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씀하는 경건은 어떤 것인가요?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1-5)
1. 경건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도덕적인 삶으로 판단해도 되는가요?
2. 인격 수양이나 외모를 단정하게 하고 말투를 바꾸는 것이 경건의 훈련일까요?
- 흔히 기독교인에 대한 경건의 판단을 겉으로 드러나는 말투, 행동, 모양, 옷차림새를 보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경건은 인격이나 외적인 모양이 아닙니다.
이같은 경건은 교양인이라며 누구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경건은 어떤 것일까요 ?
- 구약에서는 경건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을 향한 구별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때 경건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경건이 “하나님을 항한 중심에 경외심을 가진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뱅은 경건을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 결합된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 구약의 예언자들은 말투가 거칠고 옷 모양도 볼품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구별된 목적과 경외와 사랑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진 사람을 경건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좋은 표현의 말을 하고 수양된 성품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앙적인 삶의 구별이 없다면 경건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으로 구별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언어적 표현이나 성격이 조금 거칠더라도 그를 경건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경건의 중심을 잃어버린 모습을 종종 발견합니다. 교회가 이 역사 속에서 행해야 할 구별된 거룩한 목적을 상실하면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의 집단이 됩니다. 성경은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 말투나 외양은 경건과 상관이 없을까요?
- 기독교인이 좋은 말투와 교양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다만, 성경이 말씀하는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보다 근원적인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 경건의 훈련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성경 읽기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과 연관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랑하고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훈련을 하면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한 구별된 목적을 찾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