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상칠언의 정의
1) 가상칠언[Seven Words from the Cross, 架上七言]이란? 한마디로 가상칠언을 정의 한다면 "예수님께서 골고다 형장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남긴 일곱 가지 말" 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가상 칠언은 음악화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F.J.하이든의 오라토리오《가상칠언 Die sieben letzten Worte unseres Erlgmlsers Kreuz》이 유명합니다.
2. 가상칠언의 역사적 배경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예수가 예루살렘 북쪽 성벽 밖 골고다 형장에서 십자가에 달려 발설한 일곱 가지 말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이기에 사세구(辭世句), 임종을 맞아 한 말이므로 임종게(臨終偈)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네 복음서에 흩어져 있는 일곱 편의 마지막 말입니다.
금요일 오전 11시경 안토니아성문앞에서는 예수를 잡아죽이라는 무리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벌써 닷새전 호산나를 부르던 사람들이 오늘은 "십자가 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바라바는 살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비겁하지만 합리적인 빌라도는 "그대들은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매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못했노라."그러나 무리들은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라고, 메시야라고 고백하던입술에서 큰소리로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그때 빌라도는 군중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게하고 예수의 죄상을 희랍어, 라틴어,아랍어순으로 쓰게 하였 습니다. "유대인의 왕" 그것은 예수의 죄목 이었습니다.
십자목중 세로 목은 항상 세워져 있었고 함께 붙일 가로목은 직접 죄수가 지고 세로목은 세워진 언덕까지 갔었는데 그 나무는 전나무로 깎은 것으로 두께가 12.7cm 길이는 1m80cm 무게는 40kg 가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피를 흘리며 석양의노을에 휩싸여 고통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오전 12시경에 병사들은 13cm의 못을 입에 물고 예수의 손목중 뼈가 없는 부분을 찾고 그 위에 힘차게 못을 때려 넣었습니다. 백부장이 소리쳤습니다. "끌어 올리라"
올릴때 예수의 손목은 비틀어졌고 검붉은 피는 치솟아 흘러내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어둠이 밀려왔고 하늘은 어두워졌습니다. 병사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주사위를 띄우고 예수의 옷 나누기를 할때 예수는 첫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순서대로 말씀하셨다는 객관적 근거는 없습니다.
3. 가상칠언(架上七言)의 내용 요약
예수님은 죽기 직전에 십자가에서 유언 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한편으로 그분의 생애를 잘 요약해 주는 말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곱 번을 말씀하셨다고 해서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일곱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1언 : 첫째 말씀(눅 23:33-34) (容) (대상 : 아버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못합이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평소의 가르침을 예수가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예수님야말로 말과 행위가 일치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도 예수는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한번의 기도가 아니라, 여러번 끊임없이. 무지한 까닭입니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오늘 이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36절에 있는 베드로의 오순절설교는 뜨거운 회개의 불길을 일으켰고 무려 3000명이나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그 리스도였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자도, 침뱉었던 자도, 창으로 찌른자도 능욕하고 저주하고 비웃는 자도 우리 주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자, 다음의 고백을 보십시요. 그러나 그들은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행 3:37 그리고 예수님은 주변에 매달린 두 사람중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인 정하는 한 강도에게 용서와 사랑과 구원을 확증시켰습니다. 행 3:38
제2언 : 두번째 말씀 (눅 23:42-43) (藥) (대상 : 회개하는 강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가 십자가에 함께 처형당한 죄수와 주고받은 대화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과 내세관을 나타내는 말로 풀이됩니다. 죽어 예수와 함께 있을 곳이 낙원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한 강도에게 임한 구원을 우리에게도 임합니다. 종교의식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율법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다만, 은혜로! 이 강도를 보십시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즉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억이라도 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말하시길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있으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것을 주십니다. 더 큰 것을! 그러나 이제 고백이 필요합니다.나의 모든 것에 대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그의 사랑은 세밀하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면서 말씀 하십니다.
