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어리는 의인들의 향기

[등선대]

역사 기행           고향에 어리는 의인들의 향기

                                                                                                     두봉 김 영 일

북한산의 웅장한 봉우리들이 굽어보는 저 아래 갈대꽃 만발한 장항습지가 아스라이 펼쳐진 고향의 들판

조상 대대로 살아오기 400여 년 잔뼈가 굵어졌던 고향이 거기 있었다.

세월이 강물 따라 흘러가듯 고향에 서린 아름다운 일들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있고 어릴 때 뛰놀던 내 고향 그리움들만 안개처럼 우리 가슴에 내려앉고 있다.

1413년 조선 태종 때 덕양현과 고봉현 두 고을을 합쳐 고양시로 명명한 나의 고향 고양시

흘러간 역사 600년 고양의 역사를 빛내주신 의로운 분들의 장한 뜻이 서려 있는 내 고향은 이래서 한층 자랑스럽다.

1, 의기 강아 아씨

조선 선조 때 정철(46세)이 남원에 지방관으로 재직 시 동기 자미화(10세)의 머리를 얹어주고 “강아(江娥)”라 부르고 평생 반려자로 살기로 하였으나 정철은 선조를 모시던 중 세자 책봉 문제로 노여움을 사 강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10년 후 강계로 찾아간 강아 1차 만난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평양성에서 포로로 붙잡히게 되었고 의병장 이량의 권유로 왜장 소서행장(?)을 유혹하여 아군의 평양성 탈환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나 몸 바쳐 나라 구한 숭고한 충성은 어디로 가고 훼절 된 사랑 반쪽만 쥐고 평양 영명사에 소심이란 법명으로 수도하였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였건만 계월향이나 논개처럼 순절하지 못한 처신에서 가슴 한구석에 냉기가 흐르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후 고양시 송강마을 지하에서 송강과 해후했으나(?) 그 후 손자 대에 충북 진천으로 정철 부부만 이장시켰고 강아 아씨는 현재 송강마을 산기슭에 외로운 초분 속에서 오동잎 피는 밤도 그 잎이 지는 날도 허구한 날 은하수 저편을 바라보며 한숨 섞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라를 구한 지대한 공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서글픈 정적만 이 무덤가를 맴돈다.

2, 최영 장군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님의 유훈처럼 살아온 최영 장군(무민공(武愍公 1316~1388)은 전장(戰場)에선 용장으로 조정(朝廷)에선 어진 재상이며 또한 청백리(淸白吏)이기도 했다

원나라 제주 목장 관리하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을 토벌하시고 명나라 소유였던 제주도를 되찾아 와 추자도 벼랑 위에도 장군을 추모하는 사당이 세워졌다.

용천설악(龍泉雪鍔) 휘둘러서 난리를 진압하고 녹이상제(綠耳霜蹄) 고삐 조여 홍산의 왜구 토벌 시에는 배수진(背水陣)치고 조여오는 적과 고군분투하는 와중(渦中)에서 날아든 화살 하나 장군은 입술 위에 꽂은 채로 선 토벌 후 치료하는 피보다 더 붉은 충(忠)의 화신이시다.

반원(反元) 운동 전개하던 공민왕 행보 따라 쌍성에 총관부 땅 되찾아 실지(失地) 회복하셨고 금수강산 짓밟았던 홍건적(紅巾賊) 물리치고 잇따른 왜구들의 침범을 소탕(掃蕩)해 송도 공신각(功臣閣) 위에 장군의 초상화(肖像畵)가 나부끼기도 했다.

요동 정벌 나섰지마는 장군은 우왕의 호위무사로 출전치 못하시고 정벌에 나선 조민수 이성계 일당은 압록강변 위화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비 오는 위화도(威化島)엔 위화감(違和感)만 조성되고 급조된 그들만의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만들어 칼끝을 개경으로 돌렸다.

나라도 충성도 덧없는 세월 속에 남겼던 발자취는 속절없이 사라지고 송도를 뒤덮던 사랑 구천(九泉)을 방황 터니 고양 땅 벽제(碧蹄)의 대자산 자락 청 너머 골에 6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깊은 잠을 주무시고 계시다.

