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정규직 발령
무등산 TV 중계소가 준공된 다음 달인 4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박정희, 김대중 두 후보 간에 치열한 선거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호남지방
에서 김대중 후보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그중에서도 광주는 중심지였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이야기의 소재가 온통 선거 이야기였다.
결국, 선거는 박정희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선거는 우리 현대사에
주목할만한 명승부로 기억되었다. 온 나라 안에 열기로 가득했던 선거는
이렇게 끝났지만, 그 영향은 우리의 정치사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해 9월, 내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KBS의 근무자로서 국가가
인정하는 기술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에게는, 필기시험을 면제하고 서울
에서 면접시험만 치르고, 정규직인 '5급을' 공무원으로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반갑고도 귀가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었다.
나는 이해 9월에 문화공보부 청사가 있는 중앙청으로 가서, 면접시험을
치르고는 시험에 합격하여 1971년 11월 1일 자로, 국가직 5급 을인 '전송
기원보(傳送技員補)' 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KBS 취업 2주년을 한 달 앞두고 큰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공무원으로서의 신분 보장과 함께 월급도 크게 인상되었다.
당시에 1만 9천 여원 받던 급여가 11월 첫 달에는 2만 7천여 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금도 그 때의 감격과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제3급 무선기술사
자격증을 힘들게 취득했지만, 막상 취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다소
의기소침하며 지냈는데, 이렇게 요긴하게 활용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면서 새삼 자격증의 위력을 절감하였다. 비로소 새로운 날개를 달게
되니 근무도 한층 힘이 나고 자신을 더욱 독려하게 되었다. 무등산에서의
두 번째 겨울이 기쁨과 감사 속에 깊어 가고 있었다.