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증
원래 하던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왔으니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첫영성체 다음 해는 제 영혼에 별다른 시련 없이 지나갔는데, 두 번째 영성체를 준비하는 피정 동안에 무서운 세심증이 엄습했습니다. 이 수난은 직접 겪지 않고는 잘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생각과 행동이 제게는 모두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마리 언니에게 모두 말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맞지 않는 제 생각까지도 모두 말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짐을 내려놓으면 한순간의 평화를 맛보았지만, 이 평화는 번갯불처럼 빨리 지나갔고 제 고통은 곧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리 언니는 싫증 내는 기색 한 번 없이 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를 했겠습니까!
제가 기숙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리 언니는 다음 날을 위해 제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주었습니다(작은 여왕은 아빠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날마다 머리를 동그랗게 말았는데 그토록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아이를 본 적이 없는 수녀님들과 친구들은 저를 보고 대단히 놀라고는 했습니다). 언니가 머리를 하는 동안에 저는 세심증으로 일어나는 제 생각을 이야기하며 줄곧 울었습니다.
파피노 부인
그해가 지나자 셀린 언니는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가엾은 데레사만 혼자 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자 데레사는 바로 아프게 되었습니다. 기숙학교에서 단 하나의 위안이란 셀린 언니와 함께 있는 것이었는데, 언니 없이는 ‘셀린의 작은 딸’이 도저히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세 살 때 기숙학교에서 나왔습니다.
이후에는 파피노 부인 댁으로 매주에 몇 차례씩 가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파피노 부인은 교육을 잘 받은 착한 분이었는데, 조금 노처녀 같은 면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고양이를 포함해 세 식구가 아담하게 사는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공책 위에 올라와서 가르릉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둬야했고, 예쁘다는 칭찬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파피노 부인의 식구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나이 든 선생님이 걸어서 오기에는 저의 집이 너무 멀었으므로, 선생님의 집으로 공부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공부하러 가면 보통 파피노 부인의 어머니인 코셍 부인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크고 맑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조용하고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파피노, 데레사 아가씨가 왔어.”하고 딸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파피노 부인이 앳된 목소리로 “저 여기 있어요. 어머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곧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이 공부는(제가 받는 교육 외의) 세상을 알게 해 줬습니다. 그런 시간이 될지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책과 공책으로 빙 둘러져 있고 옛날식으로 꾸며진 방에 신부, 부인, 아가씨 등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었습니다. 코셍 부인은 자기 딸이 공부를 가르칠 수 있도록 그들과의 이야기를 최대한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많은 날에는 별로 배우는 것이 없었습니다.
책에 얼굴을 틀어박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이야기까지 전부 듣고 있었습니다. 허영심은 마음속에 참으로 쉽게 들어옵니다! 한 부인은 제 머리칼이 곱다고 하였고, 또 어떤 부인은 나가면서 제가 안 듣는 줄 알고 저렇게 예쁜 아이가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제 앞에서 하지 않았기에 더욱 귀에 솔깃하게 들렸고, 제 마음을 은근히 즐겁게 해 줬습니다. 그것은 제가 자애심이 얼마나 많은지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아! 저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영혼에게 많은 동정심을 느낍니다. 꽃이 만발한 세상에서 길을 잘못 드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분명 세상이 고결한 영혼에게 주는 즐거움에도 고통이 섞여 있을 것이고, 그 고통이 닥쳤을 때 여러 가지 욕망의 유혹을 한순간의 찬미로 이겨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제 마음이 ‘철이 들 때부터 하느님께 들어 올림’을 받지 않았다면,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단맛만을 보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저는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감사의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혜서에도 ”악이 그의 이성을 변질시키거나 거짓이 그의 영혼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들어 올려진 것이다.“(지혜 4,11) 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동정 마리아께서도 작은 꽃을 지켜 주셨고, 소화가 세상 사물과 접촉하여 더럽혀질 것을 바라지 않으셔서 활짝 피기 전에 그분의 동산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 행복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성모님께 이 사랑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저는 대단히 괴로운 어떤 일을 했습니다. 긴 이야기지만 되도록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리아의 자녀
기숙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룩한 천사회’에 들어갔습니다. 복된 천사들과, 특히 하느님께서 유배지인 이 땅에서 제 친구로 삼아 주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저는 무척 좋아했으므로 이회가 명하는 신심의 실천이 몹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영성체를 하고 얼마 후에 아이들은 ‘거룩한 천사회’리본 대신에 ‘마리아의 자녀’지원자 리본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리아의 자녀에 들어가 보지 못한 채 기숙학교를 나왔습니다. 공부를 다 마치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학교를 오래 다닌 다른 학생들처럼 마리아의 자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특권이 부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언니들이 모두 ‘마리아의 자녀’였기에 그들만큼 천상 모후의 자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괴롭기는 하였으나) 기숙학교에 가서 마리아의 자녀에 입회할 수 있도록 허락을 청했습니다.