3, 굴씨녀의 일편단심

심양 땅에서 볼모 살이 하던 소현세자

청나라가 수도를 심양에서 북경으로 이전할 때 같이 따라간 세자는 명나라 태생으로 나라가 망하자 청나라에 잡혀 와 황궁에 궁녀로 있던 굴씨녀를 만나게 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안고 그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세자 일행이 귀국할 때 천주교도와 궁녀들을 보낼 때 굴씨녀도 동행하게 되었고 부왕 인조와 후궁 조소용의 농간으로 애석하게도 귀국 3개월 만에 세상을 뜨시니 세자가 꿈꾸던 이상향 건설은 물거품이 되었다.

천하절색 굴씨녀는 장렬왕후 궁을 떠나 자수원(慈壽院)으로 찾아들었다.

또한 제주도 유배지에서 살아남은 소현세자의 세째 아들 경안군

효종은 그의 유배지를 강화도로 옮겨주었고 그 뒤 소현세자와의 옛정을 되새기며 살아가던 그녀는 그의 수발을 들며 지냈고 아울러 조국 명나라의 광복을 꿈에서도 놓지 않았던 그녀의 뜻대로 효종의 북벌계획은 한창 신나게 진행되고 있었다.

효종의 북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녀, 70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는 날 그녀는“내 죽거들랑 조선 임금님의 군대가 청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에 꼭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북벌을 도우며 궁중 법도를 보살피며 비파의 달인이던 그녀, 서쪽으로 가는 길목에 묻히기를 원했던 굴씨녀, 조선의 소현세자를 흠모하던 이국 궁녀의 일편단심이 무덤조차 붉은 묘지로 만들어 놓은 “청 너머 골‘ 이름 모를 꽃들만 피어있는 그 무덤가를 서성이는 나그네 마음도 서글펐다.

4, 행주산성의 의로운 충혼들

1592년(선조 25) 7월

독산성(禿山城)에서 왜군을 격파한 권율 장군은 행주산성에 주둔하며 목책(木柵)과 흙을 쌓아 물을 부어 얼게 하여 방비를 튼튼히 했다.

병사들에게 재를 담은 주머니를 허리에 차게 하고 은밀히 산성을 지키고 있었고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를 금천(衿川:지금의 시흥)에 소모사(召募使) 변이중(邊以中)도 양천에 주둔해서 행주산성에 배수진을 친 권율을 돕기로 하였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우키타(宇喜多秀家)를 선두로 7개 부대 3만여 왜병은 종전의 배티재와 독산성 싸움의 대패를 보복하려 행주 펄로 몰려들었다.

제1 대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성(城) 공격에 앞장섰고 제2대 제3대도 조방장 조경이 쏘아대는 대포 및 화차 화포에 맞아 병사들이 즉사하자 적의 병마는 혼비백산 즉각 물러갔다.

화가 치민 총대장 우키타는 제4대 장병들을 이끌고 제1 성책을 넘어서 제2 성책까지 접근하였다.

그러나 권율의 독려로 힘을 얻은 처영의 승의군의 반격과 재를 바람에 날리니 눈을 뜰 수 없게 되자 달아나고 말았다.

제7 대장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서북쪽 토성을 지키던 승의군의 한 귀퉁이를 뚫고 성안에까지 돌입하려 하자 이때 권율은 대검을 빼 들고 승의군의 총공격을 호령하며 치열한 백병전에 돌입하였다.

옆 진영의 관군도 화살이 다해 투석전을 폈는데 이때 부녀자들까지 동원되어 관민이 일치단결해 싸웠다.

성안에 물자가 바닥나자 마침 충청의 정걸 수사가 수만 개의 화살을 싣고 올라오니 이에 당황한 적은 성안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적군은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적의 시체가 200구가 넘었고, 타다 남은 시신도 부지기수였으니 이것이 유명한 임진왜란 3대첩 우리 군사 2,300명으로 3만여 왜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이다.

행주산성을 지키던 의로운 충혼들의 푸른 역사를 새긴 대첩 비가 아리수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다.

5, 충신 박충원

단종이 영월에서 승하하신 후

영월 부사로 부임하는 사또들은 갑자기 사망하니 그 후로는 누구든 부임하기를 싫어했고 고을은 황폐해졌다.

