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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1
창세기 1장 1절 [4장 1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대한 고백인데, 1항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그 자신의 뜻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의논에 의해 장차 일어날 일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정하시되 불변토록 정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작정을 어떻게 실행하시는가 할 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문은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역사 안에서 실행하십니다. 참고로 대요리문답은 14문이 이 내용을 다루는데, 이렇게 답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오한 예지와 그 자신의 뜻의 자유롭고 불변하는 의논에 따라 자신의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일하심 안에서 실행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 전에 장차 일어날 일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불변토록 정하셨다고 할 때 그 정하신 바를 창조의 역사와 섭리의 역사를 통해 실행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3장 작정에 이어 제4장에서 창조를, 제5장에서 섭리를 다룹니다. 그리고 이어서 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인간의 타락과 죄,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과 구원의 서정 등에 대하여 다루게 됩니다.
오늘과 다음 주는 제4장 창조에 대하여 살필 텐데, 창조에 대한 고백은 두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세상 만물에 대한 창조이고, 두 번째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사람을 창조하신 것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오늘은 1항 세상 만물에 대한 창조로,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히1:2, 요1:2,3, 창1:2, 욥26:13, 33:4) 그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롬1:20, 렘10:12, 시104:24, 33:5,6) 태초에 무로부터 세상과 거기 속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6일 동안 창조하시기를 기쁘게 여기셨고 모든 것이 매우 선했습니다(창1, 히11:3, 골1:16, 행17:24).
먼저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신앙고백서가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이십니다. 성경은 바로 이 사실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 3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살폈는데, 그때 하나님은 모든 외적 사역들에 있어서 위격들에 따라 나누어질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한 실체아래에서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위격 상호간의 관계를 따라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되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할 수 없으며 분리되지 않은 채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다만 성경 자체가 어떤 위격을 명시하고 있다면 그때는 그 위격으로 말해야 하지만, 그 위격을 말했다고 해서 다른 위격과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정리해 두셔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 1장 1절은 어떤 위격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4장 24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조 역시 하나님 홀로의 사역임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때로 특정 위격에서 창조사역을 돌리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여기서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자를 통해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1절에서 3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전체 안에서 이 말씀은 성부와 성자에 대한 말씀인데, ‘말씀’이신 하나님이 성자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욥기 33장 4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앞 두 구절은 성부께서 성자로 말미암아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신다면, 욥기 33장은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다,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 사람을 지으셨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시편 104편 30절에서도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특별히 시편 33편 6절인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는 말씀은 세 위격을 동시에 언급한 말씀으로 이해가 되는데, 요한복음 1장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여호와의 말씀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즉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다시 말해 성령 하나님으로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으로 말하든, 아니면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혹은 성부께서 성령으로 통하여 창조하셨다고 하든 언제나 분리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두 위격만 말할지라도, 그래서 한 위격이 언급되고 있지 않을지라도 삼위 하나님은 분리되지 않는 한 분 하나님으로 분리되지 않은 채 역사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의 구조에 있어서 창조를 성부의 사역으로, 구속을 성자의 사역으로, 구속하신 바의 적용을 성령의 사역으로 돌리는 것은 각 사역의 대표적인 성격을 돌리는 것이지 그 사역이 한 위격만의 사역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작정의 실행으로서의 창조 그리고 섭리의 모든 역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다음으로 창조는 하나님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사역입니다. 사실 영원 전부터 장차 일어날 일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불변토록 정하신다고 할 때 작정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위해 특별히 선택과 유기를 두기도 했던 겁니다. 작정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작정의 실행의 목적도 사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정의 실행으로서의 창조, 또한 작정의 실행으로서의 섭리, 둘 다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시는데, 창조를 통한 이러한 영광은 제한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사실은 창조된 세계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부터 이 사실을 분명하고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소위 일반계시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도록 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가 만드신 모든 만물을 통해 자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드러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6일 동안 질서를 따라 만드셨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봅니다. 또한 모든 만물을 만드실 때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난 뒤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평가를 하십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봅니다.
