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라지는 마지막 운명
말라기 3장 16절-4장 6절
심판의 날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날에는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멸망하는 삶과 회복하는 사람이 갈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판결하시기 전에 우리가 선택하는 길입니다. 멸망이 아니라 회복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섬기는 저와 그러지 않는 자를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하십니다. 말일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마땅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두러운 날이 오기 전에 그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명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기억은 실천이라는 결과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악인과 악인의 구분(3:16-18)
이스라엘의 특징은 아무리 잘못을 지적해도 수용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당당했습니다. 무슨 짓이든지 정당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망이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분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분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16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16-18)
이 단락은 3:13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마지막(여섯 번째) 경고로 4:3까지 계속되며, 의인과 악인에 대한 구별(3:13-18), 여호와의 날에 이들에게 임할 구원과 심판(4:1-3)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앞서 3:13-15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며, 악인이 복되다고 주장하는 악인들을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3:16-18에서는 의인들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인들)은 하나님이 악인의 말이나 의인의 말을 분명히 다 들으셨음을 서로 확신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말들을 기념책(출애굽기 32:32)에 기록하여 후에 그를 경외하고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을 신원하실 것이라 말합니다(3:16). 앞서 3:5에서 언급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불시에 속히 오셔서 사람들의 악행을 증언하며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경우는 그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며 아들을 아끼듯 아끼실 것입니다(17). ‘특별한 소유’로 번역된 ‘세굴라’라는 단어는 출애굽 후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중에서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고 선포하실 때 처음으로 등장합니다(출애굽기 19:5). 그런데, 이스라엘을 ‘특별한 소유’ 혹은 ‘그의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조건적인 약속이 아니라, 말씀을 지킬 때 성립되는 조건 약속입니다. ‘보배로운 소유’는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백성’으로서(출애굽기 19:6)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성결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같은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는 ‘이스라엘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해당합니다. 3:17에서도 그의 정한 날(말일)에 특별한 소유가 될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3:16)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이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일치합니다. 또한 혈통상의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열방 중에서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보배로운 소유로 삼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앞서 1:5,11,14에 예고되었듯,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중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제물을 드릴 자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들까지도 마침내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세워 그를 축복하시면서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신 그 약속(창세기 12:3)이 이렇게 성취됩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은 그의 특별한 소유가 될 뿐 아니라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를 섬기지 않는 자가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18).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4:1-3)
두려운 이야기기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공정하고 무자비합니다. 아무리 다수가 악에 치우친다 할지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무리는 반드시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살라져 심판을 받을 때에 그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의 광선으로 온전하게 하실 것이지만, 악인은 불에 타는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온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치유와 회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3)
마지막 경고(3:13-4:3) 중 4:1-3은 의인과 악인에게 여호와의 날 각각 임할 구원과 심판에 집중합니다. 4절의 첫마디인 ‘보라!’가 청중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광로 같이 불타는 여호와의 날(스바냐 1-3장; 요엘 1:15;2:1-3; 시편 50:3)이 다가옴을 예고하십니다. 이날 하나님 앞에서 의 인과 악인에게 합당한 심판이 내려집니다. 이들에 대한 표현은 3:13-18과 마찬가지로 4:1-2에도 다양하게 소개됩니다(교만을 행하는 자,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 먼저 악인들은 지푸라기가 될 것인데, 더는 생명력이 없어 말라 시들어질 것이란 뜻입니다. 더군다나 여호와의 날에 그것이 불살라지므로 뿌리나 가지, 즉 소생하거나 접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남지 않고 다 소멸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은 공의와 치유와 즐거움을 경험할 것이다. 공의의 해가 떠오르면 어둠 속에 숨겨진 불의가 다 드러납니다. 해의 날개에 함께한 치유는 의인에게 생명과 구원, 하나님의 호의가 임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불에 타 소멸된 악인들과 달리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공의와 이 모든 혜택을 입고 송아지처럼 즐거워 될 것입니다(예레미야 50:11). 또한 의인들은 악인들을 심판하는 데 동참할 것입니다. 악인들은 지푸라기처럼 다 소멸되어 의인의 발바닥 밑에서 재로 나뒹굴게 됩니다. 미가에서도 의인을 사자로 비유하여 원수를 멸하는 심판의 도구로 기술하고, 이슬과 비로 표현하여 초보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을 예고합니다(미가 5:7-9), 이제 질의문답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1:2부터 시작하여 4:3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일단락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표현은 말라기를 통해 전달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해줍니다.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많은 군대의 여호와’)란 칭호는 하나님이 온 세상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이자 왕임을 함축합니다. 이 호칭은 포로 귀환 공동체에게 언약의 삶을 살며 종말론적 소망을 가질 것을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권고: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4:4-6)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끝까지 돌아오라고 촉구하십니다. 구약의 마지막 메시지인 말라기 마지막까지도 이스라엘을 향해 돌아오라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스라엘은 은혜로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은 첫 순간을 기억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온 열조들처럼 언약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에 진멸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4-6)
‘내 종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로 시작되는 이 단락은 하나님의 마지막 권고로서 말라기의 마지막이자 열두 권의 소선지서(호세아~말라기) 및 전체 선지서의 마지막 단락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기억하라’는 명령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지력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행동력, 실천을 촉구하는 명령입니다. 잠언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조언, 즉 그의 말을 듣고, 떠나지 말고,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고, 간직하고, 잊지 말라는 말(잠언 1:8;2:1-2;3:1; 4:1-2,10,20;5:1;7:1)은 궁극적으로 ‘행하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가르침을 나와 관계없는 낯선 것으로 여긴다면(호세아 8:12), 기억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기억해서 실행해야 할 구체적 내용은 하나님께서 호렙(시내산)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를 통해 주신 법(율법), 율례와 법도(4)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해 주신 율법은 좁은 의미에서는 십계명(출애굽기 20장)과 그에 부속하는 율례들(출 21-23장)들을 가리킬 수 있고, 넓은 의미에서는 모세오경 전체를 지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나 율례나 법도의 의미나 내용을 따로 나누는 것은 적절치 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언약을 기반으로 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는 지침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날(4:1,5), 즉 여호와의 날이 이를 것을 예고하시며,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분열왕국 시대 아합 왕 때 사역하던 선지자로서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자(열왕기하 2:11)이며, 앞서 3:1에서 길을 준비할 자로 하나님이 보내겠다고 하신 사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1이나 4:5에 예고된 선지자가 세례 요한임을 밝히셨습니다(마태복음 11:10,14). 종말 전에 이 선지자를 보내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시내산에서 백성에게 준 계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내는 선지자를 통해, 이제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언약 관계로 돌아오도록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 방법으로 백성을 부르는데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저주로 그 땅을 치실 것입니다. 여기서 ‘저주’는 ‘진멸’(헤렘)이란 단어다. 호흡이 있는 자를 멸절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때 그 땅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신명기 7:1-2; 20:16-18), 지금은 그 진멸의 저주가 이스라엘에게도 임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의 이방인들이 진멸당한 이유가 죄였듯이, 이스라엘에게 경고된 진멸 또한 죄와 관련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이스라엘이 경각심을 갖게 하여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 바람은 엘리야(세례 요한)가 올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현 포로 귀환 공동체와 그 후에 올 모든 세대에게 기대하시는 바입니다.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서 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가며 그분을 경외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치료의 광선이 주는 회복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기억하는 삶이 된다면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