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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一回 管夷吾智辨俞兒 齊桓公兵定孤竹
제 21회: 관중이 지혜로 유아를 알아보고, 제환공이 고죽국을 평정하다
話說,山戎乃北戎之一種,國於令支,亦曰離支。其西為燕,其東南為齊魯。令支界於三國之間,恃其地險兵強,不臣不貢,屢犯中國。先時曾侵齊界,為鄭公子忽所敗。至是聞齊侯圖伯,遂統戎兵萬騎,侵擾燕國,欲絕其通齊之路。燕莊公抵敵不住,遣人走間道告急於齊。齊桓公問於管仲,管仲對曰:「方今為患,南有楚,北有戎,西有狄。此皆中國之憂,盟主之責也。即戎不病燕,猶思膺之。況燕人被師,又求救乎?」桓公乃率師救燕,師過濟水,魯莊公迎之於魯濟。桓公告以伐戎之事。
한편, 산융(山戎)은 곧 북쪽 오랑캐의 일종인데, 영지(令支) 또는 이지(離支)라는 곳에 나라를 세웠다. 그 서쪽은 연(燕)나라이고, 동쪽과 남쪽은 제나라와 노나라였다. 영지(令支)는 연나라, 제나라, 노나라 세 나라 사이에 있었고, 험한 지세와 강한 병사를 믿고 주나라 천자에게 신하라 칭하지도 않고 조공도 바치지 않으면서 여러 번 중원을 침략했다. 일찍이 제나라 경계를 침입하여 정나라 세자 홀(世子忽)에게 패한 적이 있었다. 제나라의 군주가 패업(覇業)을 도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오랑캐 군주가 마침내 만여 기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로 통하는 길을 끊고자 했다. 연장공(燕莊公)이 산융의 기병을 당해내지 못하고 사람을 사잇길로 보내서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 제환공이 대책을 묻자 관중이 대답하기를, “지금 천하의 걱정거리는 남쪽의 초(楚)와 북쪽의 융(戎) 및 서쪽의 적(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원의 모든 환난에 대한 책임은 맹주에게 있습니다. 산융이 연나라를 침입하지 않았다 해도 오히려 응징해야 하는데, 하물며 연나라가 침입을 받아 구원을 요청하고 있으니 어찌 구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제환공은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출동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제수(濟水)를 건너니, 노장공이 노나라 제수 언덕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제환공은 노장공에게 산융을 정벌하는 일을 설명했다.
魯侯曰:「君剪豺狼,以靖北方,敝邑均受其賜,豈惟燕人?寡人願索敝賦以從。」桓公曰:「北方險遠之地,寡人不敢勞君玉趾。若遂有功,君之靈也。不然,而借兵於君未晚。」魯侯曰:「敬諾。」桓公別了魯侯,望西北進發。卻說,令支子名密盧,蹂躪燕境,已及二月,擄掠子女,不可勝計。聞齊師大至,解圍而去。桓公兵至薊門關,燕莊公出迎,謝齊侯遠救之勞。管仲曰:「山戎得志而去,未經挫折,我兵若退,戎兵必然又來。不如乘此伐之,以除一方之患可也。」桓公曰:「善。」
노장공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승냥이와 이리의 무리를 물리쳐서 북방을 안정시키고자 출병하는데 우리에게도 그 일을 나누어 주셔야지, 어찌 연나라 사람들만 참여하겠습니까? 과인도 기여할 바를 찾아 종군하고 싶습니다.” 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북방은 험하고 먼 땅이라, 과인이 어찌 감히 군주의 귀한 발걸음에 노고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공을 세우게 된다면 군주의 덕분이겠으며, 그렇지 않으면, 군주께 군사를 빌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그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노장공과 작별하고, 서북쪽의 연나라를 바라보며 출발했다. 한편, 영지국의 군주는 이름이 밀로(密盧)인데, 연(燕)나라 경내를 유린한 지 이미 두 달이 넘었다.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약탈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제나라의 대군이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은 밀로는 포위를 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제환공의 군사들이 계문관(薊門關)에 도착하자 연장공이 나와 맞이하여 먼 길에 구원하러 온 노고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렸다. 관중이 말하기를, “산융이 뜻한 바를 이루고 퇴각하여 그들의 군사들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사가 만약 물러난다면 산융의 군사들은 반드시 다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산융을 정벌하여 한 곳의 우환거리를 없애야 합니다.” 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했다.
燕莊公請率本國之兵為前隊。桓公曰:「燕方經兵困,何忍復令衝鋒?君姑將後軍,為寡人聲勢足矣。」燕莊公曰:「此去東八十里,國名無終,雖戎種,不附山戎,可以招致,使為嚮導。」桓公乃大出金帛,遣公孫隰朋召之。無終子即遣大將虎兒斑,率領騎兵二千,前來助戰。桓公復厚賞之,使為前隊。約行將二百里,桓公見山路逼險,問於燕伯。燕伯曰:「此地名葵茲,乃北戎出入之要路也。」桓公與管仲商議,將輜重資糧,分其一半,屯聚於葵茲。令士卒伐木築土為關,留鮑叔牙把守,委以轉運之事。休兵三日,汰下疲病,只用精壯,兼程而進。
연장공이 연나라 본국의 병사를 끌고 선봉이 되기를 청하자, 환공이 말하기를, “연나라는 방금 전까지 산융을 막아내느라 군사들이 지쳤으니 어찌 차마 다시 선봉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잠시 후군이 되어 과인을 위하여 성원하면 족합니다.” 했다. 연장공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동쪽으로 80리쯤 가면 무종(無終)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비록 융족이지만 산융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러 향도를 삼을 수 있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즉시 많은 황금과 비단을 내어 공손 습붕을 보내서 그들을 불렀다. 무종국의 군주는 즉시 대장 호아반(虎兒斑)을 보내 기병 2천 기를 거느리고 제나라 군사를 돕도록 했다. 제환공은 호아반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를 선봉으로 삼았다. 약 2백 리쯤 행군을 했을 때, 제환공은 산길이 점점 험해지는 것을 보고 연장공에게 어디냐고 물으니, 연장공이 말하기를, “이곳은 규자(葵玆)라는 곳인데 북융이 드나드는 요로입니다.” 했다. 제환공이 관중과 상의하여 치중과 군량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규자에다 보관하여 군사들이 지키게 했다. 이어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나무를 베고 흙을 쌓아 관문을 설치하고 포숙아를 머물러 지키게 하고 군량 수송을 맡겼다. 3일 동안 군사들을 쉬게 하여, 피로에 지치고 병이 든 군사들은 거기에 남도록 하고, 정예병을 이끌고 하루에 이틀 길로 빠르게 진격했다.