수녀님은 거절하지는 않으셨지만, 입회할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오후에 수녀원을 방문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입회로 즐거움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저에게는 오랫동안 기숙학교 생활을 한 다른 학생들처럼 친한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그저 인사만 하고 공부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챙겨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소성당에 가서 아빠가 데리러 오실 때까지 성체 앞에 있었습니다. 이것만이 저의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의 ‘오직 하나뿐인 벗’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예수님께만 말할 줄을 알았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것이 신심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제 마음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자애심이 섞이기 마련이지요. 제가 수녀원에 온 것은 오직 성모 마리아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가끔 정말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기숙학교에서 슬픔과 괴로움에 잠겨 넓은 뜰을 산책하던 것처럼, 제 마음속에 평온함과 힘을 주던 시의 구절을 되풀이했습니다. “인생은 네 집이 아니라 네 작은 배다!”(라마르틴이 쓴 시 속의 한 구절이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어린 시절에 느꼈던 열정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인생을 배에 비유한 이 구절은 귀양살이를 견디도록 제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혜서’에도 “인생은 배가 높은 물결을 헤치고 갈 때와 같다. 한번 지나가면 자취도 찾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제 영혼은 무한 속으로 들어가서 벌써 영원한 곳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예수님의 입맞춤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모님께서 아빠, 엄마와 어린 네 천사와(죽은 형제자매를 뜻한다) 함께 저를 마중 나오시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저는 영원한 가정의 참된 삶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집에서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것을 보기 전에 아직도 이 세상에서 많은 이별의 쓰라림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제가 마리아의 자녀에 들어가던 해에 제 영혼의 유일한 지팡이였던 사랑하는 마리 언니를 빼앗겼습니다. 마리 언니는 저를 지도하고 위로하고 제가 덕행을 닦도록 도와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마리 언니만이 저에게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폴린 언니도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지만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폴린 언니와 떨어져서, 언니와 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두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순교자 같은 괴로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폴린 언니는 영원히 제게서 사라져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슬픈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언니는 언제나 저를 사랑했고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으나, 제 눈에는 사랑하는 폴린 언니가 성녀가 되어서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모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폴린 언니가 불쌍한 데레사의 슬픔을 안다면 놀라서 전처럼 사랑해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언니에게 제 생각을 뷔소네에서처럼 다 고백하려고 했어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폴린 언니를 만나는 면회장에는 마리 언니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셀린 언니와 저는 마지막에나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겨우 가슴이나 졸일 시간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제 곁에는 사실 마리 언니밖에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언니는 제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제 세심증에 대해서 언니에게만 이야기했고, 언니에게는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저는 마리 언니가 신부님에게 고하도록 허락해 준 죄만을 이야기하고 하나도 더하지 않았으므로 저의 고해 신부님조차 제 나쁜 병을 조금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제가 극도의 세심증을 가지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세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직 마리 언니만 제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들과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은 바람까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니의 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만큼 언니를 사랑했습니다.
첫댓글 톡 치면 쨍 하고 맑은 소리를 낼 것 같은 투명한 영혼을 가진 성녀님의 유일한 벗은 예수님이셨군요. 언제나 삶의 지향이 하늘나라를 향해 있는 성녀님을 닮고 싶습니다.
예수님하고만 말을 할 줄 알고 신심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하면 피곤함을 느끼고 하느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낫다고 느끼신 성녀님...이미 성녀가 되신 것 같다는 생각드네요.
그리고 세심증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어른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