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로는 강원북부에 약 200mm의 폭우예상
하지만 산악회 총무는
오후 3시 이후에 비가 내리는 산행에 문제 없다고 꼭 산행에 참석하시라~~~
총무의 독려 문자가 아니라도
비 내리면 비 맞는 설악을 감상하며 오랫만에 낫술이나 거나하게 취해 보는것도 한폭의 그림이려니....
하지만 총무의 예상이 적중하면서 낫술에 취하기는 물건너 갔다
설악 소공원 입구에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냄에 엿장수아씨...."내가 준 카메라는?"
"오늘은 딸아이의 미러리스 카메라 시험 좀 해보고!!"
첫 판부터 카메라 들이대자 함박 웃음지으며..."요번에도 내 사진이 도배되겄네 ㅎㅎ"
소공원 입구에서 단체 기념촬영후
문화재 관람 단체 입장료를 내고 인원 점검후 산행은 시작되는데
문화재 관람이 아닌 산행이 목적인 산꾼들에게
설악산 신흥사와 지리산 천은사의 입장료는 공공연히 갈취 당하는 느낌
지난 2007년 노무현 정권때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 되었지만
사찰에서는“문화재관람료”란 이름으로 사찰출입을 하지 않은 등산객들 까지 입장료를 계속 받고 있다
천은사의 경우 2015년 이미 광주고법에서는
"천은사가 지리산 탐방객에게 입장료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을 하였으나
정작 천은사와 불교계는 사법부의 판결까지 무시해 국민들의 눈총이 뜨겁다 못해 불교를 폄하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작태가 단지 불교계의 욕심뿐만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국립공원 관리 공단이나 지방 자치단체들이 당장 눈앞의 달콤한 유혹때문에 탐욕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순천 선암사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현수막까지 걸어 었지만
당시 선암사재산관리권자인 순천시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한 적이 있다
소공원을 지난 신흥사 입구에서 천불동계곡 탐방팀과 울산바위 탐방팀이 갈라졌고.....
울산바위 탐방팀중 1년 선배 한분이
"와~우~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울산바위 처음 와 보고 꼭 45년만 이닷"
거의 모든 소위 7080세대 들에게 설악산은 수학여행때 처음 첩하게 되고
그 수학여행중 흡연과 음주외에 약간의 탈선은 소중한 하나의 추억거리로 영원히 자리잡는다
내가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이곳 생활문화는 상당한 충격이였다
지금은 설악동이 모두 정비되었지만
지금의 소공원 주변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숙박업소들에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면
음식을 빼곳히 차려놓은 널직한 밥상을 댓개씩 포개서 머리에 올려 놓고 나르는 풍경이나
설악산 구석구석 식당이나 휴계소에 물건을 지고 날라주는 지게꾼의 거칠고,억센 다리통 근육은 차라리 성스러워 보였다
얼마전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씨 이야기가 큰 메세지를 남겼다
딱 내 나이의 또래에 160Cm가 채 안되는 임기종씨는
우리가 수학여행 갔을때 쯤인 16살에 지게를 지기릉 시작해 40년을 넘게 설악산을 지켰다
그는 LPG 가스통을 비롯해
수많은 짐들을 지게에 지고 하루에도 몇번씩 설악산 곳곳을 오르내린다
그렇게 힘들게 짐을 나르면서 받는 수고비는 40Kg에 2만원 정도
임씨는 자기의 수고비에 대해.....
"아내가 장애인이여서 정부에서 생활비를 보조 받아요
내가 술을 마시거나 헛되게 돈을 쓰지 않으니 그걸로도 먹고 살수 있어요
그러니 내가 지게를 져서 버는 돈은 남는 돈이고,그것으로 생전에 남들을 도울수 있어요!!!
