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하이에서 16세에 요절한 해룡(海龍)여신(女神)을 만나다.
공장일을 하다가 지치면 나는 가까운 바다가를 자주 찾았다.
호치민은 거의 평지라서 산을 볼 수가 없다.
산(山)을 보려면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만나는 곳이 바다이다.
베트남은 국토의 삼면(三面)이 바다라 해산물도 풍부하고 사람들이 산보다는 바다를 접하기 쉽다.
한 여름철에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젊은이들을 상상해 봐라.
베트남의 오토바이는 대중 수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남녀노소를 안 가린단다.
나도 가끔씩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가에 자주 들렀다.
서울사람들은 바다를 보고 싶으면 지하철을 타면 된다.
그러면 강화도와 월미도 앞바다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지하철이 아직 없다.
그러니 대중버스나 오토바이를 이용해야 한다.
얼마 전 힘든 일을 겪었던 터라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시간을 내서 바닷가에 오게 되었다.
공장 운영을 하다 보면 별 이상스러운 경험들을 많이 당한다.
외국이고 동남아라 더 심한 편이다.
직원들 데모가 점점 조직화 되어간다.
일반 직원들에게 핸드폰 보급이 적을 적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던 일들이
핸드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조직화되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근로자들 편을 들던 노동인권 관계자들의 부축힘이 근로자들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부당근로가 의심되면 전화하라고 노골적으로 독려한다.
공장이 이런 일 때문에 멈춰 중단되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그 당시 직공들은 일단 노동부 사람들이 등장하면 신났다고 일손을 멈추고 지시를 기다리곤 했다.
공장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인데 이런 일로 인해 공장 라인이 중단 되서야 되겠는가?
하소연 할 때가 없었다.
또한 무자년(戊子年) 미국 부동산 여파가 아직도 다 해결이 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자금이 부족해서 항상 어려웠다.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게 일반사였는데 직원들 데모까지 속을 썩힌다.
말 그대로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다 보니까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없던 질병이 생겨났다.
고질혈 중세였다. 위장병도 생겼다.
꿈 속에서는 신장들이 나타나 이제 회사를 그만 두는게 좋겠다고 당부한다.
베트남에는 청부업자가 많다.
한국에서 놀던 조폭들이 베트남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인데
그런 똘마니들이 가끔식 기업체에 나타나 돈을 뜯어 내곤 한다.
우리 공장에도 그런 똘마니 2명이 나를 찾아 왔다.
한 사람은 뿔테 안경을 멋있게 쓴 중견간부 같았고
한 남자는 비계살이 100kg은 넘는 거구의 몸을 자랑하는 위협용 부하였다.
이 친구는 일단 자기 비계살로 상대방을 겁을 주는데 이용 되었다.
“안 갚겠다는 것이지. 정말 ”
그러면서 손바닥에 주먹을 탁탁 친다.
그럼 몸에 달린 비계들이 사방팔방으로 덜렁덜렁 움직였다.
그런 부하를 데리고 와서 지금 나를 겁박하는 것이다.
그는 자수공장 사장이 써 준 위임장을 가져 왔는데
자수 대금을 청산하라는 독촉장이였다.
밀린 대금이 3만불이였다.
나는 비계살이 덜렁 덜렁 거리는 그 위협용 친구를 보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닌데 ”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도 모르게 세어 나왔다.
그 친구들은 보통 채무자를 이 정도로 겁박하면
채무자가 겁을 먹고 일단 수락하는 분위기로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가 보다.
그런데 뿔테 안경을 쓴 그 간부가 내 얼굴을 본 것이다.
“겁을 안 먹고 실소를 하다니”
“이 사람 보통 내기가 아니군”
하고는 거기서부터 승부가 갈렸다.
겁을 주려 온 것이지 정작 싸울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게 양아치들이다.
만약 양아치들이 합법적인 법인체 사장을 위협했다는 사실이
대사관과 베트남 경찰에 신고가 접수가 되면
그 놈들은 바로 잡혀서 조사받은 후에 강제 출국 당한다.
다시는 베트남 입국이 어렵단다.
이걸 너무도 잘 아는 양아치 들인지라.
겁을 주는게 실패로 돌아가자 당황한 기세가 역력하였다.
말을 더듬더니 금세 돌아 갔다.
그리고는 나중에 청탁을 한 그 자수공장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연락할 적에는 전화를 일체 안 받더니
오히려 이번에는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양아치들이 나에게 오질 못하자
그 오더를 내린 채권자에게 달려가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요?”
“그걸 왜 내게 묻소?”
"이 자들이 나를 찾아 와서는"
“나와 함께 공장을 찾아 가야겠다고 말하네요"
“당신이 부른 청부업자들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는데
양아치들이란 대부분 이렇다
상도(常道) 의(義)가 없다.
자기들이 부족해서 일처리가 불발(不發)인 된 것인데
그 결과에 대해 채권자 탓을 한다.
이 정도 되면 이건 청부업자가 아니라 완전 양이치들이다.
그래서 양아치들을 함부로 고용하면 자기가 곤란을 당하게 된다.
나도 공장 운영하다 보니까.
옆 공장 사장님들이 마피아를 자주 소개해 주었다.
그 마피아는 전국구 3위라 한다.
그를 만나면 공장 데모가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하였다.
조직원들이 데모하는 직원들 집을 방문해 두들겨 팬다고 한다.
그러니 감히 누가 앞장을 서서 데모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내가 정치적인 확실한 힘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경제 마피아를 부리게 되면
나중에는 그 마피아를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마피아는 고용하지 않았었다.
