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교육론(敎育論)
( Theory of Education )
서론 (序論)
오늘날 청소년의 탈선(脫線), 성도덕(性道德)의 퇴폐(頹廢), 폭력사건(暴力事件)의 빈발(頻發) 등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은 위기(危機)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혼란을 구할 수 있는 교육이념은 발견되지 않은 채 오늘의 교육은 방향감각(方向感覺)을 잃고 있으며, 사제(師弟)의 도(道)마저 붕괴되고 있다.
즉 학생은 스승을 존경하지 않으며, 스승은 권위(權威)와 정열(情熱)을 상실하고 있다. 그 결과 일부의 스승은 지식을 팔고 학생은 지식을 사는 것같은 관계가 되어 학교는 지식의 매매장(賣買場)으로 전락되어 버린 경향마저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대학가(大學街)에 침투(浸透)하여 학내(學內)를 광란(狂亂)의 장(場)으로 삼았으며, 교육이념(敎育理念) 부재(不在)의 상황속에서 공산주의의 공세를 강화(强化)시키곤 하였다.
민주주의의 교육이념(敎育理念)이란, 주권재민(主權在民), 다수결주의(多數決主義), 권리평등(權利平等) 등의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타인(他人)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한 터 위에서 자기의 권리(權利)를 주장하는 시민(市民), 즉 민주적시민(民主的市民)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육이념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공격(攻擊)하곤 했다. 계급사회에서 지배층이 노동자, 농민들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는가. 계급사회에서 의무(義務)와 사명(使命)을 다 한다는 것은 권력층의 충실한 종이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은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니다.
참다운 민주주의란 인민대중인 노동자(勞動者)나 농민(農民)들을 위한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人民民主主義)여야 한다. 따라서 참된 민주주의교육은 인민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며, 참된 교육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사회를 타도(打倒)하고 사회주의사회(社會主義社會)를 건설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선전한다.
공산주의의 이와 같은 참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착취, 억압, 부정, 부패 등의 사회적(社會的) 구조(構造)악(惡)이 남아있는 한, 설득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와 같은 사회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치관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며, 새로운 교육이념(敎育理念)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이념(敎育理念)은 인간의 성장에 대하여 본래 하나님이 원했던 기준을 근거로 해서 세워져야 한다. 그것은 혼미한 오늘의 교육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미래사회에 대하여 교육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다가오는 미래의 이상사회(理想社會)를 대비하기 위한 교육론이어야 한다. 本 교육론(敎育論) 즉 통일교육론(敎育論)은 바로 이와 같은 교육론으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敎育)이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교육의 이념(理念), 목표(目標), 방법(方法) 등에 관한 것으로서 소위 교육철학(敎育哲學)이 이에 해당하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교육현상을 취급하는 측면으로서 교육과학(敎育科學)이 이에 해당한다.
교육과학(敎育科學)은 교육과정(敎育課程, 커리큘럼), 교육평가(敎育評價), 학습지도(學習指導), 학생지도(學生指導), 교육행정(敎育行政), 교육경영(敎育經營) 등을 연구하는 측면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이 두 가지 측면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관계에 있다. 그리하여 교육철학은 성상적 교육(性相的敎育)이고, 교육과학은 형상적 교육(形狀的敎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적(科學的) 교육학(敎育學)이 과학 존중의 조류(潮流)속에서 크게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철학은 경시(輕視)되어 쇠퇴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육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곧 교육철학의 부재(不在)를 뜻한다.
따라서 오늘날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교육철학의 확립이며, 통일교육론(敎育論)은 바로 그러한 교육철학(敎育哲學)에 해당하는 것이다.
[1] 통일교육론(敎育論)의 원리적(原理的) 근거(根據)
(1) 하나님에의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과 3대축복(三大祝福)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으며(창세기1:27), 창조가 끝난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주관하라(창세기1:28)는 축복(三大祝福)을 내리셨다.
이것이 교육의 근거(根據)가 된다. 즉 교육이란 하나님을 닮도록 자녀를 양육(養育)시키는 것이며,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도록 인도하는 노력인 것이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신상(神相)과 신성(神性)을 닮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신상(성상-형상, 양성-음성, 그리고 개별상)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극히 미숙(未熟)한 상태에 있으며, 성장하면서 점차로 하나님의 신상을 닮아간다. 신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성장하면서, 신상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성상(性相)-형상(形狀), 양성(陽性)-음성(陰性), 개별상(個別相)을, 그리고 신성(神性)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 이법(理法), 창조성(創造性) 등을 온전히 닮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생육(生育)하고 번성(繁盛)하여 만물을 다스리라는 3대축복(三大祝福)을 주셨다.
즉, 生育하라(be fruitful)는 말은 개체의 인격(人格)을 완성하라는 뜻이며,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말은 부부(夫婦)가 되어 자손을 번식(繁殖)하라는 의미이고 땅을 정복(征服)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은 만물을 주관(主管)하라는 의미이다.
