슴이 두근두근해. 거짓말하려는데 마음이 편하겠어?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수화기를 들고 귀에 갖다 대었어.
“휴우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 쉬고 더는 멈칫거리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고 빠르게 전화번호를 눌렀지. 몇 번이나 숫자를 잘못 눌러서 다시 눌러야 했어. 드디어 신호가 가. 한 5초쯤 지나니까 엄마가 받아. 나는 바로 연습한 대로 아픈 척했어.
“엄마, 나 머리 아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땐 괜찮았는데 한 3시쯤부터 서서히 아파지더니 지금은 너무 아파. 아직 학원도 안 갔는데…….”
“그래? 그럼 오늘 하루 학원 쉬어라.”
엄마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쿨하게 학원을 쉬라는 거야. 나는 끝까지 아픈 척하면서 전화를 끊었어.
“앗싸!”
혹시나 엄마가 알아차릴까 걱정했는데…….
나는 거짓말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어.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 이렇게 돼.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
[태균] 나는 엄마 있는 데서 아프다고 했어. 열이 조금 나게끔 뜨거운 것을 이마에 댄 다음에 엄마한테 말했지.
“엄마, 나 머리 아파.”
“으응? 정말? 어디 보자.”
엄마가 이마를 쓱 만져보는 거야.
“으음, 열은 없는데? 혹시 학원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냐?”
그 말에 뜨끔 안 할 사람 있겠어? 그래도 당당하게 말했지.
“아니야! 진짜 머리 아파.”
“일단 알겠다. 좀 기다려 봐라.”
이 정도 되면 엄마는 거의 넘어왔다고 보면 돼. 그렇다고 여기서 엄마의 의심이 끝난 게 아니야. 다시 한번 학원 가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묻더니 이래.
“그럼, 지금 학원가고 내일부터 가지 마.”
“아니, 오늘은 정말 아파.”
“그래? 그럼 조금만 누워있어라, 병원 갈 준비하고.”
“네에…….”
‘야홋!’
나는 침대에 누워 신나게 휴대폰 가지고 놀았지. 그런데 엄마가 약을 가지고 온 거야. 나는 재빨리 폰을 엎어놓고 누웠다 엄마가 주는 약을 받았어.
‘아후, 아프지도 않은데 이 약을 어떻게 먹나?’
“엄마, 그냥 조금 있으면 나아져. 괜찮아.”
엄마는 그래도 먹으라는 거야.
‘으으, 이 일을 어쩌나!’
어쩌긴 어째. 약을 꿀꺽 삼켰지.
“병원은 나중에 가자.”
엄마는 이렇게 한 마디 툭 던지고는 내 방을 나가.
‘와아! 드디어 오늘은 학원에서 벗어났다. 근데 정말 병원에 가자고 하면 어쩌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조건 한숨 잤어. 학원 진도도 나가야 하니까 걱정이야 되지.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버렸어.
‘난 지금까지 열심히 학원에 다녔으니까 지금은 좀 쉬어도 돼.’
제훈이 있지? 걔는 배 아프다고 속이다 병원까지 갔다니까.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한 줄 알아?
“장염이군요. 약을 좀 드릴게요.”
이러더래. 그래 걔도 약 먹고 침대에 억지로 누워있어야 했지.
영범이는 학원 안 가고 PC방에서 놀다 자기 엄마한테 걸려서 죽도록 맞고 쫓겨나가기까지 했다나.
“키키키…….”
아! 아니다. 이게 웃을 일이 아니지.
[동현] 나는 갑자기 미술 학원에를 가기가 싫은 거야. 이 미술 학원에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가기 싫대. 그 친구는 잔머리를 잘 굴리는데 미술 선생님한테 가더니 이래.
“아, 선생님. 저 오늘 아픈데 좀 쉬면 안 돼요? 동현이도 아프다고 전해달래요.”
그러자 웬일로 선생님은 의심도 안 하고 허락해줘.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그네 타고 정글짐 타며 편하게 막 놀았어. 미술 학원은 2시에 마치는데 나는 딱 시간 맞추어 집에 왔지.
“띵똥.”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니 엄마가 미술 학원에서 뭘 배웠냐고 물어. 나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수채화 배웠다고 거짓말했지. 쉽게 잘 넘어가나 싶었데, 어라! 나중에 내가 학원 땡땡이친 것을 알아버리고 만 거야. 학원 선생님이 엄마한테 슬쩍 알려준 거지.
“너 미술 학원 안 가고 뭐 했어?”
무섭게 물어. 그 무서움에 짓눌려 그만 술술 다 털어놓고 말았어. 그러자 엄마는 파리채 뒷부분으로 내 종아리를 막 때리는 거야. 너희들, 맨살에 한 번 안 맞아봤지?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나와.
그 뒤 잘 다녔는데 또 가기 싫은 거야. 전에처럼 선생님에게 아파서 쉬고 싶다고 꾀를 부리고는 친구들이랑 놀았어. 엄마가 또 안 거야.
“너 왜 미술 학원 안 갔어?”
나는 또 할 수 없이 솔직하게 말해버렸지. 이번에는 엄마가 보통 화난 게 아니야.
“한 대 맞아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종아리 대!”
종아리를 걷고 벌벌 떨며 섰어.
“맞는 대수 헤아려! 알았어?”
“네에…….”
나는 이를 악물고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헤아렸어.
“윽 하나아, 윽 두울…….”
열대쯤 맞았을 때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지.
“엄마,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다음에 또 이런 짓 하면 종아리 100대 맞을 줄 알아라!”
나는 그날 죽는 줄 알았어. 나는 맞아 죽지 않으려면 학원에를 안 갈 수 없는 가련한 신세야.
“아아아!”
나는 이 친구들처럼 엄마 속인 일 없었냐고? 그럴 리가. 이제는 엄마가 내 거짓말에 안 속는 게 문제지. 그런데 며칠 전에는 엄마가 내 일기장을 본 것 같아. 내 일기 뒷부분만 내보이면 이래.
‘이렇게 내 생활은 하루 내내 학교, 학원으로 꽉 차 있어서 놀기는커녕 잠시 숨 쉴 틈도 없다. 학원과 학원 사이의 틈은 몇 분 밖에 안 된다. 학원 시간을 맞추려면 저녁도 허겁지겁 빨리 먹어야 되어서 딸꾹질이 난다. 학원에 늦게 갔다 와서 밤늦게까지 숙제하면 이튿날은 피곤해서 학교나 학원에서 너무 졸리고 머리가 깨어질 것처럼 아플 때도 있다. 스트레스도 엄청 쌓인다. 엄마가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어서 정말 속상하다. 나에게 꼭 필요한 학원만 다니고 필요 없는 학원은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는 많이 뛰어놀아야 한다는데 나는 지옥 같은 학원에 목이 조여서 뛰어놀 수가 없다. 어른들이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이 말에 가슴이 아팠는지 이렇게 물어.
“혁규야, 학원이 그렇게 힘들어?”
“…….”
“엄마가 너를 힘들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아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마음 안 아플 엄마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니. 마음 아파도 너 잘되라고 참는 거야. 그렇지만 학원을 줄일 것인지 말 것인지 하루 이틀쯤 쉬면서 생각해보자꾸나.”
“…….”
이렇게 해서 나에게 이틀 동안 놀 시간을 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같이 놀 친구가 없는 거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는 이렇게 놀아도 저렇게 놀아도 심심하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심심할 때도 다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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