이때 한 조관이 스스로 부임하기를 자처하며 나섰고 그가 영월 부사로 부임하던 날(1541년 9월) 그는 홀로 촛불을 밝히고 방안에 앉아 있노라니 밤이 깊었을 때 갑자기 임금님의 행차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한 임금이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들어와서 대청에 앉으셔서 말씀하셨다.

임금(단종)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무지몽매한 향교의 심부름꾼에게 목이 졸라매어 죽게 되었는데 내 목엔 아직도 활줄이 매어져 부임하는 본관(부사)에게 풀어 달라고 부탁하러 오면 그들은 갑자기 겁을 먹고 죽어 버려 내 뜻을 전하지 못하였더니 오직 너만은 그 용기가 가상해서 나를 맞아주니 반갑구나." 하였다.

또한 상왕은 "이전에 호장 엄흥도가 나를 업어다 매장한 곳을 알고 있으니 그의 자손들과 상의해서 처리하라 이르셨다.

아침이 되자 엄흥도의 자손들의 거처를 물어본 뒤 밤이 깊었을 때 부사가 은밀히 사람을 시켜 그의 자손들을 불러 상왕의 옥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니 그 후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그들은 그때 상황을 들은 대로 잘 말씀드렸다.

상왕이 돌아가시자 고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 옥체를 강물에 던졌고 할아버님은 그날 밤에 몰래 그 시체를 업어다 읍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받들어 모셨으나 활줄은 미처 풀지를 못하셨답니다.“

다음 날 아침

부사가 곧 그들과 함께 몰래 그곳에 도착하여 관을 열고 살핀 후 수의를 갖추어 무덤을 고치고 장사를 지냈는데 지금의 장릉이 바로 그곳이다.

이날 밤 단종은 다시 대청 위에 오르셔서 박충원의 충성 그리고 엄흥도 후손들에게 충성에 대해 치하하시며 마땅히 후한 보답을 내리리라."하고, 수레를 돌려 되돌아가셨다.

당시 영월 부사는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이었고 그는 명종 때 이조판서 및 대제학의 자리를 맡았으며 사후 의로운 그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밀양 박씨 선영에 고이 잠들어 있다.

6, 밥 할머니 이야기

고양 연신내 너머 불광리(밀양 박씨 박재윤)에 박 여사(이하 ”밥 할머니“라 호칭)라는 분이 계셨는데 많은 농사를 지어 생산한 쌀을 상당 부분은 빈민에게 이자 없이 빌려주는 방식으로 구휼(救恤)에 사용했고 일부는 전란(戰亂)에 대비하여 비축하였다.

1592년 그녀 나이 49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는 피난을 떠나면서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니 제독 이여송이 4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출병하여 1593년 1월 9일 평양성을 탈환하고 여세를 몰아 한성으로 진격하였으나 벽제관 싸움에서 패퇴했고 기세를 올린 일본군은 창릉천(昌陵川)에 머무르고 있었다.

밥 할머니는 며칠 전 마을 사람을 시켜 북한산 노적봉 옆에 볏짚을 쌓아 놓게 하고 하얀 무명옷을 입고 왜병들이 주둔하고 있는 창릉천에 쌀 함지박을 이고 나가 저기 노적봉(露積峰)은 조선 병사들은 군량 창고로 병사들이 마을의 기민(饑民)들에게 쌀을 나눠 준다고 하며 왜병들을 유인했다.

군량미가 부족한 왜병들은 쌀을 더 타오려고 할머니를 따라붙어 산성으로 오르고 있었다.

또 그때 박 할머니는 쌀을 씻은 뜨물처럼 보이기 위해서 창릉천의 물에 석회를 뿌려 놓았는데 이를 모르는 창릉천 왜병들은 그물로 밥을 짓고 물도 떠먹으니 왜병들은 배를 움켜쥐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조명(朝明)연합군은 이때 창릉천을 급습하니 왜군은 퇴각을 거듭했다.

그 후 밥 할머니는 여자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1593년 2월 12일 행주산성 싸움이 일어나자 치마 부대 의병(倡義裳軍)을 조직하여 참전하였고 행주대첩 승리에 일조했다.

