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욕을 품지 말라
주님께서 두 번째로 예를 드신 계명은 일곱째 계명이다. 마태복음 5장 27, 28절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사단이 말초신경들을 자극해서 우리를 잘못된 정욕의 방종으로 몰고 갈 때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신앙의 의지력들은 연약해지고 사단이 우리를 쉽게 점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성욕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악한 생각들은 주님께서 분명하게 죄라고 지적하신다.
그래서 불순한 장면들을 상상함으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 악한 생각을 품고 호색적인 표정을 짓는 사람들 갖가지 종류의 죄들이 있다. 그것을 여러 말로 정신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의사들은 정신병의 여러 표현들을 사용한다. 그것은 인간 속에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본성을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사랑의 본성, 다 주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의 본성을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분명히 기억하라, 사랑은 짓밟는 행위가 아니다. 참으로 사랑하면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고 그것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로 사랑하면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육체를 짓밟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다. 부부간에 사는 경우도 그렇다. 정말로 상대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때 부부의 육체적 관계도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동물적인 어떤 정욕에 의해서 그런 부부생활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결국에 잘못하면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부부를 만드시고 서로 사랑하고 자녀를 낳고 사는 그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창 1:28, 31) 식욕과 성욕은 결코 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다. 그 행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시려고 하셨다. 자기를 다 주는 사랑, 마음과 몸을 다 바치는 사랑, 그런 관계로 결혼 관계를 바울이 에베소서 5장 25, 26절에 표현하신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몸도 마음도 다 주심 같이, 생명까지 주심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음욕을 내쫓는 것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음욕을 내쫓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 악한 생각들을 내 쫓는다. 아내가 창녀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된다. 정말 사랑하는 아름다운 보물인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말씀하시기를 결코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표현하셨다.(히 13:4) 심지어는 부부간일지라도 어떤 과도한 행위를 통해서 상대방의 건강과 특별히 정신건강까지를 해칠 수 있는 짓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육체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진정한 사랑을 가질 때만 이러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다. 사랑 없이 한 모든 것이 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음욕을 품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5장 29절 말씀에 계속해서 주님께서 표현하신 말씀은 “네 눈이 범죄케 하면 빼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단호한 예수님의 죄에 대한 의지를 볼 수 있다. 결코 용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을 실제로 눈을 빼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분명히 여기 말씀하신 대로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여기 물론 예수님께서 몸에 대한 언급을 하신다. 지옥은 몸이 가는 장소이다. 여기 분명히 몸이 간다고 말씀하셨다. 단호하게 잘라버리라, 빼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은 생각 하나 때문에, 음욕 때문에 우리 온몸이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음욕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 영적, 정신적 간음이 도덕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모습들 우리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결국은 이 음욕의 노예가 되었을 때는 음욕을 택하고 하나님을 택하지 않는다. 완전히 노예가 되는 것이다. 심히 불쌍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축복과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이 저주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대로 그것들은 잘라버려야 되고 빼버려야 되는 것이라고 하신다. 단호한 결단 없이는 이 음욕의 죄를 끊어버릴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것은 우리를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디모데 전서 4장 1,2절에 말씀하신 대로 혼인을 금하는 것, 음식을 피하는 것은 사단이 가르치는 일이다. 결단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귀신의 가르침을 쫓아서는 안 되지만 또 하나의 귀신의 가르침은 헬라 사람들이 생각했던 육체는 악하고 우리 영혼은 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면서 즐거워했다. 물론 본능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지만 자기 속에 있는 영혼이 이 더러운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그 선한 세계로, 영의 세계로 간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즐겁게 독배를 마신다. 얼마나 모순인가?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귀가 만든 생각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것을 만드시고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창세기 1장 31절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그 심히 좋은 식욕과 성욕에 대한, 그래서 그 사랑의 씨앗으로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 역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결혼하고 또 자녀를 낳고 사랑하도록 하셨다.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사단은 다 더럽고 추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시에 이왕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 육체는 악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 방종해도 된다는 또 하나의 거짓말, 또 하나의 극단의 이야기를 사단이 가르쳐왔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지만 우리 마음이 죄를 품을 때에 육체는 따라 가는 것이다. 육체가 악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우리 속에서 나오는 죄,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죄의 생각들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다.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태복음 15장 19절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그것은 분명히 마음이다. 육체가 아니다. 육체를 학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학대하는 것이다.
이 육체가 학대를 당하면 연약해지고 우리 속에 있는 우리의 의지력은 약해지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기에 어렵게 된다. 육체를 잘 보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보전하는 것과 같다. 다음 시간에 계속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