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제문에서 嚴倅라는 이가 나오는데, 암만 찾아도 안 보이다가, 드디어 야사에서 찾았습니다.!!
엄택주였습니다.
이거 각주를 어떻게 달지요?
===============================================================================
이만강(李萬江)
1689년(숙종 15) ~ 1755년?(영조 31).
이만강은 충청도 전의현 관청의 노비였는데 아버지는 전의현 아전이고, 어머니는 노비였다.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선비 신후삼에게 글을 배웠는데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신후삼에게 “어느 마을 어떤 집에 의지할 데 없이 홀로 살고 있는 처자가 있는데 그 처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집은 화를 입어 모두 죽고 처자만 살아남았는데 혼기를 놓쳐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후삼은 그 처자와 고향이 같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후삼은 크게 노하여 “천한 주제에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 이제부터 내 집에 발도 들이지 말라!”고 꾸짖었다.
이후 이만강(李萬江)은 도망하여 떠돌다가 영월에 정착하고 호장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이름을 엄택주(嚴宅周)로 고친 후 엄흥도(嚴興道)의 후예로 행세하며 영월 엄씨 양반으로 출신을 위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1719년에 증광 생원시에, 1725년에 증광 문과에 전체 15위로 급제하였다. 그는 급제 후 연일현감이 되었고, 1740년(영조 16)에는 제주에서 판관 벼슬을 하였다. 벼슬을 그만둔 뒤에는 태백산 기슭 궁벽한 곳에 거주하며 향촌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1745년(영조 21)에 그가 영월 엄씨 가문의 양반이 아닌 이만강(李萬江)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망노비라는 것이 발각되었고, 또한 과거에 급제한 이후 신분을 숨기기 위해 부친의 묘에 성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추가적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강상(綱常)의 윤리를 무너트렸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당하였고, 이후 흑산도(黑山島)로 유배되었다. 또한 그의 과거 급제 사실도 삭제되었다. 그의 거짓 이름인 엄택주(嚴宅周)도 본래 노비의 이름인 이만강(李萬江)으로 환원되었다.
1746년 5월, 지평 이진의(李鎭儀)가 올린 상소에 “죄인 이만강(李萬江)이 멋대로 섬을 떠나 서울을 왕래한 일은 매우 무엄한 짓이니, 당연히 체포하여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형신(刑訊)이 가해졌다. 1755년(영조 31)에 윤지(尹志)가 노론(老論) 일당에 불만을 품고, 조정의 정책을 비방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괘서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관련자들이 모두 체포되어 국문(鞠問)을 받았는데, 임국훈(林國薰)의 공초 중 이만강(李萬江)이 윤지와 서신을 왕래하였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투옥되었고, 심문을 받았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죄인 이만강이 물고(物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아마도 고문을 받다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댓글 애쓰셨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능력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