임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 노적봉이 잘 보이는 창릉 모퉁이에 밥 할머니를 기리는 석상(石像)을 조각해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밥 할머니 석상의 두상이 잘려져 나갔는데 일제강점기에 보복적 차원에서 왜구들이 깨드려 버렸을 가능성을 추리해 본다.

창릉 모퉁이 산기슭이 왜구들의 신사 참배 터가 있었던 곳이기에....

지금은 그 석상은 삼송 전철역 위 숫돌고개 마루턱으로 이전해 놓았다.

7)석주 권필 선생

송강 선생 사후에 석주 권필이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송강 정철의 묘를 지나다 읊은 과송강묘유감(過松江墓有感)이 있어 세인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 빈산에 나뭇잎 지고 스산한 비 내리네

相國風流此寂寥(상국풍류차적요) 선생의 옛 풍류 이처럼 고요한가

惆悵一杯難更進(추창일배난갱진) 한 잔 술 권하지 못함 못내 서러워라

昔年歌曲卽今朝 (석년가곡즉금조) 그 옛날 가사만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네

송강의 문하였던 석주 권필은 동악 이안눌과 함께 당대의 최고 시인으로 손꼽히는 분으로 풍류 시인이었다

1611년에 별시 문과에서 왕실에 외척들의 전횡을 비판하는 글로 합격하였던 임숙영의 글이 문제가 되어 합격이 취소되었다.

이때 석주 권필이 이 얘기를 듣고 이를 풍자하는 시를 썼다.

궁중의 버들 꽃잎 어지럽게 흩날릴 제 (宮柳靑靑花亂飛)

성안에 가득한 벼슬아치들 봄빛에 아양을 떠네 (滿城冠蓋媚春暉)

조정에선 모두 태평세월 치하하는데 (朝家共賀升平樂)

어느 누가 감히 바른말 할 수 있으랴 (誰遣危言出布衣)

이 궁류시(宮柳詩)는 당시 세도를 부리던 광해군의 처남 유희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며 더군다나 유희분은 궁류(宮柳)가 왕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광해군을 충동했다.

이 얘기에 화가 치민 광해군은 한음 이덕형과 오성 이항복 등의 대신들이 만류함에도 권석주를 곤장으로 다스린 후 귀양을 보냈다.

들것에 실려 동대문 밖으로 나와 하룻밤 묵은 날 권석주는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친구들이 따라준 술을 마시고(?) 곤장 맞은 곳에 장독(杖毒)이 올라 귀양길에 오르지도 못하고 도중에 죽었다. (광해군 4년 1612년 사망)

그가 석주 권필이다.

이 몸이 되올진대 무엇이 될꼬하니

곤륜산(崑崙山) 상상봉(上上峰)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군산(群山)에 설만(雪滿)하거든 홀로 우뚝하리라​

호방한 기상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비운의 천재시인 석주 권필의 시입니다.

사후 그는 고양 땅 성석동 상감천 주변에 묻혔고 또한 행주산성 역사공원에도 석주 권필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비각 안에는 권필의 행장을 기록한 비석이 보존되어 있고 숙종 45년에 (1719년)에 건립한 묘갈명은 당대 주자학의 대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스스로를 낙락장송에 비길만큼 호방한 기상과 벼슬을 탐하지 않고 의리를 소중히 여기며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설을 하는 언행까지 실로 권필의 생애는 당시 사람들이 여기던 대쪽 같은 선비였고 요즘 같은 세상에 귀감이 되는 의리의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去龍仁)이란 말이 있듯이 사거고양(死去高陽)이라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고양시에는 묘역이 많다.

공양왕릉을 비롯하여 서삼릉 서오릉 그리고 무수한 왕자들의 태실 및 묘 더더욱 의인들의 묘가 산재한 고양의 산천들

또한 의인들이 잠들어 있는 고향은 언젠가는 또 다른 의인을 배출할 수 있겠기에 우리가 서 있는 땅의 의미를 한층 더 우러러보게 된다.

의인들의 고향 우리의 고양이기에.....(끝).

[문암]

역사기행 잘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려 좋은 글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선대]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 쓰겠습니다
마음이 따듯하시니 글이 좋게 보이시는 것 같군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