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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를 동쪽 2코스에서 서쪽 11코스로 변경하고 7시 45분경에 모텔 바로 앞의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11코스 시작점으로 가기 위해 모슬포행 750번 버스에 승차한다. 우리가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정한 것은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절감하게 되는 바인데, 첫째는 제주도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접근하고 돌아올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터미널 근처에 값싸고 괜찮은 식당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8시50분, 1시간 후에 750번 종점인 모슬포 버스 정류장(버스 3대면 꽉 차는 좁은 공간)에 도착해서 오늘의 출발점인 모슬포 청소년수련관으로 향한다. 청소년수련관으로 가는 길 옆 마늘밭에 잎이 파랗게 돋아 있는 모습은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일지는 몰라도 뭍에서 온 우리 일행에게는 감격스럽다. 이 한 겨울에 푸른 잎사귀를 보는 것이 어찌 좋지 않으랴!
오늘 올레 트레킹 도정은 출발점을 하모공원이 아닌, 청소년수련관으로 하고 모슬봉 둘레길 → 정난주 마리아 성지 → 신평 사거리 → 신평곶자왈 12km → 무릉곶자왈 아름다운 숲길 → 무릉2리 효자 정려→ 무릉 생태학교로 도상거리 약 18km다.
하늘은 맑고 약간 쌀쌀하지만 걸을만하다. 모슬봉을 멀리 바라보며 오늘 출발점인 청소년수련관에 닿는다. 그런데 모슬포 청소년수련관인 줄 알았는데 이름이 대정청소년수련관이라고 현판에 씌여 있다. 그러니까 행정 명칭이 대정읍 모슬리 정도가 되는 것이다.
< 모슬포 마늘밭을 지나며 >
청소년수련관 앞에서 출발에 앞서 기념 인증샷을 하다가 林山님이 오늘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셀카봉을 꺼내서 셀카를 시도해 본다. 하지만 조작이 서툴러서 찍기는 찍었는데 영 시원치가 않다. 저런 기기도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손에 익어야 하는데 평소에 관심이 적으면 어려워진다. 아쉬움을 털고 남제주요양원과 대정여고 옆을 지나 멀리 모슬봉을 향하면서 바다를 조망하는 고갯길로 접어든다.
모슬봉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서 모슬봉 숲길로 우회해서 걷는다. 겨울인데도 푸른 숲이 마음을 온화하게 해 준다. 宋山이 고향 이야기 중에 어렸을 때 나무하던 이야기, 뱀장어 잡던 이야기를 하면서 일행은 옛날의 추억과 푸른 제주의 수풀과 동백꽃, 바람결에 와 닿는 따뜻한 햇살에 취해서 모슬공동묘지로 올레 표시가 가리키는 대로 이리저리 휘돌아 걷는다.
< 모슬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바다 풍경 >
누군가 11코스는 무덤의 길이라고 하는데, 모슬봉 주변에는 유난히 묘가 많은데 이곳은 주변의 5개리가 함께 흩어져 있는 묘지를 모아 공동묘지를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옆에는 천주교 공동묘지가 이어져 있어 모슬봉 올라가는 중턱에도 묘지들이 보인다.
