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프레소 한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먼저 길을 떠난 아버지
이상하게도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소리가 더 오래 산다.
우리 다시 만나
짧은 그 한마디는
넘어지는 세월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물러 길이 되어 주었다.
어느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빠가 된 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 앞에 앉아
그날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린다.
그날 들려온 소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러
끝내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한다.
그 소리가 남겨 준 그 길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나는 나에게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를 묻다
100일 휴가를 마치고 아픈 아버지를 떠나 다시 부대로 돌아왔지만, 군대는 더 이상 있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아버지 곁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벽처럼 보였다.
설령 병신이 되더라도, 탈영을 해서라도 그 벽을 넘어 아빠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그때의 나는 군인이기보다 아버지를 잃고 싶지 않은 아들이었다.
늦은 저녁 초소 근무를 위해 일어나 홀로 초소에 서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이대로 탈영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 때문에 아빠가 더 근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눈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나는 긴 밤을 견디다 새벽이 되어서야 조용히 내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을 좋아했고, 군대에서 하는 운동과 작업도 곧잘 해내 칭찬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지만, 휴가를 다녀온 뒤부터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고 상관들도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 무렵 국방부에서 검열이 내려와 이등병들만 식당에 모아 놓고, 부대 안에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적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직접 폭행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병장이 상병을 누르고, 상병이 일병을 누르고, 일병이 다시 이등병을 누르는 일은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 모습이 내게는 ‘사다리형 가혹 행위’라고 보였고, 그날 나는 마음에 남아 있던 상처와 함께 내가 본 것을 적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뒤, 국방부 헌병대가 다시 부대에 찾아왔다.
공기부터 차가웠고,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전 병력이 연병장에 집합했고, 헌병대원들은 17사단 전차부대 안에서 신종 가혹행위가 보고되었다며 엄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몰아세웠다.
“사다리형 가혹행위를 기록한 이등병이 나올 때까지 전원 식사 금지.”
그 말이 떨어지자, 연병장 전체가 숨을 삼켰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그대로 굳어 버렸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고, 다리는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나는 모두의 눈 밖에 난 사람이 되어 남은 군 생활을 혼자 버텨야 할지도 몰랐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침묵 속에서 시계 바늘 소리만 고요히 흐르고 있었고, 그 적막을 깨고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사다리형 가혹행위를 기록하기 전까지 나는 축구와 농구를 하며 사람들과 곧잘 어울렸다.
운동을 잘한다는 이유로 다른 내무실에서도 나를 불러 주곤 했지만, 그 일을 겪은 뒤 함께 뛰던 자리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부대 뒤편, 철봉 하나만 놓인 그곳에서 나는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매달린 몸으로 견뎌 냈다.
그때부터 부대 뒤편의 그 철봉은 내게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철봉에 매달려 온몸의 힘을 다 쏟아낸 뒤, 나는 철봉 아래에 앉아 어둠이 내려오는 운동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한때 함께 뛰던 운동장이었지만, 그날 이후 그 운동장은 같은 공간이면서도 전혀 다른 풍경이 되었고 나는 어느새 무리 밖의 선 사람처럼 홀로 남아 있었다.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혼자인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나는 늘 누군가와 함께 웃고 어울리는 데 익숙했지, 아무 말 없이 혼자인 나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훗날 독일 철학자 니체의 한 문장을 읽었을 때, 그 말이 꼭 그 시절의 나를 향하는 것처럼 들렸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지 못한 사람이다."
그 시절의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고 있었기에, 이런 나 자신과 친구가 될 만큼 아직 단단하지 못했다.
그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언젠가 다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미한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유마저도 사라졌다.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은 뒤, 삼 일 동안 나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겨우 버티고 있던 마음은 다시 찢어졌고, 상사와 선임들의 차가운 말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유마저 가져가 버렸다.
화장터 문 안으로 아빠의 관이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버팀목도 함께 사라졌다.
부대로 돌아온 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이 삶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면, 그래도 살아가겠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빠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 땅에서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모두 송두리째 잃어버린 듯했던 그 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낀 나는 밧줄을 들고 부대 뒷산으로 향했다.
어둠을 헤치고 산길을 따라 오르던 중, 매주 예배드리던 작은 교회의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 희미한 불빛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더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빈 예배당 한가운데에 홀로 앉아 작별의 말을 건넸다.
"안녕히 계세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했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을 때, 눈앞에 성경 한 구절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오늘의 괴로움이 오늘로 족하다고요?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고요?"