卻說,令支子密盧聞齊兵來伐,召其將速買計議。速買曰:「彼兵遠來疲困,乘其安營未定,突然沖之,可獲全勝。」密盧與之三千騎。速買傳下號令,四散埋伏於山谷之中,只等齊兵到來行事。虎兒斑前隊先到,速買只引百餘騎迎敵。虎兒斑奮勇,手持長柄鐵瓜鎚,望速買當頭便打。速買大叫:「且慢來!」亦挺大桿刀相迎。略鬥數合,速買詐敗,引入林中,一聲呼哨,山谷皆應,把虎兒斑之兵,截為二段。虎兒斑死戰,馬復被傷,束手待縛。恰遇齊侯大軍已到,王子成父大逞神威,殺散速買之兵,將虎兒斑救出。速買大敗而去。
한편, 영지국의 군주 밀로는 제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장수 속매(速買)를 불러 대책을 상의했다. 속매가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은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영채를 세우기 전에 틈을 타서 갑자기 들이치면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했다. 밀로가 속매에게 기병 3천 기를 주니, 속매가 명령을 전하여 산골 속 사방에 매복하게 하고, 제나라 군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호아반이 선봉을 맡아 먼저 도착하니, 속매가 단지 백여 기로 앞을 가로막았다. 호아반이 용기를 내어 자루가 긴 철과추(鐵瓜錘)로 속매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속매가 크게 고함지르기를, “잠깐 기다려라!” 하며, 역시 자루가 긴 대도를 손에 들고 대항했다. 둘이서 몇 합을 겨루다가 속매가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며 숲속으로 끌어들였다. 속매가 휘파람을 한번 부니 산골에 숨었던 군사들이 모두 응하여 호아반의 군사들을 공격하여 둘로 잘랐다. 호아반이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으나, 말이 부상을 당하여 속수무책으로 포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바로 그때 제환공의 대군이 도착하여, 왕자 성보가 출중한 무예를 크게 떨쳐서 속매의 군사를 죽이고 쫓아서 호아반을 구출했다. 속매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虎兒斑先領戎兵,多有損折,來見桓公,面有愧色。桓公曰:「勝負常事,將軍勿以為意。」乃以名馬賜之。虎兒斑感謝不已。大軍東進三十里,地名伏龍山,桓公和燕莊公結寨於山上。王子成父賓須無立二營於山下。皆以大車聯絡為城,巡警甚嚴。次日,令支子密盧親自帶領速買,引著騎兵萬餘,前來挑戰。一連沖突數次,皆被車城隔住,不能得入。延至午後,管仲在山頭望見戎兵漸漸稀少,皆下馬臥地,口中謾罵。管仲撫虎兒斑之背曰:「將軍今日可雪恥也!」虎兒斑應諾。車城開處,虎兒斑引本國人馬飛奔殺出。
호아반은 거느리고 왔던 본국의 군사들이 많이 꺾여서 부끄러운 기색으로 제환공을 뵈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이기고 지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니, 장군은 괘념하지 마시오.” 하고, 이에 명마를 하사했다. 호아반은 감사해 마지않았다. 대군이 동쪽으로 30리를 진군하여 복룡산(伏龍山)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제환공과 연나라 군주는 산 위에 진영을 세우고, 왕자 성보와 빈수무는 산 밑에 각각 영채를 따로 새우고, 그 앞에는 큰 수레를 모두 연결하여 성을 만들어 경계를 아주 엄하게 했다. 다음 날, 영지의 군주 밀로가 속매를 대동하고 만여 기의 기병을 출병시켜 친히 도전해 왔다. 밀로가 계속해서 제나라 군사의 영채를 공격하게 했지만, 모두 수레로 만든 성에 막혀 영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덧 오후가 되자, 산 정상에서 전세를 살펴보던 관중은 융병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고 모두 말에서 내려서 땅에 누워서는 입으로 욕설을 하는 것을 보았다. 관중이 호아반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장군은 오늘 치욕을 씻으시오.” 하니, 호아반이 응락하고, 수레로 만든 성을 열고 휘하의 기병을 이끌고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隰朋曰:「恐戎兵有計。」管仲曰:「吾已料之矣!」即命王子成父率一軍出左,賓須無率一軍出右,兩路接應,專殺伏兵。原來山戎慣用埋伏之計,見齊兵堅壁不動,乃伏兵於谷中,故意下馬謾罵,以誘齊兵。虎兒斑馬頭到處,戎兵皆棄馬而奔。虎兒斑正欲追趕,聞大寨鳴金,即時勒馬而回。密盧見虎兒斑不來追趕,一聲呼哨,招引谷中人馬,指望悉力來攻。卻被王子成父和賓須無兩路兵到,殺得七零八落,戎兵又大敗而回,乾折了許多馬匹。
습붕이 말하기를, “아마도 융병의 계략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고, 즉시 왕자 성보에게 명하여 일군을 거느리고 좌측에서 나가게 하고, 빈수무에게 다른 일군을 거느리고 우측에서 나가 양 갈래로 접응하여 복병을 무찌르게 했다. 원래 산융은 매복의 계책을 습관적으로 썼다. 제나라 군사들이 수레를 성벽 삼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산융은 계곡에 군사를 숨겨놓고 일부러 말에서 내려 욕설을 퍼부어 제나라 군사를 유인했다. 호아반의 기병이 이르는 곳에 융병은 모두 말을 버리고 달아났다. 호아반이 추격하려고 하다가, 본 진영의 징소리를 듣고 즉시 말고삐를 당겨 돌아왔다. 밀로는 호아반이 추격하지 않는 것을 보고, 휘파람을 불어 계곡에 매복해 있는 군사를 일으켜 있는 힘을 다해 제나라 진영을 향해 공격하도록 했다. 그때 왕자 성보와 빈수무의 양 갈래 군사들이 도착하여 십중 칠팔을 죽이니 융병는 대패하여 돌아가고, 융병들이 버린 많은 말을 얻었다.
速買獻計曰:「齊欲進兵,必由黃臺山谷口而入。吾將木石擂斷,外面多掘坑塹,以重兵守之,雖有百萬之眾,不能飛越也。伏龍山二十餘里皆無水泉,必仰汲於濡水。若將濡流壩斷,彼軍中乏水飲,必亂,亂則必潰。吾因潰而乘之,無有不勝。一面再遣人求救於孤竹國,借兵助戰,此萬全之策也。」密盧大喜,依計而行。卻說,管仲見戎兵退後,一連三日不見動靜,心下懷疑。使諜者探聽。回言:「黃臺山大路已斷塞了!」管仲乃召虎兒斑問曰:「尚有別徑可入否?」
속매가 미로에게 계책을 드려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이 이곳으로 진군하고자 한다면 반듯이 황대산(黃臺山) 골짜기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가 나무와 돌로 입구를 막아 놓고 밖에는 많은 함정을 파고 무장한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한다면 비록 백만 대군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날아 넘지는 못합니다. 또한 복룡산의 사방 20여 리에는 물이 없어서 반드시 유수(濡水)에서 물을 길어와야 합니다. 만약 유수의 흐름을 둑을 쌓아 막으면 적군은 물을 마시지 못해서 혼란에 빠질 것이고, 혼란하면 무너집니다. 우리가 무너진 틈을 타서 들이치면 이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고죽국에 보내 구원병을 청하여 군사를 빌려 싸움을 돕게 하면 이는 만전의 계책이 될 것입니다.” 하니, 밀로가 크게 기뻐하며 속매의 계책을 따랐다. 한편, 관중은 융병이 물러간 후 계속해서 3일이 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났다. 첩자를 풀어 탐지하니, 첩자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황대산의 큰길은 이미 끊겼습니다.” 했다. 관중이 호아반을 불러 묻기를, “영지국으로 들어가는 다른 지름길은 없소?” 했다.
虎兒斑曰:「此去黃臺山不過十五里,便可以直擣其國。若要尋別徑,須從西南打大寬轉,由芝麻嶺抄出青山口,復轉東數里,方是令支巢穴。但山高路險,車馬不便轉動耳。」正商議間,牙將連摯稟道:「戎主斷吾汲道,軍中乏水,如何?」虎兒斑曰:「芝麻嶺一派都是山路,非數日不到。若無水攜載,亦自難往。」桓公傳令,教軍士鑿山取水,先得水者重賞。公孫隰朋進曰:「臣聞蟻穴居知水,當視蟻蛭處掘之。」軍士各處搜尋,並無蟻蛭,又來稟復。隰朋曰:「蟻冬則就暖,居山之陽,夏則就涼,居山之陰。今冬月,必於山之陽,不可亂掘。」軍士如其言,果於山腰掘得水泉,其味清洌。
호아반이 말하기를, “이 길로 가면 황대산까지는 15리밖에 안 됩니다. 그곳만 지나면 바로 영지국을 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다른 길을 찾는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서남쪽을 크게 우회하여 지마령(芝麻嶺)을 지나 청산(靑山) 입구로 빠져 다시 동쪽으로 몇 리를 돌아가면 바로 영지의 소굴입니다. 그러나 산은 높고 길은 험하여 전차와 말을 끌고 가기가 불편합니다.” 했다. 이렇게 상의하고 있는데 아장 연지(連摯)가 보고하기를, “영지국의 군주가 우리가 마실 강물을 막아서. 군중에 식수가 부족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했다. 호아반이 말하기를, “지마령의 길은 모두 산길이라 며칠이 걸릴지 모릅니다. 식수를 휴대하지 않으면 역시 행군할 수 없습니다.” 했다. 제환공은 군사들에게 산을 파서 물을 찾도록 명령하고, 먼저 샘물을 찾는 자에게는 큰상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공손 습붕이 나서서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 개미구멍이 있는 곳에 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개미와 개밋둑이 있는 곳을 찾아서 샘을 파야 합니다.” 했다. 군사들이 여기저기를 찾았으나 개미와 개미둑이 없었다. 군사들이 제환공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습붕이 말하기를, “개미는 겨울에 따뜻한 곳을 찾으므로 산의 양지쪽에 살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을 좋아해서 산의 음지쪽에 삽니다. 지금은 겨울이므로 반드시 산의 양지쪽에 있을 것입니다. 아무 곳이나 파면 안 됩니다.” 했다. 군사들이 그 말대로 하니 과연 산허리에서 개미굴을 발견하고 그곳을 파서 샘물을 얻었다. 물맛이 맑고 시원했다.