그는 넉넉치 않은 생활을 하면서 한달에 20만원 어치 과자를 사들고 장애인 시설을 찿고
속초에 사는 다섯분의 독거 노인들에게 매달 10Kg의 쌀과 라면을 후원하고 있다
십수년째 이어지는 임씨의 선행이 알려져 상을 받았을때
받은 상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불우 독거노인들을 제주도 여행을 지키고 물품을 사서 필요한 곳에 기부하였다
그에게 기부의 이유를 물었을때....
"나는 정말 보잘것 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런 내가 남들을 위해 뭔가 해줄수 있고
나도 칭찬을 받을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남들을 도우면서 내 삶에 가치관과 자신감을 가졌어요!!"
하지만 이제는
설악산 생태복원 사업으로 계조암 부근의 매점이 정비 되면서
울산바위를 오르면서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의 모습은 볼수가 없다
신흥사 북동쪽 3Km지점에 위치한 석굴법당 계조암
이곳 계조암에서 자장,봉산,봉정등 세조사가 수행했으며
뒤를 이어 의상,원효등 "조사" 칭호를 얻을 만한 스님들이 도를 이었다 하여 "계조암"
이 석굴 법당은 예로부터 영험있는 수행터로 10년 공부를 5년 만에 끝낼수 있는곳
또한 재가 불자들이 일심수행하면 소원이 성취되는 신통한 기도처로 불자의 발길이 끊임이 없다
계조암 바로 앞에 소가 누운 모양을 한 넓고 평평한 와우암 또는
100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여 식당암이라 불리는 반석이 있고, 그 위에 흔들바위
흔들바위를 와우암의 머리 부분에 있다 하여 우각석 또는 쇠바위라고도 한다
원래는 쇠뿔처럼 2개의 바위가 있었으나
불가의 영기가 왕성함을 시기한 풍수지리가가 1개를 굴러 떨어뜨렸다는 말이 전한다
요즘은 울산바위 명성이 전 같지는 않지만
70년대 초반에는 설악산 최고의 명소였고,...
일반인 보다는 수학여행온 학생들로 넘쳐나
와우암이나 계조암 앞 넓지 않은 마당에서는 각 학교의 장기자랑 각축장이 되었다
우리 학교가 계조암 앞에서 자리를 폈을때
곧이어 따라 들어온 학교가 허리띠 졸라매는 교복으로 유명한 풍문여고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우리학교는
수학여행 한달 전부터 당시에 흔치 않았던 노래책을
악보와 함께 프린트해 책처럼 만들어 단체로 노래연습은 물론....
당시에 유행했던 엉덩이와 허리를 마구 흔들어대던 고고춤은 기본이요
끼있는 학생들은 발끝에서 허리를 거쳐 머리 위까지 비틀어대던 샹하이 춤을 배우고 연습한 실력을
여고생들 앞에서 제대로 실력발휘하려고 땀을 흘릴때
한 여고생이 나에게 던져준 손수건 한장에 분위기는 최고로 올랐지만 나는 뒤 감당 매우 어설퍼 얼굴만 뻘거케 달아 올랐다
중학교 사춘기때 여성편력에 대한 한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교장선생님 딸인 누구는 원래 나보다 일년 선배였다
하지만 그녀는 중학교에 다니다가 몸이 아파 일년을 휴학했다 복학했고
그녀의 느낌는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 여주인공 윤숙이와 비슷해 보여 호감이 갔고
그녀 역시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느것을 싫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녀와 교재라기 보다는 서로간 어떤 신뢰감을 갇고 지내던 어느날
그녀가 나에게 던지는 충격적인 말 한마디.....
