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1 주일 가정예배
순서: 시편찬송 – 본문 – 설교(기도) – 주기도
본문: 로마서 3장 9-18절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고 할 때(롬2:12), 유대인들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맡음으로 인하여 이방인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롬3:1-2) 말씀을 자랑하는 자가 말씀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기 때문에(롬2:23)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몇몇 반론에 대하여 반박하고 난 뒤 이제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없고 모두가 죄인으로 있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 즉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기 전에는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죄책 아래 있다는 것이요,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구약의 몇몇 구절을 통해 증명하는데, 가장 먼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0-12)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편 14편과 53편을 인용한 것으로,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은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구약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일반적인 진술로 의인이 없다고 말하고 난 뒤 그들의 불의의 열매들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가장 먼저 깨닫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저들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저들의 무지에 대하여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10)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무지한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자로 있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자로 있을 정도입니다(마13:14 참조).
다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로마서 1장에서 확인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아닌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 자리에 앉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의지가 발동하는 것입니다.
이어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다 치우쳤다는 것은 본래 가야 할 그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요, 결국 생명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무익하게 되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런 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모든 행실에 있어 악한 것 외에는 내놓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배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게 되고 다스려야 할 피조물을 섬기게 만듭니다. 한 마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이웃 사랑이 실천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로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몸의 지체와 연결시켜 설명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13-15) 바울은 여기서 말하는 것과 관련해 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말의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만큼(약3:2)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은 다 무엇으로 가득한가? 열린 무덤처럼 사람을 집어 삼키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입은 생명을 삼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혀로 속임을 일삼고 입술에 독사의 독이 있고 입으로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는 표현들이 동일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있어 얼마나 적극적인지 바울은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만큼 인간은 이웃 사랑에 있어 전혀 실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모든 길에 대하여 바울은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16-18)고 말합니다. 파멸과 고생의 길을 걸을 뿐 평강의 길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무엇 때문이 일어나는 일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인데, 여기서는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경외의 결핍,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파멸과 고생의 길을 걷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강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 지식이 있어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그의 뜻을 행하는 자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복의 내용입니다(롬3: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