桓公曰:「隰朋可謂聖矣!」因號其泉曰聖泉,伏龍山改為龍泉山。軍中得水,歡呼相慶。密盧打聽得齊軍未嘗乏水,大駭曰:「中國豈有神助耶?」速買曰:「齊兵雖然有水,然涉遠而來,糧必不繼。吾堅守不戰,彼糧盡自然退矣。」密盧從之。管仲使賓須無假託轉回葵茲取糧,卻用虎兒斑領路,引一軍取芝麻嶺進發,以六日為期。卻教牙將連摯,日往黃臺山挑戰,以綴密盧之兵,使之不疑。如此六日,戎兵並不接戰。管仲曰:「以日計之,賓將軍西路將達矣。彼既不戰,我不可以坐守。」乃使士卒各負一囊,實土其中,先使人駕空車二百乘前探,遇塹坑處,即以土囊填滿。
제환공이 말하기를, “습붕은 가히 성인이라 할만하다.” 했다. 이로 인해서 그 샘을 성천(聖泉)이라 하고 복룡산은 용천산(龍泉山)으로 바꿔 부르게 했다. 군중에서 식수를 얻게 되자 군사들이 서로 환호하며 축하했다. 한편, 밀로는 제나라 군중에 아직도 물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중원의 나라를 어찌하여 하늘이 돕고 있는가?” 하니, 속매가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가 비록 물을 얻었다고 하나 멀리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온 군사들이라 양식의 공급이 반드시 원만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으면, 적군은 식량이 바닥나서 자연히 물러갈 것입니다.” 했다.
밀로가 그 말을 쫓았다. 한편, 관중은 빈수무에게 규자로 돌아가 양식을 가져오게 한다고 가탁하고, 호아반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여, 6일의 기한을 주어,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지마령으로 진격하게 했다. 또 아장 연지(連摯)를 시켜 날마다 황대산의 영지국 진영에 싸움을 걸게 하여 밀로의 군사를 묶어 의심이 들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6일 동안 계속 공격하였으나 융병들은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관중이 말하기를, “날짜를 헤아려 보니 빈장군이 서쪽의 길로 가서 도달했을 것이오. 적군이 싸움에 응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하고, 이에 군사들에게 각각 흙을 담은 포대를 지게 하고, 그 앞에 사람들을 시켜 빈 수레 200대를 몰아 먼저 함정을 찾아 수레가 빠지면 흙 포대로 메우게 했다.
大軍直至谷口,發聲喊,齊將木石搬運而進。密盧自以為無患,日與速買飲酒為樂。忽聞齊軍殺入,連忙跨馬迎敵。未及交鋒,戎兵報:「西路又有敵軍殺到!」速買知小路有失,無心戀戰,保著密盧望東南而走。賓須無追趕數里,見山路崎嶇,戎人馳馬如飛,不及而還。馬匹器仗,牛羊帳幕之類,遺棄無算,俱為齊有。奪還燕國子女,不可勝計。令支國人,從未見此兵威,無不簞食壺漿,迎降於馬首。桓公一一撫慰,吩咐不許殺戮降夷一人。戎人大悅。桓公召降戎問曰:「汝主此去,當投何國?」降戎曰:「我國與孤竹為鄰,素相親睦,近亦曾遣人乞師未到,此行必投孤竹也。」
제나라의 대군이 황대산 입구까지 내달려와서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제나라 군사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나무와 돌을 치우면서 진격했다. 그때 밀로는 (황대산 함정으로) 걱정거리가 없어졌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매일 속매와 술을 마시면서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제나라 군사들이 쇄도해 들어오자 황망 중에 말을 타고 대적했다. 채 교전을 하기도 전에 병졸이 보고하기를, “서쪽 길에서도 적군이 나타나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했다. 속매가 좁은 길도 잃었음을 알고 전의를 상실하여 밀로를 보호하면서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빈수무가 몇 리를 추격하였으나 산길이 험하고 오랑캐들이 나는 듯이 말을 몰아서 미치지 못하고 돌아왔다. 말과 병장기 및 소와 양가죽으로 된 장막 등을 무수히 버리고 가서, 모두 제나라 군사의 소유가 되었다. 잡혀갔던 수많은 연나라의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찾아 연나라로 귀환시켰다. 영지국 백성들이 이런 군사의 위용을 보지 못했으므로 도시락밥과 병에 담은 장을 준비하여 말머리에서 환영하고 항복했다. 제환공이 영지국 백성들을 일일이 위무하고 항복한 융족들을 한 사람이라도 죽이면 안 된다고 분부하니, 융족들이 크게 기뻐했다. 제환공이 항복한 융족을 불러 묻기를, “너희들의 임금은 어느 나라로 달아났느냐?” 하니, 항복한 융족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와 고죽국은 이웃이라 평소에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요즈음에 저희 임금이 이미 사람을 보내 원군을 청하였는데 아직 원군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고죽국으로 달아났을 것입니다.” 했다.
桓公問孤竹強弱並路之遠近。降戎曰:「孤竹乃東南大國,自商朝便有城郭。從此去約百餘里,有溪名曰卑耳。過溪便是孤竹界內。但山路險峻難行耳。」桓公曰:「孤竹黨山戎為暴,既在密邇,宜前討之。」適鮑叔牙遣牙將高黑運乾糒五十車到,桓公即留高黑軍前聽用。於降戎中挑選精壯千人,付虎兒斑帳下,以補前損折之數。休兵三日,然後起程。再說,密盧等行至孤竹,見其主答里呵,哭倒在地,備言:「齊兵恃強,侵奪我國,意欲乞兵報仇。」
제환공은 고죽국 군사들의 강약과 길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항복한 융족이 말하기를, “고죽국은 우리나라의 동남쪽에 있는 대국으로 상(商)나라 때부터 성곽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거리는 백여 리이고, 비이(卑耳)라는 시내가 나오는데 그 시내를 건너면 바로 고죽국입니다. 다만 산길이 험준해서 행군하기가 어렵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고죽국은 산융과 무리를 지어 난폭하고, 이미 아주 가까이 있으니 마땅히 나아가 토벌해야겠다.” 하고, 그때 마침 포숙아가 아장 고흑(高黑)을 시켜 말린 양식을 50대의 수레에 실어 보내왔다. 환공이 즉시 고흑을 군중에 머물도록 명하여 싸움을 돕도록 했다. 또한 항복한 융병 중에서 힘세고 날랜 사람 천 명을 골라 호아반의 부대에 편입시키고 예전의 전투에서 잃은 병력을 보충하게 했다. 군사를 3일 동안 쉬게 한 뒤에 고죽국을 향해 군사들을 행군시켰다. 한편, 밀로 등은 고죽국에 도착하여 그 임금 답리가(答里呵)를 보자 땅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그 동안의 사정을 말하기를, “제나라가 군사의 강함을 믿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습니다. 바라건대 군사를 청하여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했다.
答里呵曰:「俺這裏正欲起兵相助,因有小恙,遲這幾日,不意你吃了大虧。此處有卑耳之溪,深不可渡。俺這裏將竹筏盡行拘回港中,齊兵插翅亦飛不過。俟他退兵之後,俺和你領兵殺去,恢復你的疆土,豈不穩便?」大將黃花元帥曰:「恐彼造筏而渡,宜以兵守溪口,晝夜巡行,方保無事。」答里呵曰:「彼若造筏,吾豈不知?」遂不聽黃花之言。再說,齊桓公大軍起程,行不十里,望見頑山連路,怪石嵯峨,草木蒙茸,竹箐塞路。有詩為證:盤盤曲曲接青雲,怪石嵯岈路不分。任是胡兒須下馬,還愁石窟有山君。
답리가가 말하기를, “내가 이번에 군사를 내어 돕고자 했는데 몸이 조금 아파서 이렇게 며칠 지체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이렇게 대패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곳의 비이계(卑耳溪)는 수심이 깊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의 대나무 뗏목을 모두 거두어 끌고 와서 깊숙한 곳에 숨겨 놓으면, 제나라 군사들이 날개가 달리지 않는 한 날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와 군주가 군사를 거느리고 무찌르면 옛 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찌 온당하고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대장 황하(黃花) 원수가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이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올까 걱정됩니다. 마땅히 군사를 내어 강변을 지키도록 하고 주야로 순찰하여 만전을 기하십시오.” 하니, 답리가가 말하기를, “적군이 만약 뗏목을 만든다면 우리가 어찌 모르고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황화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한편, 제환공은 대군을 일으켜 십 리도 가기 전에 앞을 바라보니, 험악한 산이 솟아 있었다. 갈수록 괴석이 험준하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랐으며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길을 막았다. 그것을 증명하는 시에 이르기를, “산은 이리저리 굽어 푸른 하늘에 닿았고, 괴석은 험준하여 길마저 찾지 못하겠네. 오랑캐가 이끄는 대로 말에서 내려 따라갔으나, 석굴에 호랑이가 있을까 도리어 걱정이네.” 했다.