모슬봉 정상 근처에는 올레 스탬프 찍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는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드넓게 펼쳐진 들녘에 산방산과 송악산, 제주 남서부 일대의 오름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모슬봉에서 내려가는 길에도 꽤 큰 공동묘지가 있다. 묘가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느낌이다. 동쪽에서 남쪽을 둘러 서쪽까지 공동묘지로 되어 있고, 일정한 높이 아래로는 밭이 조성되어 있어 사방에서 공동묘지로 통하는 길과 농로를 통해 모슬봉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모슬봉 무덤가에서 바라본 산방산 >
모슬내림길에서 내려오니 밭길이 나오고, 밭에는 양배추, 브로콜리 등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 근처에 농부들이 밭일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한다. 더 가다 보니 천주교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천주교 대정 성지를 만난다. 대정 성지에는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이 있다.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현의 딸이며 당대 최고의 실학자 형제인 약전, 약종, 약용의 조카로 그녀의 남편 황사영의 백서 사건으로 인해 제주도로 유배와서 관노로 어렵게 생활하면서 온갖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 내는 가운데,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이웃을 감동시키고 교화시켜 신앙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에서 천주교 신앙의 모범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올레 11코스는 추자도 올레 18-1코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는 와중에 정난주는 두 살짜리 아들 황경한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저고리에 싸서 추자도의 바위에 남겨두고 왔고, 아들 황경한은 어부 오씨에게 발견돼 추자도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 정난주는 제주도 대정에서 평생을 관노로 살다가 이곳에 묻혔다.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한 어머니의 묘는 제주 올레 11코스에, 그 아들의 묘는 추자도 18-1코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구러 천주교 성지를 지나고 마을길을 돌아 나아갈 즈음에, 신평마을 앞에 구제역 방역 차량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제주도는 앞서 구제역 확산을 막으려고 내일 16일부터 소와 돼지 사육장 주변에 있는, 우리가 오늘 가는 11코스를 우회하도록 통제하고 방역을 실시한다고 했다. 우리가 지나갈 때 못 가게 할까 걱정이 되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올레 트레킹을 제지하지는 않는다. 참 제주도도 걱정이다, 소나무 재선충에, 소 돼지 구제역에, 철새도래지 조류독감에 걱정이 많기도 많다.
< 대정 천주교 성지 정난주 묘역 >
계속 걷기만 하고 쉬지도 않고 해서 점차 배는 고파 오고 식사할 곳을 찾아보아도 마땅치 않은데 林山은 계속 앞으로 가자는 것이다. 작은 가게에서 빵이라도 사서 먹자고 하고 싶은데 꾹 참고, 별 볼 것도 없는 마을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한참 가노라니, 우측에 좀 큰 올레식당이 있고 길 건너 앞에도 순대국밥집이 보인다.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속으로 따져보고 있는데, 林山이 왼쪽으로 신작로를 따라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가자는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오늘의 트레킹 종점 좌기동 버스 정류장까지는 고작 2, 3㎞만 가면 되는데 바로 그 좌기동 가는 신작로로 직진하다가 중간에 ‘산동산’이라는 제주의 빛나는 맛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2시, 산동산 식당에 들어가 그냥 제일 싼 메뉴인 6천원짜리 정식을 시키고 별로 기대도 않고 기다렸는데, 나오는 반찬도 나름 가짓수도 많고 밥도 정말 맛있고 중요한 점은 무한 리필이라는 점이다. 아, 그 맛있는 생선구이는 차마 양심상 더 시키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반찬들도 어찌나 맛있던지!
< 산동산의 싸고도 맛있는 밥 >
식사 후 맛있는 밥맛의 감동 속에서 힘을 내어 신평사거리를 지나 고사리 김보은 할망집 옆을 거쳐 ㄹ자와 S자를 합쳐서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지나 신평 곶자왈, 곧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시행하는 대정읍 영어교육도시 내에 조성되면서 신평리 마을회는 JDC와 상생 협약을 맺어, 공원 전체 면적의 약 1/3에 해당하는 마을회 소유의 토지를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의 일부로 무상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특히 신평리에 있는 옛 보성초등학교 신평분교장의 폐교시설과 부지를 활용해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장을 설치하는데, 신평리 주민들이 ‘곶자왈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공원에서 농수산물 직거래장을 개설하는 등 공원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고 한다.
< 신평곶자왈을 들어가며 >
올레 1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신평 곶자왈에서 무릉 곶자왈의 아름다운 숲길까지는, 신평리 삼거리에서 무릉 오거리 교차로와 인향동 쪽으로 가는 중산간도로를 대칭점으로 계동산 밑의 곶자왈 지역 일대, 즉 ‘제주곶자왈 도립공원’ 일부를 이리저리 돌아나오는 코스로 이루어졌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곶’과 자갈을 의미하는 제주 사투리 ‘자왈’을 합쳐 만든 글자로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원시림의 숲을 이룬 곳을 이르는 제주 고유어다.
