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 하늘 나라 청지기 - 5. 축복의 은사를 받고 1 어느덧 통영에서의 만 4년이라는 기간이 지나갔다. 어린 학생들이 성장하여 청년이 되고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요 아기 엄마들이 되었다. 만일 어리다고 소홀하게 대했다면 결코 오늘의 기쁨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2 뿌려진 씨앗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 맺기까지는 오랜 정성이 필요한 것 같이 말씀의 씨앗을 귀하게 심고 정성껏 가꾸는 수고가 있어야 아름다운 심정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남보다 부족하니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남들이 10리를 가면 나는 20리를 가고 남이 한 시간 말씀하면 나는 두 시간을 하였다.
3 선생님께서 하사해 주신 자전거 순회는 잊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통영군, 거제군, 고성군, 남해군 등 모두 24지역이 나의 관할 지역이다. 어느 골짜기 물맛이 어떻다는 것을 지금은 알 것 같았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또 졸라도 시장기는 더해가니 물배라도 채워야겠기에 자연히 물맛을 알게 된다. 밥을 많이 주는 집은 조상의 공적이 많다고 느끼던 시절이다. 4 여름 날 비지땀을 흘리면서 순회하노라면 지치기 마련이다. 누가 귀한 보물인 자전거를 가져갈까 봐 허리띠를 풀어 자전거와 바지에 같이 묶고 길가 숲에서 자기도 했다. 또 밤하늘의 별들을 세면서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잔 심정을 생각하면서 밤을 새우기도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5 하나님께서 아들딸에게 외면당하시고 선지 선열들이 피 땀 흘리며 뜻을 이루려 수고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 나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보다 나은 새세계 건설의 역군으로 모래알 하나와 같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순회 일정에 따라 자전거 페달을 힘 있게 밟았다.
6 1962년 6월 4일, 72가정의 일원으로 과분하게 축복을 받았다. 상경하라는 본부의 지시대로 청파동으로 갔다. 주시는 말씀과 지승도 할머니의 영계에서 바라는 축복 받을 자격에 대한 말씀을 듣고 보니 자신이 없었다. 7 항상 외로울 때나 답답할 때 김성일씨 (당시 진주 인도자)와 의논하던 버릇대로 “우리 내려갑시다”라고 했다. 성일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우리 구경이나 하다가 갑시다”라고 했다. 구경이라도 하기 위하여 주저앉은 것이 축복의 은사를 받게 된 것이다. 8 여러 가지 미비하고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어려운 때 봉철이는 고생했어” 하시며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다. “뜻 위한 고생에는 하나님도 머리 숙인다” 라는 선생님 말씀을 명심하면서 허락하신 귀한 대상인 김진경씨와 축복을 받게 되었다.
9 그러나 은사 후의 시험이라고 군에서 앓았던 신장염이 재발되어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었다. 병원에 입원할 돈도 약 사 먹을 돈도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하늘은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작고하신 황진후 식구님의 수고로 메디칼센터에 무료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입원 10일 만에 퇴원했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