管仲教取硫黃焰硝引火之物,撒入草樹之間,放起火來。咇咇剝剝,燒得一片聲響。真個草木無根,狐兔絕影,火光透天,五日夜不絕。火熄之後,命鑿山開道,以便進車。諸將稟稱:「山高且險,車行費力。」管仲曰:「戎馬便於驅馳,惟車可以制之。」乃製上山下山之歌,使軍人歌之。《上山歌》曰:「山嵬嵬兮路盤盤,木濯濯兮頑石如欄。雲薄薄兮日生寒,我驅車兮上巉岏。風伯為馭兮俞兒操竿,如飛鳥兮生羽翰,跋彼山巔兮不為難。」《下山歌》曰:「上山難兮下山易,輪如環兮蹄如墜。聲轔轔兮人吐氣,歷幾盤兮頃刻而平地。擣彼戎廬兮消烽燧,勒勳孤竹兮億萬世。」
관중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유황과 염초의 인화물을 준비하여 산속으로 가져가 풀과 나무 사이에 뿌리고 불을 지르게 했다. 탁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길은 초목을 뿌리도 남기지 않고 다 타우고, 여우와 토끼는 그림자도 없이 달아났으며, 치솟은 불길은 5일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하늘에 치솟았다. 불이 꺼진 후에 산을 뚫어 길을 내게 명하여 수레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장수가 관중에게 아뢰기를, “산이 높고 험한데 전차까지 가면 노력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융병은 말을 잘 부리기 때문에 전차만이 그들을 제압할 수 있소.” 했다. 곧 ‘상산가(上山歌)’와 ‘하산가(下山歌)’라는 노래를 지어 군사들에게 부르게 했다. ‘상산가(上山歌)’에 이르기를, “산은 높고 높구나, 길은 돌고 도네. 수목은 살찌고 빛나는구나. 돌은 난간처럼 앞을 가로막네. 구름도 희미하구나. 날씨도 싸늘하네. 내가 수레를 휘모는구나. 가파른 산 위에 올라왔네. 바람의 신이 밀어주는구나. 유아(등산의 신)가 장대를 잡아주네. 날아오르는 새 같구나. 날개가 돋친 듯하네. 저 산꼭대기에 올랐구나. 어렵지 않네.” 했다. 또 ‘하산가(下山歌)’에 이르기를, “산에 오르기는 어렵구나. 산에서 내려가기는 쉽네. 수레바퀴는 고리같이 구르는구나. 말발굽은 흐르는 듯하네. 바퀴 소리 요란하구나. 사람은 숨을 몰아쉬네. 굽이굽이 돌아가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평지로다. 저 오랑캐의 집을 짓부수는구나, 봉홧불을 꺼버리네. 고죽국을 제압하고 공을 세움이여. 길이길이 억만세에 전하네.” 했다.
人夫唱起歌來,你唱我和,輪轉如飛。桓公與管仲隰朋等,登卑耳之巔,觀其上下之勢。桓公嘆曰:「寡人今日知人力可以歌取也。」管仲對曰:「臣昔在檻車之時,恐魯人見追,亦作歌以教軍夫,樂而忘倦,遂有兼程之功。」桓公曰:「其故何也?」對曰:「凡人勞其形者疲其神,悅其神者忘其形。」桓公曰:「仲父通達人情,一至於此!」於是催趲車徒,一齊進發。行過了幾處山頭,又上一嶺,只見前面大小車輛,俱壅塞不進。軍士稟稱:「兩邊天生石壁,中間一徑,止容單騎,不通車輛。」
인부들이 먼저 노래를 시작하자 너나없이 불러서 나는 듯이 퍼졌다. 제환공, 관중, 습붕 등은 비이산(卑耳山) 꼭대기에 올라 지세의 높고 낮음을 관찰했다. 제환공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과인은 오늘 사람의 힘이 노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신이 옛날에 함거에 실려 올 때 노나라 사람들의 추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역시 노래를 지어 군사와 인부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피로함을 잊어서 마침내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렸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무릇 사람이란 몸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정신이 피로하게 되나, 그 정신을 즐겁게 하면 몸의 피로를 잊기 때문입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중보가 사람의 마음에 통달하여 일시에 이곳까지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고, 인부들과 군사를 재촉하여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산봉우리 몇 개를 넘고 다시 산 고개에 올랐는데, 앞에는 크고 작은 수레들이 모두 비좁게 막혀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군사가 달려와서 아뢰기를, “길 양편에 자연 석벽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단지 말 탄 군사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고 차량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 했다.
桓公面有懼色,謂管仲曰:「此處倘有伏兵,吾必敗矣!」正在躊躇,忽見山凹裏走出一件東西來。桓公睜眼看之,似人非人,似獸非獸,約長一尺有餘;朱衣玄冠,赤著兩腳,向桓公面前再三拱揖,如相迓之狀。然後以右手摳衣,竟向石壁中間疾馳而去。桓公大驚,問管仲曰:「卿有所見乎?」管仲曰:「臣無所見。」桓公述其形狀。管仲曰:「此正臣所製歌詞中『俞兒』者是也。」桓公曰:「俞兒若何?」管仲曰:「臣聞北方有登山之神,名曰『俞兒』,有霸王之主則出見。君之所見,其殆是乎?拱揖相迓者,欲君往伐也。摳衣者,示前有水也。右手者,水右必深,教君以向左也。」
제환공이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을 띠며 관중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만약 복병이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패했을 것이오.” 했다. 제환공이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산골짜기의 움푹 파인 곳에서 뛰쳐나와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물체를 보았다. 제환공이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사람 비슷하나 사람이 아니고, 짐승 비슷하나 짐승도 아닌 물체가 길이는 약 한 척 남짓 되는데, 붉은 옷을 입고 검은 관을 썼으며 붉은 것을 두 다리에 붙였다. 제환공 앞에 와서 두 손을 모아 읍을 하여 마치 영접하는 듯했다. 그런 다음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들어 올리더니 마침내 석벽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질풍같이 달려가 사라졌다. 제환공이 크게 놀라 관중에게 묻기를, “경도 보았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자기가 본 형상을 설명하자 관중이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신이 지은 노랫말 가운데 나오는 ‘유아(兪兒)’입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유아는 무엇입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 북방에 등산의 신이 있는데, 이름이 유아입니다. 패업을 이루는 왕이 있으면 출현한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보신 것이 아마 그 유아이겠지요? 두 손을 모아 마중하는 행동은 주군의 정벌을 환영한다는 뜻이며, 옷을 쳐들어 보인 것은 앞에 강물이 있다는 표시이며, 오른손으로 걷어올린 것은 물 오른쪽이 깊으니 주공께서 강을 건널 때는 왼쪽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했다.
髯翁有詩論管仲識「俞兒」之事。詩云:「《春秋》典籍數而知,仲父何從識「俞兒」?豈有異人傳異事,張華《博物》總堪疑。」管仲又曰:「既有水阻,幸石壁可守。且屯軍山上,使人探明水勢,然後進兵。」探水者去之良久,回報:「下山不五里,即卑耳溪,溪水大而且深,雖冬不竭。原有竹筏以渡,今被戎主拘收矣。右去水愈深,不啻丈餘。若從左而行,約去三里,水面雖闊而淺,涉之沒不及膝。」桓公撫掌曰:「俞兒之兆驗矣!」燕莊公曰:「卑耳溪不聞有淺處可涉,此殆神助君侯成功也!」
관중이 유아를 안 박식함에 대해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춘추 때의 전적(典籍)의 수효와 내용은 다 뻔한데, 중보는 어떻게 ‘유아(兪兒)’를 알았을까? 이런 기이한 일들을 이인(異人)에게서만 들었겠는가! 장화(張華)가 지은 <박물지>의 내용도 다 믿지 못할 뿐이다.” 했다. 관중이 또 말하기를, “이미 물이 앞을 가로막았고, 다행히 석벽은 지킬 수 있으니, 우선 군사를 산 위에 주둔시키고, 사람을 시켜 강물의 형세를 살펴본 다음에 진군시켜야겠습니다.” 했다. 강물을 살펴보러 간 척후병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와 보고하기를, “산 밑으로 5리도 채 못 가서 비이계(卑耳溪)가 있고, 강물이 크고 깊어 비록 겨울철이라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대나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나 지금은 오랑캐 군주가 뗏목을 모두 거두어 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른쪽 강물이 더욱 깊어서 한 길도 더 됩니다. 만약 왼쪽으로 3리쯤 가면 강폭은 비록 넓어지지만, 강물은 얕아져서 무릎을 적시지 않고도 건널 수 있다고 합니다.” 했다. 환공이 손바닥을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유아가 보여준 징조가 영험하구나!” 했다. 연장공이 말하기를, “비이계(卑耳溪)에 얕은 곳이 있어 건널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신령이 군주를 도와 성공시키려나 봅니다.” 했다.