지금 이 자수공장 사장이 자기가 돈 주고 잘못 부린 마피아로부터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자
나는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잠시 바닷가에 와서 병치료하면서 요양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온 바다가 바리아 붕따우였다.
거기서 나는 3개월을 머물렀다.
나는 오토바이를 주차장에 맡기고 노상에 있는 카페에 흔들 그네에 몸을 뉘었다.
“휘리리릭!”
휫바람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작은 산언덕 위에서 바람이 부니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보니 누군가 찾아 왔는데
이 동네 산신령이란다.
잠을 깰려고 하는데 못 일어서겠다.
일어나긴 해야 하는데 뭔가에 취하여 눈이 떠지질 않는 것이다
“최면에 걸렸구나”
산신령이 나에게 최면을 걸어 잠들게 한 것이다.
깊이 깊이 잠들다가 깨어 날 쯤에 산신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과거사를 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 동네 산신령은 놀랍게도 베트남인이 아니였다.
유렵계 백인이였다.
아마도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살던 프랑스 지배층인 것은 확실하다.
“놀랍군.”
“산신령이 베트남인이 아니라 유럽인이라니”
누가 믿어 줄 것인가?
그는 죽어서 여기 바다를 사랑했나 보다.
하긴 나도 이 바다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베트남에 남아 산신이 되었으니
“나도 죽으면 그리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바리아 롱하이 해변가에 위치한 딘 고 사당(Dinh Co Temple)에 들르게 되었다.
거기 제단에 내가 산신들이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들을 사서 올리면
주변의 산신(山神)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누가 올리는가에 따라 그 맛이 결정된다.
일식 주방 요리 실력자라도 여기서는 소용이 없었다.
일반인들이 올리면 공양을 안 받는단다.
그러나 내가 올리니까
주변의 산신들이 모자를 쓰고 가방을 이고 이곳 사당으로 전부 몰려 왔다.
내 제사 밥이 특히 맛있단다.
그들이 공양을 한 입 받아 먹으면 그게 나의 공덕이 되어 돌아 온단다.
그러므로 공양을 올리는 사람들은 그 제사밥이 맛나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대충 제사 올리고 가자.”
이런 식이라면 안 올리는 게 좋다
시간 낭비인 것이니까?
산신이 공양을 받아 먹어야만
그게 내 공덕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대중회향(大衆廻向)인 것이다.
이렇게 공양을 올리면 산신들이 잘 호응해주는 사람을 일러 법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산신이 만나주질 않더라도
법사하고 대동하면 그 잔치는 소문이 난다.
산신과 일반인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영통한 법사라고 보면 된다.
딘고 사당에는 16세 소녀의 전설이 있다.
그 소녀에 대해 잘 아는 바는 없다.
그런데 16세 숭고한 처녀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람들을 구제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어서 해룡신(海龍神)이 되었단다.
그 여신을 모신 사당이 “딘고 사당”이였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그 여신을 만났다.
꿈에서 한 동안 나타 나길래
나는 그 사당 근처에서 터를 잡고 3개월 동안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나는 돈이 생기면 이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다.
“죽으면 그 유럽계 산신처럼 나도 바다가 산신이 되리라.”
그래서 땅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나타나더니
“미스터 김은 여기서 살지 않을 것인데 왜 땅을 알아 보시는 겁니까?”
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내가 다시 호치민으로 복귀하여 일한다는 것을 예언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기도가 계속 무르익을 무렵이였다
누군가 꿈 속에서 나타나 나에게 명리학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얀 옷을 입고 강의하던 모습들이 보였는데
잠에서 깨어나면 그 실체가 뚜렷하게 생각나지를 않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지.”
그게 일주일을 계속해서 나타나니까
이제는 누구라는 호기심보다
왜 명리학인가에 관점이 옮겨갔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명리학책을 구입해서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젊은 날에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지던 명리가
왜 오늘 이처럼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일까?
난해한 명리책 한 권을 일주일만에 읽었다
“아하 명리신이 들어왔구나.”
그러니 우둔한 머리로 난해한 명리가 확연히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명리신이 도대체 누굴까?
머리의 상투를 메고 긴 지팡이를 가진 한 노인이 꿈 속에 나타났다.
말은 없었지만 대충 그가 꿈 속에서 명리를 가르친 노인이라는 것을 짐작을 했다.
“누구시죠”
“자평진전의 저자 그 사람이다.”
그때 나는 자평진전의 책을 말로만 듣고 본 적은 없었다.
그 책을 지은 저자가 나에게 붙었구나.
잘 만하면 이 길로 나가도 성공은 하겠다.
나는 3개월의 기도 생활을 접고 호치민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였다.
마침 전날에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공장을 다시 맡아달라고 마땅한 사람 구하기 어렵단다.
구할 때까지만 다닐 생각이다.
이제부터는 명리학을 공부하도록 해야 하겠다.
“내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구나.”
결심한 순간부터 오래 동안 채워지지 않던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이
희열로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떠 날 차비를 하자
그 날밤 꿈 속에서
여신이 나타나 말했다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 오세요”
독촉하듯 또는 앞으로 한 번은 더 찾아올 것이라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작별인사를 하며 아쉬워했다.
롱하이 해변은 그 이후로 급격하게 발전했다.
해룡 여신이 말하길
내가 온 후로 이 지역이 변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 변화란 곧 지역발전인 것이다.
도인이 찾아와서 기도하면 그 장소는 하늘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그 결과 하늘의 홍복을 그대로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낙후하던 롱하이 일대가 얼마지나 다시 찾아 가보니
눈이 휘둥그래 질 정도로 한창 개발이 진행이 되고 있었다.
첫댓글 소설인지 아닌지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