이런 곶자왈은 제주도의 여러 곳에 원시림의 모습으로 넓게 분포하며, 지하수 함량이 풍부하고 보온, 보습 효과가 뛰어나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아무리 비가 내려도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유입되는 토질로 지하수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신평마을에서 신평곶자왈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 벌목작업을 하느라고 좁은 오솔길이 대형 트럭이 오갈 수 있도록 파 헤쳐져 있고, 여기저기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여 베어낸 나무들이 무더기로 쌓여져 있어 가슴이 아프고 살풍경하다.
조금 더 곶자왈 내부로 들어가자 여러 가지 나무와 작은 덤불, 푹 꺼진 돌무더기, 빌레, 돌담을 가진 본래의 모습인 숲길이 나온다. 곶자왈의 나무 중에는 가장 특정종인 종가시나무와 콩짜개나무들이 있는데, 과거 인근 마을 주민들이 숯이나 땔감용 등으로 나무를 많이 벌채한 뒤, 종가시나무의 잘린 밑둥에서 여러 줄기가 돋아 자란 맹아(萌芽)가 나무줄기로 변한 맹아림이 여기저기 보이고, 잣섬(돌담)과 무너진 돌무더기도 많이 보인다. ‘잣섬’은 겹담구조로 이루어진 돌담으로, 조선 전기 국영농장이었던 이곳에 하천이 없는 제주 중산간 목축지의 경계 구분을 위해 축조한 것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라 한다.
가다 보니 앞에 대여섯 명의 여자분들로 구성된 선행 올레꾼들이 간다. 오래간만에 인기척을 느낀다. 서먹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앞질러 간다. 뒤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진다. 원래 그렇다. 늙거나 젊거나 간에 남녀란 같이 있으면 서먹하지만 서로 관심이 간다.
이어 삼동나무 숲길도 지나고 중간에 넓은 공터처럼 보이는 정개왓(정씨밭)이 나온다. 정개왓은 정씨 성을 가진 이가 경작하던 밭으로 곶자왈 내에 유일한 묘가 있는데 정씨 땅을 경작하는 이가 관리한다고 한다. 또 성제숯군터(형제 숯가마 터)에는 예전에 곶자왈 내에서 형제가 숯을 구우며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무릉곶자왈에 이르자 전국 아름다운 숲길 공존상을 수상했다는 안내판도 서 있고 정자도 있다. 정자에서 잠시 앉아 귤을 까먹고 숨을 돌린다. 이 지역은 평평한 암반지대로 현청에 숯을 운반하던 길로 쓰던 빌레도 보이고, 오래된 소물통(구유통)도 눈에 띈다. 잠시 쉰 후에 다시 걷다보니 이제는 곶자왈이 끝나 가는지 제법 하늘이 훤하게 트인다. 무릉곶자왈 출구인 무릉2리 개활지에 이르렀는데 이곳에는 4•3때 황폐화된 집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 무릉곶자왈 숲길 >
13시30분. 곶자왈을 벗어나 무릉오거리 교차로를 지나는 지점에 문달민(文達敏) 효행 정려비가 있다. 문달민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에서 칭송이 자자했으며, 부친이 갑자기 병이 나서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소생시켜, 목사와 판관이 그 효행을 칭찬하였고, 제주 목사는 부역을 면제하여 표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런 류의 효행과 정숙함에 대한 기림이 어찌 이곳에만 있겠는가, 단지 우리가 가는 올레길에 이 비(碑)가 서 있어서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새길 뿐이지 올레꾼의 마음은 길을 따라 총총하기 그지없다.