桓公曰:「此去孤竹城,有路多少?」燕莊公曰:「過溪東去,先團子山,次馬鞭山,又次雙子山,三山連絡,約三十里。(此乃商朝孤竹三君之墓。)過了三山,更二十五里,便是無棣城,即孤竹國君之都也。」虎兒斑請率本部兵先涉。管仲曰:「兵行一處,萬一遇敵,進退兩難,須分兩路而行。」乃令軍人伐竹,以藤貫之,頃刻之間,成筏數百。留下車輛,以為載筏,軍士牽之。下了山頭,將軍馬分為兩隊,王子成父同高黑引著一軍,從右乘筏而渡為正兵,公子開方豎貂,隨著齊桓公親自接應;賓須無同虎兒斑引著一軍,從左涉水而渡為奇兵,管仲同連摯隨著燕莊公接應。俱於團子山下取齊。
제환공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고죽국까지 어떻게 가야 합니까?” 하니, 연장공이 말하기를, “비이계를 건너 동쪽으로 가면 우선 단자산(團子山)에 이르고, 다음에 마편산(馬鞭山), 그리고 다음에 쌍자산(雙子山)에 이르게 되는 데, 세 산이 연달아 붙어 있어서 약 30리 정도 됩니다. (또한 이곳은 상(商)나라 때의 고죽국 군주 세 사람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세 산을 지나서 다시 25리쯤 지나면 무체성(無棣城)에 이르는데, 이곳이 곧 고죽국의 도성입니다.” 했다. 호아반이 휘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강물을 건너겠다고 청하자 관중이 말하기를, “한 길로만 행군하다가 만일 적군을 만나게 된다면 진퇴양난에 빠지니, 반드시 두 길로 나누어 행군하도록 합시다.” 했다. 이에 관중은 명령하여 군사와 인부들이 산속의 대나무를 베어 등줄기로 엮어 잠깐 사이에 뗏목 수백 개를 만들었다. 차량을 뗏목 위에 실어 군사들이 끌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오자 군마를 두 부대로 나누어 왕자 성보와 고흑이 일군(一軍)을 이끌고, 강의 오른쪽으로 뗏목을 타고 건너게 하여 정병(正兵)으로 삼았다. 공자 개방과 수초는 제환공을 따르며 접응하게 했다. 빈수무와 호아반은 다른 일군(一軍)을 이끌고 강의 왼쪽으로 건너서 기병(奇兵)이 되었다. 관중은 연지와 함께 연장공을 따라 접응하며, 모두 단자산 밑에서 모이기로 했다.
卻說答里呵在無棣城中,不知齊兵去來消息。差小番到溪中打聽,見滿溪俱是竹筏,兵馬紛紛而渡,慌忙報知城中。答里呵大驚,即令黃花元帥率兵五千拒敵。密盧曰:「俺在此無功,願引速買為前部。」黃花元帥曰:「屢敗之人,難與同事!」跨馬逕行。答里呵謂密盧曰:「西北團子山,乃東來要路,相煩賢君臣把守,就便接應;俺這裏隨後也到。」密盧口雖應諾,卻怪黃花元帥輕薄了他,心中頗有不悅之意。卻說,黃花元帥兵未到溪口,便遇了高黑前隊。兩下接住廝殺。高黑戰黃花不過,卻待要走。
한편, 고죽국 군주 답리가는 무체성 안에서 제나라 군사의 그간 소식을 몰라서, 병졸을 비이계로 보내어 제나라 군사들의 동정을 정탐시켰다. 정탐병들은 제나라 군사가 비이계 가득 대나무 뗏목을 준비하여 군사와 말이 바쁘게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도성으로 달려가 답리가에게 보고했다. 답리가가 크게 놀라서 황화(黃花) 원수에게 즉시 군사 5천 명을 인솔하고 출전하여 적군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밀로가 말하기를, “제가 이곳에서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원컨대 속매와 같이 선봉이 되겠습니다.” 하니, 황화 원수가 말하기를, “여러 번 패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는 어렵소.” 하고,말을 타고 가버렸다. 답리가가 밀로에게 말하기를, “이곳의 서북쪽에 단자산이 있는데 동쪽으로 오는 중요한 길목입니다. 수고스럽겠지만 두 분의 군주와 신하께서 그곳을 지켜주시면 제가 즉시 접응하여 뒤따라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밀로가 입으로 응락하기는 했지만, 자기를 가볍게 대한 황화 원수의 태도에 대해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한편, 황화 원수의 군사가 비이계 어구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제나라 장군 고흑이 거느린 선봉과 마주쳐서 양쪽 군사들 사이에 혼전이 벌어졌다. 고흑은 황화를 당해내지 못하고 달아나려고 했다.
王子成父已到,黃花撇了高黑,便與王子成父廝殺。大戰五十餘合,不分勝負。後面齊侯大軍俱到,公子開方在右,豎貂在左,一齊捲上。黃花元帥心慌,棄軍而走。五千人馬,被齊兵掩殺大半,餘者盡降。黃花單騎奔逃,將近團子山,見兵馬如林,都打著齊、燕、無終三國旗號,乃是賓須無等涉水而渡,先據了團子山了。黃花不敢過山,棄了馬匹,扮作樵採之人,從小路爬山得脫。齊桓公大勝,進兵至團子山,與左路軍馬做一處列營,再議征進。
왕자 성보가 이미 도착하니, 황화는 고흑을 버리고 왕자 성보에게 달려들었다. 황화와 성보가 겨루기를 50여 합에 이르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후대에 있던 제환공의 대군이 모두 도착하여 공자 개방은 오른쪽에서, 수초는 왼쪽에서 일제히 협공했다. 황화 원수가 당황하여 군사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5천 명의 고죽국 군사와 말들은 제나라 병사들에 의해 태반이 죽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했다. 황화는 단기로 도망치다가 단자산 가까이에 이르러 바라보니, 군사들과 말들이 마치 숲처럼 늘어서 있는데 모두가 제나라, 연나라 및 무종 등 3국의 깃발을 꽂고 있었다. 이는 빈수무 등이 강을 건너서 먼저 단자산을 점거한 것이었다. 황화는 감히 단자산을 통과하지 못하고 말을 버리고 나무꾼으로 변장하여 오솔길을 따라 산으로 기어올라 제나라 진영을 벗어났다. 제환공이 대승하여 단자산까지 진격하여 빈수무의 좌군과 합류했다. 환공은 한 곳에 영채를 세우도록 명하고 고죽국으로 진격하기 위해 다시 의논했다.
卻說,密盧引軍剛到馬鞭山,前哨報道:「團子山已被齊兵所占。」只得就馬鞭山屯札。黃花元帥逃命至馬鞭山,認做自家軍馬,投入營中,卻是密盧。密盧曰:「元帥屢勝之將,何以單身至此?」黃花羞慚無極。索酒食不得,與以炒麥一升。又索馬騎,與之漏蹄。黃花大恨,回至無棣城,見答里呵,請兵報仇。答里呵曰:「吾不聽元帥之言,以至如此!」黃花曰:「齊侯所恨,在於令支。今日之計,惟有斬密盧君臣之首,獻於齊君,與之講和,可不戰而退。」答里呵曰:「密盧窮而歸我,何忍賣之?」
한편, 밀로가 군사를 이끌고 마편산에 막 도착하니 앞의 초병이 보고하기를, “단자산은 이미 제나라 군사들에 의해서 점령되었습니다.” 했다. 밀로는 하는 수 없이 마편산에 영채를 세웠다. 황화 원수가 도망하여 마편산에 이르렀다. 그는 자기 군마인 줄 알고 영채 안으로 달려 들어가니 실인즉 밀로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밀로가 말하기를, “원수께서는 여러 번 이긴 장수인데 어찌하여 단신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했다. 황화가 수치심에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술과 음식을 청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단지 볶은 보리 한 되를 받았을 뿐이었다. 또 말 한 필을 얻으려고 했지만, 밀로는 황화에게 늙고 병든 말을 주었다. 황화가 가슴속에 원한을 품고 무체성으로 돌아와서 답리가를 접견하고, 군사를 다시 청하며 원수를 갚겠다고 했다. 답리가가 말하기를, “내가 원수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소.” 하니, 황화가 말하기를, “제환공이 원한을 가진 것은 영지국의 밀로입니다. 지금의 계책은, 오직 밀로 군신(君臣)의 목을 베어 제환공에게 바치고 강화를 맺는 방법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제나라 군사들은 싸우지 않고 물러갈 것입니다.” 했다. 답리가가 말하기를, “밀로가 어려움에 처해서 나에게 의지했는데, 내가 어찌 차마 그를 적군에게 넘기겠소?” 했다.