나는 그 구절을 오래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그 순간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눈으로 읽은 한 줄이 나를 멈춰 세웠고, 그때의 내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결코 건넬 수 없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치 나만을 향해 쓰인 문장처럼, 그 한 줄은 가슴 깊숙이 박혔다.
보이지 않지만 오래도록 '아버지'라 부르며 관계해 온 까닭이었을까.
나는 조용히 말했다.
"한 번은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내일도 이 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그땐 들어오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내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 건넨 진짜 말이었다.
정말 이 말씀을 보게 하신 분이 있다면, 그분이 실제로 계신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붙잡을 이유도 살아야 할 이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지만, 성경에서 흘러나온 그 한 줄만은 실제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평생 ‘아버지’라 불러 온 존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붙잡고 싶어던 것일까.
왜 그 말씀 앞에서 멈춰 섰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날 나는 죽음 대신 하루를 살아 보기로 했다.
모든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하나님께 물었다.
그 시간은 내 감정과 생각, 욕구의 틀을 벗어나 나 자신을 넘어 타인의 마음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던 나를 지금의 내가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끝을 향해 걷고 있었지만, 작은 십자가의 불빛 앞에서 죽음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춘 채 다시 내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 행정반에서 나를 불렀다.
"너, 국군의 날 행사 기수로 선발됐다. 국방부로 바로 이동 준비해."
어제까지만 해도 죽음을 생각하던 나에게는 너무 낯선 말이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국방부에서 보낸 차량에 올라탔고, 그렇게 나는 부대를 떠났다.
국방부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잠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PX에 들러 빵빠레 하나를 샀다.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고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는 죽으려 했던 사람.
오늘은 국방부 PX 앞에 서서 빵빠레를 베어 물고 있는 사람.
입안의 단맛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어제 죽으려 했던 사람과 오늘 국방부 PX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이 같은 나라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문장이 조용히 떠올랐다.
"Who are You."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말 존재하시는 분입니까.
그 질문이 입술을 떠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친 바람에 흔들리던 호수 위로 바람이 멎고 잔물결만 남은 것처럼.
내 곁을 떠난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이었을까.
아빠가 내 곁을 떠난 뒤에야, 나는 오래도록 ‘아버지’라 불러 온 하나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분에 대해 말해 주는 이야기보다, 내가 직접 묻고 듣고 관계를 맺으며 알아가고 싶었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듯 가장 평범한 관계로 시작해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모르는 만큼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성경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이유들를 찾아가다 보니, 어느새 그 이유가 내 마음 깊은 곳과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서로를 잇게 해 준 그 연결을 '관계의 소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계 안에서 서로의 깊은 마음이 이어지면, 그 소리는 매듭이 되고 방향이 되었다.
그 방향은 곧 길이 되어 삶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 안에서 울려 펴지는 소리와 타인의 중심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함께 들어야 한다는 것을.
크게 떠드는 목소리보다, 고요가 모일 때 비로소 들리는 아주 미세한 소리.
집중과 고독 속에서 만나는 나의 소리, 그리고 타인의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그 소리를.
관계는 통합적이다.
하나의 소리만으로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이라는 여행을 지나며 각자의 소리가 조금씩 깊어지고 서로를 비출 때, 나는 걸음을 멈춰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오늘을 매듭짓는다.
과거와 오늘이 이어지도록 매듭짓고 나면, 그것은 의미를 지닌 하나의 씨앗이 되어 내일을 꿈꾸게 한다.
유년 시절의 웃음소리.
엄마가 건네던 따뜻한 첫마디.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하나님과 처음으로 인격적인 소통을 나눈 시간.
그 모든 ‘소리’들이 나를 이끌어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제는 옛 소리에 기대던 자리에서 조금씩 발을 떼려 한다.
그 소리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서가 아니다.
그 소리들이 나를 충분히 지켜 주었기에, 이제는 새로운 곳으로 걸어 나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 안의 새로운 나, 조금 더 진짜에 가까운 나를 만나기 위해 나는 다른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려 한다.
그것은 성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조용한 끌림'에 가까웠다.
앞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 함께 걷고 싶은 삶의 방향을 알려 줄 소리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또 하나의 대화를 시작한다.
군대의 시간으로 통해 내 인생의 마음가짐과 삶의 방향을 돌려세운 첫걸음이 되었다.
남이 정해 준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돌려세운 첫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