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대학교 예술인문노블레스 최고위과정 2기 동기생들이 해미읍성을 찾아 하나가 둘이되고 둘이 셋이 되어 하나의 두레가 되는 과정을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충남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한서대학교 예술인문노블레스 최고위과정 2기 동기생들이 서산의 자랑인 해미읍성을 지난 18일 야외학습과정으로 다녀왔다. 낙안읍성, 고창읍성에 이어 ‘조선 시대 3대 읍성’ 중 하나인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을 찾은것이다. 약간의 언덕 위에 축성된 고창읍성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함을 자랑한다면 해미읍성은 평지 위에 축성돼 잘 정돈되고 깔끔한 석성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곳이다.
성벽도 높은 편이어서 성을 둘러싼 해자(垓子)와 함께 전투에 최적화된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 내부에는 공성전 무기인 ‘투석기’, 성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설치된 ‘운제’와 함께 수레에 검을 꽂아 만든 ‘검차’, 지금으로 치면 다련장 로켓인 ‘신기전기화차’, ‘천자총통’, ‘화포’, ‘별대완구’등 전쟁과 관련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해미읍성은 고려 말 왜구들이 많은 피해를 주자 조선 초기인 1417년(태종 17)부터 1421년(세종 3)까지 4년여에 걸쳐 축성, 서해안 방어를 맡았다.
당시 충정도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이 해미로 옮겨오면서 축성된 해미읍성은 더욱 확대돼 1491년(성종 22)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충청병마절도사영은 충청도군을 지휘하던 육군 최고지휘관이 있던 곳으로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성안에 있던 해미가 서해안의 군사적 거점으로서 얼마나 중요했었는지 알려주고 있다.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은 1652년(효종 3)까지 약 230년간 계속됐다. 이후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주하자 해미 현감이 이 성에 옮겨와 겸영장(兼營將)이 되면서 군사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1579년(선조 12) 충청병영 군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했다.
서산시에서는 10월중에는 해미읍성축제와 천주교 해미성지의 국제성지 지정 선포식에 맞추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초청공연, K-POP Drama 클래식과 만나다! 2021 드라마틱 클래식, 서울예술단의 ‘굿세어라 금순아’ 등 수준 높은 기획공연을 대거 기획 국제성지 관광도시로의 선정을 시민과 함께 자축하고 국내외에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