宰相兀律古進曰:「臣有一計,可以反敗為功。」答里呵問:「何計?」兀律古曰:「國之北有地名曰旱海,又謂之迷谷,乃砂磧之地,一望無水草。從來國人死者,棄之於此,白骨相望,白晝常見鬼。又時時發冷風,風過處,人馬俱不能存立,中人毛髮輒死。又風沙刮起,咫尺不辨。若誤入迷谷,谷路紆曲難認,急不能出,兼有毒蛇猛獸之患。誠得一人詐降,誘至彼地,不須廝殺,管取死亡八九。吾等整頓軍馬,坐待其敝,豈非妙計?」答里呵曰:「齊兵安肯至彼乎?」 兀律古曰:「主公同宮眷暫伏陽山,令城中百姓,俱往山谷避兵,空其城市。然後使降人告於齊侯,只說:『吾主逃往砂磧借兵。』彼必來追趕,墮吾計矣。」
재상 올율고(兀律古)가 나아가 말하기를,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가히 패배를 돌이켜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니, 답리가가 묻기를, “어떤 계책인가?” 했다. 올율고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북쪽에는 한해(旱海)라는 이름의 땅이 있습니다. 또한 미곡(迷谷)이라고도 합니다. 그곳은 모래와 자갈의 땅이라 아득히 물이나 풀이 없습니다. 옛날부터 백성들이 죽은 사람을 이곳에 버려 백골이 쌓여 있습니다. 이곳은 대낮에도 귀신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때때로 차가운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부는 곳은 모두 사람이나 짐승이 살 수 없습니다. 그 바람을 모발에 쐬기만 해도 곧바로 죽습니다. 또한 모래바람이 한번 일어나면 지척도 분간이 안 됩니다. 만약 미곡 안으로 잘못하여 들어가면 골짜기 길이 구불구불하여 분별하기 어려워서 급히 빠져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계곡 안에는 독사와 맹수들이 우글거립니다. 진실로 한 사람을 얻어 제나라 군사에게 거짓 항복하게 한 후에 그곳으로 유인하게 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그들 중 십중팔구는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군마를 정돈하여 그들이 피폐해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어찌 묘책이 아니겠습니까?” 했다. 답리가가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이 어찌 그곳까지 따라오겠소?” 하니, 올율고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궁인들과 권속들을 데리고 잠깐 양산(陽山)으로 가서 숨고, 성안의 백성들에게 명하여 모두 산골짜기로 피난하도록 하여 성안을 비우십시오. 그런 다음 사람을 제환공에게 보내 항복하도록 하고, 제환공에게 단지 ‘우리 군주는 사막에 군사를 빌리러 갔다’라고만 말하게 하십시오. 그들은 반드시 우리 뒤를 추격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우리의 계책에 떨어지게 됩니다.” 했다.
黃花元帥欣然願往。更與騎兵千人,依計而行。黃花元帥在路思想:「不斬密盧之首,齊侯如何肯信?若使成功,主公亦必不加罪。」遂至馬鞭山來見密盧。卻說,密盧正與齊兵相持未決,且喜黃花救兵來到,欣然出迎。黃花出其不意,即於馬上斬密盧之首。速買大怒,綽刀上馬來鬥黃花。兩家軍兵,各助其主,自相擊鬥,互有殺傷。速買料不能勝,單刀獨馬,逕奔虎兒斑營中投降。虎兒斑不信,叱軍士縛而斬之。可憐令支國君臣,只因侵擾中原,一朝俱死於非命,豈不哀哉!史官有詩云:「山有黃臺水有濡,周圍百里令支居。燕山鹵獲今何在?國滅身亡可嘆吁!」
황화 원수가 흔연히 가기를 원하자 답리가가 기병 천 명을 주어 그 계책에 따라서 가도록 했다. 황화 원수가 길에서 생각하기를, “만약 밀로의 목을 베어 가지 않는다면 제환공이 어찌 나를 믿겠는가? 만약 일이 성공하게 되면 주공께서는 틀림없이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 하고, 마침내 마편산에 가서 밀로를 만났다. 한편, 밀로가 제나라 병사들과 대치하여 승패를 내지 못하고 있던 참에 황하가 구원병을 끌고 온 줄 알고 크게 기뻐하며 맞이했다. 그러나 황화가 뜻하지 않은 틈을 타서 말 위에서 밀로의 머리를 베었다. 속매가 대로하여 칼을 들고 말에 올라 황화에게 달려들었다. 양쪽의 군사들은 각기 자기의 장군들을 도와 싸움을 벌여서 서로 살상했다. 속매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단기로 달아나 호아반의 영채로 달려가 항복했다. 그러나 호아반은 속매의 항복을 믿지 않고 군사들에게 명하여 포박한 후 참수했다. 가련하게도 영지국의 군주와 신하는 단지 중원의 나라를 침략하여 괴롭히다가 하루아침에 모두 비명에 죽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산은 황대산이 있고 물은 유수가 있는데, 사방이 백 리가 되는 영지국(令支國)이라. 연나라를 침략한 노획물은 지금은 어디 있는가? 나라는 망하고 몸은 죽었으니 한탄스러운 일이로다!” 했다.
黃花元帥並有密盧之眾,直奔齊軍,獻上密盧首級。備言:「國主傾國逃去砂磧,與外國借兵報仇。臣勸之投降不聽。今自斬密盧之首,投於帳下,乞收為小卒。情願率本部兵馬為嚮導,追趕國主,以效微勞。」桓公見了密盧首級,不由不信。即用黃花為前部,引大軍進發,直抵無棣,果是個空城,益信其言為不謬。誠恐答里呵去遠,止留燕莊公兵一支守城,其餘盡發,連夜追襲。黃花請先行探路,桓公使高黑同之,大軍繼後。已到砂磧,桓公催軍速進。行了許久,不見黃花消息。
황화 원수는 밀로가 거느렸던 군사들을 아우르고 제나라 군중에 달려가서 밀로의 수급을 바치고 계획한 대로 말하기를, “저희 주군께서는 나라가 기울자 외국에 군사를 빌려서 원수를 갚겠다면서 사막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신이 항복하자고 권했지만 듣지 않아서 오늘 제가 밀로의 머리를 참하여 군주의 장막 앞에 항복하니, 졸병으로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본부 병마의 향도가 되어 우리 주군을 추격하여 미력하나마 군주님에게 보답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했다. 제환공이 밀로의 수급을 보자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 즉시 황화를 선봉으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행군하여 무체성에 입성했다. 과연 성은 텅 비어 있었으므로 제환공은 더욱 황화의 말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답리가가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걱정하여 연장공과 한 떼의 군사를 무체성에 머물러 지키게 하고, 나머지 대군을 모두 출발시켜 밤낮으로 쫓았다. 황화가 길을 안내한다고 하며 앞서가기를 청하니, 제환공이 고흑과 함께 앞서 나가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사막에 도착하자 제환공은 군사들을 독촉하여 빨리 진격하도록 했다. 그러나 행군한 지 오래 되었으나 황화의 행방을 발견할 수 없었다.
看看天晚,但見白茫茫一片平沙,黑黯黯千重慘霧,冷淒淒數群啼鬼,亂颯颯幾陣悲風。寒氣逼人,毛骨俱悚,狂飆刮地,人馬俱驚,軍馬多有中惡而倒者。時桓公與管仲並馬而行。仲謂桓公曰:「臣久聞北方有旱海,是極厲害之處,恐此是也,不可前行。」桓公急教傳令收軍,前後隊已自相失。帶來火種,遇風即滅,吹之不燃。管仲保著桓公,帶轉馬頭急走。隨行軍士,各各敲金擊鼓,一來以屏陰氣,二來使各隊聞聲來集。只見天昏地慘,東西南北,茫然不辨。不知走了多少路,且喜風息霧散,空中現出半輪新月。眾將聞金鼓之聲,追隨而至,屯扎一處。
날이 어둑해지자 단지 아득하게 펼쳐진 사막만이 보일 뿐이었다. 천 겹의 검고 처참한 안개가 끼더니 싸늘하고 처연한 귀신들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쏴쏴 어지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한기가 사람들을 엄습하여 모골이 송연하게 되고 광풍은 땅을 할퀴었다.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 많은 군사와 말들이 오한이 들어 땅에 넘어졌다. 그때 제환공과 관중이 말을 나란히 하고 가다가 관중이 제환공에게 말하기를, “신이 오래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북방에 한해(旱海)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극히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바로 그 한해인 것 같습니다. 전진하면 안 되겠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급히 전령을 내어 군사들을 거두었으나, 전대와 후대는 이미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횃불을 켜려고 했으나 불어오는 바람에 곧바로 꺼졌다. 다시 불을 붙였으나 타지 않았다. 관중이 제환공을 보호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급히 달렸다. 수행하는 군사들이 각기 징과 북을 두드렸다. 첫째는 음기를 막고 둘째는 그 소리를 듣고 군사들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에 천지가 완전히 캄캄하게 되어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모르게 되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얼마나 길을 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안개가 흩어졌다. 하늘에는 반달이 나타났다. 여러 장수가 징과 북소리를 듣고 뒤따라 모여들자 한곳에다 진을 쳤다.
