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추억을 추억하다
인천에 대한, 인천의 어제와 오늘의 얘기를 실은 책들을 다신 읽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는 뻔하다. 역 향수병을 치유할 방법을 여전히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인천에 살 때에 떠나 온 고향 남원을 잊지 못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다리 헌책방 골목 헤매며 고향에 관련된 책들을 사모아 읽으며 향수를 달랬었다. 그래도 치유 못해 무작정 가족들을 데리고 남도 땅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렇게 향수병은 치유된 듯 했지만 아니었다. 이제는 외려 인천을 그리워하는 역 향수병에 시달리게 됐다. 허나 내색할 수 없었던 것은 필자가 억지 만용을 부려 귀향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역 향수병을 치유코자 인천에 대한 책들과 자료들을 스스로 금서와 불온문서로 지정해야만 했다.
서가에는 귀향할 때 가져온 시에서 낸 <인천의 지명유래>며 인천역사서의 양대 바이블이라는, 해반문화사랑회판 <인천석금>과 <개항과 양관역정> 그리고 오광철 선생의 <능허대와 참성단> 등이 보관돼 있지만 가능하면 들춰보지 않는다. 문득문득 인천이 그리울 때도 꾹 참았다. 대상을 보지 않으면 잊힐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인천의 대한 보도가 있거나, 인천에 살고 있는 부모형제들과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로부터 안부전화라도 받게 되면 향수는 마치 거침없는 해일 같아 막을 수 없었다. 향수병은 애써 외면할 게 아니라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게 유일한 치유법이 될 것 같다는 게 최근의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지난 일요일 어릴 적부터 수도국산이 있던 송현동에서 살았었던 아내와 함께 늦봄 나들이를 광주 근교 화순으로 다녀왔다. 무등산 동쪽 줄기에 자리 잡은 송광사 출신 만연 선사가 터 잡아 만연사란 문패가 걸린 절집 울타리에서 마지막 남은 철쭉을 봤다. 철쭉을 보니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고 살았던 지역 동구의 화도진공원에 봄이면 피어나는 철쭉이 생각났다. 일전 공공기관 공람문서에 낯익은 지명의 문서가 올라와 있어 출력했더니 동구에서 보내 온 ‘제29회 화도진축제 참여 및 홍보 협조요청’이다. 해마다 철쭉이 피는 이맘때면 열리는 유서 깊은 축제다. 5.18일부터 5.19일까지 이틀간 동인천역 북광장과 화도진공원 일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참에 만사 뒤로 미루고 달려가 반가운 사람들 만나 막걸리 잔 나누며 묵은 회포를 풀어야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또 해본다. 귀로 길에 광주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렸다. 여전히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책 욕심 놓지 못하고 있다. 그날 책방에서 구입한 책 중의 하나는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의 길’ 총서로 기획 출판한 <질주하는 역사 철도>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읽기 시작했다. 215쪽의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진도가 빨리 나갈 리 만무했다. 한줄, 한 페이지 읽고 넘길 때마다 선연히 그려지는 인천의 아련한 풍경과 상념들 때문이다. 어떤 구절은 한동안 눈길이 멈추게도 했다. 그만큼 알게 모르게 인천에 대한 애정이, 추억이 깊었던 것이다. 눈길을 멈추게 했던 구절들 중에 “경인선이 시작되고 끝나는 인천역, 교외선의 한적함과 가벼운 고독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인천역, 그곳에는 아직도 여행의 설렘 같은 것이, 여행의 아우라가 남아있다.”가 있다. 이 구절은 <비 내리는 어느 가을날의 인천역>이란 제하의 글이다.
또 <시가 된 추억의 열차 수인선>에는 “그 때 그 시절, 인천과 수원을 오가며 군자 염전의 소금과 소래포구의 참게를 쉼 없이 실어 나르던 바지런한 꼬마열차, 황혼녘 드넓은 야목의 들판과 소래 철교를 지나 햇빛이 노루꼬리만큼 남았을 때 수원역 혹은 송도역에 도착하여 통학생들과 좌판 아주머니들을 부려 놓던 서민 열차, 바람과 갯벌과 사연들이 모여 시(詩)가 되어 버린 추억열차, 수인선”이라는 저자 조성면의 애틋한 기록이 실려 있다. 책은 중요한 역사상식도 제공해준다. 세계철도사에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세 차례의 경인선 기공식이 인천에서 있었단다. 모스가 인부 350명과 함께 1987년 3월 22일 경인가도의 우각리에서 한 번, 일본이 1899년 4월 23일 인천역에서 또 한 번, 마지막으로 1971년 4월 7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거행한 경인선 전철화 착공식이 그 것이다. 책에서 인천을 간접적으로 추억해야 했지만 그 추억의 맛 달콤하고 오래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