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코스 : 용추계곡 버스 정류장 - 가평역
경기 둘레길 조성자는 20코스에 대하여 ”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고 무릉도원을 빠져나와 인간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구간이다. 오랜만에 보는 찻길이 오히려 반갑다. “고 하였다.
20코스의 시작점인 용추계곡 버스정류장에 이르니 어젯밤에 내린 눈이 길바닥을 하얗게 덮었다. 찬바람도 불어온다. 장갑을 끼게 하는 날씨였지만 고요한 아침의 용추계곡의 물소리에 탄성을 자아 냈다.
용추계곡의 비경은 아직 다하지 않고 숲길인 소릿길로 계속되었다.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혀 흐르니 소리가 청아하다. 언제 들어도 또다시 듣고 싶은 소리를 들으며 징검다리를 건너니 용추구곡 중 제2곡인 무송암이다.
아름다운 비경에는 설화도 많다. 무송암에는 어떠한 설화를 지니고 있을까 ”용추계곡의 미륵 바위에서 소원을 빌고 바위를 떼어 끓여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을 그대로 행하였더니 아기를 낳아 그 이후 아이를 못 낳은 여인들이 이곳에 와서 빌면 반드시 아이를 낳는다“ 고 하였다.
무송암의 사연을 듣고 숲길을 걸어간다. 길바닥의 나뭇잎들은 걸음걸음에 찬사를 표시함인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무엇인가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새소리가 정답게 들리고 바람은 가슴을 차갑게 하였지만, 그 소리 또한 정다웠다.
소릿길에서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연인산 숲 놀이터를 지나니 골짜기는 넓어지며 계곡의 물은 더욱 세차게 흘렀다. 소릿길에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역시 압권은 계곡의 바위와 부딪혀 흐르는 물소리가 압권이었다.
연인산 탐방 안내소에 이르러 용추계곡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아쉬웠다. 보고 또 보아도 싫지 않을 용추계곡을 경기 둘레길 19코스, 20코스를 걸으면서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 허전하였다.
용추계곡의 9가지 절경인 제1곡인 와룡추, 2곡인 무송맘, 3곡인 탁영뢰, 4곡인 고슬탄, 5곡인 암사대, 6곡인 추월담, 7곡인 청풍협, 8곡인 귀유연, 9곡인 농원계를 하나하나 찾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걸어가는데 연인산이 미소로 화답하는 것 같았다. 승안1교를 건너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지 용추계곡은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청안천(승안천)으로 거듭났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는 옛말처럼 청안천은 맑게 흐르고 있다. 자연의 계곡 길에서 사람이 삶이 서린 자동차의 길을 걸어간다. 60사단 군부대의 담벼락을 따라 가는길이 되어 시냇물과도 헤어졌으나 자리대 버스정류장에 이르러 다시 천변을 따라 걸어간다.
천변의 둑길을 따라 걸어가다 60사단 군부대 정문 앞의 승안교를 건너 가평천을 왼쪽에 두고 걸어간다. 가평군을 대표하는 가평천을 벗으로 삼아 걸어가는 가평 제방길은 오고가는 사람들이 서로가 손을 흔들며 지나갈 수있었다.
”가평천(加平川)은 한강 수계에 속하는 북한강의 한 지류로서,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보납산 남쪽의 집수역을 경계로 하는 지방 2급 하천이다. 가평천은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로부터 흘러나온 물줄기가 모여 만든 북한강의 1차 지류 하천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 대전
오늘은 연인산에서 내린 물길을 따라 가평천에 이르렀지만, 경기 1봉인 화악산, 경기 2봉인 명지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가평천에 이르고 싶은 충동이 실현될 수가 있기를 바라며 걸어가는데 다소 멀리 마루산과 보납산이 가슴을 흔든다.
우리나라 70%가 산이라 이 땅 어디를 가도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가 있다. 산을 만나게 되면 비록 이름을 알지 못하더라도 곧바로 그 산은 친구가 되니 어쩌면 우리 땅을 걷는 것은 산을 찾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내가 가는 길은 우리의 역사를 만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얼을 찾는 것이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탐미하는 것이다. 산은 내가 가는 길을 더욱 즐거움과 기쁨으로 이끄는 데 크게 역할을 하는 것이다.
1896년 보납산에서 위대한 항일 의병 전쟁이 있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있었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일본 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쳐지고 국권을 바로 세우고자 의병들이 봉기하였지만, 관군에 의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고 국가권력마저 일본에 침탈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국권을 되찾고자 자주적으로 일어난 의거를 감싸지 못할망정 총, 칼로 무참하게 짓밟을 수가 있을까?
우리의 비극은 위정자들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력으로 제압하려는데 있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체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은 바로 하늘의 뜻일진대 왜 국민의 뜻에 순응하지 못할까?
그것은 탐욕 때문이며 그 탐욕은 바로 정권욕이다. 정권욕이 어찌 민심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설령 민심을 이길 수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이며 끝내 역사의 승자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백성의 피를 흘리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음이 비극이다.
그러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도 최고 통치자의 절대 덕목은 국민의 뜻에 순응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소신과 신념을 지녀야 하고 그러한 용기를 지닌 자들이 이 땅의 정치 세계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
보납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의로운 항쟁에 생각에 잠기니 한숨에 달려가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보납산에 오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가평교에 이르니 둘레길은 가평 잣고을 시장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잣으로 유명한 고장 가평, 그리하여 시장의 명칭 또한 잣고을 시장이다. 시장에 이르니 장날이 아니어서 인지 가게의 문은 닫혀있다. 때가 점심시간이라 허기진 배를 채워도 좋을 텐데 이리저리 기웃거려도 식당이 마땅하지 않다.
이곳은 전통시장이지, 식당가는 아니다는 생각으로 시장을 벗어나 마을회관을 지나 자라섬 주차장에 이르러 점심을 하고자 배낭을 내렸다. 자라섬은 재즈 음악과 자연, 휴식, 가족과 함께 어울리는 소풍형 축제인 재즈 페스티벌로 이름이 나 있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상품과 콘텐츠를 이용하는 음악 축제, 생각만 해봐도 보고 싶다.
자라섬은 1943년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북한강에 생긴 섬으로 동, 서, 중, 남도 4개 섬 이루어져 있는데 1986년 가평군 지명위원회가 맞은편의 자라목 마을과 자라선 등에 착안하여 ‘자라섬’으로 명명하였는데 지역 사람들은 자라처럼 생긴 언덕이 바라보고 있는 섬이라 하여 자라섬을 이름하였다고 한다.
가평천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자라섬 한 모퉁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하고 가평천과 헤어져 시내로 진입하여 가평역에 이르렀다. 과거에 왔던 기억은 없고 역사를 새로이 건축한 것을 보니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가평 읍내의 외곽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