挨至天曉,計點眾將不缺,止不見隰朋一人。其軍馬七斷八續,損折無數。幸而隆冬閉蟄,毒蛇不出,軍聲喧鬧,猛獸潛藏,不然,真個不死帶傷,所存無幾矣。管仲見山谷險惡,絕無人行,急教尋路出去。奈東沖西撞,盤盤曲曲,全無出路,桓公心下早已著忙。管仲進曰:「臣聞老馬識途,無終與山戎連界,其馬多從漠北而來,可使虎兒斑擇老馬數頭,觀其所往而隨之,宜可得路也。」桓公依其言,取老馬數匹,縱之先行,委委曲曲,遂出谷口。髯翁有詩云:「蟻能知水馬知途,異類能將危困扶。堪笑淺夫多自用,誰能舍己聽忠謨?」
날이 새기를 기다려 여러 장수 중에 빠진 사람이 없나 헤아려보니, 다만 습붕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군사와 말은 끊겼다 이어졌다 없어진 것이 무수했다. 다행히 겨울이라 독사들은 나오지 않았고, 군사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맹수들은 숨어 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죽지 않아도 상처를 입어 거의 무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관중이 산골짜기가 험악하여 사람이 다닐 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군사들에게 급히 명하여 길을 찾아 벗어나라고 했다. 그러나 동쪽이 막히고 서쪽도 막혀 길은 꼬불꼬불 휘감겨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제환공의 마음은 이미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관중이 나아가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 늙은 말은 길을 잘 찾는다고 합니다. 무종국과 산융은 경계가 접해 있어 그곳의 말은 북쪽의 사막을 여러 번 다녀보았을 것이니, 호아반을 시켜 늙은 말 몇 마리를 골라 그 말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길을 찾을 것입니다.” 하니, 제환공이 관중의 말에 따라 늙은 말 몇 마리를 취하여 앞에 가게 하니,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서 마침내 골짜기를 벗어났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개미는 물 있는 곳을 알고 말은 길을 알아서, 짐승이 도리어 위기에서 도왔도다. 어리석은 자는 잔꾀를 많이 부리지만, 어느 군주가 능히 고집을 버리고 충언을 들었던가?” 했다.
再說,黃花元帥引齊將高黑先行,逕走陽山一路。高黑不見後隊大軍來到,教黃花暫住,等候一齊進發。黃花只顧催趲。高黑心疑,勒馬不行,被黃花執之,來見孤竹主答里呵。黃花瞞過殺密盧之事,只說:「密盧在馬鞭山兵敗被殺,臣用詐降之計,已誘齊侯大軍,陷於旱海。又擒得齊將高黑在此,聽憑發落。」答里呵謂高黑曰:「汝若投降,吾當重用。」高黑睜目大罵曰:「吾世受齊恩,安肯臣汝犬羊哉?」又罵黃花:「汝誘吾至此,我一身死不足惜,吾主兵到,汝君臣國亡身死,只在早晚,教你悔之無及!」
한편, 황화 원수는 제나라 장수 고흑을 이끌고 양산 지름길로 먼저 갔다. 고흑은 뒤따라오는 대군이 보이지 않자, 황화에게 잠시 멈추어 본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행군하자고 했다. 황하가 단지 돌아볼 뿐 내달리기를 재촉했다. 고흑이 의심이 일어 말고삐를 당겨 행군을 멈추자 황화가 고흑을 묶어서, 고죽국의 군주 답리가가 있는 양산으로 끌고 갔다. 황화는 답리가에게 밀로를 죽인 사실을 숨기고 말하기를, “밀로는 마편산의 싸움에서 패하여 죽고, 신은 거짓 항복하는 계책을 써서 이미 제나라 군주의 대군을 유인하여 한해 속에 가두었습니다. 또한 제나라 장수 고흑을 사로잡아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다. 주군께서 결정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답리가가 고흑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만약 투항한다면 내가 마땅히 중용하겠다.” 하니, 고흑이 두 눈을 부릅뜨고 크게 욕하기를, “난 대대로 제나라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오랑캐의 신하가 되겠느냐?” 했다. 다시 황화를 꾸짖기를, “네가 나를 꾀어 여기에 와서 내 한 몸이 죽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우리 군주의 군사가 도착하면 너희들의 나라는 망하고 몸은 죽을 것이니 조만간에 후회하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했다.
黃花大怒,拔劍親斬其首。真忠臣也!答里呵再整軍容,來奪無棣城。燕莊公因兵少城空,不能固守,令人四面放火。乘亂殺出,直退回團子山下寨。再說,齊桓公大軍出了迷谷,行不十里,遇見一枝軍馬,使人探之,乃公孫隰朋也。於是合兵一處,逕奔無棣城來。一路看見百姓扶老攜幼,紛紛行走。管仲使人問之,答曰:「孤竹主逐去燕兵,已回城中,吾等向避山谷,今亦歸井里耳。」管仲曰:「吾有計破之矣!」乃使虎兒斑選心腹軍士數人,假扮做城中百姓,隨著眾人,混入城中,只待夜半舉火為應。
황화가 대로하여 칼을 뽑아 친히 고흑의 목을 쳤다. 고흑은 진실로 충신이었다. 답리가가 군용을 재정비하여 무체성을 탈환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연장공은 군사는 적고 성은 비어서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성안의 곳곳에 불을 지르게 한 후, 혼란한 틈을 타서 성을 빠져나와 곧바로 단자산까지 후퇴하여 그곳에 진을 쳤다. 한편, 제나라 환공의 대군이 미곡에서 나와서 십 리를 미처 못 갔을 때 한 떼의 군마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을 보내 탐지해 보니, 그들은 바로 습붕과 그 군사들이었다. 이에 군사들을 본대에 합친 후 곧바로 무체성을 향해 진격하도록 했다. 행군 중에 고죽국의 백성들이 노인들은 부축하고 어린아이는 손을 잡고 서둘러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관중이 사람을 시켜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고죽국 군주가 연나라 군사들을 쫓아내고 이미 무체성에 입성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산에서 난을 피하여 기다리다가 오늘 다시 성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했다. 관중이 말하기를. “내가 무체성을 깨트릴 계책이 있다.” 하고, 즉시 호아반을 시켜 심복 군사 몇 명을 선발하여 성중의 백성들로 분장시켜 피난민들의 뒤를 따라 성안에 섞여 들어가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성안에 불을 질러 내응하도록 했다.
