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음 자료를 읽고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시오. [4점]
(가) 西泰 利瑪竇는 大西 歐羅巴 意大利亞國 사람이다. … (중략) … 처음 말과 글이 未達하였으나, 苦心 學習하고 圖書와 人物에 대해 다른 이에게 가르침을 求하니, ㉠그는 점차 言語를 익히고 文字가 通하게 되었으며, 이내 六經과 子史 등 책의 意義에 通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燕都에 와서 ㉡皇帝에게 天主聖像・聖母像・天主經典 등을 獻上하였다. … (중략) … 交遊가 넓었으며, 著述도 많았다. 때로 名公과 學問을 論하며, 종종 數學을 言及하였다. ㉢徐光啟・李之藻와 여러 書籍을 飜譯하였고, 모두 世間에 퍼졌다. - 大西利先生行蹟 -
(나) 湯若望의 처음 이름은 約翰亞當沙耳, 姓은 方白耳, 日耳曼國사람이다. 睿親王이 湯若望에게 曆法을 修正하도록 命하였다. … (중략) … 7월 禮部에서 曆法 頒布를 請하니, 王이 말하였다. “曆을 다스리고 時를 밝히는 것은 帝王이 重視하였다. 이제 新法 正曆으로 敬迓天休할 것이니, 이름하야 ( ㉣ )(이)라 한다.” - 淸史稿 -
(다) 康熙帝가 말하였다. “지금 敎王의 使臣이 보내온 ㉤告示를 보니, 和尙과 道士의 小敎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의 허튼소리가 이보다 심할 수는 없다. 이후 ㉥西洋人은 中國에서 行敎할 필요 없으니 禁止하여, 쓸데없는 일이 생겨나지 않게 하라.” - 康熙與羅馬使節關係文書 - |
<작성 방법> ◦밑줄 친 ㉠과 같이 행동한 이유를 밑줄 친 ㉡에 근거하여 1가지 서술할 것. ◦밑줄 친 ㉢의 사례를 1가지 쓰고, 괄호 안의 ㉣에 들어갈 역법의 명칭을 쓸 것. ◦밑줄 친 ㉥ 조치가 내려진 이유를 밑줄 친 ㉤과 관련지어 서술할 것. |
<해설>
∙ ㉠그=마테오리치(이마두) 행동 이유 : 천주교 전파를 위해
∙ ㉢사례 : 『기하원본』 등 번역
∙ ㉣ : 시헌력
∙ ㉥조치 이유 : 전례문제(서술)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272쪽]
예수회 선교사들이 포교활동의 일환으로 서양의 최신 학문 및 기술을 중국인에게 소개했으므로 중국의 문화는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한층 풍요롭고 다양해졌다. 마테오 리치(중국명 利瑪竇(이마두)), 아담 샬(중국명 湯若望(탕약망)) 등이 자연과학 지식을 통해 중국 지배층의 신임을 얻고 열성적인 포교를 해 명이 망할 때까지 2, 3만 명으로 추정되는 신자를 얻었다.
[아틀라스 중국사 158쪽]
리치는 중국 말과 문자를 공부하면서 중국 선교의 대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자신을 중국인화하는 일이었다. 1585년 11월에 보낸 한 편지에서 리치는 “저는 중국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복장이나 얼굴 모습도 인사법도 겉모습도 완전한 중국인입니다. 올해에는 말하는 법과 쓰는 법에도 많이 익숙해졌습니다.”라고 썼다. 리치가 이처럼 중국인화하려고 애쓴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복음 전파를 위한 방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리치가 중국의 문화 전체를 긍정한 것은 아니었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도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나 공(空)은 천주의 도리와는 크게 어긋나므로 결코 숭상할 것이 못 된다고 비판했다. 리치는 사서오경 등 유교경전을 공부하여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그는 또 1595년부터는 당시까지 입었던 승려의 복장을 벗고 신사층의 유복(儒服)을 입었다.
… 또 지식인들이 거부감없이 천주교를 수용할 수 있도록 유교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활용하여 천주교 교리를 해설했다. 예컨대 리치는 자신이 전하는 천주가 유교 경전에 등장하는 인격신인 상제와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같다고 설명하였다.
[아틀라스 중국사 158쪽 날개]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 : 두 사람은 1600년 남경에서 만났다. 마테오 리치는 서광계에게 서양의 수학, 천문, 역법 등 자연과학 지식을 전수해주었다. 마테오 리치가 북경에 거주한 이후에도 계속 교유한 두 사람은 『기하원본』, 『태서법』, 『측량법의』 등 많은 과학 서적을 공동 번역했다.
[동아시아사 천재교육 104쪽]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명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서양의 과학 기술이 동아시아에 알려졌다. 과학 지식이 황제와 사대부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선교사들은 흠천감에서 활약하면서 망원경을 비롯한 천문 관측기구를 소개하고, 화포와 같은 무기 제조 기술을 알려 주었다. 또 「곤여만국전도」와 같은 세계 지도나 중국 전도를 제작하고 시헌력을 만들었으며, 『기하학원론』, 『인체해부학』 등의 서적을 번역하였다.
서양 문물이 수용되면서 중국의 화포 기술과 천문, 역법, 수학 등의 분야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중화사상이 강한 지식인층이 서양의 문화를 높게 평가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자연 과학이 근본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와 전례 문제가 악화되면서 중국의 서양 과학 기술 수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시헌력 : 아담 샬이 중심이 되어 만든 역법으로,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와 하루의 시간을 정밀하게 계산하였다
▶전례(典禮) 문제 : 로마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중국 전통(공자나 조상에 대한 제사 등)의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벌인 논쟁
[동양사개론 629쪽]
예수교단에 이어 중국에 온 스페인의 프란시스코파와 도미니쿠스파 선교사들은 예수교단 선교사가 중국인이 숭배하는 天(上帝)과 크리스트교에서의 하느님(天主)과를 동일시하고 있는 포교방법을 비난하고 로마교황도 이를 받아들여 예수교단의 포교를 금지하였다. 이와 함께 중국인 신도에게도 상제와 조상숭배를 금하니 여기에 전례문제가 일어나게 되었다.
강희제는 로마교황의 이러한 조치에 크게 노하여 예수회 이외의 포교를 금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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