문제는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만물을 통해 하나님 지식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버렸고, 그 결과 스스로는 지혜 있다고 하면서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롬1:21-23). 그래서 불신자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참된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창조하셨지만, 불신자가 창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를 통해 그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자신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종종 드러내십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시편 33편 6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편 104편 24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30절도 언급했지만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고 하신 후 시편의 기록자는 이어지는 31절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데, 33절입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즉 누구만이 창조를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신자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있는 신자라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하면서 그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주목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신앙고백서는 창조가 태초에 무로부터의 창조요, 세상과 거기 속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창조임을 고백합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란 말은 창조하기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공간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우주라는 곳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유일하게 계신 하나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신 것이 창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는데, 존재하게 된 인간의 관점에서 위로 하늘에 있는 모든 것, 또한 아래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이라고 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만이 아니라, 우리가 볼 수 없는 우주라는 곳도 다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땅이라고 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땅만이 아니라, 우리가 볼 수 없는 땅 속까지 다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도 만드셨는데,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진 인격체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인 천사들까지 다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지구라는 세상입니다. 지구는 보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상만이 아니라 지금은 보이지 않는 천상도 만드셨습니다. 천상만 만드셨는가? 택자가 있는가 하면 유기자가 있다고 할 때 그들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될 곳도 만드셨습니다. 그곳은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할 때, 거기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할 때 이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할 때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두셔야 하는데, 다음 주에 보게 될 사람은 어떻게 창조됩니까?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신앙고백서는 분명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하지만, 사람은 이미 만드신 것을 도구로 해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고백서가 잘못되었는가? 실제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존재하도록 하신 것은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할 수 있지만, 존재하도록 만든 그것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은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로부터의 창조는 없는 것 가운데 있게 하시는 것이든, 아니면 있게 하신 것으로 있게 하시는 것이든 하나님께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맨 처음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있게 하셨다는 것이고, 그렇게 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십니다. 신앙고백서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영원한 권능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정확하게 창세기 1장을 통해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반복되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을 만드실 때는 분명 흙으로 만드셨다고 되어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도 말씀하셔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신 것이나, 있게 하신 것을 도구로 해서 있게 하신 것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사람의 경우 흙이라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을 모른 것이 아니라,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무로부터의 창조를 창세기 1장에 근거해 통합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모든 만물의 유일한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피조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중에 섭리를 살피겠지만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없이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덴 지역에서 전도할 때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17:28)고 말하기도 했던 겁니다. 즉 살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를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타락이 이러한 사실을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무로부터의 창조, 세상과 거기에 속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를 참되게 믿을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께서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신 자 외에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험 또한 관찰 등을 통해 알게 되고 믿게 되지만, 창조만큼은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대략을 유일하게 보신 분은 모든 만물을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6일 창조 가운데 맨 마지막에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미 존재하게 된 세상에 사람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신앙고백서는 6일 동안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라면 굳이 6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루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지식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이면 말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6일이라는 시간을 두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일단 창조의 대략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 빛을 만드셨고, 빛과 어둠을 나누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둘째 날, 궁창을 만드시면서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셋째 날, 아래에 있는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면서 뭍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뭍을 땅이라 부르셨고, 모인 물을 바다로 부르셨습니다. 특별히 땅에는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넷째 날,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을 만드심으로 낮과 밤을 나뉘게 하시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다섯 째 날, 하늘 궁창의 새와 바다의 고기들을 만드셨습니다. 마지막 날 여섯 째 날, 땅의 생물을 만드셨는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난 뒤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서를 보게 됩니다. 처음 3일은 소위 배경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있게 하시는 것들을 나중 3일에 만드시는데, 첫째 날과 넷째 날, 둘째 날과 다섯째 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을 상응하게 하여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질서를 따라 만드셨습니다. 능력으로 하자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런 질서를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또한 소요리문답 강론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넷째 날 만드신 것을 조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낮과 밤이 첫째 날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반복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입니다. 그런데 낮과 밤을 주관하는 해와 달, 그리고 별을 넷째 날 만드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도구를 통해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은 도구 없이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주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셋째 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셨는데, 이런 것들은 해가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합니다. 때문에 인과론적으로 해가 먼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를 넷째 날 만드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일반적인 이해는 나무와 풀이 자라기 위해서는 해가 있어야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실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자라게 하신다는 겁니다. 누구만이 진정한 주체인가? 하나님만이 진정한 주체라는 것입니다.