제3언 : 세번째 말씀(요 19:26-27) (子) (대상 : 마리아와 요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요한)에게 한 말인데, 실제로 마리아와 제자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여기서 부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자는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킨다고 풀이합니다. 구원의 시간이 온 것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스도 교회를 맺어 준 것입니다. 구원사의 전환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도 교회를 아들처럼 아끼고, 교회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머니처럼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복음서 전체를 통해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일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어머니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어머니의 고통, 그 아픔을 예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말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 그의 용서와 사랑의 기도 후 그에게는 극심한 아픔이 다가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철저히 버리신 외로움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외칩니다.
제4언 : 네 번째 말씀(마 27:45-46) (棄) (대상 : 하나님, 심판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임종 단계에서의 고독감, 절망감을 나타내는 말로, 예수님께서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에 희망을 걸었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외친 예수님의 십자가 주위엔 어두움이 몰려오고 십자가에 쓸쓸함이 뭉쳐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버리심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이 누구를 버린적이 있었나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독 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후 5:21 :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없이함 받았습니다.
누구안에서입니까? 롬 8:1 : 그의 고통과 아픔은 우리의 구속을 인함이요. 눈물과 피는 우리의 영생을 위함이었습니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극심한 아픔은 목마름으로 나타났습니다. 고통받은 사람의 아들, 복종하는 종의 모습으로 그는 다섯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제5언 : 다섯번째 말씀(요 19:28) (渴) (대상 : 자신)
"내가 목마르다."
자기의 성업(聖業)을 완성하려는 염원을 드러낸 말로 풀이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고통과 더불어 승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마라톤 시합을 보며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한 사람은 결승점에 도달해도 여전히 팔팔한 모습이고 또 한 사람은 결승점을 넘자마자 지쳐서 쓰러지는 모습입니다. 전자의 사람과 달리 후자의 사람은 최선을 다한 결주였기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최선의 경주를 하신것입니다. 이러한 목마름과 고통은우리의 모든 목마름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안에 있을때 우리에겐 목마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계 7:16 우리가 목마르다 외치실때 예수님은 이미 먼저 아시며 그 고뇌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요 4:14 예수의 얼굴은 이제 고통의 고개를 넘어서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은 모든 사탄의 유혹을 깨뜨린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제6언 : 여섯번째 말씀(요 19:30) (成) (대상 : 온 인류)
"다 이루었다."
성부가 예수를 통하여 이루려 하였던 일, 즉 신앙인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는 일을 끝냈다는 말로 풀이됩니다. 어떤 미술가가 나사렛목공소의 소년 예수를 그렸는데 그는 창가에서 창문 양끝을 쥐고 바깥을 내다보는 그림이었습니다. 서 있는 예수에게 햇빛이 들어와그림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십자가의 그림자였습니다. 그의 전생애는 십자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가 오늘 성취되었습니다. 영원한 구속, 고통의 끝,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평화였고 버려졌 던 아들 예수에게로 하나님의 찾아오심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제7언 : 일곱번째 말씀 (눅 23:46) (魂) (대상 : 아버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본래 유대인들이 바치던 저녁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이 기도를 한 것은 곧 임종을 수락하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회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회복이었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회복이었습니다. 대지는 떨고 땅을 가르는 작은 금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치고 처형장의 큰 바위가 깨어졌고 작은 금은 길을 가로 질러 예루살렘 성문을 지나 거리와 성전을 꿰뚫었고 마지막엔 성전의 장막을 둘로 나누어 찢어 놓았습니다. (눅 23:45) 완전한 용서였습니다. 이미 찌른 자와 능욕한자, 십지어 가롯 유다까지의 용서였습니다.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극심한 혼란과 적대를 깨뜨린 사랑이 었습니다. 구속이었습니다. 공허한 세상의 묶은 끈을 풀고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속이었습니다 갈보리 언덕 그 십자가위에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십 자가의 언덕을 너머 있는 길. 그 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께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히 12:2 우리가 이제 자랑할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갈 6:14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 2:20 그리고 그 분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도 또 하나의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CCS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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