이제 무릉리로 접어들어 왕기식품 옆을 지나 유채꽃이 엉성하게 핀 밭을 지난다. 옆의 밭에는 주인이 열심히 물을 주고 밭을 일구고 있는데 이 밭의 주인은 어디 갔는가 한가롭네, 어쩌구 하면서 밭 주인의 게으름을 흉보면서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고 제주어교실을 지나는데 이상하다, 12코스라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는가! 이거 잘못 되었는데, 11코스 종점을 지나친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는데 林山은 묵묵히 앞으로 나간다.
좌기동 마을회관도 지나고 큰 길로 나가 평지동 입구에 가서야, 林山이 ‘아, 우리가 11코스 종점을 많이 지나쳤나 보니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올레 첫날부터 알바를 2㎞ 정도 한다. 돌아갈 길이 아득하다. 할 수 없이 버스 정류장을 찾아 신작로를 따라 간다.
14시45분, 좌기동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큰 길가 옆의 작은 집 앞에 햇볕바라기를 하고 앉으신 하르방에게 버스 시간을 물으니 알 듯 말 듯 애매하게 대답한다. 옆집의 할망에게 물으니 950번 버스가 곧 올 것이라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서둘러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다리를 펴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 어찌하나 이리저리 둘러보다 정류장에 부착된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여유가 있다.
갑자기 林山이 시간이 있으니, 11코스 종점인 무릉생태학교를 찾아 가겠다며 길을 되집어가기 시작한다. 林山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남은 우리도 뒤따라가기 시작한다. 아까 지나쳤던 왕기식품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니, 그곳에 바로 11코스의 종점이자 12코스의 시작점인 무릉생태학교가 있다. 생태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종점에서 인증샷을 한다. 휴우, 이제 제대로 임무를 완수한 것 같다. 다시 게으른 주인의 유채밭과 제주어교실 옆을 지나 좌기동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 무릉생태학교에서 >
버스 정류장에 들어와서 바람을 피해 앉아서 좌우를 둘러보니 정류소 옆에는 무릉 보건진료소가 있고 그 옆에는 무릉도원마을이라는 마을 안내판이 서 있다. 우리가 지나온 신평리도 넓은 평야에서 벼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풍족한 생활로 무릉도원이라고 불렸다 한다. 그런데 이곳에도 무릉도원마을이라는 동네가 따로 있는 걸 보니 이곳 일대는 두루 살기가 좋은 곳인가 보다. 그럼 아까 그 하르방과 할망은 무릉도원 신선인가!
버스가 오지 않으니 무료한 차에, 길 건너 동네 ‘점방(店房)’인 정자상회에 가서 문을 열어 본다. 잠겨 있다. 손님이 드물어 주인은 휴대전화번호를 종이에 써서 출입문에 붙여 놓고 부재 중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꼭 급하게 사야 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주인을 부르기도 그렇다. 꼭 이상(李箱)의 권태라는 수필에 나오는 나른하게 처지는 분위기다.
13시45분. 아까 곶자왈에서 만났던 여성 올레꾼 5인방이 버스 정류장에 나타난다.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잠시 내외를 하는 척 자리를 비워 주자, 아줌마 5인방이 어느새 버스 종점을 점령한다. 잠시 잡담을 하다가 그토록 기다렸던 950번 버스가 오자 다 같이 서둘러 모슬포행 버스를 탄다.
< 좌기리 버스 정류장과 정자상회 >
모슬포 종점에 도착하니 15시50분이다. 모슬포 제주행 버스 종점의 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감귤을 포대째 가져와 먹으라고 인심 좋게 마구 쥐어주며 권한다. 야, 푸른 바다와 온화한 날씨, 따뜻한 인심! 제주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이구나! 연신 감탄을 하며 제주행 750번 버스를 타고 17시10분에 제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18시, 마땅한 저녁식사 장소의 물색이 어려워 급한 대로 근처 오라 정식 식당에 가서 6천원짜리 정식을 시키고 첫 번째 올레 완주를 기념하여 소주로 건배! 20시에 귀가하여 내일 한라산 등산 준비로 각자 일찍 취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