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씀은 성도들이 영적인 중풍병자’이며 ‘죄인’이라는 고백과 세리 레위(마태)처럼 ‘육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적인 사람’이 되려는 행동이 따를 때에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내는 신앙생활을 바꾸라' 본문의 17절과 18절 사이에 기자의 의도된 '누락'은 아마도 자신을 포함한 신앙인의 현주소가 남을 의식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태복음9장13절에 예수께서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라는 말을 가서 배우라”는 말씀을 유추해 볼 때, 또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개의 신자가 의인인 척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마가복음2장18절이하 3장6절까지 내용을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3장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첫째, 우리는 금식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인가? 원하는 은사를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한 결단? 적극적 표현인가? 강짜??? 등등...
이사야58;1-14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 금식의 의미를 살펴보면 1-5까지는 회칠한 율법주의적 금식이며, 6-7절은 복음주의적 금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가 지신의 의를 나타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세상적인 생각, 즉 육욕(정과 욕심, 자랑)을 버리고 오직 영적인 말씀을 구하는 것입니다.
9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빛을 낯과 같이 밝히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빛은 말씀이며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나라이며 성령입니다.
눅22;14-20에도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먹기를 원하나 아직은 때가 아니므로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않으리라” 여기에서 유월절의 참의미는 '넘어가다'라는 뜻으로 육적 상태에서 영적 상태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으리라”는 기록은 ‘입으로 먹는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 예수 자신이 말씀이므로 십자가에 죽고 살 때까지 제자들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8장 참조..
둘째, 창세기부터 기록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야 한다?
비즈니스를 해서는 안 된다?
여하한 오락거리를 해서도 안 된다?
공부해서도 안 된다?
병을 고쳐서도 안 된다?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고 말하지만
오늘날의 현상은 어떠합니까?
자신의 자식이 세상공부 때문에 교회에 안가도 적당히 눈감고, 세상사업 때문에 예배에 참여 않고, 중요한 스포츠경기 때문에 ... , 심지어 교회에서 그들의 입맛대로 스포츠를 실황중계해 가며 애국이라는 너울아래 함께 즐기지는 않습니까? 각종 클럽 만들어서 친목을 도모하는 것에 넘쳐 심지어 계도하고...등등,
어쨌든 교회가 너무 율법적이어서는 안된다며 스스로 합리화 시켜가는 교회의 모습은 제하고라도...
우리는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인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 ?
본문18절이하22절에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주인공과 친구를 비유하시고 23절이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손 마른 병자’를 고치십니다. 여기에서 '손'은 사역을 의미하며 '마른 병자'는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태, 즉 말씀을 받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이며 구원의 말씀을 만날 때 치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이든 아니든 선을 행하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죽이는 것일진데 너희는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도리어 반문하십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생명 살리는 일이라고 한 목소리로 대답하지 않을까요?
요1장4절에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그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가 없이 이 세상에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안식일의 주인이 아닙니까?
성도가 매일매일, 안식을 얻을 수 없다면 세상이 인정해 주는 육신을 쉬게하는 일요일에라도 교회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허나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기회라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생명의 빛은 안식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법을 만드시고 심판하실 권리가 없겠습니까? 그 분을 좇는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심판주의 일에 마음으로 참예한 것일 뿐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그저 '감사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준법자일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