6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하루는 몇 시간인가 할 때 우리는 24시간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지구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과학에서는 지구가 약 45억 년 전에,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은 약 30억 년 전에, 현대의 인류는 2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고 창세기 1장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의해야 될 해석입니다. 이 부분은 몇몇 책을 통해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간격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의 간격이 매우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이론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창세기 1장 2절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입니다. 간격 이론은 이 2절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1절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지만 2절 혼돈하고 공허하게 된 상태에 이르기까지 오래 시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절부터 시작해서 6일 동안의 창조를 다시금 하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은 첫 창조가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 창조의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날-시대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육일 동안의 각 날을 한 시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의하면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해, 달, 별이 넷째 날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그 이후와 다른 날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첫째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질서가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첫 번째 간격 이론과 비슷한데,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셨다고 할 때 각 날 사이에 긴 시간이 존재한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6일 창조 후 제7일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날 이후 긴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안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날이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계속 있는데도 제7일에 안식하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계속해서 창조의 사역을 행하시고 난 뒤 그것을 마쳤다는 의미에서 제7일 안식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식일 명령이 있게 되는 겁니다.
그 외에도 몇몇 이론들이 있지만, 지구의 역사를 길게 보려는 해석들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정요석 교수는 이러한 해석들에 대하여 모두 성경보다 현대과학이 더 옳다는 전제 하에서 성경의 해석을 현대과학에 맞추려는 시도라고 말합니다. 물론 현대과학이 인류에게 여러 현상에 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하며 생활에 여러 편리함을 안겨준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와 생명의 기원과 사항들에 대해서까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김병훈 교수의 글도 조금 읽어드리면(http://repress.kr/19693/), 현대과학 이론은 여전히 수정을 겪고 있으며, 또한 이 세계의 창조의 연대와 관련하여서는 많은 점에 있어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주장은 현대의 주류 과학이론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아직 진리로 확정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진리와 자연의 진리는 둘 다 하나님의 진리이므로 모순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와 관련한 해석들 가운데 ‘6일 동안’의 창조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들은 현대과학의 주장을 자연에 대한 확정적 진리로 인정을 하고, 그것에 따라서 성경의 해석을 조정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창조와 연대에 관한 현대과학의 주장들을 진리로 확정을 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의문점들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을 준거로 하여 ‘24시간-6일’ 창조론을 버리는 것은 지극히 경솔한 성경 해석적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신앙고백서로 오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태초에 무로부터 세상과 거기에 속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6일 동안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무로부터 모든 것을 6일 동안 창조하시기를 기쁘게 여기셨고 모든 것이 매우 선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작정하시고, 작정하신 그대로 실행하여 창조하신다고 할 때 거기에 어떻게 기뻐하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달리 말하면 작정하시고, 작정하신대로 실행하시는 창조에 있어서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행하신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조에 대한 작정을 하지 않으셨다면 창조 자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도 홀로 충만히 계실 뿐만 아니라, 부족함이 전혀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때문에 창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드시 창조해야 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태내기 위해 영원 전에 작정하셨습니다. 또한 태초에 작정의 실행으로서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하나님은 모든 창조된 것들을 보시면서 매우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이 말씀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내용 가운데 하나인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거기에 죄나 악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창조된 모든 것은 매우 선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 선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세상 가운데 죄가 들어온 것은 언제입니까? 물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이는 것들의 타락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타락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 뱀을 도구로 한 사단이 유혹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단에 대하여 유다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그러니까 사람의 타락보다 앞서 사단의 타락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드셨다고 할 때 보이지 않는 천사들도 만드셨고, 창세기 1장 전체를 통해 증거 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실 만큼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결국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창조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선하지 않은 것을 만든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만드시고 난 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만큼, 그런 수준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경우는 그 일부가 타락한 것이고, 사람은 아담 안에서 모두가 타락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비록 타락까지도 작정하셨다 할지라도 죄의 책임은 하나님이 아닌 타락한 자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타락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택자를 통해서도 나타내시고 유기자를 통해서도 나타내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권능이 있고,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며,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러나 타락 이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출 수 없었지만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하셨기 때문에, 참 믿음 안에서 우리의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높이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높이 찬양함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