"여중에서 짱인 순이가가 어제 학교에서
너를 자기걸로 찍어 놨다면 나한테 앞으로 너 만나지 말래"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은 학교에서 선포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에 우리집은 탑동초등학교 앞에서 담배가게겸 쪼그만 하코방을 열었었는데
방가후 내가 하코방에 있을때면 서,너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하코방에 처들어 왔다
나는 그녀만 보면 후들후들 어색함은 물론 어떻게 처신을 할줄 몰라 허둥대었고
저 멀리서 그녀의 알당들이 나타나는것을 미리 감지 하면 후다닥 뒷문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뒷문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본 큰 누나가 재밋다는듯
"이 바보야 여학생이 너 좋다고 쫗아 다니는것이 보통일이냐,개~얼굴도 예쁘드만 사겨봐 ㅎ ㅎ~~"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어떤 한마디의 말도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녀는 몇달을 그렇게 우리가게를 들랑거리가 제풀에 지처 떨어져 나간줄 알았는데
그녀도,나도 고등학교에 진학후
친구를 통해 나의 의사를 타진하는 용기에 어떤 보상적 이야기 한마디도 못해주었다
그리고 몸이 아팠던 교장선생님 딸은 수녀가 되었다는 소문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풍문여고생이 던져준 손수건을 얼떨결에 받고
어쩔줄 몰라 허둥대는 소심한 어설픔의 기역은 지금 생각해도 애처롭기 짝이 없다
울산바위 정상을 향해 걷는 철계단은
넓직하고 안전하게 잘 정비되어 그리 힘들줄 모르고 오르다 보면 정상이 그리 멀지가 않다
과거"공포의 808 철계단"은
2013년 철거 되고 현계단이 설치 되면서 공간과 촉감이 널직하고, 부드럽다
높고 낮음을 떠나 어디든 정상에 선다는 것이 항상 뿌듯하고 상쾌하지만
저 멀리 학사평 한가운데 군시절 제대 말년 6개월을 보낸 전차대대가 한눈에 들어오니 그 감회는 배가된다
나는 저곳에서 80년 10월부터 81년 4월까지....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맨살로 보여주는 경치 뿐만 아니라
기상조건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신비한 비경에 몸서리 치기도 했었고
새벽에 훈련에 출동하는 탱크 위에서 바라보는 새빨간 오메가의 동해 일출은 작은 보너스였다
취침점호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으려면
저멀리 오징어잡이 채낚시 어선의 강렬한 불빛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아!! 이대로는 못자겠다!!!"
대대내 각중대의 동기 6명에게 통기를 넣는다..."집합하자!!"
병장 동기 6명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집합한 동기들은 슬금슬금 대대 울타리를 넘어 학사평을 가로질러 걷는다
지금은 미시령이 개통후 학사평이 개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당시는 민가도 겨우 한두채뿐 억새만 무성한 널고,널은 벌판이였다
그 여섯명의 발걸음은 조양동 청초호 부근 주막에서 멈추고 겨울밤이 결코 길지 않음을 통감을 한다
이런 일탈의 행동들은 하면 할수록 과감해진다,
더구나 본부중대 인사계 사병이 동기생이다
주말이면 단체 외출증을 끊어 집단외출이다
젊은 혈기의 장성들은 날이면 날마다 붙들고 사는 설악산은 눈에 들어 오지않는다
그렇다면 좁은 속초시내에서 갈곳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언변좋은 동기가 속초항 어느 횟집에 외상장부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 외상장부는 두고,두고 화근이였다
동기들은 전역전날까지 이곳을 들랑거렸고 대대에 복귀중 퇴근하던 간부들과 마찰이 있어
전역신고때 중대장으로 이단 옆차기가 들어오는걸 X 카바로 막아낸 동기 선임이 바로 나!!!ㅋㅋ
우여골절 속에 전역신고를 마친후
우리는 전역비로 받은 돈 전부를 모아 외상값을 값으려 했지만 돈이 좀 부족했었는데
횟집 아줌마왈~~"나중에 여자 친구 생겨서 속초 놀러올 꼭 값어!!"
울산바위를 하산하는 발걸음은 산행시간이 짧아 매우 여유가 있다
그 여유속에 바라보는 금강송은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변함에도 다른지역보다 오래 건재 할듯해 보인다
암석지대에서는 활엽수들이 활착하기에 조건이 좋지 않아
관리공단에서 조금만 노력한다면 이 아름다운 노송들을 두고두고 감상할수 있진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