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신혼부부
덴파사르 아트센터에 도착을 하니 우선 공원처럼 생긴 정원 한 가운데로 냇물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트센터는 '따만 웨르디 부다야(Taman Werdi Budaya)'라고 불리기도 한다. 덴파사르 시내에서 사누루 해변 방향 잘란 누사 안다에 위치하고 있는 아트센터는 아담한 정원이 마음에 든다.
아트센터는 전형적인 발리 스타일 건물에는 현대 회화, 가면, 나무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아휴~ 더워!" 아내와 처제는 냇물 옆 정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더워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 호기심이 많은 나와 정 선생님은 덥지만 전시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전시관 입구에는 아담하고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연꽃이 몇 송이 피어 있고, 연못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붉은 꽃이 점점이 피어 있었다. 그 연못가에서는 발리의 신혼부부가 화려한 발리 전통 복장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꼭 왕자와 공주 같군요."
"정말 그러네요."
신랑은 왕자처럼 멋진 복장을 하고, 신부는 공주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상반신을 드러내고, 머리에 예쁜 장식을 하고 아래는 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신랑 신부가 둘 다 맨발이라는 점이다. 이 한쌍의 허니문은 사진사들이 요구하는 대로 한 것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달콤한 장면이다. 우리는 신혼부부에게 손을 흔들며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들도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전시장 안에는 발이의 전통회화, 바롱 댄스 시에 사용하는 가면들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에는 전통회화와 현대회화, 2층에는 주로 조각품과 가면들이 전시되어 있다.
회화 중에는 여인들이 반라의 옷차림으로 물을 깃고, 과일을 사는 시장풍경이 특히 눈에 띠었다. 이 그림들은 발리 전통회화인 바틱이라고 한다. 볼록한 젓 가슴, 남국 특유의 늘씬한 몸매가 숲속의 나무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틱 그림은 남국의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른다. 이 그림 한 점을 방안에 걸어 놓은 다면 사계절 남국의 정서에 젖어들 것만 같았다.
전시장 밖으로 나오니 신혼부부들이 아직도 사진을 찌고 있었다. 붉은 꽃 그늘아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신랑신부가 환상적이다. 자귀나무 꽃처럼 생긴 꽃이 수없이 피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또 다른 한 송이 커다란 꽃송이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랑은 오른손에 단도를 들고, 신부는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도 특이했다.
아트센터에는 대형 공연장이 있는데, 여름에는 서머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한다고 한다. 발리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공연장은 무대 주변에 해자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붉은 꽃이 공연장 주위를 장식하고 있어 더욱 멋들어진 풍경을 연출해주었다. 정자에서 쉬고 있는 아내와 처제를 보고 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여보, 우리도 오늘 허니문 기념사진을 찍어보지 않을래요?"
"너무 더워서 꼼짝을 하기 싫은데요?"
"그래도 저기 저 아름다운 붉은 꽃 그늘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간다면 아마 후회할 텐데."
"꽃이 너무 아름답군요. 덥지만 저 꽃밑에서 추억을 남기지 않는다면 정말 후회가 되겠지요?"
아내는 꽃을 보더니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발리 신혼부부들은 그 장소에서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여행을 했던 시기가 11월이라 우리들의 결혼기념일도 곧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이 11월 6일이니 5일 후면 11월 11일 결혼 기념이다.
"찰라님, 멋진 결혼기념일 사진이 되겠어요!"
정 선생님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다. 발리 신혼부부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똑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자 사진사들과 신혼부부들이 "Congratulation!"하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포즈를 취하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처제와 정 선생님도 그 붉은 꽃 그늘아래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결혼을 한지가 몇 년이나 흘렀는지 아득하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여영 부영하다가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후회 없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해본들 이미 기차는 지나가고 만다.
문화와 전통, 그리고 종교를 고수하는 발리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실종되어가는 우리네 전통과 문화를 생각해 본다. 우리네 전통 혼례도 발리의 전통혼례 못지않게 멋지고 아름답다.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은 말을 타고, 청실, 홍실이 오가는 아름다운 우리의 혼례식은 어디로 갔는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는 해외여행자들의 흥미를 돋구는 볼거리다.
그렇게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통혼례식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청첩장 고지서를 들고, 줄을 서서 혼주의 눈도장을 찍고, 결혼식은 참석도 아니하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또 다른 결혼식장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휴일 우리네 결혼식 문화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전통문화를 찾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숫자보다도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줄만한 하객만 초청하여 끝까지 남아서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주는 그런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덴파사르 채식식당, 러빙 훗
"형부 배가 고파요. 이제 점심을 먹으로 가지요."
"그렇지. 처제가 좋아하는 그 채식 러빙훗으로 가요."
우리는 처제의 특별 부탁으로 운전사 꼬망이 꼼꼼하게 찾아놓은 덴파사르 채식식당 러빙 훗(Loving Hut)으로 향했다. 15년째 순 채식만 하고 있는 처제는 그 동안 제대로 된 채식에 배가 고파 있었다. 처제는 한국에서 출발을 할 때에 인터넷을 뒤져 인도네시아에 있는 '러빙 훗' 식당 체인에 대한 정보를 전부 적어가지고 왔다.
"와! 저기 러빙훗이 보여요!"
"드디어 처제가 좋아하는 러빙훗에 도착했군요."
러빙훗 간판을 발견한 처제는 뛸 듯이 기뻐했다. 러빙훗 체인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베트남 출신 칭하이 무상사를 중심으로 지구를 보호하자는 슬로건 아래 운영하는 러빙훗은 우리나라에도 체인이 있다. 오랜만에 채식식당에 들른 처제는 입이 다물어 질 줄을 몰랐다. 처제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이것저것 야채로 만든 마른 과자 등을 사기도 했다.
"형부 너무 맛있지요?"
"정말 맛있네. 그런데 처제 오늘 과식하는 거 아닌가?"
"벌써 과식을 한 것 같아요."
"여행을 할 땐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두어야 하는 것이 여행의 수칙이기도 하지요. 많이 드세요."
오랜만에 채식으로 배를 채우며 행복해 하는 처제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러빙훗에서 채식을 배불리 먹은 우리는 누사두아해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