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께서는 두 번째 훈련원 봉사도 오래 하지 못한다.
북쪽에 오랑캐들이 극성을 부려 그 전에 전라좌수사로 와서 불시에 발포를 순시했던
이용이 함경도 남병사로 부임해 가면서 충무공을 지목해 자신의 군관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이순신은 여기에서도 오래 있지 못 하고 다시 함경북도 경원군에 오랑캐 울지내 때문에 최북단 접경지역으로 발탁되어 가게 되었다.
충무공은 함경북도로 부임한 후 작전을 꾸며 울지내를 사로잡게 된다.
그런데 상관인 함경북도 북병사 김우서는 이순신이 자신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함부로 작전을 벌였다는 내용으로 장계를 올려 충무공은 상을 받지 못 하고,
북병사나 다른 군관들은 후한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선조실록'에 있다고 한다.
이 기록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함경도 북병사 김우서는 훈련원 봉사시절의 서익이나
전라좌수사 성박 같은 인물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살다보면 상생하는 마인드로 주위사람들을 키워주고 이끌어 주는 선인도 있고
다른 사람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하거나 타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옹졸한 인간들이 더러 있다.
충무공의 삶과 생애를 공부해 보면,
충무공처럼 예와 의 그리고 인과 덕을 갖춘 사람들도 많지만 시기 질투에 눈이 어두워
참으로 된 사람을 시궁창에 처 넣어버리는 측은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무공은 그것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늘 또 다른 부임지에 가서도 소신과 원칙으로 신하로서 군인으로서 행하여야할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간혹 옳은 일에 앞장섰다 가도 동조하는 이가 적으면 움추려 들고 목소리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충무공은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건 옳은 일 앞에서는 그 어떤 유혹도 이겨내는
진정 큰 사람의 면모를 보여준다.
울지내를 사로잡는 그해에 충무공의 아버지 이정이 돌아가신다.
그러나 접경지대에 있었던 충무공에게 부음이 전달되기는 그 다음에 정월이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부모상을 당하면 무조건 삼년상을 치렀다.
물론 전시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이순신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의 책들을 읽어보면, 그 당시 함경도 감사였던 정언신이
충무공께서 아버지 부음을 듣고 추운 겨울 의복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 하고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따라가서 이순신을 챙겨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비변사에서 무신 중에 인재를 추천하라고 했을 때 정언신이 이순신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먼 훗날 조선에는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난다.
정언신은 정여립과 9촌 벌 되는 친척이라 그 사건에 연류 되여 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 충무공은 정언신을 옥으로 면회를 가게 된다.
그런데 금오랑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즐기는 것을 보고,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일국의 대신이 옥에 갇혔는데 당상에서 서로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단 말이요?" 하면서 질책을 하니 금오랑이 안색을 고쳐 사과하였다고 한다.
역모에 연류 된 정언신을 옥으로 면회 가는 충무공의 신의는 무엇으로 표현해야할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자신을 되돌아보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공자님께서,
'소인은 이익에 밝고 군자는 의에 밝다.' 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익에 밝아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고 이익이 될 것 같은 곳에는 모여들고 자신에게 손해가 날 것 같은 일에는 멀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군자는 의에 밝다고 했다.
역모에 연류 된 사람을 옥으로 면회를 갈 경우 주위의 시선이나 평판이 좋지 않을 것이란 것은 불을 보 듯 훤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충무공은 전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함경도 감사시절 자신을 위하고 챙겨주고 자신을 알아 봐 준 정언신을 옥으로까지 면회를 가는 신의를 보여준다.
단적으로 이 한 장면만 상상하여도 우리는 충무공이 어떤 분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 시대에나 이 시대에 간혹 혹자는 단순히 충무공이 일기를 남겼기 때문에 그렇게 유명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보이기도 하고 혹시 우리가 알지 못 하는 흠이라도 있을까하고 눈을 부릅뜨고 흠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분들께 정말 정중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혹시 그렇게 삶이 고달프지 않다면 오래 전에 이 땅을 다녀 간 멋지고 근사하고 훌륭한 사나이 대장부 이순신을 공부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럼 그날 이후 당신은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습관이 달라지고 그래서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428년 전 권원보 권관시절 충무공은
자신의 공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알아 준 사람이 설사 역모에 휩싸여도 면회하는 용기, 신의
현대를 사는 우리가 꼭 기억하고 행해야 할 것들이 아닐까?
그래야 우리가 쉼 쉬고 머무는 이 사회가 더 품격이 있고, 아름다워 질 것이다.
한 번 온 인생 우리도 충무공처럼 멋지고 근사하게 그려보자.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자신만의 무늬를 그려놓고 가자.
첫댓글 하하하하하하! <소인은 이익에 밝고 군자는 의에 밝다.>하신
공자의 말씀은 정말 진리의 말씀입니다.
저도 이런 충무공의 말씀과 행동을 따르는 신의의 인간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아! 우리의 이순신장군! 하하하하하하!.
선생님은 지금도 그리 하고 계시잖아요.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네, 늘 너무 잘 들어 주셨어 감사합니다. 저는 충무공 이순신을 공부하면 세상에 이렇게 소신있고 멋있는 사나이가 우리 땅에 다녀가셨구나! 하고 감탄을 합니다.
멋진 삶을 살다가신 멋쟁이 충무공님~
우리에게 귀한 귀감을 선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를 즐감하도록 애쓰신 운선님께도 진정 고맙습니다.
이 더위가 지나면 빨리 남해로 달려가고 시퍼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