虎兒斑依計去後,管仲使豎貂攻打南門,連摯攻打西門,公子開方攻打東門,只留北門與他做走路。卻教王子成父和隰朋分作兩路,埋伏於北門之外,只等答里呵出城,截住擒殺。管仲與齊桓公離城十里下寨。時答里呵方救滅城中之火,招回百姓復業。一面使黃花整頓兵馬,以備廝殺。是夜黃昏時候,忽聞炮聲四舉,報言:「齊兵已到,將城門圍住。」黃花不意齊兵即至,大喫一驚,驅率軍民,登城守望。延至半夜,城中四五路火起,黃花使人搜索放火之人。虎兒斑率十餘人,逕至南門,將城門砍開,放豎貂軍馬入來。
호아반이 계책을 받고 간 후, 관중은 수초에게 남문을 공격하게 하고, 연지에게는 서문을 공격하게 하며, 공자 개방에게는 동문을 공격하게 했다. 단지 북문만은 남겨두어 적군들이 도망가게 했다. 왕자 성보와 습붕에게 두 길을 나누어서 북문 밖에 매복시키고, 답리가가 성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앞길을 막아서 사로잡아 죽이도록 했다. 관중과 제환공은 성 밖 10리쯤 되는 곳에서 진을 치고 머물렀다. 그때 답리가는 성안의 불을 끄고, 백성들을 불러들여 생업에 복귀하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황화를 시켜 군사와 말을 정돈하여 제나라 군사를 무찌를 준비를 하도록 했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황혼이 들 무렵, 갑자기 포성이 사방에서 들리더니 군사가 보고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이 이미 성밖에 도착하여 성문을 둘러쌌습니다.” 했다. 황화는 뜻밖에 제나라 군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여 군사들과 백성들을 인솔하여 성에 올라 바라보았다. 밤중에 이르자 성중의 네다섯 곳에서 불이 일어났다. 황화가 사람을 보내 불을 지른 사람을 찾아내게 했다. 호아반이 10여 명을 데리고 남문 쪽으로 달려가 성문을 깨뜨려 열어서, 수초의 군사들을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黃花知事不濟,扶答里呵上馬,覓路奔走,聞北路無兵,乃開北門而去。行不二里,但見火把縱橫,鼓聲震地,王子成父和隰朋兩路軍馬殺來。開方、豎貂、虎兒斑得了城池,亦各統兵追襲。黃花元帥死戰良久,力盡被殺。答里呵為王子成父所獲。兀律古死於亂兵之中。至天明,迎接桓公入城。桓公數答里呵助惡之罪,親斬其首,懸之北門,以警戎夷,安撫百姓。戎人言高黑不屈被殺之事,桓公十分嘆息,即命錄其忠節,待回國再議恤典。燕莊公聞齊侯兵勝入城,亦自團子山飛馬來會。
황화는 일이 이미 잘못되었음을 알고 답리가를 말에 오르게 하여 길을 찾아 달아나다가 북문 쪽에는 제나라 군사들이 없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즉시 북문을 열게 하여 성 밖으로 달아났다. 성문을 나와서 2리도 채 가기 전에 앞에서 갑자기 어지러이 횃불이 보이더니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서 왕자 성보와 습붕의 두 갈래 군사들이 달려들었다. 개방과 수초 및 호아반이 성안을 점령하고, 또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답리가의 뒤를 쫓았다. 황화 원수는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힘이 다해 제나라 군사들에게 피살되었다. 답리가는 왕자 성보에게 사로잡히고 올율고는 난군 중에 죽었다. 이윽고 날이 밝자 환공을 영접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환공은 답리가의 죄악을 열거하고 친히 그의 목을 베어 북문에 걸어서 오랑캐들에게 경고하고, 백성을 안심시켰다. 오랑캐들이 고흑이 뜻을 굽히지 않고 답리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말하자, 환공은 한참 탄식하다가 즉시 그 충절을 기록하게 하고 귀국한 후에 다시 표창을 의논하도록 했다. 연장공이 제환공의 군사들이 싸움에서 이기고 무체성에 다시 입성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단자산에서 달려와서 환공을 만났다.
稱賀已畢,桓公曰:「寡人赴君之急,跋涉千里,幸而成功。令支孤竹,一朝殄滅,闢地五百里,然寡人非能越國而有之也,請以益君之封。」燕莊公曰:「寡人藉君之靈,得保宗社足矣,敢望益地?惟君建置之。」桓公曰:「北陲僻遠,若更立夷種,必然復叛,君其勿辭。東道已通,勉脩先召公之業,貢獻於周,長為北藩,寡人與有榮施矣。」燕伯乃不敢辭。桓公即無棣城大賞三軍,以無終國有助戰之功,命以小泉山下之田畀之。虎兒斑拜謝先歸。桓公休兵五日而行,再渡卑耳之溪,於石壁取下車輛,整頓停當,緩緩而行。
연장공이 축하하는 말을 마치자, 제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군주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천리길을 달려와서 다행히 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지국과 고죽국이 한꺼번에 섬멸되어 5백 리의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인은 나라를 넘어 그것을 소유할 수 없으니, 청컨대 군주의 봉지에 더하십시오.” 했다. 연장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군주의 보살핌을 입어 종사를 보존하게 된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어찌 감히 땅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치소(治所)를 세우십시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이곳은 북쪽의 변경에 멀리 치우쳐 있어, 만약에 다시 오랑캐의 종족으로 왕을 세운다면 틀림없이 다시 배반할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사양하지 마십시오. 동쪽으로 향한 길은 이미 뚫렸으니 옛날 소공(召公)의 유업을 힘써 닦아서 주나라 왕실에 공헌하시고, 오래도록 북쪽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면 과인도 그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했다. 연장공은 감히 더 사양하지 못했다. 환공이 즉시 무체성에서 3군에 큰 상을 내리고, 이어서 무종국에게 싸움을 도운 공을 기려 소천산(小泉山) 아래의 땅을 주었다. 호아반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먼저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환공이 군사들을 5일 동안 쉬게 하고 다시 비이계를 건너서 석벽 아래에서 차량을 내리고 군마를 정돈한 후에 천천히 행군했다.
見令支一路荒煙餘燼,不覺慘然謂燕伯曰:「戎主無道,殃及草木,不可不戒!」鮑叔牙自葵茲關來迎,桓公曰:「餉饋不乏,皆大夫之功也。」又吩咐燕伯設戍葵茲關,遂將齊兵撤回。燕伯送桓公出境,戀戀不舍,不覺送入齊界,去燕界五十餘里。桓公曰:「自古諸侯相送,不出境外。寡人不可無禮於燕君。」乃割地至所送之處畀燕,以為謝過之意。燕伯苦辭不允,只得受地而還。在其地築城,名曰燕留,言留齊侯之德於燕也。
제환공은 영지국을 지나가는 길에, 불에 타 재만 남은 땅을 바라보고, 깨닫지 못한 사이에 마음이 처연하여 연장공에게 말하기를, “오랑캐 군주가 무도하여 그 재앙이 초목에까지 미쳤습니다. 마땅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했다. 포숙아가 규자의 관문에서 나와 환공을 영접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군량미가 부족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 대부의 공입니다.” 했다. 또 연장공에게 분부하여 규자에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고, 마침내 제나라 군사들을 거느리고 돌아갔다. 연장공이 제환공을 연나라 경계 밖으로까지 나와서 송별하며, 차마 헤어지지 못하다가 어느 사이에 제나라 국경 안 50리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옛날부터 제후가 송별을 할 때는 나라의 경계 밖으로 나가지 않는 법입니다. 과인은 연나라 군주에게 무례를 저지를 수 없습니다.” 하고, 즉시 제나라의 땅을 떼어 송별을 나온 곳에 이르기까지 연나라에 주고 이로써 연장공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연장공이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땅을 받고 돌아갔다. 그 땅에 성을 쌓아 이름을 연유(燕留)라고 했다. 그 말은 ‘제환공의 덕이 연나라에 머물러 있다’라는 뜻이었다.
燕自此西北增地五百里,東增地五十餘里,始為北方大國。諸侯因桓公救燕,又不貪其地,莫不畏齊之威,感齊之德。史官有詩云:「千里提兵治犬羊,要將職貢達周王。休言黷武非良策,尊攘須知定一匡。」桓公還至魯濟,魯莊公迎勞於水次,設饗稱賀。桓公以莊公親厚,特分二戎鹵獲之半以贈魯。莊公知管仲有采邑,名曰小穀,在魯界首,乃發丁夫代為築城,以悅管仲之意。時魯莊公三十二年,周惠王之十五年也。是年秋八月,魯莊公薨,魯國大亂。
연나라는 이때부터 서북쪽으로 5백 리의 땅을 더하고, 동쪽으로 50여 리의 땅을 더하여 비로소 북방의 대국이 되었다. 제후들은 환공이 군사를 내어 연나라를 구하고, 또한 평정한 오랑캐의 땅을 탐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듣고, 제환공의 위엄을 두려워하며 제나라의 은혜에 감탄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군사를 이끌고 천 리를 달려가서 오랑캐를 친 것은, 주나라 왕실을 위해 충성을 다한 것이다. 오랑캐의 피로 칼을 더럽힌 것이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존왕양이(尊王攘夷)야말로 천하를 바로 잡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라고 했다. 제환공이 노나라 경계의 제수(濟水) 강변에 이르니, 노장공이 제수 강변까지 마중을 나와 환공의 노고를 위로하고 잔치를 베풀어 축하했다. 제환공이 노장공의 친밀하고 두터운 환대에 감사하여, 특별히 두 오랑캐 나라에서 노획한 전리품의 반을 갈라서 주었다. 노장공은 관중의 채읍인 소곡(小谷)의 땅이 노나라 경계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인부들을 보내 성을 쌓게 하여 관중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그때는 노장공 32년이고, 주혜왕(周惠王) 15년(기원전 662년)이었다. 그러나 이해 가을 8월에, 노장공이 죽자 노나라에는 내란이 크게 일어났다.
欲知魯事如何,且看下回分解。
노나라의 일이 어찌 되는지 알고 싶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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