이 3대축복(三大祝福)을 성취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신상(神相)과 함께 하나님의 신성(神性), 즉 심정(心情), 이법(理法), 창조성(創造性)을 계승하여 완전성(完全性), 번식성(繁殖性), 주관성(主管性)에 있어서 하나님을 온전히 닮게 되는 것이다(그림 5-1). 다음에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이 3대축복(三大祝福)에서 교육의 이념(理念)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1) 완전성(完全性)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 5:48)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으라는 뜻이다. 완전성이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통일을 말한다.
하나님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심정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원만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를 이루고 있다. 이 상태가 완전성(完全性)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성(完全性)을 닮는다는 것은 인간에 있어서도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성상과 형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성상-형상에는 존재론(存在論)에서 말한 바와 같이 네 가지의 유형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을 말한다. 그래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생심(生心)이 주체, 육심(肉心)이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생심이 육심을 주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심은 진선미(眞善美)의 가치를 추구하고, 육심은 의식주(衣食住) 및 性을 추구한다. 따라서 생심과 육심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진선미(眞善美)의 생활을 제1차적으로,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을 제2차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심과 육심의 수수작용의 중심은 심정(心情)이며 사랑이다. 결국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진선미(眞善美)의 생활을 중심으로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이 영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완전성(完全性)을 닮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렸을 때는 진선미(眞善美)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점차 심정이 발달하여 사랑을 중심한 참된 생활, 선(善)한 생활,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점차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아가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영인체(靈人體)와 육신의 이중적 존재이므로 인간의 성장에는 영인체의 성장과 육신의 성장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육(生育)하라'라는 제1축복(第一祝福)은 육신의 성장의 의미도 있으나, 주로 영인체의 성장, 즉 심령기준(心靈基準)의 향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영인체(靈人體)의 성장이라 하더라도, 육신을 터로 하고서만, 즉 성상(영인체)과 형상(육신)의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해서만 영인체가 성장한다. 이렇게 해서 다 성장하여 하나님의 완전성을 상속받으라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제1(第一)의 예약축복(豫約祝福)이다.
2) 번식성(繁殖性)
인간은 하나님의 번식성(繁殖性)을 닮으라는 것, 즉 인간이 자녀번식의 단계에까지 성장(成長)하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이 양성(陽性), 음성(陰性)의 조화체이듯이 이 하나님의 양성(陽性)-음성(陰性)의 조화를 닮으라는 뜻이다. 인간에 있어서의 양성-음성의 조화란 부부의 조화를 말한다.
하나님의 속성인 성상(性相)-형상(形狀)의 수수작용(통일)과, 양성(陽性)-음성(陰性)의 조화에 의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번식성(繁殖性)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도 마음과 몸의 통일과 양성(陽性)-음성(陰性)(남성과 여성)의 조화에 의하여 자녀를 번식하게 된다.
하나님의 번식성(繁殖性)을 닮으라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양성(陽性)-음성(陰性)이 원만한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결혼을 하여 자녀를 번식하는 자격을 구비하도록 성장하라는 의미이다. 즉 남성(男性)은 남성으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고 여성(女性)은 여성으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남편으로서의 도리(道理), 아내로서의 도리(道理)를 다 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성장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격을 갖춘 후 결혼하여 자녀를 번식(繁殖)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제2(第二)의 예약축복(豫約祝福)이 된다.
3) 주관성(主管性)
그리고 또 인간은 하나님의 주관성을 닮지 않으면 안 된다. 주관성(主管性)을 닮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는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성이란 심정(心情)(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대상(新生體)을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창조성을 가지고 인간 및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고자 한다. 본래, 인간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여받아서 심정(心情)을 중심으로 하여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인간이 완성하면 그와 같은 능력을 구비하게 되며, 이것이 제3(第三)의 예약축복(豫約祝福)이다.
예컨대, 모든 산업활동은 일종의 만물주관에 해당한다. 농민이 논밭을 경작하는 것은 토지에 대한 주관이요, 노동자가 공장에서 기계를 사용하여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기계나 원료에 대한 주관이다. 또 어업(漁業)은 바다나 물고기에 대한 인간의 주관이요, 임업(林業)은 산이나 나무에 대한 인간의 주관이다.
만물을 주관한다는 말은, 만물에 대하여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창조성은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측면에서 보면, 내적 사위기대(四位基臺)와 외적 사위기대(四位基臺)를 형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농업에 있어서 농민은 새로운 아이디어(창조성)를 가지고 창의적(創意的)으로 보다 많은 수확을 올리고자 노력하게 된다. 상업에 있어서도 아이디어와 창의력(創意力)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요컨대 농업, 광업, 공업, 상업, 임업, 어업 등은 모두 인간의 창조성(創造性) 발휘의 대상이며 만물의 주관이다. 과학이나 예술도 만물주관의 범주(範疇)에 들어가며, 사회를 주관하는 것 즉 정치하는 것도 만물주관 속에 속한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계승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성은 심정을 중심한 창조성인데 타락으로 인하여 심정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기 즉 이기심(利己心)을 중심한 창조성이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창조성을 가지고 사회나 자연에 피해(被害)를 끼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전쟁무기의 생산(生産)이라든지 공해증대(公害增大)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학생을 지도함에 있어서 교사들은 새로운 교육론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심정을 중심한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즉 하나님의 주관성을 닮도록 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인간의 성장과정(成長過程)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나, 태어나면서 곧바로 하나님을 닮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일정한 성장기간이 없어서는 안 된다. 피조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소생(蘇生), 장성(長成), 완성(完成)의 3단계에 걸쳐 성장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닮게 된다.
닮되 완전성(完全性), 번식성(繁殖性), 주관성(主管性)을 닮게 된다. 따라서 성장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으로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측면과 하나님의 양음(陽陰)의 조화의 측면,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아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3대축복(三大祝福)이란, 인간이 완성한 후, 하나님의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을 상속받는다는 의미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3대축복은 3대예약축복(三大豫約祝福)이다. 그런데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이 3대축복은 성취되지 않았다.
이 3대축복은 창세기에 있는 대로, 하라는 따위의 명령형식(命令形式)의 축복이다. 비록 인간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명령(命令)은 취소된 것이 아니며, 명령(命令, 축복) 그 자체는 오늘날까지 유효(有效)하다. 이것은 천의(天意)가 인간의 잠재의식(潛在意識)을 통하여 3대명령(命令), 즉 3대축복을 성취하도록 작용해 온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무의식중에도 3대축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즉 타락사회에 있으면서도 인간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그와 같은 천의(天意)에 따라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인격적(人格的)으로 성장하여, 좋은 상대를 찾아서 가정을 만들고 자연을 지배하거나 사회를 개선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이다.
인간에게 성장욕(成長欲), 결혼욕(結婚欲), 지배욕(支配欲), 개선욕(改善欲) 등이 있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망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달성되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인간시조의 타락 때문이었다.
여하 간에 본연(本然)의 세계에 있어서, 인간은 3대축복을 완성하기 위하여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이외의 만물도 성장한다. 그런데 만물은 원리자체(原理自體)의 자율성과 주관성에 의해 성장한다. 즉 생명(生命)이 지향하는 대로 맡겨두면 자연히 성장하는 것이다.
원리자체의 자율성(自律性), 주관성(主管性)이란 바로 생명(生命)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육신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원리자체의 자율성(自律性)과 주관성(主管性)에 의해 성장하지만, 영인체의 성장은 그렇지 않다. 영인체는 책임분담을 완수할 때에만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인간에게 책임분담(責任分擔)이 부과된 것은 그 때문이다. 책임분담(責任分擔)에 의한 성장이란 인간이 자신의 책임과 노력에 의해 인격을 향상(向上)시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의사로써 규범원리(規範原理)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체험)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류시조(人類始祖)인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계명(戒命)을 지키면서 성장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한 다음, 부부가 되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전인류를 대표하는 최초의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자기의 책임분담 뿐만 아니라 후손(後孫)의 대부분의 책임분담까지도 메워져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干涉)하시지 않는다.
아담과 해와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와 같은 무거운 책임분담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완수하게 되면, 그 자손들은 지극히 적은 분량(分量)의 책임분담만으로도, 즉 부모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완성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경우, 이 3대축복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순전히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완성한 뒤, 자녀들이 그 부모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른다는 말은 부모의 가르침 즉 부모의 교육을 자식들이 받아야 함을 뜻한다.
여기에 부모(父母)의 자녀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생긴다. 바꾸어 말하면 자녀(子女)가 해야 할 책임분담을 위해서 부모의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에 교육의 이념(理念)이 세워진다.
즉 부모가 자녀들을 가르쳐서 3대축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본래의 장소는 부모가 상주(常住)하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정보량이나, 교육내용이 증대(增大)하게 되어 현실적으로 부모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교육의 장소는 필연적(必然的)으로 가정에서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로 옮겨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대신 학교에서 스승이 부모를 대신하여 교육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부모의 심정(心情)으로 부모를 대신해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본래의 교육의 모습이다.
(3) 교육(敎育)의 3대이념(三大理念)
이리하여 통일교육론에 있어서의 교육(敎育)의 목표는 피교육자(被敎育者)로 하여금 하나님의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을 닮게 하는데 있다. 이것이 통일교육론의 교육의 이념(理念)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는 것을 개성완성(個性完成)이라 한다.
개성완성은 제1축복(第一祝福)의 완성으로서 인격의 완성을 의미한다. 또 번식성을 닮는 것을 가정완성(家庭完成)이라 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장차 결혼하여 부부의 조화(調和)를 나타내면서 원만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즉 제2축복(第二祝福)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관성을 닮는 것을 주관성 완성이라 한다. 이것은 만물의 주관을 위해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곧 제3축복(第三祝福)의 완성을 뜻한다.
이리하여 통일교육론에 있어서의 교육의 3대이념은 제1축복완성을 위한 개성완성(個性完成)과 제2축복완성을 위한 가정완성(家庭完成)과 제3축복완성을 위한 주관성완성(主管性完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